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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Babyteeth(베이비티스)>(2019)

by Jaime Chung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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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abyteeth(베이비티스)>(2019)

 

 

⚠️ 아래 영화 후기는 <Babyteeth(베이비티스)>(2019)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섀넌 머피(Shannon Murphy)

 

밀라(엘리자 스캔런 분)는 암을 앓고 있는 열다섯 살 소녀다. 그녀는 집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 모지스(토비 월레스 분)를 만난다. 그녀가 기차가 들어오는 승강장에 떨어지기 직전, 모지스가 그녀를 구해 준 것이다. 그는 ‘병지 머리’를 하고 눈 주위가 붉으며, 온 몸에 문신이 있다. 그는 약쟁이다. 하지만 밀라는 이 겁 없고 의외로 다정한 스물세 살 청년에게 빠져든다. 첫사랑을 이제 막 시작한 것이다.

 

리타 칼네자이스(Rita Kalnejais)의 동명 원극을 극작가 본인이 영화 각본으로 다시 썼다(벨보아 스트리트 극장에 올라왔던 과거 공연 정보는 여기에서 보실 수 있다). 감독은 섀넌 머피. 괜찮은 영화라고 다른 나라들에서도 인정해 주는, 보기 드문 호주 영화다(혹시 몰라 덧붙이자면, 호주 영화들 수준이 낮다는 게 아니라 호주 영화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만든 영화들만큼 전 세계에 소개될 기회가 적고 다른 나라들의 관심을 받기 어렵다는 뜻이다. 오해하지 마시길).

영화를 보며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아니, 누가 봐도 마약 밀매상(인데 심지어 그걸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님)에다가 부모님과는 절연(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와는 연락하지 않고, 어머니는 모지스를 집에서 쫓아냈다)당해 자기 몸 누일 방 한 칸도 없는 모지스와 밀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밀라의 부모님인 헨리(벤 멘델슨 분)와 안나(에시 데이비스 분)는 아픈 딸을 아주 끔찍히 과보호한다. 모지스와 밀라 사이에 여덟 살이나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밀라의 부모님께 모지스가 잘 보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내가 밀라의 보호자였어도 저런 약쟁이, 그것도 여덟 살이나 연상인 약쟁이를 곱게 보지는 못했을 거다. 게다가 모지스는 (극 초반에는) 밀라의 약까지 훔쳐가니까 밀라의 부모님 입장에선 아주 꼴 보기 싫은, 밀라에게 나쁜 물을 들이는 놈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거다.

 

왼쪽이 밀라, 오른쪽이 모지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모지스는 진짜로 밀라를 좋아하고, 밀라에게 마음 쓴다. 참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렇다. 그래서 모지스와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일탈을 벌이는 밀라를 보고 밀라의 부모님은 ‘이렇게 둘 사이를 계속 떼어놓으려 했다간 아예 밀라를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어 아예 모지스를 자기네 집에 묵게 한다. 그러면 적어도 가까운 데서 보고 감시라도 할 수 있고, 밀라도 굳이 반항심을 키우지 않아도 되니까. 안나는 그런 자신들의 결정을 ‘최악의 육아법’이라고 자조하지만, 사실 그게 안나와 헨리가 밀라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

밀라는 이제 열다섯 살인데 암 때문에 삶을 즐기지 못한다. 모지스와 어울리는 것만이 밀라가 유일하게 누릴 수 있는, 그 나잇대 소녀들의 즐거움 또는 추억, 그러니까 첫사랑이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밀라를 보호하고 싶은 부모님 마음도 이해가 되고, 자기 나잇대 또래들이 마땅히 누리는 첫사랑의 짜릿함을 느끼고 싶어 하는 밀라도 이해가 되어서 참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솔직히 이 모지스란 캐릭터도 묘한 게, 정말 내 주위에 있었다면 약쟁이니까 피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토비 월레스라는 배우의 연기 덕분에 의외로 충실하고 또 의외로 귀여운 청년이라는 느낌을 준다. 뭐, 이건 픽션이고 내가 실제로 이런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니까 안전하게 판타지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좋긴 하지만… 현실에서 이런 관계(밀라-모지스)가 일어난다면 뉴스감이겠지.

이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거의 다 슬픔과 불안, 고통을 약으로 잊으려 한다. 일단 암 때문에 아픈 밀라가 모르핀을 비롯해 진통제(로 추측되는 약)를 사용하는 건 이해 가능한 선이다. 밀라의 아버지 헨리는 정신과 의사로 극 중에 한 번 모르핀을 스스로 주사하고, 아픈 딸을 뒷바라지하고 또 너무나 걱정하느라 신경 쇠약이 올 정도인 아내에게는 항우울제를 잔뜩 처방한다. 모지스는 뭐, 약쟁이니까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가 끝난 다음에 이 영화와 원작이 되는 연극에 대해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영화가 밀라가 죽기 약 한 달 전의 시점에서 시작한다는 걸 알았다. 살아갈 날들이 길지 않게 느껴진다면 나도 눈 딱 감고 밀라가 그랬듯 ‘배드 보이’ 같아 보이는 모지스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상대가 사랑에 빠질 만큼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따지는 것도, 살 날이 길다는 확신이 있을 때에야 할 수 있는 일일지도 모른다. 슬프고, 안타깝고, 해피 엔딩이 아닌 소녀의 성장기 또는 첫사랑 이야기의 ‘분위기’에 빠져들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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