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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Crooked House(비뚤어진 집, 2017) - 비뚤어진 작은 집에서 그들은 모두 함께 살았네

by Jaime Chung 2018.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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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Crooked House(비뚤어진 집, 2017) - 비뚤어진 작은 집에서 그들은 모두 함께 살았네

 

 

감독: 질스 파겟 브레너(Giles Paquet-Brenner)

 

찰스 헤이워드(Charles Hayward, 맥스 아이언스 분)는 탐정으로, 옛 애인 소피아 드 하빌랜드(Sophia de Haviland, 스테파니 마티니 분)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타살인 것 같으니 조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사건에 임하면 안 될 것 같아 선뜻 일을 맡겠다고 나서지 못한다.

일단 돌아가신 아버지를 알고 지냈던 태버너 경감(Chief Inspector Taverner, 테렌스 스탬프 분)에게 가서 사건의 전말을 들어 보니 다음과 같았다.

즉, 소피아의 할아버지 고(故)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Aristide Leonides)는 사업 수완이 뛰어난, 그리스 출신 이민자였다. 그는 자식도 여럿 낳고 결혼도 두 번이나 했다. 그의 가족은 큰 저택에 다 같이 모여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의 당뇨병 치료에 쓰이는 인슐린 병을 누군가 에세린(안약) 병과 바꿔치기했고, 이 에세린 주사를 맞은 그는 에세린 중독으로 사망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흥미를 느낀 듯한 찰스는 소피아의 전화를 받고 레오니데스 가족들이 사는 저택으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피아의 안내를 받으며 집안 식구들을 한 명 한 명 만나 수사를 시작한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고(故) 레오니데스 씨의 젊은 새 아내 브렌다(Brenda Leonides, 크리스티나 헨드릭스 분)와 가정 교사 로렌스 브라운(Laurence Brown, 존 헤퍼난 분)이 연인 사이라며, 그들을 의심한다.

그렇지만 더 깊이 알게 될수록 그는 이 집 사람들이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는 과연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사건에 대해 이야기 중인 찰스 헤이워드(왼쪽)와 태버너 경감(오른쪽)

 

레이디 드 하빌랜드

 

레이디 드 하빌랜드(계단 위)와 찰스(왼쪽), 소피아(오른쪽)

 

애거서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도저히 이해가 안 되서 원작 소설을 읽은 후(국내에도 <비뚤어진 집>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다시 영화를 훑어 봤다.

그러고 나니 소설을 영화화한 경우, 영화가 원작 소설보다 낫기는 어렵다는 내 믿음이 굳어졌다.

영화가 소설의 굵직굵직한 줄거리는 거의 그대로 다 따라가는데도 불구하고 미묘한 차이로 원작의 뉘앙스를 바꾼다든지, 몇몇 인물 묘사를 원작과 다르게 해서 원작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이거다. 원작에서는 주인공 찰스 헤이워드가 '전쟁 초기에 런던 경시청의 특별 수사팀'에서 일한 적이 있긴 하지만, 직업이 경찰이나 사립 탐정은 아니다(사실 이 남자가 뭘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찰스 헤이워드가 사무실과 비서도 있는 어엿한 사립 탐정이라는 설정이다.

이게 정말 우스꽝스러운 게, 영화나 원작 소설에서 헤이워드는 보통 추리 소설에서 탐정이나 형사들이 하는, '다들 한곳에 모여 주시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식의 스턴트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얘가 범인이래요' 하고 추리하는 일을 안 한다는 거다. 남들 앞에서 발표는커녕, 누가 범인일지 마음속으로도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히려 조세핀(Josephin Leonides, 아너 니프시 분)이라는 꼬마가 나와서 자기는 이 집 사람들의 비밀을 다 알고 있다며 찰스에게 미주알고주알 이런저런 정보를 늘어놓으면, 찰스는 그에 솔깃한다.

중후반에는 아예 "넌 뭘 알고 있는 거지? 다 말해, 안 그러면 네가 말할 때까지 널 이렇게 흔들 테다!" 하며 애 양 팔을 잡고 짤짤 털어 댈 정도이다.

놀랍지만 영화에서는 그나마 조세핀에게 영향받는 장면이 적은 편인데도 이런 장면이 있으니, 말 다 했다.

한심하지 않은가. 사립 탐정이라는 사람이 추리를 못해서 꼬마애한테 아는 걸 다 불라고 협박하다니.

원작 소설에서는 헤이워드가 경찰은 아니지만 아버지의 빽(...)으로 사건에 관여하는 공식적 지위를 얻어 레오니데스 집안 사람들을 수사하는 태버너 경감 옆에 붙어 다닐 수 있었다.

그래서 꼬맹이가 하는 말에 흔들리고, 제대로 된 추리를 못해도 '사랑하는 여자(원작에서는 소피아와 헤이워드의 관계도 냉랭하지 않다. 오히려 결혼을 생각하는 사이이다. 왜 영화에서 소피아를 나쁜 여자처럼 묘사했는지 모르겠다)를 위해, 그녀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사건을 해결하려고 그래도 애는 쓴다'는 인상은 줄 수 있었다.

원래 경찰이나 탐정이 아니니까 일을 못해도 이해가 됐다는 말이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헤이워드를 탐정으로 설정해서 오히려 그가 우스워졌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친구인(영화에서는 왜 굳이 헤이워드 아버지를 죽였을까?) 태버너 경감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추리다운 추리도 못하는데 태버너 경감이 헤이워드를 감시하라고 경감을 붙이니 자기를 못 믿느냐며 버럭버럭 화를 내기만 한다.

그러면 추리를 하든가, 이 멍청이 자식아! 답답하기가 짝이 없다.

애초에 원작 소설에 조세핀이라는 꼬맹이가 나와서 온 집안의 비밀을 안다고 하며 탐정놀이를 하는데, 주인공이 얘한테 휘둘릴 것 같았으면 왜 주인공에게 사립 탐정이라는 직업을 부여한 건지 모르겠다.

원작처럼 어리바리하고 경찰 일을 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으면 납득이라도 되지, 이건 뭐...

 

또한, 위에서 영화가 미묘한 차이로 원작의 뉘앙스를 바꾼다고 했는데, 그걸 잠시 이야기하자면 이렇다.

책에서는 헤이워드가 자기 약혼녀 소피아가 언급한 동요 가사를 떠올리며("비뚤어진 아저씨가 비뚤어진 길을 걸어가고 있네. (...) 비뚤어진 작은 집에서 그들은 모두 함께 살았네.") 이 가족 사람들이 얼마나 이상한지에 대해 생각하는 장면이 있다.

그리고 레오니데스 저택에 대해서는 '이상하게 무언가 뒤틀린 듯한 기이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다'고 묘사한다.

제목의 'Crooked House', 즉 '비뚤어진 집'은 집의 외관이 뒤틀린 듯 비뚤어져 있다는 사실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과 관계가 묘하게 뒤틀려 있다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영화에선 이 집이 전혀 비뚤어지지 않고, 오히려 잘 지어진 저택처럼 보인다. 이래서야 제목의 첫 번째 의미가 드러나질 않는다.

그리고 인물 묘사도 좀 별로인데, 내가 제일 원작과 달랐다고 생각하는 영화 속 인물은 클레멘시(Clemency Leonides, 아만다 애빙턴 분)이다.

클레멘시는 소피아의 큰아버지 로저(Roger Leonides, 크리스티안 맥케이 분)의 아내, 즉 소피아의 큰어머니이다.

로저가 다혈질에 자기 감정을 주체 못하고 그냥 드러내는 성격인데 반해, 태버너 경감의 질문에 '간결하고 정확하게' 대답하는 여인이다.

아주 차분하면서도 남편 로저에 대한 깊은 애정이 있다는 게 드러나야 하는데(특히 작품 후반부에서) 영화에선 그게 안 드러난다.

게다가 원래 클레멘시는 방사선을 연구하는(폭파가 아니라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과학자인데, 영화에서는 클레멘시의 전공은 식물의 독성 연구로 바꾸어 놓았다.

클레멘시를 좀 더 범인 후보로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그랬겠지. 그렇지만 클레멘시 역 배우에게 춘장 립 바르게 한 건 진짜 클레멘시 캐릭터랑 맞지도 않고 안 예쁘기만 하더라. 도대체가, 춘장 립이라니???

 

내가 글렌 클로즈(Glenn Close) 여사님을 사랑하긴 하지만, 왜 글렌 클로즈 여사님에게 고(故) 애리스티드 레오니데스의 첫 번째 아내의 여동생, 레이디 에디스 드 하빌랜드(Lady Edith de Haviland) 역을 맡겼는지는 좀 아리송하다.

원작의 레이디와 좀 다른 분위기이지 않나 싶어서. 아마 이 레이디를 (역시나) 좀 더 범인 후보로 그럴듯하게 보이려고 그런 것 같다.

사실 나이 들었지만 그렇게 우아하면서 강인한 여성 캐릭터는 글렌 클로즈 여사님이 딱이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찰스 헤이워드가 이 저택에 도착해 레이디 드 하빌랜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은 정말 너무... 너무 노렸다고밖에 말할 수가 없다.

들끓는 두더지들을 몰아내기 위해 총을 쏘는 게 관객이 레이디 드 하빌랜드를 처음 만나는 장면인데, 감독과 각본가들은 이런 식으로 이 집에 으스스한 분위기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 같다(그리고 이런 식으로 나중에 레이디 드 하빌랜드와 관련된 트릭도 바꿔 버린다).

 

아, 그리고 중간에 소피아가 찰스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시내로 나가서 달리고, 클럽 같은 데서 춤추고 하는 장면은 진짜 왜 넣었는지 모르겠다.

꼭 원작에 있는 이야기만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난 이렇게 '그림 만들려고' 집어넣은 장면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원작 소설은 찰스 헤이워드라는 청년이 사랑하는 약혼녀네 집안의 기괴한 비밀과 마주치면서 누가 범인인지 헛다리도 자주 짚고, 조세핀에게 휘둘리기도 하면서 혼란스러워하는 모습이 잘 드러난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찰스 헤이워드가 탐정인 주제에 꼬맹이에게 휘둘려 추리다운 추리도 못하고, 범인을 못 잡는 우스꽝스러운 모습만 보인다.

이 집 안에서 일어나는, 고(故) 레오니데스 씨의 유서와 재산을 둘러싼 갈등이라든가 집안 사람들의 묘한 관계는 주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다.

즉, '워낙에 이 집안이 뒤숭숭해서 주인공도 휘말린다'가 아니라 '주인공이 능력이 없어서 사건에 휘말린다'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다.

원작을 읽은 추리 소설 팬들이라면 이 영화가 과연 눈에 찰까 싶다. 애거서 크리스티가 자기 작품 중 제일 좋아한 게 바로 이 작품이었다던데.

결말이 충격적이니 왜 이 이야기를 가져다 썼는지는 알 것 같다.하지만 이 영화는 아무래도 좋은 재료를 가져다가 요리한답시고 망친 느낌이다.

만약 이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에 좋아하는 배우가 있어서 그 배우 감상을 위해서라면 영화의 질은 아무래도 괜찮다는 분이기를 바란다.

정말 괜찮은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면, 이 영화는 스킵하고 그냥 원작 소설을 읽으시는 게 나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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