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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2020)

by Jaime Chung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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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2020)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Hillbilly Elegy(힐빌리의 노래)>(2020)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J.D.(가브리엘 바쏘 분)는 오하이오에서도 산골 촌동네 출신에서 ‘용’이 된 예일대 로스쿨 학생이다. 그는 여름 방학 동안 할 인턴 자리를 노려 보고자 온갖 중요한 사람들이 모이는 저녁 식사에 나간다. 어찌나 고급스럽고 수준이 높은 자리인지, 여자 친구 우샤(프리다 핀토 분)가 숟가락과 나이프는 바깥에 놓인 것부터 쓰고, 유난히 큰 숟가락은 수프용이라는 테이블 매너를 알려 주지 않았다면 아주 교양 없는 사람 취급을 받을 뻔했다. 그런데 같은 테이블에 앉은,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 한 남자가 J.D.에게 어디 출신이냐 묻더니, ‘힐빌리(hillbilly, ‘두메산골 촌뜨기’라는 뜻)’라느니 ‘레드넥(redneck, ‘교육 수준이 낮고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미국의 시골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느니 하는 말로 그를 모욕해서 J.D.는 욱해서 되받아치는 말을 하고 만다. 그로 인해 분위기가 싸해지자 그는 잠시 자리를 피하는데, 마침 그때 누나 린지(헤일리 베넷 분)에게 전화가 온다. 내용인즉슨, 엄마(에이미 아담스 분)가 헤로인에 다시 빠졌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 J.D.는 고민 끝에 린지의 짐도 덜어주고 아들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린지와 엄마가 있는 고향으로 밤새 차를 몰아 달려가고, 거기에서 할머니(글렌 클로즈 분)의 추억을 비롯한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데…

J.D. 밴스의 회고록 <힐빌리의 노래>를 바탕으로 한 영화. 이 책은 예스24의 크레마 클럽에 있어서 조만간 읽어 볼 예정이다. 나는 이 영화가 ‘힐빌리’라고 불리지만 마음 따뜻한 시골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에 관한 영화겠거니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세대간 트라우마(generational trauma; 세대간에 전해지는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라고 할까.

J.D.의 어릴 적 기억을 따라가 보면 엄마 베벌리는 별것 아니에도 걸핏하면 화를 내고, 남자 친구를 자주 바꾸며, 따라서 아이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 주지 못하는 존재였다. 얼마 사귀지도 않은 남자 친구와 동거하겠다고, 즉 J.D.와 린지까지 그 남자 친구네 집으로 들어가야 할 거라고 말해서 J.D.가 그건 현명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니까 급발진해서 ‘내가 너희들에게 내가 (그 나이 때에) 갖지 못한 걸 주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엄마를 우습게 알아?’라며 화를 내고, 내가 죽어 봐야 정신 차리겠냐며 갑자기 차를 난폭하게 몰기 시작한 일만 봐도 그렇다. 결국 J.D.는 차에서 뛰쳐나와 낯선 사람의 집으로 도망가고, 그 집의 주인인 한 아줌마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줌마는 J.D.를 자기 집에 들어가게 해서 보호해 주지만, 이미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닌 베벌리가 그 집 문을 박차고 들어가 J.D.를 데려가려 한다. 이 사건은 결국 경찰이 오고, J.D.가 베벌리에게 끌려나가기 전까지 전화를 붙잡고 도움을 요청한 누나 린지,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가 몰려오는 것으로, 그리고 경찰이 J.D.에게 ‘엄마가 널 때렸니?’라고 묻고 J.D.는 아니라고 거짓말해서 베벌리가 풀려나는 걸로 끝이 난다.

물론 그 이후로도 엄마가 불같이 화를 내며 아이들을 학대하는 일은 계속되지만, 린지는 당시 10대 후반이었고 케빈(조노 미첼 분)이라는 남자 친구가 있어서 그때 나름대로 어떻게 비벼 볼 구석(집구석이 꼴보기 싫으면 남자 친구네 가서 자는 식으로)이라도 있었지만, J.D.는 할머니밖에 의지할 대상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방금 말한 사건 이후) 돌아가셨는데 엄마가 자기 아빠, 즉 J.D.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손목을 긋고 자살 시도를 한 걸 J.D.와 린지 역시 목격하고 만다. 이걸 보고 어떻게 충격을 안 받을 수가 있을까… 결국 할머니가 내가 J.D.라도 데려가서 키워야지 안 그랬다간 얘는 ‘잘살’ 기회가 없겠다 싶어 딸 베벌리네 집에 가서 J.D.를 데리고 나온다. 물론 J.D.도 처음부터 할머니 말을 잘 들은 건 아니고, 할머니께 버릇없게 굴고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당신 남편이 술이나 마시고 누워서 처잔다고 그 남편 등에다가 성냥을 던져서 화상을 입힌 분이다(그 남편이란 작자가 이전에 할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한 데다가, 할머니는 분명히 그에게 한 번만 더 술 마시고 드러누워서 처자면 불태워 버리겠다고 경고했으니 쌤통이긴 하다). J.D.는 결국 할머니가 정말 없는 살림에 J.D. 수학 숙제 하라고 계산기도 사 주시고, 저소득층 노인이나 환자에게 배달해 주는 도시락의 상당 부분을 자기 몫으로 나눠 주시는 모습을 보고 정신을 차리고 학업에 열중한다. J.D.는 그 계산기로 수학 숙제도 해 가고 결국 수학 쪽지 시험에서 반 최고점을 받는다. 이를 할머니께 자랑하자 할머니는 ‘그러냐? 계속 열심히 해라’라고 쿨하게 대꾸하시는 걸로 끝나나 했더니, 손자의 시험지를 가지고 소파에 앉아 이를 계속 흐뭇하게 쳐다보신다. 이 장면에서 마음이 뭉클하지 않을 수 있는 관객이 있을까.

잠시 베벌리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베벌리도 처음부터 이런 것은 아니었다. 베벌리는 18살 때 첫 아이 린지를 임신해서, 고등학교를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성인의 책임이나 즐거움 따위를 배우거나 누릴 여유가 없었다. 간호 학교를 나와서 간호사 일을 하면서 진통제를 접해 중독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도 그렇게 행복하진 않았는데, 앞에서도 말했다시피 할머니의 남편이 술주정뱅이에다가 아내(=즉 할머니, 베벌리의 엄마)에게 폭력을 가했다. 할머니가 남편 등에 불을 지르자 놀라며 담요를 가지고 불을 꺼 준 것도 베벌리와 그 자매 로리였다. 그러니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이 안정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도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해서 애를 낳으니 애를 제대로 키우기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 영화를 보다 보면 J.D.와 린지가 참 대단하고 잘 컸다는 생각이 든다. J.D.가 단순히 예일대에 진학해서 그런 게 아니라, 자신에게 ‘세대간 트라우마’를 남겨 준 어머니에게도 사랑을 주고, 자신은 그 자리에 남아 있지 않으려고, 거기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그렇다는 거다. 린지 역시 10대의 어린 나이에도 불안정한 엄마를 대신해 동생을 보호해야 했을 텐데, 그리고 자신도 그렇게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못했을 텐데도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라고 엄마를 미워하는 대신에 계속 엄마 곁에 붙어서 엄마를 도우려고 하는 게 참 대단하다. 그건 학습된 무력감이라기보다는 진짜 사랑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니까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 솔직히 나 같으면 못 견뎠을 것 같은 순간이 너무 많았다. 예컨대 J.D.가 엄마를 (거의 강제로 퇴원당한) 병원에서 데려와 재활원에 입소시키려고 정말 생고생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가 재활원에 가고 싶지 않다고 억지를 부릴 때라든지, 그런 엄마를 어찌어찌 모텔로 데려와 묵게 하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돌아왔더니 엄마가 약을 하려고 주사기를 들고 있었던 때라든지. 나 같으면 복장 터져 죽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니까 그 ‘흙탕물’에서 참고 견딘 게 아닐까. 엄마를 일으켜 세워 침대에 가서 눕게 만들고,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한 후 몸을 웅크려 ‘나 손 잡아줘’ 했을 때, J.D.는 더 이상 엄마가 이렇게 살도록 놔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자신도 그런 상태에 있을 수 없기에, 어릴 때 그랬던 것처럼 엄마의 손을 붙잡고 엄마를 위로하지 않는다. 대신 엄마를 누나 린지에게 맡기고, 자신은 내일 아침에 있을 면접을 위해 밤새 차를 몰고 간다. 이는 할머니가 자신에게 주려고 했던 ‘잘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소한 시도라도 해 보겠다는 의미다.

J.D.는 그렇게 밤새 달리며 여자 친구 우샤와 가족에 대한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언제 집에 들러 씻고 면도를 했는지 멀끔한 모습으로 면접장에 가서 면접관에게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J.D.가 밝은 미래를, 할머니가 그가 가지길 바랐던 그런 삶을 살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장면이다. 조금 심심하다, 열린 엔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정도가 딱 적당한 것 같다.

J.D.만큼 ‘불우한’ 삶을 산 사람이 자기 삶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신선하고 영감을 주고, 또 존경스러운 것도 없다. 요즘 사람들은 자기 연민이 심해서 조금만 결핍이 있어도 그걸 못 견디고 과하게 보상 심리가 작용하는 것 같다는 인터넷 글(이거)을 본 적이 있는데, 나도 대체로 공감해서 이런 J.D. 같은 사람이 참 존경스럽다. 따지고 보면 불행할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런 외적인 환경에 굴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삶에 그런 사람들(자기 삶을 힘들게 만들었다고 따질 수도 있는 대상인 가족들과 친척들)이 있어서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다고 당당히 받아들이고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 진짜 이게 멘탈이 건강하고 강인한 거지. 그러니까 지금 J.D., 그러니까 이 회고록의 저자가 실제로 잘사는 게 아닐까.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으니 잘될 수밖에.

어쨌거나 에이미 아담스와 글렌 클로즈의 뛰어난 연기(글렌 클로즈는 그 해에 이 영화로 최우수 조연상 후보로 여럿 올랐다)도 감상 포인트. 이 영화는 대체로 좋은데 딱 하나 흠을 잡자면, 카메라가 조금 너무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예컨대 영화 초반에 J.D.가 동네 아이들에게 얻어맞은 걸 베벌리가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때 화면도 같이 흔들린다. 보통 다른 카메라 감독이라면 고정된 채로 다른 인물들이 뛰어다니거나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잡을 텐데 이 영화는, 특히 초반에는 카메라도 같이 움직인다. 좋게 말하면 다이내믹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울렁거리고 정신없는 카메라워크라 하겠다. 그래도 자기 연민이 들 때 이 영화를 보면 정신이 차려질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괜찮은 영화다. 진짜로 조만간 원작 회고록도 읽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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