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추천] Empire Records(엠파이어 레코드, 1995) - 우리 엠파이어 레코드를 구하자!
감독: 알란 모일(Allan Moyle)
자정까지 영업하는 레코드(와 CD) 가게, '엠파이어 레코드'의 야간 매니저인 루카스(Lucas, 로리 코크레인 분)는 점장인 조(Joe, 안소니 라파글리아 분)의 책상을 뒤지다가, 엠파이어 레코드의 경영이 부진해 곧 레코드사 프랜차이즈 브랜드인 '뮤직 타운(Music Town)'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엠파이어 레코드 경영에 도움이 되고자 루카스가 선택한 방법은, 그날 매출인 9천 달러를 가지고 라스 베이거스로 가는 것.
그곳에 있는 카지노에서 9천 달러를 밑천 삼아 대박을 터뜨리고 돈을 불려 돌아와 엠파이어 레코드를 살린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 루카스는 다른 사람들 도박에 훈수는 참 잘 두는데(한 블랙잭 게임에선 어떤 숫자가 나올지 예측하기까지 한다) 실제로는 결과가 형편없다.
어쩌다 보니 첫 판은 좋아서 돈을 크게 땄는데, 바로 그다음 판에 전부 다 잃었다. 아뿔싸, 어떡하지? 엠파이어 레코드 매출을 훔쳐 와서 도박을 한 건데...
다음 날 다른 아르바이트생들과 점장이 출근하고 이를 알게 되면 어떡하지? 엠파이어 레코드는 이제 망하는 걸까?
엠파이어 레코드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일을 그린 유쾌한 코미디 영화.
이 영화의 매력은 등장인물들 하나하나가 다 매력적이라는 거다.
일단 영화 처음에 만나게 되는 루카스는 '더 도어스(The Doors)' 같은 밴드의 노래 가사를 인용하기를 좋아하는, 다소 현학적이고 청산유수인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뭐야, 돈 불리려고 가져갔다가 망해서 돈 다 잃었잖아! 돈 날린 주제에 나불나불 말은 잘해요' 하는 마음으로 좀 미워했는데 보다 보니 본성은 착한 애라는 걸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됐다.
A.J.(조니 휘트워스 분)와 마크(Mark, 에단 엠브리 분)는 다음 날 루카스가 "너희들을 알게 되어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는 걸 알아 둬."라는 말을 남기는 걸 마지막으로 볼 뻔한(어차피 루카스가 다시 돌아온다) 아르바이트생이다. 얘들이 제일 먼저 출근했거든.
마크는 백치미가 매력인 아르바이트생이다. 애가 나쁜 건 아닌데 약간 어리바리하고 눈웃음이 참 예쁘다.
A.J.는 미술적 감각이 풍부한 청년으로, 예쁜 아르바이트생 코리(Corey, 리브 타일러 분)를 짝사랑하고 있다. 오늘은 꼭, 점심 전까지, 1시까지, 아니, 꼭 1시 37분 전까지는 고백하리라고 다짐한다.
또한 AJ는 고운 마음씨의 소유자인데, 단발로 출근해 화장실에서 머리를 밀고 나온 데브라(Debra, 로빈 튜니 분)의 손목에 붕대가 감겨져 있다는 걸 누구보다도 먼저 눈치채고 무슨 일 있는 거냐고 물어본다(데브라는 전날 밤에 자살 시도를 했다고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이때 다른 애들은 '너 화장실 들어가기 전까지는 머리카락이 있었던 것 맞지?' 하고 확인하거나 '역시 정신이 좀 불안정한 애인가 봐' 하고 수근거리는 게 전부인데 말이다.A.J.가 코리를 좋아하긴 해도 친구인 데브라를 걱정해 주는 모습이 참 좋았다.
데브라도 처음 봤을 땐 '뭐야, 왜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갑자기 원빈의 <아저씨>마냥 삭발을 해?' 하고 그저 이상한 애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마음이 참 깊고 착한 애더라.
코리는(무려 리브 타일러!) 지나(Gina, 르네 젤위거 분)와 같이 이곳에서 일하는 여학생으로, 하버드에 갈 거라는 아버지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어 부담스러워하는 우등생이다.
A.J.의 짝사랑 상대이기도 한 코리는 오늘 이 엠파이어 레코드에서 열리는 '렉스 매닝(Rex Manning)의 날(한물간 가수 렉스 매닝이 엠파이어 레코드에 사인회 하러 오는 날)'에, 렉스 매닝에게 자기의 '처음'을 주기로 결심했다.
지나는 코리와 정반대다. 우등생도 아니고 청순 콘셉트도 아니랄까. 대신에 섹시 스타일이라고만 해 두겠다.
나는 코리와 지나가 처음엔 친구이다가 나중에 싸우고 화해하며, 또 코리와 데브라가 서로 사이가 안 좋다가 모종의 이유로 친해지는 흐름이 너무 좋았다.
코리와 지나는 반대이지만 서로 없이는 못 사는 절친이라는 것도 흥미로웠고, 코리와 데브라도 처음엔 서로를 이해 못 하다가 나중에 서로를 위하는 행동을 해 준다는 게 감동적이었다.
루카스가 9천 달러를 가져가서 날려 먹었다는 사실을 점장인 조가 알게 되었을 때 루카스가 얼마나 차분하게 자기가 잘못한 걸 인정하는지 정말 직접 봐야 한다.
루카스는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싶게 얄미우면서도 절대 싫어할 수 없는 매력을 뿜어낸다.
근데 내가 그때 조 입장이었으면 뒷목 잡고 쓰러졌을 듯. 게다가 일이 진행되는 꼴을 보면 이 영화는 제목을 <엠파이어 레코드>가 아니라 <점장 조의 험난한 하루> 뭐 이 정도로 지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르바이트생들 때문에 아저씨 늙겠다...
어떤 서사든 갈등이 서사의 재미를 더하는 게 사실이긴 하지만, 뭐.
사실, 위에서 소개한 아르바이트생들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이 영화를 더 골 때리게 웃기게 만드는 약방의 감초 같은 조연이 있다.
코리 소개할 때 언급한 렉스 매닝이 나오는 부분도 웃기고, 엠파이어 레코드 직원도 아니면서 계속 직원들 공간에 들락날락하는 에디(Eddie, 제임스 '키모' 윌스 분)도 웃기다.
그 조연들 중 워렌(Warren, 브렌단 섹스톤 분)은 이 레코드 가게에 CD를 훔치러 왔다가 루카스에게 바로 붙잡힌 현행범인데, '워렌 비티'라는 가명을 댔다가 끝까지 워렌으로 불린다(본명은 영화에서 확인하시라).
하여간 얘는 경찰서에 인수되어도 청소년이라 뭘 어떻게 할 방법이 없어서 금방 풀려나고, 또 엠파이어 레코드로 돌아온다. 너무 웃긴데 이건 진짜 영화를 봐야 함ㅋㅋㅋㅋ
이러한 웃긴 장면이 있다고 하나하나 다 설명해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그런 짓은 안 하겠다.
대신에 한번 틀면 80분가량 즐겁고 유쾌하게 웃으실 거라고 보장할 수 있다(만약에 재미가 없으면? 음, 그렇다면 우리는 영화 취향이 무척 다르다는 데 합의하는 것으로...).
90년대, 젊은 스타들(리브 타일러나 르네 젤위거 같은)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다.
참고로 2003년에 '엠파이어 레코드 리믹스, 팬 에디션(Empire Records Remix, the Fan Edition)'이라는 타이틀로 발매된 DVD는 기존 영화를 새롭게 편집한 버전과 공개된 적 없는 새로운 장면들도 들어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 2003년 버전도 한번 구해서 보고 싶다 ㅎㅎㅎ 두 번 보고 싶을 정도로 재밌는 영화니까! 강력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