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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Church(미스터 처치)>(2016)

by Jaime Chung 2024.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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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Mr. Church(미스터 처치)>(2016)

 

 

⚠️ 본 영화 리뷰는 영화 <Mr Church(미스터 처치)>(2016)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찰리(브릿 로버트슨 분)는 유방암에 걸려 살 날이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어머니 마리(나타샤 맥켈혼 분)와 같이 산다. 어느 날 그들의 집에 나타나 요리를 해 주기 시작한 미스터 처치(에디 머피 분)는 마리의 전 애인으로부터 ‘마리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동안 마리와 찰리에게 요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마리는 놀랍게도 의사의 진단인 6개월보다 더 오래 살아남고 미스터 처치는 약속했던 6개월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그녀들의 집에서 요리를 해 주지만, 찰리는 미스터 처치에게 마음을 온전히 열지 못한다. 하지만 마리가 숨을 거두고 난 후, 혼자가 된 찰리는 미스터 처치에게 더 의존하게 되고,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미스터 처치에게 들러붙다가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찰리가 먼 곳으로 대학을 가고 난 후에도 둘은 친구로 남지만, 미스터 처치의 사생활에 관한 작은 비밀을 알게 된 찰리는 이를 더 알고 싶어 하는데…

수잔 맥마틴이라는 영상 작가(이런저런 TV 드라마에 각본을 썼는데, 딱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건 없는 듯)가 겪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수잔 맥마틴 본인이 어릴 적에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미스터 처치, 그러니까 헨리 조셉 처치 씨라는 뛰어난 요리사를 알았다고 한다. 실제 수잔의 어머니는 유방암을 극복했지만, 영화에서는 본인(그러니까 극 중 캐릭터로 치자면 찰리)과 처치 씨의 우정 이야기에 집중하고자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것으로 설정했다. 그것 자체는, 뭐, 어차피 픽션이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주인공이 참 철이 없다는 거다. 찰리는 어릴 적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전까지는 엄마랑 같이 살았고, 미스터 처치의 도움도 받았는데 ‘철 없다’는 말이 딱일 정도로 행동이 유치하다. 뭐, 엄마가 유방암 때문에 아프니까 속상한 건 알겠는데 왜 미스터 처치가 개인 프라이버시를 소중히 여긴다는 점을 존중해 주지 못하는지 모르겠다. 정말 뜬금없이 미스터 처치에게 ‘당신에 대해 더 알고 싶어요’ 하면서 좋아하는 영화, 책이 뭐냐, 색깔은 뭐냐 같은 질문을 마구 퍼붓는다. 아니, 여태까지 미스터 처치랑 얘기 안 했어? 그걸 몰라? 만약에 모른다고 하면 미스터 처치가 개인적인 얘기는 잘 안 드러내는 편인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되지, 집에 가려는 사람을 붙잡고 귀찮게 해서 꼭 미스터 처치가 정색하고 자기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 큰소리를 내게 해야 하나. 친하게 지내면 꼭 상대에 대해 ‘모든 걸’ 알아야 한다고 여기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데 찰리가 딱 이 스타일이다. 미스터 처치네 집에 수저가 몇 벌인지도 알고 싶어 할 기세.

찰리가 대학에 가고, 그래서 이제 엄마 없는 집(엄마는 찰리가 대학에 들어가기 직전에 유방암으로 숨을 거둔다)에서 나와 미스터 처치와도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게 되었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찰리는 똑같다. 대학 방학 때나 졸업 이후에도, 자기가 살던 고향에 돌아오면 미스터 처치네 집에서 머무르는데 꼭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달라는 미스터 처치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고 그의 뒤를 밟는다. 어느 날은 오랜 친구 포피(루시 프라이 분)의 차를 타고 시내를 지나가다가 미스터 처치를 발견하는데, ‘게이 클럽’이라는 소문이 있는 (당시 시간적 배경이 1980~90년대쯤 된다는 점을 고려해 주시라) 클럽을 드나드는 미스터 처치의 모습을 목격한다. 그 이후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찰리는 그가 외출했을 때 그의 방을 살펴보다가 미스터 처치에게 들켜서 집에서도 쫓겨나고 만다. 아니, 길을 가다가 우연히 미스터 처치를 본 거야 잘못은 아니지만, 그 사람의 방에 몰래, 허락도 안 받고 들어가서 물건을 뒤지는 건 선을 넘었지. 도대체 왜 그 상대가 게이인지 아닌지, 그걸 자기에게 공개적으로 말해 주는지 아닌지가 궁금한 거지? 게이이든 아니든 본인한테 직접적으로 털어놓은 게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은가 보다 생각하고 그냥 존중해 주면 되는 건데. 이게 너무 예의가 없고, 철도 없고 화가 나서 영화 보다가 성질 뻗칠 뻔했다.

아니, 엄마랑 어린 딸 둘만 같이 사는 집에 요리사가 거의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서 요리해 주면서 몇 년을 같이 산 거나 마찬가지인데, 그동안 껄끄러운 일(엄마/딸에게 추파를 던진다든가, 성추행을 시도한다든가)이 전혀 없이 클린했다면 대충 여자에게 일절 성적인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거라고 대충 눈치 챌 수 있지 않아? 물론 모든 이성애자 남자가 취약한 여자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해 먹으려고 들 거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대충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의, 이성적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의 담백한 관심이나 애정은 티가 나지 않겠냐고. 그걸 진짜 몰라서 알고 싶어 하는 건지, 아니면 ‘나는 당신이랑 친하고 가까운 사람이니까 나에게 대놓고 말해 줘야 해! 섭섭하게 그걸 왜 숨겨?’ 하는 심리인 건지. 아마 후자가 아닐까. 이런 게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폭력 아닐까.

결국 미스터 처치가 숨을 거둘 때까지, 그래서 찰리가 그를 위한 장례식을 치를 때까지 찰리는 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장례식에 찾아온, 미스터 처치가 다니던 게이 클럽의 주인이 ‘그가 우리 클럽에서 (취미로) 피아노를 치곤 했었다’라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게 찰리가 유일하게 새로 알게 된 점이다. 그래서 난 도대체 이 영화가 뭘 말하고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 영화는 오직 두 가지만을 말해 준다. 첫째, 찰리 또는 작가(그러니까 이 영화의 기반이 된 실화의 주인공) 본인도 미스터 처치에 대해 별로 아는 게 없다. 그러니까 영화에서는 상상력을 발휘해 그의 삶을 이러저러하게 꾸며낼 수도 있었다. 예컨대 그가 게이였다고 자기에게 털어놓는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다든지. 그래서 그 이후의 그의 사적인 삶에도 초대를 받아 그의 남자 친구 또는 파트너도 소개를 받았다든지 하는 식으로. 근데 그것도 못하면서 둘째, 그의 사적인 삶을 존중해 주지도 않는다. 어떻게든 게이인지 아닌지 캐어내고 싶어서 그가 외출할 때 몰래 뒤따라가거나 그의 방을 뒤지고 난리. 자기가 이렇게 미성숙하고 철이 없는 행동을 했다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나?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고,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상대가 흑인이라서 더 그런 게 있지 않나 싶다. 본인은 백인이니까, 약간 오만하게 ‘나는 이래도 돼’ 하는 거. 이게 백인의 특권이다. 자기가 못났다고 해서 누가 자기에게 뭐라 할 수 있냐 싶고, 그러니까 이런 철 없는 행동도 전시하는 건가 보다.

사실 이 영화는 수잔 맥마틴 본인이 쓴 단편 소설 “The Cook Who Came to Live With Us”에 기반하고 있다. 그러니까 미스터 처치라는 실존 인물을 수잔 맥마틴이 어릴 때 만났고, 수년간 그와 알고 지내며 큰 인상을 받은 건 맞다. 그리고 그 기억을 기반으로 이 단편 소설과 영화의 각본을 쓴 것인데, 솔직히 이 단편 소설만 봐도 영화가 (만들어지기 전에도) 이미 이 영화가 어떤 모양일지를 아주 잘 알 수 있다. 이 단편 소설은 현재 여기에서 읽어 볼 수 있는데, 보시면 알겠지만 길이가 문제가 아니고 구체적인 이야기가 하나도 없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영향력이 있고, 영감을 주는 친구가 되었는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몰랐다고 말하지만, 그 이후에도 구체적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는 부분은 없다. 키가 6피트(대략 180cm)이고, 잘생겼고(잘생긴 것도 여러 가지 타입이 있는데 도대체 어떻게 잘생겼다는 거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대략 40대 초반이었다.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직접 바느질해서 인형 옷도 만들어 주고는 했다. 이런 파편적인 묘사가 전부다. 단 한 장면이라도 좋으니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그의 성격이랄지 인생관이랄지 등등을 구체적인 묘사로 보여 줬으면 좋겠다. 어쩌라는 건지 정말.

상대에 대해 뭐 아는 게 없고, 그냥 내가 상대를 참 좋아했다 하는 ‘자기 얘기’만 한다. 극 중 찰리는 두 번, 장례식 장면에서(엄마의 장례식, 미스터 처치의 장례식) ‘사람들은 죽음에 관해 이상하게 행동한다. (장례식에서는) 죽은 사람만 빼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당신의 기운을 북돋아 주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찰리 또는 수잔 맥마틴 본인이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사람 같다. 그 사람은 이러이러한 걸 좋아해, 이러이러하게 생각해, 이러이러하게 느껴, 등등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나는 그 사람이 너무 알고 싶었어, 나는 그 사람에게 이런 말을 했어, 나는 그 사람을 이렇게 생각해 등등 모든 게 자기 기준이다. 아무렴, 그런 태도를 가졌으니까 상대방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그러니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실과는 다르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단편 “소설”에서도 구체적으로 상대(이 소설에서 미스터 처치는 ‘허먼’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를 묘사할 수가 없는 거다. 단적으로 말해서, 상대에 대해 신경 쓰기에는 아직 철이 없고 정신적으로 어린 거다.

그러니까 이 영화의 평점이 높다면 (IMDB에서 7.6점) 그건 전적으로 에디 머피의 연기나 영화 곳곳에서 보여 주는 맛깔스러운 요리의 모습, 아니면 ‘나도 저런 마법 같은 요리사가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바라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인지상정!) 덕분일 것이다. 뛰어난 스토리텔링이 원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통해 왜 좋은 작가가 되려면 타인과 세상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게 된 점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적어도 스토리텔링이라는 면에서는 별로 추천하지 않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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