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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I'm debating(고민 중이야)

직장 동료와 점심시간에 스타벅스에 갔다. 동료는 한쪽에 진열된 텀블러들을 열심히 구경하고 있다.

"텀블러 사시려고요?" 하는 나의 질문에 미국인 동료는 이렇게 대답했다. "I'm debating." 토론 중이라고요?

우리나라 공교육에서는 debate를 '토론(하다), 논쟁(하다)'이라는 의미로만 배운다.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debate에는 "to try to make a decision about something(무언가에 대해 결정을 내리려고 하다)"이라는 뜻도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consider a possible course of action in one's mind before reaching a decision(결정하기 전에 마음속으로 가능한 행동들을 따져보다)."

꼭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필요 없이, '나 혼자, 나 자신과' 무엇을 할지 말지 고민할 때 이 단어를 쓸 수 있다.

즉, 위의 상황에서 내 미국인 동료는 "(살지 말지) 고민 중이야." "아직 생각 중이야."라고 대답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음과 같은 예문을 쓸 수도 있다(콜린스 코빌드 사전이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랜덤으로 보여 준 예문이다).

"All the way he was debating whether or not he should tell her.(그는 내내 그녀에게 말을 해야 할지 말지 고민했다)."

이제 이 말은 나도 자주 쓴다. 나 같은 결정 장애를 가진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표현이다^_T

[영어 공부] dodgy(부정직한, 믿을 수 없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와서 제일 먼저 배운 영어 단어들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요즘 추워서(여긴 한국과 날씨가 정반대이다) 코트에 달린 후드를 꼭 올려 쓰고 다니는데 친구가 그걸 보더니 자기는 후드를 그렇게 쓰면 dodgy해 보인단다. 금방이라도 어디를 털 거 같은 인상이라고.

케임브릿지 사전은 dodgy를 "dishonest(부정직한)"로 풀이한다.

사업이 뭔가 뒤가 구린, 사기의 냄새가 폴폴 날 때도 a dodgy business라고 할 수 있다.

리스크가 따르는 위험 부담이 큰 일에도 dodgy라는 단어를 쓸 수 있다. 

이 단어는 신체에 쓰면 허약하다는 의미가 된다. "I have bad knees(난 무릎이 안 좋아)."처럼.

dodgy는 영국식 영어라 내가 여태껏 잘 못 들어 본 게 아닌가 싶다. 미국식 영어에서는 dodgy 대신에 shady를 쓴다.

 

[영어 공부] In for a penny, in for a pound(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며칠 전 게임을 하던 중에 친구에게 게임 내 1차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랑했다.

그리고 내친김에 다음 목표까지 달성하겠다고 했더니, 친구는 "In for a penny, in for a pound, heh?"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케임브릿지 사전에는 "something you say that means that since you have started something or are involved in it, you should complete the work although it has become more difficult or complicated than you had expected(어떤 일을 시작했거나 연루되었으므로 기대한 것보다 더 어렵거나 복잡하다 하더라도 그 일을 끝내야 한다는 의미의 말)"라고 나와 있다.

즉, 우리 말로 하자면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라는 의미이다.

이 말의 유래를 찾아보니, 옛날 영국에서는 1페니를 빌리나 1파운드를 빌리나 돈을 안 갚았을 때(또는 훔쳤을 때)의 처벌은 똑같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러나 저러나 똑같은 처벌을 받을 거면(같은 갚이면 다홍치마라고^^) 큰돈을 빌리는/훔치는 게 이쪽에서는 이익이니까.

Phrases.org.uk에서는 이 표현에 대해 "It suggests that, if one is decided to do something, one may as well do it wholeheartedly(어떤 일을 하려고 결정했으면 전력을 다해 하는 것이 낫다는 의미이다)."라고 풀이한다.

게임을 하던 중에 나온 말이니 "켠 김에 왕까지"라고도 할 수 있으려나? 그건 좀 오버 같지만, 어쨌든 친구 덕에 좋은 표현을 배웠다.

 

 

 

 

[웹툰 감상/추천] 골드키위새, <죽어도 좋아>

주인공 이루다는 악덕 상사 백 과장을 모시고 살아가는 이 시대 평범한 직장인이다.

어느 날, 그녀는 회식 자리에서 진상을 부리는 상사를 향해 '죽어 버리면 좋겠다'고 저주한다. 그 때문일까, 잠시 후 백 과장은 어이 없게 죽는다.

놀란 것도 잠시, 눈을 떠 보니 다음 날이 아니라 백 과장이 죽은 회식 날이다. 어제가 반복되는 것이다.

똑같은 하루를 사는 것도 싫고, 백 과장이 죽는 걸 봐야 하는 건 또 양심에 찔리고, 게다가 은근히 잘되어 가는 사내 썸남과의 관계를 이어 나가려면 이 타임 리프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연 이루다는 악몽 같은 하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 감상문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분들은 뒤로가기를 눌러 주세요.)

웹툰을 보고 감상문을 쓰는 건 처음이지만 이건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본, 몇 안 되는 웹툰이기도 하거니와 내가 굳이 유료 결제까지 해서 본 작품이다.

게다가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 주는 작품이라 감상문을 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죽어도 좋아'라는 제목의 중의적 의미와 기본 설정 자체가 흥미로웠다. 정말 죽이고 싶을 만큼 미운 상사가 누구나 한 명쯤은 있을 테니까.

그런 악덕 상사를 몇 번이고 죽여 주는 이 대리 경험은 그 자체로도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그러나 이 웹툰의 의미는 거기에 있지 않다. 인격 살해적 막말을 서슴지 않는 사람이 타인을 배려하는 '좋은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점을 고찰했다는 데 있다.

백 과장 본인이 자신이 타인에게 욕을 먹을 짓을 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착해져야 타임 리프가 끝나고 소멸된다는 엔딩도 좋았지만 역시 제일 마음에 드는 건, 루다가 백 과장과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이게 정말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백 과장이라는 캐릭터가 겉모습도 준수하고 또 '포메라니안'으로 변신한 모습은 참 귀여워서 독자들에게 인기가 많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만약에 백 과장이 마음을 바꾸어 먹고 착한 사람이 되었다는 이유로 루다가 갑자기 강 대리와 헤어지고 백 과장과 이어진다?

극을 이끌어가는 두 주인공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은 잘 알겠지만, 그러면 이 극이 말하고자 하는 의미가 흐려져 버린다.

백 과장이 좋은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루다를 사랑하니까 루다도 그를 사랑해야 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 지구에서의 경험을 통해 '아무리 애틋하고 따뜻한 감정이라 해도 그게 언제나 보답받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잘 알지 않나.

천국에서는 그게 가능할지 몰라도, 여기 지구에서는 아니다.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안전 이별'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지금 이 시대에 '좋은 사람'이라는 건 내 감정이 통하지 않았을 때 그걸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까지를 말한다.

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에게 고백을 했는데 이를 받아들여 주지 않자 앙심을 품고 칼을 휘둘렀다거나 황산을 뿌렸다는 등, 신체적 피해를 입혔다는 기사를 우리가 종종 보지 않나.

자기 감정이 거절당했을 때, '감히 네(=여자)가? 네까짓 게 나를 거절해?' 하고 욱한 것인데, 이거야말로 여자를 얼마나 무시하는 행위인가.

내(=남자)가 누구를 좋아하면 그 사람은 꼭 그걸 받아 줘야 하나? 아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 웹툰을 보면서 백 과장이 착해졌으니 이루다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여성을 마치 착한 일에 대한 보상으로 여기는 거나 다름없다.

사실 이게 굉장히 자연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우리가 어릴 때부터 듣고 자란 '선녀와 나무꾼' 같은 동화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나무꾼은 사슴을 살려 주는 착한 일을 했다는 이유로 선녀를 얻게 된다.

이 이야기뿐만 아니라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동화에서 주인공(남자)은 이러저러한 큰일을 해내고 '그 보상으로' 공주와 결혼해 왕이 되거나 행복하게 산다.

이 과정에서 여자의 감정은 요만큼도 고려되지 않는다. 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인가.

 

인터넷 좀 하신다, 또는 요즘 영어 슬랭 좀 아신다 하는 분들이라면 'friendzone'이라는 단어를 한 번쯤 들어 보셨을 거다.

 

만약 당신이 남자고 짝녀를 다정하고 친절하게 대했다고 하자.

그녀는 고마워하며 말한다. "오빠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그녀는 다른 남자를 사귄다.

즉, 한 남자가 여자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보이는데, 여자는 그를 그냥 '좋은 친구'로 생각하며 그저 친구로만 대한다. 바로 이럴 때 그가 'friendzone'에 있다고 말한다.

상황은 웃퍼 보이지만 사실 이건 여성 혐오적인 말이다.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관심이 있어서 잘해 줬다고 해도, (앞에서 한 말이지만) 그 사람이 내 감정을 받아 줘야 할 의무는 없다.

그건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내가 여자든 남자든 상관없이 똑같은 진실이다.

그렇지만 남자들은 흔히 여자에게 '잘해 주면'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게 되고, 자기 고백을 받아 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잘해 준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건지는 모르겠고, 또 이걸 받는 상대방도 '그가 나에게 잘해 줬다'고 여길지는 또 다른 문제이지만, 일단 뭐 늦은 밤에 집에 데려다 주거나 여자가 구두를 신은 날에는 오래 걷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등의 행위를 했다고 치자.

그렇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고 도움을 베푸는 행위는, 그냥 본인이 인간이고 상대가 인간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인간이면 울부짖지 않고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 소통을 하는 것처럼. 누가 나에게 '너, 늑대처럼 울부짖지 않고 말을 하는구나.' 하고 나에게 칭찬하지는 않는다.

만약에 누가 나에게 그랬다면 나는 그 사람을 이상하다는 눈으로 쳐다볼 것이다. 내가 인간인데 당연하지.

그런데 왜 인간이 같은 동료 인간에게 해야 하는 그 친절함과 배려를 남에게 보였다고 해서 당연히 상대방의 마음을 보상으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나?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 주면 좋고 감사한 일이지, 당연한 게 아니다. 그런데 특히 남자들은 '내가 이러이러한 행위를 하면 여자가 나를 좋아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사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나는 남의 마음을 얻으려고 노력했는데 상대방은 내게 관심이 없다. 그리고 나를 거절한다.

이러면 물론 실망하고 마음이 아플 수는 있다. 하지만 여자는 '친절함'을 주입하면 '마음'을 내어주는 자판기가 아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 '당연히 가져야 하는' 보상물을 빼앗긴 게 아니다. 그녀는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한 것이다.

 

같은 의미에서, 백 과장이 이루다를 사랑했지만 이루다가 그가 아니라 강 대리와 결혼하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다.

이 웹툰을 읽어 나가며 백 과장과 이루다가 이어지기를 바랐을 수는 있다. 팬이니까. 우리 독자들은 백 과장이 어떤 과정을 거쳐 좋은 사람으로 거듭났는지 알고, 또 그에게 감정적으로 이입을 하게 됐으니까.

그러나 둘이 이어지기를 '바란' 게 아니라 '당연히' 이어지기를 기대했다면, 그건 좀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전반적으로 시즌 3 중반까지는 이루다가 백 과장과 얽히되 어디까지나 루다가 메인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강한 상태로 진행되었는데 시즌 3 후반에는 백 과장이 어떻게든 루다를 살려 보려고 현정이도 만나 보고 강 대리랑 얘기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즉, 백 과장이 '액션'을 취하는 주요 인물이 되는 건데 여기서 루다랑 이어지기까지 하면?

안 그래도 죽은 후 다시 살아나서도 이 웹툰은 루다의 시점이 아니라 백 과장의 시점으로 옮겨갔는데, 만약 백 과장과 루다가 이어졌다면 루다는 꼼짝없이 백 과장의 '개과천선의 보상물'이 되었을 거다.

안 그래서 정말 천만다행이다.

후기에 작가님이 '루다와 백 과장을 이어 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면 루다가 너무 불쌍하잖아요."라고 대답하셨는데, 과연 옳다.

백 과장이 정말로 남을 배려하는 사람으로 거듭났다면, 루다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그것을 담담히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고. 그렇지 않았다면 작가가 루다를 통해 작품 내내 보여 주려 했던, 성차별적 폭력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무효화될 뻔했다.

 

정말 재미있고 주제 의식도 좋은, 아주 오랜만에 본 완벽한 웹툰 작품이었다. 작화도 좋고, 깨알 같은 패러디 개그도 나는 마음에 들었다.

이번엔 유료 결제로 봤지만 나중에는 단행본을 사서 소장하고 싶다.

[영화 감상/추천] Isle of Dogs(개들의 섬, 2018) -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얘가 주인공 아타리이다(옷이 심히 사이버 전사스럽다...)

아타리는 '스팟츠'를 찾으러 다닌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개들의 털은 알파카의 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배경은 메가사키(Megasaki)라는 일본의 (가상의) 한 도시. 개 독감이 널리 퍼지자 시장인 코바야시(Kobayashi, 쿠니치 노무라 분)는 도시에서 모든 개들을 추방할 계획을 세운다.

한 과학자가 개 독감의 치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무시하고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시내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하치장인 섬으로 보내 버린다.

하지만 그의 양자인 아타리(Atari, 코유 랜킨 분)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호해 주던 개를 찾아 작은 비행기를 타고 쓰레기 섬으로 날아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과연 이 소년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개를 찾아 데려올 수 있을까?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제일 걱정했던 것은 '일본 미화로 가득 찬, 와패니즈(Wapanese, Japanese Wannabe의 준말) 영화면 어떡하지?'였다.

예고편에서 볼 수 있듯이 극 중 배경이 일본인 데다가 일본인 인물들은 일본어로 말한다(일본어 대사는 통역가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어로 옮겨 전달된다).

심지어 포스터에도 '개들의 섬'이라고 쓰여 있다.

자, 이런데 일뽕 영화가 아닐 것인가? 아무래도 한국 관객들로서는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전통 북 춤이나 신사 등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문화를 열심히 조사하고 연구해서 잘 녹여 낸 것이지, 딱히 감독이 거기에 취해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일본인 인물들의 얼굴 생김새나 체형도 '일본인답게' 잘 그려 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묘사할 때 종종 과장되게 찢어진 눈을 그리고는 하는데, 여기 일본인들 외양 묘사에는 그런 오버가 없다.

'동양인을 그려야지!' 하고 그린 게 아니라 그냥 '이러이러한 캐릭터를 그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그린 것 같다.

고바야시 시장 뒤를 따라다니는 비서 격 인물이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각주:1]처럼 회색 피부에 거대하지만 등이 굽은 인물로 그려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건 이 사람이 뱃속이 시커먼 인물이라 그런 성격을 외적 특징으로 끄집어 낸 것이지, 동양인을 비하해서 괴물처럼 그렸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인이 '동양인'이라는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그려진다.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딱히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을 미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정말 마음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왜 굳이 일본을 배경으로 했는지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본다면, 일본 문화에서 고양이가 (아마 이집트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니까, '그렇다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개를 싫어하게 된 사람도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상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개 대 고양이 대결 구도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같다).

영화 시작할 때 왜 고바야시 시장네 가문이 개를 싫어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니 말이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버림받은 외롭고 차가운 개였던 치프(Chief, 브라이언 크랜스턴 분)가 아타리를 만나 점점 충실한 애완견이 되어 가는 과정이 귀엽고 재미있다.

아타리가 막대를 던지고 물어 오라니까 처음 두 번 정도는 "난 그런 거(fetch) 안 한다."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러는 건 네가 명령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불쌍해서 그런 거다."라며 막대를 물어 온다.

나중에 치프에 대한 반전이 있긴 한데 억지스럽지는 않다. 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굳이 억지스러운 걸 찾자면, 우리가 극 중에서 보게 되는 이름 있는 개들이 다 여기 등장하는 인간 캐릭터들의 애완견이었다는 것.

도시에 개가 몇 마리인데 그 개들 주인이 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사람들이라고요? 에이. 그렇지만 이건 영화니까 봐주자.

 

아타리의 개 '스팟츠(Spots, 리브 슈라이버 분)'가 쓰레기 섬으로 보내진 지 약 6개월 정도가 지난 후가 극이 진행되는 배경인데, 고작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개들 사이에선 이미 '첫 개'라고 불리며 엄청 오래된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웃기고 귀여웠다.

하긴,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개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르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뻘할지는 몰라도, 우리는 개조차도 성별 프레임을 통해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화 초반에 치프가 자기를 따르는 개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너희들 이름은 '킹(King)', '렉스(Rex, 라틴어로 '왕')', '듀크(Duke)', '보스(Boss)'이지 않느냐고, 왜 그렇게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나약한 소리를 하느냐고 꾸짖는 장면이 있다.

다 강인하고, 권력을 가진 존재들과 관련된 이름들이다(이 영화를 안 봤어도 이 말을 듣고서는 '아, 그럼 수컷 개들이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암컷 개들의 이름도 유심히 봤다. 여주인공 격인 개의 이름은 '넛메그(Nutmeg)', 육두구라는 향신료를 가리킨다.

스팟츠의 짝인 암컷은 '페퍼민트(Peppermint)'. 향이 좋은 허브로 차 등에 많이 쓰인다는 건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이 둘 다 '향이 좋다'는 특성이 여성성과 연결된다.

틸타 스윈튼(Tilda Swinton)이 목소리를 연기하는 자그마한 개는 '오라클(Oracle)'이다.

오라클은 TV를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영리한 개인데, 말하자면 직업에서 이름이 연유된 셈이다(오라클은 고대 희랍에서 신탁을 받는 사제를 뜻하는데, 델포이의 여성 사제들이 유명하다).

이 오라클의 파트너 격인 개는  '주피터(Jupiter)'. 이 주피터는 로마 신화의 우두머리 신 이름이고, 그리스 신화로 치면 제우스에 해당한다. 얘는 당연히 수컷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개에게도 암수를 구별해 그 성에 맞는 이름을 부여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성에 맞는다'는 건 우리가 인간 남성, 여성에게 가지는 개념들이고 말이다.

특이하게도 '스팟츠'라는 이름만이 '점박이'라는 뜻이고 중성적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중성적이기에 더욱더 수컷 개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암컷 개에게 '스팟츠'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수컷 개에게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는 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여성은 언제나 그 성을 감추거나, 적어도 전면에 떠오르지 않도록 할 수 없다고 여겨지니까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린다면, 많은 예술(특히 문학)에서 '남성이 기본 성, 즉 그냥 인간이고 여성은 여성'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영화고 영화 속에서는 동물이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존재로 의인화되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인간을 대하듯 이 동물들을 생각하게 되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는 한번 생각해 볼 법한 주제였다.

 

이 영화 평을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쓴 것은, 전반적인 느낌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특히 마지막 결말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래 복권은 스포일러도 상관없다는 분들만 긁어 주세요.

마지막에 아타리가 메가사키 시의 시장이 되는데 고바야시가 죽었다고 해서 양자인 얘가 시장이 될 수 있나?

시장직이 무슨 왕도 아니고 물려줄 수가 있어? 내 생각엔 이거야말로 되게 일본스러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지방 의회 의원이 죽고 난 후 자녀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이거 픽션 아니고 실화 바탕이었나 싶었다.

게다가 아타리랑 같이 모험을 한 친구들도 다 한 자리씩 맡는다. 얘네 다 중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띠용???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냥 '주인공은 공주와 결혼해 왕이 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끝나는 동화 같은 결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웨스 앤더슨만의 미적 감각이 이번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잘 발휘되었다.

이분의 미적 감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오히려 우스울 듯하니 그냥 나는 자막 얘기만 하겠다.

화면에 일본어가 나올 때 자막이 딸려 나오는데 포스터에 쓰인 'Isle of Dogs' 글씨와 같은 폰트로 스타일리시하게 보여 준다.

자막을 배치하는 센스도 좋다. 원문을 고려하면서 안정감 있게 잘 배치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다 아실 듯.

 

 

참고로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Rushmore, 1998)> 이후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사단 중 일원이었던 제이슨 슈워츠먼(Jason Schwartzman)은 이번 영화에는 연기에 참여하지 않고 각본 작업만 같이했다. 아쉽다.

또 다른 트리비아로는, 미국에서 온 교환 학생 '트레이시(Tracy)' 역을 맡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프랑스어가 유창한 덕에 프랑스어 더빙 버전에서도 그대로 트레이시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 제목은 말장난이다. 'Isle of Dogs'는 빨리 말하면 'I Love Dogs'처럼 들린다.

 

  1. 흔히 얼굴이 녹색이고 머리에 나사가 달린,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형 괴물을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맞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만들어 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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