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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Jasper Jones(재스퍼 존스)>(2017)

by Jaime Chung 2023. 6.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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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Jasper Jones(재스퍼 존스)>(2017)

 

⚠️ 아래 영화 후기는 <Jasper Jones(재스퍼 존스)>(2017)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감독: 레이첼 퍼킨스(Rachel Perkins)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9년, 코리건이라는 한 호주 마을에 사는 찰리 벅틴(리바이 밀러 분)의 성장기. 어느 날 밤, 백인-호주 원주민 혼혈이라 차별받는 소년 재스퍼 존스(아론 L. 맥그래스 분)가 찰리에게 찾아와 도움을 구한다. 평소 친하지도 않고 말도 별로 나눠 본 적 없는 사이이지만 간절해 보이는 재스퍼를 따라간 찰리는 동네 소녀 로라 위시하트(난달리 캠벨 킬릭 분)가 나무에 목이 매여 죽은 모습을 목격한다. 충격도 잠시 찰리는 이를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하지만, 재스퍼는 그랬다간 피부색 때문에 차별받는 자신이 범인으로 몰릴 것이라며 찰리를 말린다. 대신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낼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 달라고 한다. 찰리는 이에 응하고, 재스퍼와 찰리는 로라를 죽게 만든 범인이 누군지 찾아내는 과정을 통해 점점 성장한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다. 호주 소설가 크레이그 실비가 쓴 원작 소설은 2009년 호주에서 처음으로 출간됐고, 국내에도 2010년에 <재스퍼 존스가 문제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돼 나왔다. 참고로 소설 속 배경인 코리건이라는 동네는 저자가 지어낸 가상의 공간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로라라는 소녀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찾으려고 노력하며 찰리와 재스퍼가 맞닥뜨리는 사건들은 상당히 현실적이고 씁쓸하다.

찰리와 재스퍼가 알게 되는 이 세상의 더러운 면은 여러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이미 재스퍼의 존재로도 알 수 있듯, 인종 차별이다. 재스퍼는 백인 아버지와 호주 원주민 어머니를 두었고, 다른 인종간의 화합을 못마땅하게 보는 사람들 때문에 차별을 당한다(백인 노동자들의 보호를 위해 유색 인종의 이민을 금하는 차별 정책 ‘백호주의(白濠主義)’는 극 중 시간대인 1969년에서 조금 더 지난 1973년까지 유지됐다). 찰리의 또 다른 친구인 제프리 루(케빈 롱 분)도 마찬가지다. 루 씨 가족은 베트남에서 왔는데, 동네 사람들 중 한 가족은 자기네 아들이 베트남전에서 사망했다며 루 씨 부인이 들고 있던 찻잔을 쳐서 루 씨 부인이 그 찻물(또는 커피?)을 뒤집어 쓰게 만든다. 제프리는 오직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크리켓을 연습하는 다른 남학생들에게 비웃음을 산다(심지어 배우 액센트를 들어 보면 완벽하게 유창한 호주 액센트임에도 불구하고). 인종차별적인 동네 남자 두어 명이 루 씨네 가족이 사는 집에 찾아와 정원을 망가뜨리고 이를 제지하려는 루 씨를 때리기도 한다. 다행히 루 씨네 집 바로 옆에 사는 이웃과 찰리의 부모님은 루 씨를 도우려고 하는 좋은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친구네 가족이 아무 잘못도 없이 린치당하는 모습을 본 충격이 잊히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소설의 핵심인 ‘누가 로라 위시하트를 죽였는가’ 하는 문제 역시 끔찍한 진실을 안고 있다. 재스퍼와 로라는 사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는데, 재스퍼는 로라와 같이 도망 가고 싶어서 옆 도시에 돈을 벌러 갔다. 그런데 재스퍼가 이 사실을 미리 로라에게 말해 주지 않아서 로라는 그의 마음이 바뀌었다고 착각한다. 그래도 착각에서 끝나고 좀 실망했다면 나중에 재스퍼가 돌아왔을 때 어떻게 잘 이야기를 해서 잘 해결될 수도 있었겠으나, 진짜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로라(와 아래에서 언급할, 로라의 동생 일라이자(앵거리 라이스 분))의 아버지인 위시하트 씨(마일스 폴라드 분)가 알고 보니 큰딸 로라를 성폭행해 왔던 것. 심지어 로라는 임신까지 했다. 안 그래도 끔찍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던 로라가 재스퍼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것으로 오해해서 실의에 가득 차 목을 매 자살했다는 게 그녀 죽음의 진실이었다. 이는 로라가 재스퍼에게 주려고 써 둔 편지를 통해 밝혀진 사실인데, 일라이자와 찰리가 이 편지를 위시하트 씨 부인(수잔 프라이어 분)에게 보여 주니 그녀는 이를 믿기를 거부하며 갈가리 찢어버린다. 이 일을 통해 찰리와 일라이자는 분명히 불의가 있고 범죄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의 체면 또는 안위를 위해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의 추한 면을 보게 된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작은 위안이 있다면, 결국 위시하트 씨는 일라이자가 낸 것으로 추정되는, 집에 난 불 때문에 부상을 입는다는 것.

 

원작 소설 표지

 

또 다른 죽음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자면, 재스퍼는 원래 ’매드 잭’이라 불리는 잭 라이오넬(휴고 위빙 분)이 로라를 죽인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재스퍼와 찰리가 그에게 접근해 이야기해 보니 사실 ‘매드 잭’은 재스퍼의 할아버지였으며(정확히 말하자면 재스퍼의 아버지의 아버지), 그의 어머니가 아팠던 날 잭이 차를 너무 빠르게 몰고 병원에 가다가 충돌 사고가 나서 재스퍼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잭은 이에 대해 미안해하고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잭은 살인범이라는 오해는 벗었지만 재스퍼는 이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진실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는 점 역시 재스퍼와 찰리가 배우게 되는 교훈 중 하나다.

어쨌거나 로라의 죽음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하지만, 영화가 끝나갈 때 찰리의 어머니, 루스(토니 콜렛 분)는 집을 떠난다. 다른 남자(코리건의 경찰들 중 한 명)와 바람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인데, 상대 남자와 은밀히 만나 키스하던 모습을 찰리에게 들키기도 했다. 그녀는 찰리의 아버지인 웨스 벅틴(댄 와일리 분)과 긴 이야기를 나눈 후, 별거하기로 한다. 즉, 로라의 죽음에 관한 비밀을 밝혀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큰 고통을 준 범인인 위시하트 씨에게 큰 처벌을 내리지도 못했으며, 정의나 큰 승리의 기쁨은 찾아볼 수 없다. 물론 완전히 암울한 엔딩인 것만은 아니다. 나름대로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기쁨의 순간도 있는데 일라이자와 찰리는 서로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고, 제프리는 크리켓 경기에 출전하게 되어 큰 활약을 해 같은 크리켓 연습을 하던 남학생들과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다. 또한 비록 찰리의 어머니는 그의 곁을 떠나지만 그의 아버지는 마침내 그동안 써 온 소설을 완성하고, 찰리가 그것을 처음으로 읽게 된다. 아주 단순하게 말하면, 나쁜 일 절반에 좋은 일 절반이라고 할까. 분명히 좋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일어난 나쁜 일들 때문에 그것들을 오롯이 즐기기 어려운 그런 상황이다.

진실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격적이고, 슬프며, 감당하기 괴로운 것이다. 진실을 알게 되지 않고서 어른이 될 수는 없다. 진실은 우리를 성장시키기지만 동시에 우리는 그것을 배우면서 순수함과 세상에 대한 환상을 잃게 되기도 한다. 존 밀턴이 <실낙원(Paradise Lost)>에서 쓴 표현을 인용하자면, “선에 대한 지식은 오직 악을 알게 됨으로써 비싼 값을 주고 사는 것(knowledge of Good bought dear by knowing ill)”이라 할까. 이 영화/소설은 비록 상상 속 공간에서, 허구적인 인물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그 허구는 삶을 꼭 닮아 있기에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 준다. 처연하지만 생생한 성장기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와 원작 소설을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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