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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Malcolm’s List(미스터 말콤스 리스트)(2022)

by Jaime Chung 2023. 4.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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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Malcolm’s List(미스터 말콤스 리스트)

 

 

⚠️ 아래 영화 후기는 <Mr Malcolm’s List(미스터 말콤스 리스트)>(2022)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엠마 홀리 존스(Emma Holly Jones)

 

줄리아(자웨 애쉬튼 분)와 셀리나(프리다 핀토 분)는 소녀 시절 같은 기숙 학교 출신인 절친이다. 이제 성인이 된 그들은 서로 떨어져 살고 있지만 (줄리아는 런던에, 셀리나는 서섹스에) 여전히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 줄리아는 최근에 말콤(솝 디라이수 분) 씨라는 신사와 오페라 공연을 보러 갔는데, 그가 옥수수 법이니 푸치니 등에 대해 물어보는 통에 무식함이 들통나 버렸다.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말콤 씨와 데이트를 한 번 했는데도 애프터가 없어서 자신이 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사교계에 널리 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남편감을 찾으려고 네 시즌이나 사교계에 붙어 있었는데 이게 웬 망신! 사교계의 놀림감이 되어버린 줄리아는 말콤 씨와 친구인 자신의 사촌 캐시디(올리버 잭슨 코헨 분)를 시켜 뭐가 문제였는지 알아오게 한다. 캐시디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말콤 씨에게는 ‘아내가 될 만한 자격을 갖춘 여성’이 가져야 할 조건 10가지를 가진 목록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지성이며 음악적 재능, 좋은 집안 등등. 줄리아는 그 ‘목록’을 이용해 말콤 씨에게 복수할 요량으로 셀리나를 런던에 있는 자신의 저택으로 초대한다. 즉, 셀리나를 말콤 씨의 ‘10가지 조건’을 다 갖춘 여성으로 만들어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은 후 잔인하게 차버릴 계획. 셀리나는 자신의 친구가 너무나 속상해하는 걸 보고 줄리아를 돕기로 하는데…

 

수잰 얼레인(Suzanne Allain)의 동명 로맨스 소설을 바탕으로 하는 영화.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여태까지의 ‘눈부시도록 새하얀’ 영화들과 다르게 인종 다양성이 눈에 띈다. 일단 두 여주부터 보자면, 줄리아 역의 배우는 어머니가 우간다 출신이고 아버지가 영국인(아마 백인)이라고 한다. 셀리나 역의 배우는 인도 뭄바이에서 나고 자란 인도인. 남주인공인 솝 디라이수는 정말 로맨스 영화의 남주 역으로는 보기 드문, 아주 진한 피부색의 나이지리아계 영국인이다(극 중 말콤 씨가 요루바족의 언어로 속담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있다). 줄리아의 어머니인 티슬웨이트 부인 역의 배우 나오코 모리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일본계이다. 셀리나의 사촌인 코빙턴 부인 역의 애슐리 박은 당연히 한국계(영화 속 설정을 따지자면 동양인 어머니와 흑인+백인 혼혈 딸이라니, 아빠가 도대체 어느 쪽이지 혼란스럽지만 여튼 그렇다 치자). 줄리아의 하녀인 몰리(시아나드 그레고리 분)는 백인인데, 나는 그걸 보자마자 ‘백인을 하녀로 쓰다니, 도대체 얼마나 부자인 거야?’라고 생각했다. 줄리아는 나중에 오쏘리 대령(테오 제임스 분)과 이어지는데, 이 대령만이 조연치고 거의 유일한 백인이다. 개인적으로 어차피 이 소설이나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모두 허구이므로 인종적으로 다양한 캐스팅은 문제가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비(非)백인들이 로맨스 영화의 주조연을 차지하는 걸 보니 무척 보기 좋았다. 캐스팅 자체는 만족이다.

 

원작 소설 표지(국내 번역 출간은 아직 없는 듯)

 

문제는 딱히 주조연들 사이에 케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셀리나와 줄리아가 친구라고 믿을 수는 있는데, 셀리나와 말콤 씨 사이는 정말 일말의 케미도 없어서 정말 이 둘이 주인공 커플이 맞나 싶었다. 줄리아와 오쏘리 대령은 조금 낫지만 그래도 찰떡궁합 같은 느낌까지는 안 든다. 인종이 다른 게 문제가 아니고 얼굴 합이나 이미지, 분위기가 서로 안 맞는 것 같다. 이렇게 안 어울리는 커플들이라니…

또한 이 영화의 커다란 문제는 여주인공 둘 사이의 갈등 관계다. 줄리아가 셀리나를 이용해 말콤 씨의 마음을 아프게 하겠다고 마음 먹은 초기 설정까지는 좋은데, 셀리나와 말콤 씨가 점점 진심으로 서로에게 빠지자 줄리아가 이를 질투하고 둘 사이를 떼어놓으려 한다는 게 너무 어이 없었다. 지금, 21세기에 여자 둘이 남자 하나 두고 싸우는 이야기라고요? 진심이세요? 원작 소설도 이런지는 모르겠으나 (참고로 수잔 얼레인 본인이 자기 소설을 영화로 각색한 각본을 썼다) 영화가 이런 구태의연한 패턴을 따라가다니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 차라리 말콤 씨가 아주 정말로 나쁜 놈이어서 두 여자가 합십해 이 남자에게 한 방을 먹이려고 했다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후기를 쓰려고 조사를 하다 보니 저자는 완성된 영화를 보고 줄리아와 셀리나 사이의 우정이 묘사된 데 긍정적인 의미로 놀랐다고 하는데, 나는 ‘이게 놀랄 정도면 도대체 여자들 사이의 우정에 대한 기준이 얼마나 낮은 거지?’ 싶었다. 남자 하나 때문에 여자들이 싸우는 구린 줄거리를 본인이 써 놓고도 놀랐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정말…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하는 ‘리젠시(Regency)’ 시대극이 보고 싶다면 차라리 다른 영화를 볼 것을 권한다. 로맨스도 딱히 특출나게 재미있지도 않고, 주연들 사이에 케미도 안 살아서 큰 매력은 없다. 넷플릭스를 이미 이용하니까 본 거지, 안 그랬으면 본전 생각이 날 뻔했다. 제가 여러분을 위해 대신 봤으니 여러분은 안 보셔도 됩니다. 다른 영화 보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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