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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by Jaime Chung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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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진실의 흑역사>

 

내가 정말 재미있게 읽고 리뷰까지 남겼던 <인간의 흑역사> 작가의 후속작이다.

2020.09.07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책 감상/책 추천] 톰 필립스, <인간의 흑역사> 와, 짱잼! 이 책의 부제는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한다"인데, 역사상 인류가 저지른 가장 멍청한 일들을 들춰내 보는 책

eatsleepandread.xyz

 

이번 책의 주제는 '거짓(말)'이고, 부제목은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이다.

요즘이 '탈진실(post-truth) 시대'라고 일컬어지고 또 '가짜 뉴스(fake news)'라는 단어도 최근에 와서야 생겨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짓말 또는 개소리 등이 비단 최근의 일일까? 과거엔 늘 사람들이 진실만을 말하고 진실만을 추구했을까?

그럴 리가. 옛날 사람들은 뭐 사람 아닌가? 그들도 거짓말을 했다. 아마 역사의 시작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썼다.

오해 마시라. 요즘 우리가 사는 세앙이 오만 가지 개소리로 가득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그건 당연히 맞다. 다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지금이 '탈진실 시대'라는 말에 어폐가 좀 있다는 것이다. 지금이 탈진실 시대라면 이전에 언젠가는 '진실 시대'가 있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시대가 있었다는 근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 우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진실과 정직이 꽃피고 사실과 증거를 금과옥조로 삼는 시대에 살았다는 식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순 헛소리다.

(...)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살아온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아주, 아주 오래되었다.

이게 바로 이 책의 주제다. 진씰이란 무엇이고, 인류는 진실을 요리조리 피하려고 지금까지 어떤 기발한 방법을 어떻게 써왔는가 하는 것이다. 모든 게 옛날부터 다 그랬다. 고장 난 스프링클러처럼 거짓말을 사방에 뿌려대는 정치인이 도널드 트럼프가 처음은 아니다. 페이스북 같은 게 없던 시절에도 검증 안 된 거짓 루머는 입에서 입으로 잘만 퍼졌다. 눈먼 돈과 순진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항상 없는 사실을 꾸며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저자의 말을 뒷받침하듯, 책에는 "세상에 이런 거짓말 또는 개소리를 왈왈 씨부린 자가 있다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충격적이고 흥미로운 일화들이 가득하다.

그중 가장 재미있었던 두어 가지만 소개하려고 한다.

 

첫 번째, 내가 미국에 대해 더 안 좋게 생각하게 만든 일화이다.

예전에는 책력(冊曆)이라는 것이 있었다. 해와 달의 운행, 절기, 특별한 기상 변동 따위가 담긴 책이다.

미국에 아주 인기 있는 책력 제작자 중 하나로 타이탄 리즈(Titan Leeds)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책력은 아주 잘 팔려서, 다른 책략 제조업자들이 그를 견제하려 했다.

벤자민 프랭클린(여러분이 아는 그 미국 건국의 아버지 그자가 맞는다)도 책력 제작업에 뛰어들며 이 제작자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리처드 손더스'라는 필명으로 책력을 내면서 서문에 "타이탄 리즈 씨가 곧 죽을 운명이다"라는 내용의 헛소리를 적어넣는 것이었다.

이는 일종의 우스개였는데, 조너선 스위프트(여러분이 아는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그 사람)가 한 농담을 슬쩍 빌려온 것이었다.

불행히도 타이탄 리즈는 이 농담을 전혀 이애하지 못했고, 이듬해에 출간한 책력에서 '가난한 리처드'의 주장을 반박했다.

이에 프랭클린은 '옳거니, 걸려들었구나' 하고 아예 자신의 오랜 친구 리즈가 사망한 것이 틀림없다고 적었다. 이뭐병?

그의 '농담'은 실제로 타이탄 리즈가 사망한 1738년까지 계속되었다. 심지어 리즈가 사망한 1738년의 다음 해, 즉 1739년에는 타이탄 리즈의 유령이 썼다는 가짜 편지까지 게재한다. 내용인즉슨, '가난한 리처드'가 한 말이 모두 옳았고, 자신은 실제로 1733년에 죽었다는(즉, 자신이 살아 있다고 반박한 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이었다.

얼탱이가 없지 않은가? 저자는 이 일화를 소개하며 이렇게 썼다.

그렇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한마디로, 진짜 대단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는 도발꾼이었다. 요즘 인터넷 은어로 하면 '트롤', '어그로꾼'이었다. 

게다가 성공한 도발꾼이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은 엄청난 히트를 쳤고, <리즈 책력>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어 10년쯤 후에는 폐간되었다. 프랭클린의 책력은 경쟁지보다 더 필치가 예리하고 재미있었으며, 프랭클린의 사업 방식은 더 무자비했다. 프랭클린은 점설술을 그저 빈정대며 놀려먹는 데 그치지 않았다. 리즈 가문 사람들이 기이한 사상을 믿었다거나 "사탄의 전령" 운운하는 비난을 받았던 일도 독자들이 잊지 않도록 상기시키곤 했다. 그런 의혹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은…… 프랭클린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이딴 인간이었다니... 정말 환멸난다. 미국인들은 이런 거 알고서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지?이거 모르는 미국인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책력의 질과 정보의 양 등으로 승부하면 되지, 잘나가는 책력 제작자를 꺾어 보겠다고 저런 비열한 수를 쓰다니. 이전에도 프랭클린이 뒤가 구린 사람이라는 건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비열한 자인 줄은 몰랐다. 

 

다시 생각하기도 싫으니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자.  '신문'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을 때 이야기다.

당시에는 예전처럼 저널리즘 정신이랄지, 진실 탐사 같은 것이 없었다. 기자들은 세부 내용을 적당히 지어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이 정도였다.

1887년에 창간된 <더 라이터>라는 잡지가 있었다. 당시 급속히 늘어나던 '글쟁이'들을 댓상으로 한 잡지였는데, 편집장 윌리엄 힐스는 신문이란 매체에 대해 높이 평가하면서, 신문기자는 "일을 잘하려면 훌륭하게 '꾸며낼' 줄 알아야 한다"라고 했다. 이어서 몇 달 후에는 "모름지기 기사란 어느 정도는 '꾸며내어' 작성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면서, 그 행위를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상식과 건전한 상상력을 발휘해 중요치 않은 세부 사항을 채워 넣는 것으로 (…) 그 내용은 사실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기자의 심증에 부합한다." 그 목적은 기사를 보다 "생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했ㅅ다. 그리고 '꾸며내기'는 "엄밀히 말해 거짓말과는 다르다"라고 했다.

그 '중요치 않은 세부 사항'이라는 게 과연 무엇인지 짐작해 볼 만한 자료로, 1894년에 언론인 지망생들을 대상으로 나온 교본이 있다. 저자 에드윈 슈먼은 시카고의 언론인이었다. 언론학 학위라는 게 없던 시절, 언론인 되는 법을 주제로 강의를 하기도 했다. 슈먼은 저서에서 이렇게 경고한다. "사소한 것을 피곤할 만큼 일일이 밝혀 지루하고 따분하게 만드는 실수를 피해야 하며, 여기서 사소한 것이란 이를테면 분초 단위의 시간, 기상 상태, 화자의 정확한 발언 내용 등이다."

독자 중에 신문 편집자가 있다면 위의 마지막 항목에 경악을 금치 못할지도 모른다. 하기야 그 시절엔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녹음기라는 게 없긴 헀다(당시에도 '구술 녹음기'라는 장치가 있긴 했지만 덩치가 거대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럤다 해도, 화자의 정확한 발언 내용이 '사소한 것'이라니! 

 

그리고 정말 이런 식으로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 있다.

루이스 T. 스톤이라는 싸람이 딱 그런 식으로 기자 생활을 헀다. 스톤은 코네티컷주의 윈쓰터드라는 촌마을에서 태어나 죽 살던 야심 찬 청년 기자였는데, 그곳에서 써 보내는 기사를 여러 신문에서 어찌나 열심히 실어 주었는지 단숨에 미국에서 알아주는 인기 기자가 되었다.

'윈스터드 거짓말쟁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스톤은 1895년부터 1933년 사망할 때까지 수십 년간 기자로 활동하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꾸준히 생산해 편집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기사 몇 가지를 꼽아 보면 다음과 같다. 미국 독립기념일에 암탉이 붉은색, 흰색, 파란색 무늬의 알을 낳은 사건, 구운 사과가 열리는 나무, 유명한 곡조의 군가 <양키 두들>을 휘파람으로 부는 고양이, 암소가 손목시계를 삼켰는데 암소가 숨 쉴 때마다 태엽이 감겨 몇 년 동안 배 속에서 정확히 잘 가고 있었다는 이야기, 자기 머리에 거미를 그려 파리를 쫓은 대머리 남자…… 

듣기만 해도 황당한 얘기들인데, 더군다나 이게 다 같은 사람이 같은 촌마을에서 써 보낸 기사라면 누가 한 번쯤은 의심을 했을 법도 하다. 이 스톤이라는 기자가 공갈을 치고 있거나, 아니면 가능성은 좀 희박하지만 윈스터드란 마을이 꿈과 환상의 요술나라이거나 둘 중 하나 아니겠는가. 이걸 곧이듣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긴 했을까? 그런데 1940년에 이 기사들을 연구한 언론학자 커티스 D. 맥두걸의 주장에 따르면, "사실상 모든 삿람"이 믿었다. "다만 예외적으로, 연륜 있는 편집자들은 스톤이 보낸 소식이라면 나중엔 다 의심했으나 판매 실적 때문에 그냥 기사를 싣곤 했다"는 것이다.

이러니 요즘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한다 한들, 언제는 안 그랬다고 말할 수 있으랴.

 

이 외에도 봉이 김선달 뺨치게 가상의 나라를 만들어 그 나라의 개척지를 팔아먹은 남자나, 무려 1억 프랑(옛날 일임을 감안하시라)의 유산을 상속받을 거라고 뻥을 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돈을 빌린 소녀의 이야기도 있다.

다 이야기해 드리고 싶지만 그러면 이 책을 읽을 일이 없어질 테니 그것만은 피해야겠다.

'라떼는 말이야~' 하고 좋았던 과거를 예찬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게 읽게 하거나 들려 주어도 좋겠다. 사람들은 태곳적부터 거짓말을 해 왔다고!

엄청엄청 재미있는 책이니까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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