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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Adire(아디레)>(2023)

by Jaime Chung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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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Adire(아디레)>(2023)

 

 

⚠️ 이 영화 리뷰는 영화 <Adire(아디레)>(2023)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캡틴(예미 블라크 분)’이라 불리는 포주 밑에서 일하고 있는 창부 아사리(케힌데 반콜레 분)는 여성의 속옷을 디자인하고 직접 만드는 취미가 있다. 어느 날, 캡틴은 돈세탁을 의뢰하는 낯선 남자 데지(마이크 아폴라린 분)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사리를 보낸다. 그날 밤, 아사리는 캡틴이 명령한 대로 그와 관계한 후 캡틴의 방에 돌아와 그와 다시 관계한다. 그러고 나서 그가 곤히 잠들었을 때 몰래 일어나 데지가 의뢰한 돈다발들을 들고 도망간다. 나이지리아에서 가장 큰 도시 라고스를 떠나 작은 마을에 도착한 아사리. 귀신이 나온다는 집을 사서 그곳에 자리잡은 그녀는 ‘아디레’라는 가명으로 바에서 남자들을 만나 몸을 판다. 그러던 어느 날, 아디레와 잤던 남자의 아내가 아디레의 집에 찾아온다. 아디레와 한판을 하려던 샬레와(이본 제게데 분)는 마음이 약해져 아디레의 말에 울음을 터뜨리고, 이에 아디레는 그녀에게 사과하며 자신이 직접 만든 브라를 선물하는데…

무슨 영화를 볼까 넷플릭스를 구경하고 있는데, 이 영화가 눈에 들어왔다. 무려 ‘놀리우드(Nollywood)’, 그러니까 나이지리아의 ‘할리우드’ 영화란다.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나이지리아는 1년에 약 2,500편의 영화를 제작하는데 아웃풋이 이 정도면 할리우드의 뺨을 치는 수준이고, 발리우드에 이어 2위라고 한다(출처. 그래서 내가 이때 아니면 나이지리아 영화를 접할 일이 있겠나 싶어서 바로 플레이를 눌렀다.

영화를 다 본 감상은,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영화 한 편만 가지고 ‘나이지리아 영화는 다 이렇구나’ 하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일단 나는 나이지리아라는 멀고 낯선 영화를 접한 것 자체가 신선하고 좋았다. 맨날 비쩍 말라 죽어가는 눈 큰 아이가 나오는 ‘빈곤 포르노’만 접하다 보니 아프리카는 막연히 가난하고 살기 힘든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지리아 영화 속 나이지리아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렴 거기도 사람 사는 곳인데. 거기에도 클럽이 있고, 바가 있고, 창부도 있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키우는 여인들도 있고, 시장도 있고, 다 있었다. 아디레가 만든 속옷이 여성의 몸매를 잘 살려 줘서, 누구든 그걸 입기만 하면 남편들이 뿅 가서 딴 여자들에게 눈길도 안 주고 부부 관계가 좋아진다는 설정이 있는 걸 보면, 나이지리아 사람들도 사랑, 성(性), 부부간의 정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이야기도 꽤 흥미로웠다. 창부 출신 여자 주인공이 한 마을에 정착해서 그곳 여인들과 친구가 된다는 줄거리는 참 인간미 있고 좋았다. 특히 아디레와 마을의 목사 미데(페미 브랜치)의 아내, 즉 목사의 사모인 폴라사데(펀롤라 아오피예비 분)와의 갈등이 꽤 설득력 있게 메인으로 다루어지는데, 폴라사데는 자신이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남편 미데에게 하는 말을 봐서는 폴라사데의 아버지가 목사였는데, 그는 폴라사데에게 당신의 교회를 맡기지 않고 사위인 미데에게 물려준 듯하다. 이게 또 단순히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보기만은 어려운 게, 미데는 관대하고 ‘누군가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면 안 된다’라는 주의라서 목사 자리에 더 어울리기 때문이다(왜 남자를 더 그런 존재로 그렸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래도 폴라사데는 무척 독실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리더십도 있다. 나중에 영화 끝의 끝에 가서는 자신이 교만했다는 걸 깨닫고 변하기도 하고(아래에서 다시 언급할 예정). 정말 대장부감인 여성이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미데와 폴라사데의 딸인 시미(토미 오조 분)는 혼전 임신을 했는데, 같은 처지였던 친구 아베니(오니니에 오도코로 분)가 혼전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자기 엄마를 위시한 교회 여인들에게 무시당하다가 애를 낳자마자 죽어버리는 걸 보고 겁을 집어먹는다. 임신 중절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가 아디레의 응원에 힘입어 폴라사데에게 ‘저 임신했어요’ 말하자마자 귀싸대기를 맞음… 이런 여인에게 겁 없이 저항하는 아디레는 진짜 얼마나 배짱이 두둑한 건지… ㄷㄷㄷ

영화에는 아디레와 토마스(이페아니 칼루 분)의 로맨스도 등장하는데, 솔직히 토마스는 아디레가 창부인 거 알았으면서 다가가서 ‘너랑 친구 하고 싶다’ 이랬을 때 내 표정도 아디레랑 마찬가지로 😨 이랬다. 친구가 되고 싶으면, 대화하고 싶으면 애초에 왜 돈을 주냐고요… 어쨌거나 둘이 이어졌으니 ‘끝이 좋으면 다 좋아’라는 정신으로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아, 영화 초반에 나왔던 ‘캡틴’이 도망친 아디레를 추적하는 모습이 나오다가 영화 후반에 재등장하는데, 솔직히 마무리가 허무하다고 해야 할까, ‘이러려고 그렇게 폼잡고 다녔나’ 싶었다. 폴라사데의 열혈 신자인 툰데(재케네스 오푸케메 분)가 ‘나의 하느님은 강렬한 불(consuming fire)이시다’라는 폴라사데의 말에 사로잡혀 아디레를 죽이려고 아디레의 집에 불을 질렀는데, 이게 또 마침 아디레가 캡틴(아디레의 속옷 사업을 마약 운반책으로 사용하려고 아디레를 끌고 가려 했다)의 머리를 다리미로 세게 쳐 기절시킨 타이밍이었다. 그래서 기절한 캡틴을 불난 집에 놔두고 아디레는 무사히 빠져나오고, 툰데는 동네 사람들에게 쳐맞다가 아디레가 말려서 살아난다. 캡틴은 불난 집에서 불타 죽은 듯. 자신의 교만함 때문에 딸과의 사이도 틀어질 뻔하고 툰데의 과격한 행동을 유발했음을 깨달은 폴라사데는 마음을 고쳐먹고 아디레에게 사과의 제스처를 보이고, 아디레도 그를 받아들인다. 그렇게 해피 엔딩~ 써 놓고 나니까 간단한 거 같은데, 영화가 10분 남은 시점에서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끝날지 감이 안 잡혔다. 하, 진짜 기가 막힌 영화야…

아디레도 볼수록 매력 있는데, 아디레의 첫 친구가 된 샬레와도 얼굴이며 성격이 동글동글하니 너무 귀엽다. 폴라사데는 목사 사모라는 지위에 걸맞는, 위엄을 갖춘 여인이고. 나이지리아 여인들 진짜 매력 터지네!

참고로,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한 ‘아디레’는 우리가 흔히 아프리카 전통 의상에서 보는, 그 알록달록한 밝은색으로 염색한 천, 또는 그런 염색 과정(tie and dye)을 가리킨단다(참고). 영화에서도 아사리가 자기 이름을 아디레라고 하니까 그 말을 들은 상대가 ‘그 천처럼?’이라고 되묻는 장면이 두어 번 나온다. 아사리가 아디레 천을 이용해 브라를 만들기 때문에, 다시 말해 아디레 천이 아사리의 ‘시그니처’이기 때문에 그렇게 가명을 정한 듯.

작년에 본 필리핀 영화인 <Ten Little Mistresses(텐 리틀 미스트레시스)(2023)>에 이어서 나이지리아라는 다소 생소한 문화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번 기회가 된다면, ‘가난하고 못 사는’ 아프리카라는 뻔하고 반복되는 이미지 대신,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이지리아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이 영화를 한번 보시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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