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마시즘, <마시는 즐거움>
이제 보니 2019년에 나온 책이네. 나는 밀리에서 발견해서 읽었다.
오랜만에 밀리의 서재에 들어갔는데 흥미로워 보여서 속는 셈 치고 읽기 시작했는데 꽤 재밌었다.
네이버와 카카오 브런치에서 화제가 된 콘텐츠라는데 나는 처음 듣는다(이렇게 내가 유행에 어둡다). 어쨌거나 나는 원래 영화든 책이든 그냥 간단히 훑어보고 흥미로워 보이면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접하는 걸 좋아하니까 상관없다.
어쨌거나, 이 책은 음료라면 환장하는 이들이 쓴 책이다. 맥주, 와인, 소주, 커피 등 대중적인 음료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늘어놓는데, 퍽 재미있다.
그 재미있는 일화들을 소개하기 전, 에필로그에 담긴 저자들의 포부부터 보자.
아직 마시즘이 가야 할 길은 멀다. 네이버에 '마시즘'을 검색하면 '파시즘'으로 자동 완성이 되고, 다음에 '마시즘'을 검쌕하면 '맑시즘'으로 자동 완성이 된다. 이게 다 아직 우리가 무솔리니나 마르크스보다 유명하지 못해 발생하는 일이다. 더욱 노력해서 팟시즘과 맑시즘을 검색할 때 '마시즘'이 자동 완성 검색어로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덤벼라 무솔리니, 마르크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일은 무언가를 마시는 행위다. 우리는 그 마시는 순간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길 원한다.
파시즘과 맑시즘보다 유명해지겠다는 포부! 파이팅이 넘쳐서 아주 좋다.
그럼 내가 이 책에서 배운 사실들 중 제일 재미있고 흥미로운 것들 몇 가지만 소개하겠다.
첫째, 중국의 차(茶)를 훔쳐 국외로 반출한 최초의 서양인은 누굴까? 로버츠 포천(Robert Fortune)이라는 영국인이다.
그는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인해 외국인에게 강한 적대감을 보이던 시절 중국 내륙의 농가에 잠입해 차를 재배하는 과정을 면밀히 살펴본다.
당시 영국에서 인기이던 '블루 티(Blue Tea)'는 녹차에 프러시안 블루라는 청색 안료를 섞어 만들었는데, 이 사실을 알리지 않으면 영국인들의 건강이 위험할 수도 있다고 포천은 생각했다.
그래서 차나무 종자와 제조 과정의 비밀을 적은 기록을 가지고 중국을 빠져나왔으나, 태풍이나 열병, 해적선의 공격 등등 다양한 악전고투가 계속되었다.
포천은 다행히 목숨은 건졌으나, 묘목의 생존율은 3퍼센트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몸이 회복되자마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차 재배 과정을 배우고 차나무 묘목, 종자, 차 일꾼 등을 모은다.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이를 반출한다.
포천은 훔친 차나무와 재배 방법 등을 통해 인도 히말라야 부근의 차나무를 개량시킨다. 우리가 부르는 아쌈(Assam), 다즐링(Darjeeling) 등의 차나무는 이렇게 탄생했다. 20년도 지나지 않아 세계는 영국이 만든 차를 구매하기 시작했고, 한 세기가 되기도 전에 인도산 차는 중국 차 생산량을 앞지른다.
차가 곧 엄청난 상품이었던 시대. 포천이 뿌린 씨로 세계는 다시 한 번 요동친다. 근대 영국 최초의 산업 스파이라 할 수 있는 포천은 이후에도 중국에서 활동을 계속했다. 그리고 그동안 식물도감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동양 식물 수백 종을 발견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국에서 인기가 있었던 것은 그의 중국 여행을 담은 일기였다. 그의 여행담은 '007'이나 '인디아나 존스'의 무용담처럼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차에 대한 유럽인의 사랑을 키워주었다. 이야기. 그것은 언제나 음료를 특별하게 만들어주니까.
이 일화를 읽고 너무 신기해서 검색해 보니까 이에 관한, <Robert Fortune: The Tea Thief(2001)>라는 다큐멘터리가 있더라.
나중에 한번 볼까 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라.
둘째, 환타는 히틀러 시절의 독일에서 만들어졌다!
여기, 코카콜라 단종 소식에 슬퍼하는 독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로 독일의 총통이다. 당시 독일은 코카콜라 소비량이 미국 다음으로 많았던 국가다.
히틀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건설 공장을 많이 세웠는데, 그중엔 코카콜라 생산 시설이 있었다. 덕분에 코카콜라는 독일인들이 좋아하는 음료수가 되었고, 히틀러 역시 코카콜라의 매력에 빠졌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것이다. 문제는 전쟁에 참전한 미국의 적이 바로 독일이었다는 점에 있었다.
독일 내의 코카콜라 생선 시설은 모두 올 스톱이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카콜라 직원들마저 코카콜라를 만드는 기술, 시럽 등을 모두 빼서 미국으로 도망을 갔다. 히틀러는 물론이고 독일 국민 역시 '콜라 없는 삶'에 슬퍼했다. 히틀러는 독일만의 코카콜라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곧 코카콜라 독일 지부장이었던 막스 키스(Max Keith)를 데려와서 독일식 탄산음료 만들기에 도전한다. 그렇게 '환타(Fanta)'가 탄생했다.
셋째, 술의 원료가 되는 주정(酒精)은 소주 회사가 직접 만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건 책에 단순히 두어 줄로 언급된 걸 보고 내가 신기해서 찾아본 것이다.
본문에는 이렇게 나와 있다.
소주는 재료가 단순한 술이다. 주정은 소주 회사가 아닌 국가에서 지정한 업체가 만들어 제공한다. 때문에 소주가 차별화를 할 수 있는 것은 1퍼센트도 안 되는 첨가물이다. 처음처럼의 등장은 머리에 브릿지만 넣을 줄 알았던 복학생들 사이에서 삭발한 신입생이 나타난 격이었다. 애주가들의 시선 집중.
이 기사(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1456326612582664&mediaCodeNo=257)에 따르면, 이 주정을 만드는 주정 업체는 주류 회사(롯데주류나 하이트진로 같은 업체)와 직접적으로 계약을 맺지 않는다.
대신에 대한주정판매회사라는, 일종의 총판이 있어서 10곳의 주정 업체가 주정을 만들어 이곳에 넘긴다.
매년 초 한국주류산업협회와 대한주정판매회사가 필요 수량을 예측해 각 주정 업체에 얼마나 만들어서 납품하면 되는지를 정해 준다.
그리고 각 주정 업체가 생산한 주정을 모아서 대한주정판매회사가 소주 회사에 공급하는 것이다.
와, 신기해! 하이트진로 같은 소주를 만드는 업체가 직접 술의 원료를 만들지 않는다니!
이 외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가득 담겨 있는데, 다 까발리면 책을 읽으실 분이 없을 테니 이 정도만 하겠다.
솔직히 나는 액체로 섭취하는 열량을 극혐하는 사람인데(음료는 씹지를 않아 뭐 먹은 것 같은 느낌도 안 드는데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니 억울하다) 이 책은 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이분들이 무솔리니와 마르크스보다 더 유명해질 수 있도록 한번 관심을 가지고 책을 거들떠봐 주시길(그런다고 나에게 뭐가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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