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Look Both Ways(두 인생을 살아봐, 2022) -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것, 그리고 가치가 가치 있다는 것
감독: 와누리 카히우(Wanuri Kahiu)
냇(Nat, 릴리 라인하트 분)은 대학 졸업식 날, 삶의 여정을 가르는 큰 사건을 마주하게 된다. 첫째, 계획 세우기 좋아하고 모든 걸 꼼꼼히 확인하는 성격의 냇과 정반대인 남사친 게이브(Gabe, 대니 라미레즈 분)와의 하룻밤 실수에서 임신해 버렸을 경우. 둘째, 반대로 임신이 아니었을 경우. 199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휘재의 'TV 인생극장'처럼 냇의 인생은 이 변수 하나로 완전히 다르게 진행된다.
⚠️ 아래 영화 비평은 영화 <Look Both Ways(두 인생을 살아봐, 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영화는 작은 변수 하나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병렬적 구조로 보여 준다. 편의상 냇이 임신했을 경우를 A라고 하고, 임신하지 않았을 경우를 B라고 하자. 그 A와 B 경우가 한 장면씩 번갈아 가며 영화가 진행된다. 그런 편집은 처음 봣서 신선했다.
영화는 '삶에 어떤 일이 일어나든, 결국은 다 괜찮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아니면 최소한 '얼마나 어렵고, 무섭고, 괴로워 보이는 일이든 살아낼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지도). 영화 마지막에 냇은 자신이 절친 카라(Cara, 아이샤 디 분)의 응원을 받으며 임신 테스트기를 확인했던 그 화장실을 다시 찾는다. 그리고 거울을 보며 과거의 자신 또는 미래의 자신에게 속삭이듯 "넌 괜찮아(You're OK)"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냇이 임신하지 않았을 경우(B)가 훨씬 더 낫다. 왜냐하면, 임신하지 않았을 때의 냇은,
- 절친 카라와 같이 LA로 가서 같이 룸메이트로 지내며 우정을 다질 수 있었다.
- 임신을 하지 않았으니 부모님네 댁으로 다시 돌아가 신세를 질 일이 없었다. 따라서 부모님 걱정도 시켜드리지 않고, 경제적 지원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효도지.
- 대니가 아니라 제이크(Jake, 데이빗 코렌스웻 분)와 사귀게 되었는데, 대니보다 제이크가 훨씬 더 자신의 커리어에서 잘나간다. 수입도 당연히 더 많을 듯.
따라서 나는 B의 경우가 훨씬 잘 풀렸다고 생각한다. 물론, 어떤 이들은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이를 가지게 되었잖아요! 그게 모든 걸 다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거라고요!'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의 생각은 존중한다. 하지만 나처럼 아이를 원치 않는 사람의 경우 아이에 부여하는 가치가 높지 않으므로 이들과 동일선상에서 논의를 하기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쪽에서는 '아이는 그만한 가치가 있어요!'라고 주장하는데 다른 쪽에서 '아닌데요'라고 한다면 이 얘기는 끝없이 평행선을 달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 이외에, 다른 이들이 모두 동의할 만한 가치, 예컨대 내가 위에서 언급한 우정, 효도, 부(富)를 내세워서 '각각 이게 1점씩의 가치가 있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았을 때보다 3점의 가치가 앞서니까 아이를 갖지 않았을 때가 더 이득입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의 가치를 높이 사는 사람은 '뭐? 하지만 아이는 한 번에 1점이 아니라 3점, 또는 그 이상의 가치가 있어요!'라고 하겠지. 물론, 이렇게 기본적으로 전제가 완전 다르니 이야기는 절대 둘 다 동의할 만한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영화에 대해 곱씹어보다가 나는 아이스킬로스가 쓴 고대 희랍의 희곡 <오레스테이아>, 그중에서도 정확히는 <에우메니데스(자비로운 여신들)>를 떠올렸다. 오레스테이아는 3부작 비극인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들 오레스테스가 누이인 엘렉트라와 함께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녀의 정부 아이기스토스를 죽이고 (이유: 어머니가 오레스테스의 아버지 아가멤논을 죽였다. 클리타임네스트라도 자기 남편 아가멤논을 죽일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 신에게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다) 신들에게 사면받는 이야기다. 오레스테스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나서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긴다. 정의를 구현하려는 분노의 여신들은 오레스테스를 죽이려 한다.
물론 오레스테스의 입장에서 어머니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으니 이를 복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일견 정당해 보인다. 하지만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어머니다! 자신을 낳고 키워 준 어머니를 감히 자식이 죽일 수 있나? 게다가 클리타임네스트라도 그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죽은 딸의 복수)가 있었다. 분노의 여신들에게 쫓기던 오레스테스는 아테나 여신에게 도움을 구한다. 아테나 여신은 오레스테스를 재판에 세운다. 열두 명의 아테네 시민들은 이 안건에 완전히 의견이 갈린다. 여섯 명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행위였다', 다른 여섯 명은 '아무리 그래도 어머니인데?'라며 합의를 보지 못한다. 이렇게 인간의 판단으로는 도저히 결론이 안 나자, 아테네 여신이 나서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어준다. 아테나는 애초에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났으니 여성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명예 남성'쯤 되는 존재다. 그래서 남성의 편을 들어 준 것이다(와, 정말 고대 희랍에서 페미니즘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가 없었구나! 다른 신도 아니고 여신이 그런 결정을 내리다니). 어쨌거나 아테나의 캐스팅 보트로 판은 7 대 6이 되고 오레스테스는 죽음을 면한다. 그 이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생략.
내가 길게 오레스테스 이야기를 늘어놓은 건, 이게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점, 그리고 가치가 가치 있다는 점을 잘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데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오레스테스가 어머니를 죽인 것은 정당한 일인가? 그것은 인간이 쉽사리 단정해 말할 수 없는 문제다. 열두 명의 아테네 시민들 의견이 정확히 반으로 갈렸듯이, 양쪽 의견 다 어느 정도 근거와 설득력이 있다. 복수라는 개념도 정당하고, 부모에 대한 공경이라는 개념도 똑같이 정당해서 인간이 딱 잘라 '이게 저것보다 더 중요하다'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인간을 넘어서는 존재(=신)가 끼어들어 이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를 넘겨 줘야 했던 것이다. 말인즉슨, 첫째, 어떤 가치가 되었든 그것은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그 가치들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낫다고 확언하는 것은 신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게 인간사의 큰 전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조국 수호와 개인의 행복, 안전 또는 가정 부양 모두 다 귀한 가치라는 데는 모든 이들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이라면? 일제강점기 시대의 한국인들처럼 말이다. 섣불리 뭘 하나 고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둘 다 100% 유효하지만, 그중 하나만 선택하려고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이 어마어마할 거라는 점은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의 행복, 안전이나 가정 부양을 포기하고 조국 수호를 선택한 독립 운동가들을 우리가 존중하는 것이다. 그 결정으로 인해 그 개인이 겪어야만 했을 고통과 괴로움뿐만 아니라 그 결정이 그 주위와 사회에 끼친 영향도 우리가 알기에, 그들이 얼마나 어려운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졌는지를 우리가 알기에. 물론, 개인의 행복, 안전이나 가정 부양은 귀한 가치이지만 또 별 어려움 없이 이것들만 선택해 나라를 팔아먹는 결정을 내린 이들을 우리가 용서하지 못하는 것도 또한 타당하다. 모든 가치가 나름대로 귀하다는 전제가 우리로 하여금 양비론에 빠지거나 범죄자들을 옹호하게 할 이유는 될 수 없다.
보통 사람이 살면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상황을 겪을 가능성은 낮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 자체는 매일매일 겪는다. 배가 고픈데 건강에 좋은 것을 먹을까, 또는 건강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을까? 직접 요리해 먹을까, 사 먹을까? 사 먹는다면 직접 가지러 갈까, 아니면 배달시킬까? 이런 사소한 결정을 우리는 하루에 백 번쯤 내릴 것이다. 그리고 어떤 가치를 선택하든 (영양? 손쉬움?) 그것은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으니 어떤 것을 조금 더 중시하느냐의 문제가 될 뿐이며, 개인은 그 결정에 따른 책임을 온전히 져야 한다. 자기가 손쉬움과 빠른 만족을 위해 패스트 푸드나 고칼로리 배달 음식을 먹는 선택을 해 놓고서 누굴 탓하겠느냐는 말이다. 본인이 내린 결정으로부터 어떤 지혜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랄 뿐.
길게 늘어놓긴 했는데, 결국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그거였다. 냇에게 아이가 생겨서 그걸 낳았든, 애초에 임신을 하지 않았든, 그 상황에서 냇은 결정을 내렸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며 살아왔다. 그래서 마지막에 냇이 "넌 괜찮아"라고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이 가치를 선택한다는 사실과 가치는 그 나름대로 가치가 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해 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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