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앗, 과속 딱지가 대중교통 무임승차 벌금보다 싸다? - 멜버른에서 대중교통 탈 때 교통 카드를 꼭 찍어야 하는 이유

[오스트레일리아/호주 이야기] 앗, 과속 딱지가 대중교통 무임승차 벌금보다 싸다? - 멜버른에서 대중교통 탈 때 교통 카드를 꼭 찍어야 하는 이유 

 

나는 요즘 트램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며칠 전에 집으로 가는 트램에서 재미있는 장면을 1열에서 구경하게 됐다. 이 ‘빅 재미’ 장면을 설명하기 전에 대략적으로 사전 지식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는 기차나 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을 ‘마이키(MyKi)’라는 교통카드로 이용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탑승할 때와 하차할 때 각각 한 번씩 총 두 번 카드를 찍지만 여기에선 그냥 탑승할 때 한 번만 찍으면 된다. 만약 중간에 내려서 다른 걸로 갈아탄다고 하면 그때 탑승 시 다시 찍으면 된다. CBD에 있는 ‘무료 트램 존’에서는 탑승할 때도 찍을 필요가 없다. ‘존(zone)’ 구분이 좀 헷갈리긴 하지만 어쨌든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다.

그리고 놀랍게도, 호주에서는 대중교통에서 표 검사를 한다. 요즘 한국인들은 표 검사가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유럽 국가들은 트램이나 기차, 지하철 등에서 표 검사를 한다고 하던데 우리나라는 아예 애초에 표가 없으면 대중교통을 탑승하러 가기 어렵게 되어 있으니 굳이 그럴 필요가 없고, 그래서 요즘엔 안 하는 것 같다. 우리 부모님이 젊었던 시절에는 기차 탈 때 표 검사를 했다고 하는데, 요즘엔 다 전산화가 되어 있으니까 굳이 표 검사원이라는 인력을 투입해 하나하나 검사할 필요가 없다. 버스의 경우라면 애초에 탈 때 기사님 바로 옆에 있는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찍어야 하니까 일단 자리를 맡는 척하면서 이를 회피하려 해도 쉽지 않고 말이다.

 

하지만 멜버른 대중교통은 상대적으로 회피가 쉽다. 비교를 위해 빅토리아 주에 있는 한 기차 역 사진을 가져왔다. 우리나라의 지하철 타는 곳 가는 길에 있는 입구와 비교해 보시라.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아 커먼스

이미지 출처: 서울특별시 웹사이트

 

교통카드를 찍지 않으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도록 막는 기기가 빅토리아 주 버전이 조금 더 허술한 느낌이다. 유효한 카드를 찍지 않으면 삑 소리가 나긴 하는데 그렇다고 못 들어갈 정도는 아니다. 조금 소리는 나겠지만 역무원이 언제나 저기를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트램의 경우라면 트램 기사님은 운전에 집중하느라 누가 카드를 안 찍어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만 먹는다면 무임 승차 하기는 정말 쉽다. 한번은 호주 친구에게 왜 기차역의 저기를 저렇게 넓고, 드나들기 쉽게 만들어 놓고 교통카드를 찍는지 안 찍는지 감시를 안 하느냐고 물어봤더니 몸이 불편한 분들이나 유모차가 지나가기 편하게 만들어 놓고 본인의 양심에 맡긴 거라고 했다.

하지만 양심에 맡기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PTV(Public Transport Victoria, 빅토리아 주 대중교통)의 검표원들이 랜덤한 시각에 랜덤한 지역에서 랜덤하게 출몰해 기차나 트램, 버스 등 대중교통 탑승자들이 유효한 표를 가지고 있나 검사를 한다. 당연히 전수 검사는 어렵고, 같은 기차나 트램, 버스 내에서도 한두 량만 하고 거기에서 무임승차자를 발견했으면 거의 그것으로 그 검사 시간은 끝이 난다. 나머지 사람들을 다 검사하지는 않는다는 것.

서론이 조금 길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내가 퇴근길에 본 재미있는 장면은 이것이다. 트램 안에 자리를 잡고 앉아 ‘와 퇴근 시간이라 길 엄청 막히네’ 같은 생각을 하면서 폰을 보고 있었는데, 한 정류장에서 표 검사원들이 세 명 탑승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내가 앉아 있는 쪽으로 와서 표 검사를 시작했다. 나는 ‘마이키 패스(MyKi Pass)’라는 정액권을 사용하고 있었고 (참고로 안드로이드 폰 내의 ‘구글 지갑’에 담아 둔 정액권이었다), 그날도 트램을 갈아탄 뒤 곧장 교통카드를 단말기에 인식시켰던 터라 당연히 나는 표 검사를 통과했다. 그런데 내 자리에서 대각선 위치에 앉아 있던 여학생은 그렇지 않았다. 표 검사원이 표를 보여 달라고 하자 여학생은 “오늘 제 걸 안 갖고 왔는데요.”라고 말했다. 검표원은 “그럼 왜 트램에 탔어요?”라고 되물었고, 여학생은 다시 “집에 가야 해서?”라고 대꾸했다.

물론 이 대답에 만족할 리 없는 표 검사원은 그 여학생에게 인적 사항을 묻기 시작했다. 이름, 연락처, 주소, 그리고 그 학생이 아직 미성년자였으므로 부모님 연락처까지. 검사원은 학생에게 작은 안내 팸플릿을 주고,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알렸다. 그러고 나서 그 검표원은 다른 검표원들과 다음 역에서 내렸다. 내가 내 목적지에서 내릴 때까지 그 여학생은 분명히 그 팸플릿을 꼬옥 쥐고 있었다.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이 벌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유효한 표 없이 무임승차하는 행위’는 성인의 경우 277호주달러, 그러니까 약 24만 원에 달한다(이 외에 다른 항목에 따른 벌금은 PTV 공식 웹사이트를 참고할 것). 아동이라 할지라도 벌금이 92호주달러, 약 8만 원에 달한다. 그 학생은 벌금을 냈으려나, 아니면 다행히 경고로 끝났으려나. 만약 벌금을 내게 되었다면 하루 종일 대중교통을 타도 요금이 9.6호주달러를 넘지 않게 상한선이 정해져 있는데 그거 아끼려다가 최소 약 1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내게 되었으니 이제는 꼭 마이키를 챙겨 다녀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적어도 나는 매번 꼬박꼬박 교통카드를 잘 찍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여태까지도 그래 왔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레딧 포스트에서 한 레딧 유저가 지적했듯이, 대중교통에 무임승차해서 받은 벌금($277)이 과속해서 받은 벌금($230; 한화로 약 20만 원)보다 금액이 높다는 점이다(그래서 이 글의 제목이 ‘앗, 과속 딱지가 대중교통 무임승차 벌금보다 싸다? - 멜버른에서 대중교통 탈 때 교통 카드를 꼭 찍어야 하는 이유 ‘인 것이다). 대중교통에 무임승차하는 게 과연 과속을 해서 도로 위 다른 사람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거나 위험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벌금이 그렇게 책정된 걸 어쩌겠는가. 애초에 나는 무임승차 자체를 일부러 시도조차 하기 어렵게 만든 나라 출신이라 그런지, ‘양심에 맡겼을 때 감사한 줄 알고 꼬박꼬박 교통카드를 찍었어야지!’라고 생각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PTV의 검표원들은 거칠고, 항상 화가 나 있고, 공격적이라는 이미지가 있어서 한번 걸리면 그냥 벌금을 내서 불쾌한 것으로 끝나지 않을 정도의 경험을 선사해 준다는 것을 빅토리아 주 거주인들은 알고 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도 호주 빅토리아 주에서 대중교통을 타게 되신다면 꼭 교통카드 찍는 걸 잊지 마시라. 카드든 핸드폰이든 한번에 잘 인식이 안 되어서 단말기가 빨간 불빛과 함께 삐빅 소리를 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잠시 단말기에서 카드/핸드폰을 떼었다가 다시 시도해 보면 된다. 본인은 분명히 단말기에 갖다 댔는데 확실하게 인식이 안 되어서 교통카드를 안 찍은 것으로 나와도 벌금을 낼 수 있다. 법정에서 이에 대해 항의할 수는 있지만 일단 법정까지 이 문제를 끌고 간다는 것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스트레스 받고 신경 쓰이는 일이므로, 그냥 애초에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교통카드가 잘 찍혔는지 확인하는 버릇을 들이는 게 덜 귀찮을 것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할인표(concession)를 이용한다면 그 할인표를 이용할 근거가 되는 증거, 예컨대 연금 수급자 카드랄지, 학생증이랄지 하는 것들 역시 검표원에게 보여 줘야 한다. 증거가 없는데 할인표를 이용했다면 그것 역시 똑같이 277호주달러의 벌금이 발생한다. 그러니 빅토리아 주에서는 대중교통 이용할 때마다 꼭꼭 교통카드 찍는 것 잊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