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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School for Good and Evil(선과 악의 학교)>(2022)

by Jaime Chung 2022. 10.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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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폴 페이그(Paul Feig)

갤버든(Galvaden)에 사는 두 소녀, 소피(Sophie, 소피아 앤 카루소 분)와 애거사(Agatha, 소피아 와일리 분)는 정반대로 다르지만 어릴 적부터 단짝이었다. 소피는 환상적인 이야기, 동화를 좋아하고, 언젠가 ‘공주’가 되리란 꿈에 부풀어 있으며 자신은 어딘가 다르다고 굳게 믿는다. 반면에 애거사는 좀 더 현실적이고, 소피에 비해 ‘못생겼다’고 여겨지는 데다가 ‘마녀’라고 놀림받지만 마음이 따뜻하고 착하다. 어느 날, 소피와 애거사가 동네 책방에 갔다가 책방 주인으로부터 ‘S.G.E.’, 즉 ‘선과 악의 학교(The School for Good and Evil)’에 대해 듣게 된다. 동화 속 선한 주인공들과 악인들을 키워 내는 곳이란다. 소피는 그곳에 가면 자신도 꿈꾸던 공주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그 학교 교장에게 부치는 편지를 써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무’에 놓고 온다. 애거사는 이 사실을 뒤늦게 알고 달려와 소피를 막으려 하는데, 어쩐 일인지 갑자기 회오리 바람이 불기 시작하며 거대한 스켈레톤 같은 새가 날아와 둘을 다리로 붙잡아 데려간다. ‘이곳이 그 선과 악의 학교구나!’ 공주님 되는 건 시간문제다 하던 소피의 기쁨도 잠시. 자신이 ‘선’한 역할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소피는 악인의 학교 앞 호수에 떨어지고, 오히려 그저 소피를 데리고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던 애거사가 선한 주인공들의 학교의 정원에 놓인다. 어떻게 된 일일까?

 

⚠️ 아래 영화 리뷰는 <The School for Good and Evil(선과 악의 학교)>(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이야기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폴 페이그, 그는 누구인가. 그가 감독한 영화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다.

<Last Christmas(라스트 크리스마스)>(2019)

  • <A Simple Favour(부탁 하나만 들어줘)>(2018)
  • <Ghostbusters(고스트버스터즈)>(2016)
  • <Spy(스파이)>(2015)
  • <The Heat(더 히트)>(2013)
  • <Bridesmaids(내 여자친구의 결혼식)>(2011)

TV 쇼 말고, 단편 말고, 가장 잘 알려진 장편 영화만 골랐는데 대략 이런 필모그래피가 나온다. <고스트버즈터즈>만 빼고 다 전반적으로 좋은 평을 들었던 영화들이다. 나는 이 여섯 편을 다 봤는데 그건 내가 원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멜리사 맥카시를 좋아해서 그가 나온 영화를 찾아 보다 보니 그렇게 된 것도 있다(위의 목록 중 아래 네 편에는 전부 멜리사 맥카시가 나온다.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중 저처럼 멜리사 맥카시 팬이 있다면 댓글에 수줍게 당근 이모지🥕를 남겨 주세요).

어쨌든 이렇게 전반적으로 성적이 나쁘지 않은 감독이었기에 제목이 다소 유치함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플레이 버튼을 누르기 전 조금 기대를 했다. 그러나 감독님… 이건 도대체 무엇인가요…

감독님 탓은 영화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차차 하기로 하자. 일단 이 영화는 소만 차이나니(Soman Chainani)의 (웹사이트마다 분류가 좀 다르지만 넓게 봐서 9살-16살까지를 대상으로 한) 소설 <The School for Good and Evil(선과 악의 학교)>을 바탕으로 했다. 참고로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정발되어 있다. 제목도 정직하게 <선과 악의 학교>이다. 영화를 볼 때는 몰랐고 엔딩 크레디트에 뜬 것을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원작을 읽지 않았기에 이 영화가 원작을 잘 살렸는지, 못 살렸는지, 원작과 얼마나 다른지는 평할 수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할 말이 참 많다.

할 말을 두괄식으로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 세 가지이다. 성차별주의, 외모에 대한 고정관념,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한없이 가벼움. 이것을 따로따로 나누어 이야기하기엔 상당 부분 연결된 부분이 많아 그냥 같이 따져보려고 한다.

소피와 애거사가 다니게 된 학교는 동화 속 주인공과 악당들을 양성하는 곳이다. 주인공들은 ‘선’의 역이고 악당들은 당연히 ‘악’의 역. 그런데 이 ‘선’의 학교는 어째 진정한 의미에서 ‘선’한 인물들을 양성해 내는 것 같지 않다. 여자애들은 모두 공주님 드레스를 입고 남자애들은 왕자님처럼 번듯하게 차려입고 칼까지 차고 있지만, 그것은 전부 잘 차린 외양에 불과하다. ‘선’ 학교 여자애들은 애거사가 못생겼다고 (아니, 소피아 와일리의 어디가 못생겼다는 건지?), 마녀 같다고 그를 대놓고 배척하고, 남자 주인공 역할인 테드로스(Tedros, 제이미 플래터스 분)도 깊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아서 왕의 아들이라는데 💩폼만 자꾸 잡고…. ‘선’ 학교의 여자애들이 배우는 거라고는 미소 짓는 법과 소원 물고기(wish fish)에게 소원 비는 것 정도다. 이 미소 짓는 걸 가르치는 교수 ‘아네모네(Anemone)’ 역이 무려 미셸 여, 즉 양자경이다! 이 교수는 원래 마법 역사학부의 학장이었는데 라팔(Rafal, 킷 영 분), 그러니까 애초에 이 학교들을 세운 쌍둥이 형제 중 악당인 라팔(Rafal, 킷 영 분)이 나름대로 선과 악의 ‘균형’을 맞춘다고 ‘선’의 수준을 끌어내려 허영심에 가득 차게 (vain) 만드느라 ‘미화(beautification)’ 수업이나 맡게 되었다. 이걸 알게 된 애거서가 놀라니까 “내가 웃는 것 따위에 신경 쓰는 사람으로 보이냐?” 하는 이 교수님이 사실은 깊이가 있고 강인한 여성이라는 걸 보여 줄 수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러지 않는다. 이럴 거면 왜 양자경이란 배우를 데려다 쓰는 거지? 완전 낭비 아니냐?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이 영화는 정말 캐스팅이 대단하다. 케이트 블란쳇이 내레이터, ‘선’ 학교의 대표격 교수는 케리 워싱턴, ‘악’ 학교의 대표격 교수는 샤를리즈 테론, 학교의 교장은 로렌스 피시번이다. 처음에 로렌스 피시번이 등장하는 걸 보고 나는 육성으로 “아니, 로렌스 피시번이 여기에 왜…?”라고 말했다. 이런 쟁쟁한 배우들이 이런 누추한 영화에 도대체 왜? 폴 페이그에게 돈 빌리고 안 갚았나? 인기 있는 아동 문학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 믿고 오케이 했다가 시놉시스 사기를 당한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어쨌거나, 이제는 남자애들 수업 이야기를 해 보자. ‘선’ 학교의 소년들은 검술과 기마 등을 배우는데, 검을 잡았다 하면 다치고 말을 타다가도 넘어져서 구르는 소년이 있다. 이름은 그레고르(Gregor, 앨리 컵 분). 이 학생이야말로 가부장제가 어떻게 여성들만 피해자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틀에 맞지 않는 남성들까지 고통스럽게 하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레고르는 왕자님 또는 멋진 기사님 따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고, 그냥 식료품이나 운영하면서 소소하게 사는 게 꿈이다. 그렇지만 그는 ‘선’ 학교가 남학생을 상대로 세운 기준에 세 번이나 탈락했으므로 마치 투명한 분쇄기에 갈리듯 사라진다. 나중에 그가 용 비슷한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나타났음을 애거서와 더비 교수(Dovey, 케리 워싱턴 분)는 알지만 테르도스는 이것도 모르고 그냥 괴물이려니 생각하고 그를 죽인다.

게다가 해롭기로는 마찬가지인 ‘미’에 대한 고정관념은 어떤가? ‘선’ 학교나 ‘악’ 학교 모두 흑인이나 동양인 학생들이 있지만, ‘악’ 학교에 속한 이들은 모두 검거나 아주 짙은 갈색 머리다. 자신이 ‘선’ 학교에 속한다 믿는 소피만이 백금발이라 확 눈에 띈다. 여기에서 이미 유럽 중심적인 미의 기준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악’ 학교 아이들은 예쁘거나 잘생기게 보이는 데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교수에게 ‘추함(ugliness)은 자유다!’라며 자신의 외모에 일부러 미적이지 않은 영향(예컨대 점이나 상처)을 끼치기를 권유받는다. ‘선’은 아름다운 것, ‘악’은 추한 것, 그것도 스스로 자기에게 가한(self-inflicted) 것인가? ‘선’ 학교 여자애들은 죄다 날씬하고, 우리가 보기에 ‘보통’ 또는 ‘플러스사이즈’로 볼 만한 여학생은 딱 한 명, ‘악’ 학교에만 있다(아나딜, 데미 아이삭 오비아웨 분). 또한 ‘악’ 학교에는 대머리인 여학생도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나름대로 이 학생을 ‘쿨’하게 보이려고 애썼다고 생각하고 싶고 또 그렇게 비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무모증이나 암 같은 질병이나 다른 모종의 이유로 인해 머리카락이 없는 이들에게 ‘추함’, 그리고 곧 ‘악함’의 이미지를 덧씌운 게 아닌가 두렵고 그로 인해 누군가 상처 받을 것이 우려된다. 외모라는 게 나의 것이긴 하지만 온전히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님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몸이 우리 것이라 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다이어트에 매번 성공해 살을 빼거나, 지긋지긋한 여드름을 박멸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걸 알면서 왜 ‘선’을 ‘미(美)’, ‘악’은 ‘추(醜)’라는 메시지를 여기에서 재생산하는가?

이 학교는 뭔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애거서에게 더비 교수는 끊임없이 “우리 모두는 어떤 역할(a role)’을 맡을 뿐이다”라고 하는데, 그래, 이 학교가 사실 동화 속 인물들(주인공과 악당 모두)을 양성해 내는 곳임을 상기한다면 그것은 말이 된다. 동화 속에서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만든 건 현실이잖아? 일견 아름다워 보이고 완벽해 보이는 동화 속 세상이 일그러졌다는 걸 보여 주고 싶은 게 이 영화의 주축이 되(어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이런 점을 비틀어서 보여 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 사실 이것은 우리 사회에 대한 비유이자 풍자 아닐까?’ 나도 무척이나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이 영화는 그 정도의 깊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럴 능력이 안 된다. 만약 우리 사회를 풍자하거나 비웃고 싶었다면 영화 후반에라도 반전이 있어야 하는데, 라팔이 자신이 ‘선’의 수준을 끌어내렸음을 고백하고 난 후에도 영화는 딱히 깊이를 보여 주지 않는다. 위에서도 말했듯이, 선이 곧 미인 것은 아니며, 악이 곧 추는 아니다, 외모로 선과 악을 나눌 수는 없다, 뭐 그런 메시지 말이다. 애초에 십 대를 위한 소설에 뭐 그렇게까지 깊이를 요구하냐고 항의한다고 한다면, 첫째, 그건 그들에 대한 모욕이고, 둘째, 그 나잇대이니까 더더욱 그런 중요한 메시지를 배우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사실, 이게 이게 정말 십 대를 대상으로 하는 영화인지도 좀 의심스럽다. 분명 원작은 9살-16살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책이었는데, 영화 버전은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나이대를 좀 더 높여서 주인공들이 18-19살 정도 된다. 이게 십 대나 그보다 약간 어린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거였다면, 2시간 30분에 달하는 긴 러닝 타임은 다 뭔가? 정말 ‘애들’이 타깃이라면 영화는 길어야 1시간 40분 정도였을 것이다. 애초에 2시간 30분이나 되어야 할 정도로 엄청 중요한 사건이 많은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이건 전적으로 감독이 영화 페이스 조절을 잘못한 탓이다. 이건 관객이 어떤 나잇대에 속하느냐와 무관하게 2시간만 됐어도 충분했을 이야기와 깊이인데.

다시 ‘역할’ 이야기로 돌아와서, 정말 이 ‘선’과 ‘악’ 학교 모두 일종의 역할놀이를 하는 것이고 교수들이 입을 모아 말하듯 ‘선’과 ‘악’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면 (생각해 보라, 현실이라면 애초에 왜 둘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하나? ‘선’이 ‘악’을 몰아내고 ‘선’이 우세를 차지하는 게 이상적인 목표여야 하지 않나?) ‘선’과 ‘악’이라는 개념의 구분조차 애매해질 뿐더러 거기에 몰입할 필요조차 없다. ‘선’이든 ‘악’이든 이 동화 세상에는 둘 다 꼭 필요한 거라면, 그러니까 방금 전 말했듯이 굳이 둘 사이에 50 대 50의 균형이 존재해야 한다면, ‘선’이나 ‘악’이라는 구분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둘 다 어떤 정해진 틀에 맞추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뿐, 개인적인 어떤 사심이나 원한 따위가 들어갈 자리가 없지 않은가. 말하자면 그냥 연극일 뿐인데 ‘신데렐라’ 역할을 맡은 배우가 꼭 ‘계모’ 역을 맡은 배우를 싫어할 필요는 없고, 연극 끝나고 나면 같이 팔짱 끼고 국밥 먹으러 갈 수도 있는 거다. 사자가 사슴을 잡아먹는다 해서 사자가 ‘악’인 게 아니고 사슴이 ‘선’인 게 아니듯이, 그냥 그게 자연의 규칙일 뿐이듯이. 고작 역할놀이에 왜 목숨을 걸어? 이 ‘역할’이라는 말을 듣고 내가 떠올린 건 <Wreck-It Ralph(주먹왕 랄프)>(2012)에서처럼 죽자고 서로 싸우던 주인공-악당 캐릭터들이 ‘에잇 참 먹고살기 힘드네’라는 느낌으로 서로 위로도 해 주고 친하게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아니, 진짜로 얘네 그냥 역할에 충실할 거라면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경쟁하는 거야?

더 따지고 들기에도 내 입, 아니 손가락이 아프니 영화 결말로 빨리감기 하자. 결국 소피는 라팔의 꼬임에 속아넘어가 ‘흑화’하고 라팔과 ‘진정한 사랑의 키스(true love kiss)’를 하게 된다. 여기에서 나는 좀 놀란 게, 음, 이걸 어떻게 예의 바르게 말하지? 죄송한데요… 라팔 님 취향은… 음… 여자가 아니지 않나요?

이분이 라팔.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여튼, 라팔에게 키스를 해서 진정한 악이 ‘균형’을 깨고 득세하기 시작하자 ‘선’과 ‘악’ 학교는 무너져 내린다. 라팔은 자신을 방해하는 애거사를 죽이려다가 이를 막아선 소피가 대신 날카로운 깃털 펜(소피와 애거사가 이곳 학교에 오기 전부터 그 둘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는 신비로운 깃털 펜. 위에서 말한, 무려 케이트 블란쳇이 연기했다는 내레이터가 바로 이 깃털 펜이다)에 맞아 죽는다. 그러나 애거사가 어찌저찌 라팔을 죽이고 세계는 다시 균형을 되찾는다. 그러나 소피는 이미 죽었고, 깊은 슬픔에 빠진 애거사가 소피의 입에 (!!) 키스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친구 사이의 우정처럼 깊은 사랑이 어디 있겠느냐는 내레이션과 함께 소피는 다시 살아나 눈을 뜬다. 말인즉슨 이거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키스라는 것! 레즈비언, 아니 최소한 바이섹슈얼인 소녀가 둘이나? 대박이다! 아니, 친구들의 우정이 소중하고 귀한 것이긴 한데요, 보통 친구들끼리 입뽀뽀를 하진 않죠. 이걸 ‘우정’이란 말로 포장할 생각 마시고 그냥 대놓고 게이라고 말해 주세요! 지금은 21세기, 레즈비언 또는 여성을 사랑하는 바이섹슈얼 여성을 대놓고 보여 줄 필요가 있습니다! 설마 퀴어베이팅(queer-baiting, 개인 또는 미디어 속 등장인물이 퀴어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관심 또는 인기를 끌기 위해 퀴어인 척 대중/관객을 ‘낚는’ 것) 할 생각은 아니죠? 둘이 무슨 사이인지 이제는 제발 알레즈세요^^ (feat. 예지주) (참고로 레딧에 이와 관련한 글이 있다. 원작 소설에 대한 스포일러를 피하기 위해 나는 그냥 링크만 놓고 가겠으나 흥미롭다는 점은 말해 두겠다.)

어쨌거나, 우스꽝스럽게 ‘선’ 학교와 ‘악’ 학교가 다시 균형을 되찾고 나서 두 학교의 학생들은 약간 친해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아니 진짜 이럴 거면 애초에 왜 싸웠냐고요…2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선’과 ‘악’의 균형이니 ‘역할’이니 하는 개소리를 할 필요가 없었던 것 아닌가. 이래 놓고도 또 후속작을 대놓고 예고하듯 떡밥을 뿌리고 끝이 나는데 나는 후속작이 안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 아니, 원작 소설에 이야기가 많이 남은 건 알겠는데 첫 영화를 이렇게 엉성하게 만들어 놓고 어떻게 또 후속작을 만들 생각을 하지? 성차별적인 시선에, 외모 지상주의에, ‘미’에 대한 고정관념까지 어디 하나 깊은 생각을 가지고 만든 것 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아예 그냥 이 영화를 리부트해서 다시 만들었으면 모를까, 판을 이렇게 깔아 놓고 후속작에서 이 💩을 치울 수 있을 리가 없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따지자. 애초에 소피가 ‘악’ 학교에 속한다고 믿고 데려온 라팔은 왜 그녀가 ‘악’하다고 생각한 걸까? 이 조그맣고 지긋지긋한 마을에 자기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자기 외모에 관심이 많아서? 물론, 소피가 허영심이 있는 것은 인정하지만, 얘는 그래 봤자 십 대 소녀다. 그 나잇대에 당연히 할 수 있는 행동이 정말 ‘악’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큰 흠이 되나? 여자애가 ‘나는 이런 천한 곳에 어울리지 않아. 나는 공주가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그렇게까지 심하게 벌 줄 잘못이냔 말이다. 아니, 자기가 있는 곳에 만족하는 마음도 덕이라면 덕으로 볼 수도 있지만, 그걸 못 한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힘든 일에 휘말려야 했나? 만약에 남자애가 ‘나는 더 큰 곳으로 가서 더 큰 일을 할 거야!’라고 생각했다면 야심, 향상심으로 보고 ‘큰일을 할 아이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했을 거면서. 이 이야기의 전제부터가, 소피와 애거사가 학교로 납치되기 전에 이미 성차별적이다.

결국 이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남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짤로 요약하고 싶다.

이 짤에 대해 설명하자면, 케이트 블란쳇이 <Cinderella(신데렐라)>(2015)와 관련해 인터뷰를 하던 중에 ‘gaze(시선)’라는 단어를 ‘gays(게이들)’로 잘못 듣고 머리 위에 물음표를 백 개를 띄운 후 뒤늦게 이해하고 ‘gays’ 이야기하는 줄 알았다고 손목을 저렇게 한 적이 있었다(유튜브 영상). 저런 손목, 즉 ‘limp wrist’는 게이(특히 남성 게이)를 의미한다. 라팔의 캐릭터가… 음…게이 같았고, 여성끼리의 키스까지 보았으니까. 덧붙여, 원작 소설의 저자인 소만 차이나니 씨도 게이라고 밝혔다(출처. 그러니 이 짤이 적절하지 않은가. 사실 내가 이 영화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한 그 모든 것들을 차라리 안 본 척하고 싶고 다 잊어버리고 싶으니까 이 정도로 마무리하자.

➕ 이 영화에서 미욱하나마 하려고 했던, ‘읽기’와 ‘쓰기’에 대한 비유, 그러니까 독자가 이미 쓰여진 글을 읽으면서 어떻게 그 내용을 ‘살아 숨쉬는’ 것처럼 만들고 등장인물들에 생명을 불어넣는지, 독자에겐 어떻게 저자와는 다른 힘이 있는지, 삶은 정말 어떻게 자신이 써 나가는 것인지 등에 대한 깊고도 재미있는 담론은 이미 영화 <Inkheart(잉크하트)>(2008)에서 다 했다. 이 소재를 진짜 기가 막히게 잘 다루었고, 무엇보다 젊은 시절 잘생긴 브렌단 프레이저도 볼 수 있다! 나는 이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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