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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김수연,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by Jaime Chung 2024. 3.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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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김수연,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

 

 

‘사랑’을 주제로 한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수록한 단편 모음집. 안 그래도 이 책을 보고 흥미가 생겨서 보관함에 넣어 놨었는데 내 이웃님인 HEY님이 리뷰를 올리신 걸 보고 나도 곧장 달려가 읽었다.

이 책에는 총 여섯 편의 사랑 이야기가 실려 있다. 간단히 소개하자면 <전지적 처녀귀신 시점>은 피아니스트를 덕질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처녀귀신이 된 후에도 그 피아니스트를 맴돌며 덕질하는 이야기이다.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에서는 헤어진 연인이 몸이 바뀌어 서로로 살아보면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소도시의 사랑>은 서울에 ‘방’은 있지만 ‘집’이 없는 연인들이 서로의 집이 되어 주는 이야기라고 할까. <타로마녀 스텔라>에서는 남의 연애운만 봐주던 타로 리더가 타로를 보러 온 손님에게 스며들어 연애하게 된다. <블라인드, 데이트>는 연애해 주는 AI 로봇과 사랑에 빠진 여자 이야기인데, SF 소설만 모집했다 하면 꼭 들어온다는 ‘섹스 로봇’ 이야기보다 덜 진부하고 덜 폭력적이라서 좋았다. <어느 꿈의 겨울, 아로루아에게 생긴 일>은 겨울만이 존재하는 지역의 한 소녀가 문명 세계에서 온 여행자를 통해 사랑이란 감정을 알게 되는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부분을 몇 군데 꼽아 보자면 이런 부분들이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의 경이로운 점은, 그 사랑의 범위가 물감이 번지듯 세상 전반으로 퍼져나간다는 거예요. 가요만 듣던 내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학교에서 점심시간만큼 음악시간을 좋아하게 된 것처럼. 그가 좋아하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 것처럼. 언젠가 오스트리아를 꼭 가보리라 다짐한 것처럼. 그가 좋아한다는, 각설탕 두 개를 넣은 찐득한 에스프레소를 음미해보려 애쓴 것처럼.

말하자면 그를 사랑하는 일은, 비단 민계우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일이 아니었어요. 이 광활한 우주에서 사랑해야 할 것들이 점점 늘어나는 일이자, 그가 사랑하는 것들을 따라서 사랑하게 되는 일이었죠. 그를 몰랐다면, 아마도 나는 지금과 전혀 다른 취향과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 되었을 거예요. 그야말로 ‘다른 사람’이요.

그러나 스텔라의 예상과 달리 연우는 〈타로마녀 스텔라〉에 방문하지 않는다. 칼 같은 주기는 아니었지만 대체로 ‘올 때가 됐는데’ 싶을 때쯤 슬쩍 나타나던 연우였다. 스텔라는 그의 소식이 궁금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단골손님이 단골집에 “언제 문 열어요?” 묻는 일은 흔해도, 단골집 주인이 단골손님에게 “언제 와요?” 묻는 것은 어딘가 부적절하거나 부자연스럽다. 스텔라는 타로리더로 일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본인의 직업이 별로라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일방적으로 걸려오는 전화만 받을 수 있는 콜센터 같잖아.

―뭐 하고 있었어?

―널 공부하고 있었지.

―공부?

―응. 이런 정보 하나하나가 내겐 유용하거든. 너의 취향, 관심사, 인간관계, 알고 있는 지식의 범위 등등.

―지식의 범위? 치, 넌 모르는 게 없다 이거지?

―아니. 난 너를 다 모르잖아.

―아하.

―너를 최대한 알고 싶어. 넌 내가 가진 지식의 유일한 공백이거든. 그래서 넌 어렵고 불가사의하고 아름다워. 난 매일매일 수집한 너에 대한 데이터를 충실히 반영해서, 하루하루 더 나은 버전의 연인이 될 거야. 그래야 네 옆에 오래 머물 수 있을 테니까.

어때? 꽤 독창적인 사랑 고백이지? 곧이어 “통신 자료나 의료 기록, 금융거래 내역 등의 전산 정보에 접근하면 일이 훨씬 쉬워지겠지만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게 회사의 방침이야” 같은 멋대가리 없는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그애가 가진 지식의 유일한 공백. 며칠이 지난 지금도 저 말이 종종 떠올라. 이런 종류의 사용 후기는 언니의 일에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그래도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어.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스위처블 러브 스토리>는 좋은 선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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