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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픽션30

[책 감상/책 추천] 레이첼 E. 그로스, <버자이너> [책 감상/책 추천] 레이첼 E. 그로스,   이 책의 저자는 세균성 질염으로 고생하다가, 딱히 치료 방법이 없다는 말에 정말 마지막 수단으로 (의사의 말을 빌리자면) “엄밀히 말하면 쥐약”인 붕산을 질정으로 삽입했다. 열흘간 꼬박꼬박 처방을 따르던 어느 날, 새벽 3시에 일어나 반쯤 덜 깬 채로 화장실에 가서 질에 넣어야 할 붕산을 아무 생각 없이 입에 넣어 버렸다! 다행히 위세척까지는 할 필요가 없었고 저자는 무사했다. 이 일은 저자로 하여금 “내 생식기에 관해 내가 아는 게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계기였고, 이는 또한 “이 책이 탄생한 순간”이었다.책 제목으로 쓰인 ‘버자이너(vagina)’는 여성 생식기나 질을 뜻한다. 당연히 책의 초점도 여성 생식기에 맞추어져 있다. 남성의 생식기에 .. 2024. 9. 9.
[책 감상/책 추천] 박상현, <친애하는 슐츠 씨> [책 감상/책 추천] 박상현,   저자 박상현은 대체로 미국 뉴스에서 찾은 흥미로운 기사를 번역해 소개하는 ‘오터 레터’라는 뉴스 레터를 발행하는데, 이 책은 ‘오터 레터’에 소개된 글들 중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적절한 글을 골라 엮은 것이다. 이 책은 1부 ‘여자 옷과 주머니 - 얼마나 많은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되는가’와 2부 ‘친애하는 슐츠 씨 - 인류의 낡은 생각과 이에 맞선 작은 목소리들’로 구성된다. 각 부(部)에서 흥미로웠던 꼭지를 하나씩 소개할까 한다. 일단 1부에 ‘여자 옷과 주머니’ 꼭지에서는 제목 그대로 여자 옷에 주머니가 남자 옷만큼 많이 또는 잘 달려 있지 않은 이유를 살펴본다. 사실 이건 유구한 역사가 있다. “서양에서 남자 옷은 항상 여자 옷보다 더 발전된.. 2024. 8. 9.
[책 감상/책 추천] 구구, 서해인, <작업자의 사전> [책 감상/책 추천] 구구, 서해인,   여성 작가들의 책을 소개하는 뉴스레터 ‘들불 레터’를 운영하는 구구와 대중문화 뉴스 레터 ‘콘텐츠 로그’를 발행하는 서해인이 쓴, 사전형 에세이. 두 저자가 작업자로 일하며 마주친 단어 100여개를 간단하게 정의하는 짧은 글들의 모음인데, 웃길 때도 있고 감동적일 때도 있고 비판적일 때도 있어서 재미있게 읽었다. ‘거절’, ‘공유오피스’, ‘구독’부터 시작해 ‘핏(fit)’, ‘해시태그’, 그리고 ‘후킹’으로 끝나는 일련의 단어들은 보통의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따라서 사전적 정의가 아니라 참신한 해석이 기대될 것인데, 내가 보기엔 썩 잘했다. 개인적으로 제일 충격적이고 신선했던 정의는 이거다. 구구 작가는 ‘집중력’이란 단어를 이렇게 정의했다.SNS.. 2024. 8. 8.
[책 감상/책 추천] 남유하,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책 감상/책 추천] 남유하,   나는 쫄보다. 호러물은 절대 못 본다. 내게 문신과 호러는 비슷한 느낌이다. 남이 좋아한다고 하면 말리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할 생각은 절대 없는 그런 것이랄까. 그런 내가 ‘로맨스 쓰는 호러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이유는 단 하나다. “도대체 호러의 무엇이 좋다는 거지?”라는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다.이 저자로 말할 것 같으면, 이보다 호러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1장은 ‘호러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어릴 적에 어떻게 겁 없이 호러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는지를 담고 있다. 어릴 적에 겁이 많았던 저자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엄마아빠에게 달려가 같이 자고는 했는데, 어느 날이 어머니께서 이러셨단다.. 2024. 7. 24.
[책 감상/책 추천] 헬렌 헤스터, 닉 스르니첵, <애프터 워크> [책 감상/책 추천] 헬렌 헤스터, 닉 스르니첵,   ‘가정과 자유 시간을 위한 투쟁의 역사’라는 부제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더 나은 ‘일 이후의 시간(애프터 워크)’을 추구하고 노력해 왔는지를 돌아보는 책. 이 책은 아주 놀라운 통찰을 담고 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생산 노동을 하는 주체를 여성이라고 상정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라는 점이다. 이 재생산 노동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가능한 한 최소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개인들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고, 그것이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사회 재생산 노동도 여느 노동처럼 지루하고, 단조롭고, 인간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생산 노동에는 물론 아이와 놀아주는 것, 친구들을 위해 요리하.. 2024. 7. 22.
[책 감상/책 추천] 마크 코켈버그, <알고리즘에 갇힌 자기 계발> [책 감상/책 추천] 마크 코켈버그,  현대에는 자기 계발조차 기술의 도움을 받아 계량되고 수치화된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를 차고 시속 몇 킬로미터로 몇 분 동안 달렸으니 몇 칼로리를 소비했고, 최대 심박수는 몇이라는 식이다. 이렇게 기술 발전에 힘입은 자기 계발은 과연 우리에게 득일까, 독일까?저자는 오늘날 기술철학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로 꼽힌다는 벨기에 출신의 철학자 마크 코켈버그다. 나는 기술철학이라는 분야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무지렁이지만, 이 책이 대단하다는 건 알겠다. 책은 종이책 기준 200쪽밖에 안 되는 두께에도 불구하고 정말 문단 하나하나에 내용이 가득차서, 버릴 문단이 하나도 없다.요즘 우리나라에도 ‘갓생(’god’➕’生’)’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자기 계발이 .. 2024. 7.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