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에세이를 발간하는 편집자의 에세이. 글자 그대로 '에세이 만드는 법'을 이야기한다(이 점을 이보다 어떻게 더 자세히,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이틀 정도 시간이 나지 않아 독서를 못 했는데, 사흘째 되는 날 아침에 이 책을 다시 읽으면서 '아, 맞아. 나 이래서 책 좋아했지!' 하고 새삼 깨달았다.
저자가 책을 사랑한다는 느낌이 모든 페이지에서 폴폴 풍기니 나 역시 책을 사랑하는 독자로서 같은 마음을 가진 '책덕후'를 만나 기쁠 뿐이다.
에세이는 기본적으로 누구나 쓸 수 있는 글이다. 그 말을 편집자의 입장에서는, 누구나 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고, 편집자의 일은 그중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를 가진 사람을 잘 구슬려(?) 적절히 글로 변환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생활인을 마치 아직 쓰이지 않은 책처럼 바라보고 대하는 저자의 태도에서도 '이 사람은 이야기도 좋아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가진 사람도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한 팀에서 일했던 원보름 편집자는 검색과 구독의 달인이다. 그는 월급을 털어서 항시 무언가를 다량 구독 중인 상태고,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신박한 콘텐츠 소식이 들릴라치면, 이미 그 사실을 인지하고 책이 될 만한지 탐색 중이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팀장님, 저는 예술가보다 생활인이 좋아요!"
나는 허리를 접고 웃었다.
에세이 편집자는 '예술가 되기'에 별 관심도 동경도 없고, 딱히 예술사가 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생활의 달인들을 책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한다. 에세이 편집자의 신선한 기획거리는 서점에 이미 나와 있는 완전한 도서 너머에 있을 때가 많다. 신문과 잡지, SNS, TV 뉴스나 다큐멘터리, 인터뷰, 쪽글에서 자신의 일과 삶을 예술처럼 꾸려가는 생활인과 직업인을 볼 때 나는 심장이 뛴다.
우리는 일상과 생활이 이미 예술인 사람들, 예술가 이전의 예술가를 발견해 작가가 되어 보자고 유혹한다. 자신은 작가나 예술가가 될 깜냥이 아니라고, 그저 먹고살다 보니까 이렇게 됐다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대단한지 잘 모르는 사람, 그러나 곁에서 조금만 대화해 보면 내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조리 주워 담아 간직하고픈 사람, 나는 이런 사람들을 붙들어 내 작가로 만들고 싶다.
에세이 편집자의 작가는 도심의 카페와 집필실, 교수 연구실에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거리에, 출근길 만원 버스와 전철에, 시장에, 가게에, 정신없이 돌아가는 회사에, 이름도 몰랐던 시골 마을에, 세상 방방곡곡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일하며 생활하고 있다. 메일함에 꽂히는 완전 원고 너머의 세계에도,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는 단 하나의 이야기가 숨어 있다. 이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어야 하나, 조금은 막막하기도 하고 내 힘과 노력과 용기를 조금 더 쏟아야 하는 곳에서, 아름다운 이야기는 툭툭 튀어나온다.
아직 원고를 써 본 일은 없지만 이미 삶 자체가 책보다 아름다운 사람, 예술가가 되기 전의 생활인, 자기 자신의 업과 삶에 그 어떤 헝영이나 자만도 없이 하루하루를 묵묵히 쌓아 저절로 대가나 달인이 된 사람, 생생한 삶의 현장 속에 숨은그림찾기처럼 박혀 있는 예술적인 생활인……. 그런 이들의 울퉁불퉁하고 유일한 이야기를 찾아서, 나는 오늘도 책 밖의 세상을 기웃거린다.
참 사람을 보는 눈이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에 보면 홀든이 '좋은 책이란 내가 그 책의 저자와 친구여서 책을 읽고 나면 정말 좋았다고 감상을 나눌 수 있기를 바라게 되는 책'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을 떠올렸다.
책을 사랑하는, 이 저자 같은 친구가 있으면 정말 좋을 텐데! 그럼 얼마나 신날까! 같이 책 이야기도 하고!
내가 이 저자가 만든 책을 읽은 적이 있나 살펴봤는데, 아마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책들 많이 알게 되어서 다행이다(저자가 자신이 만든 책들을 본문에서 몇 번씩 언급하기 때문에 관심 있는 분들은 쉽게 찾아 보실 수 있다).
편집자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이 책을 통해 좋은 편집자의 자질이 무엇인지(디자인 감각을 키우기 위해 자신만의 '갤러리'를 항시 채워 놓는다든가) 배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쪽에 관심이 없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 이야기를 듣는다는 감각으로 읽어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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