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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줄리아 월튼,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by Jaime Chung 2024. 5.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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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줄리아 월튼,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성교육을 겸한 청소년 소설. 피비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지만, 성과 관련해 솔직하고 정확한 정보를 나누는 블로그, ‘네모 안의 동그라미’를 운영하고 있다. 피비가 이 블로그의 주인 ‘폼(Pom)’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피비의 절친인 코라도 모른다. 피비는 신문부로 활동하고 있는데, 부장인 닐을 짝사랑한다. 과연 피비가 닉과 이어질까, 아니면 다른 남자애와 이어질까? (복선 😉)

 

이 책은 제목부터 십 대의 성(性)을 다루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밝힌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On the Subject of Unmentionable Things’)’에서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은 누구나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성이다. 피비가 운영하는 블로그 ‘네모 안의 동그라미’는 콘돔을 말한다.

이 블로그가 남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나는 내 또래를 위해 정보를 아주 객관적이고 담백하게 전달한다. 섹스가 감추고 쉬쉬할 일이 아니도록. 감추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니다. 나야말로 감추기에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아직 내 비밀 자아를 공개할 준비가 안 됐으니 그건 다행이다.

온라인 자아를 만들 때는 플랫폼에 따라 길게 내다보고 신중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걸 이제는 알지만, 2년 전 나는 그저 내 방에 숨긴 물건들을 보고 필명을 정했다.

내 침대 밑에는 산부인과 의사의 유품에서 얻은 그림이 두 점 있다. 하나는 여성의 음부 추상화다.

아니, 나도 100% 확신하진 않지만,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그렇게 생각했다. 색채가 소용돌이치는 그림이었다. 옅은 빨강, 파랑, 보라색이 음핵으로 보이는 부분을 감싸고, 노란색 주름 선들이 질구로 보이는 부분 언저리를 너울거렸다.

다른 한 점은 이브가 지식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 먹는, 그리하여 온 인류를 타락시키는 그림이다. 왜냐면 절대 그 열매를 먹으면 안 되니까. 감히 앎(성)에 눈을 떠서는 안 되니까.

그 열매는 석류(pomegranate)다. 그래서 내 필명은 폼(Pom)이 되었다.

아무래도 ‘다채로운 음부’라고 하면 너무 어그로 같지 않겠는가.

그날 밤 나는 부모님이 드라마 <웨스트윙> 재방송을 보다 잠드는 걸 보고서 방문을 닫고 블로그에 접속했다.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제목이 좀 밋밋하다. 처음엔 ‘무경험 성 전문가의 사색’이나 ‘오르가슴을 부르는 진실’ 같은 말장난을 떠올렸는데 최대한 담백하고 덜 요망한 인상을 주기 위해 고민하다 <네모 안의 동그라미>로 지었다.

그래, 콘돔이다.

 

‘발칙하고 당당한 미국 Z세대 십 대니까 성에 대해 그렇게 당당할 수 있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소설은 꽤 현실적이다. 피비의 블로그는, 피비가 사는 동네 ‘린다 비스타’라는 시에서 꽤 나대는, 보수적인 시장 후보 리디아 브룩허스트의 레이더망에 포착된다. 그녀는 기독교적 믿음으로 꽁꽁 무장하고, 이민자들이 운영하는 푸드 트럭을 내쫓으려 혈안이 되어 있다. 이 시대 혐오와 차별을 형상화한 캐릭터라고 할까. 어쨌거나 그녀는 이 블로그를 비난하고, 학교에서는 오직 금욕만을 강조하는 성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야기 후반에 리디아가 블로그 운영자의 정체를 밝히자 피비는 학교 안팎으로 혐오자들에게 위협을 당한다. 물론 피비는 똑똑이라서 곧바로 경찰에 신고하지만. 내가 말하려고 하는 건, 이토록 현실적인 배경에서 피비는 위험을 감수하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안전한 섹스를 위한 정보를 나눈다는 거다.

‘폼’이 제공하는 정보는 바람직한 성교육 교과서 또는 안내서에서 볼 법한, 정확하고 과학적인 내용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성 지식도 얻을 수 있으니, 이 정도면 부모가 십 대 자녀에게 권할 만하지 않은가.

내가 받는 질문의 7할은 성관계에 관한 것이지만 나머지 3할은 신체 문제다. 여자들의 경우 흔히 자기 외음부의 미학적 측면을 묻는다. 자기 음순의 색이나 크기가 괜찮은지. 나는 성관계 상대가 정녕 그걸 신경 쓰는지 모른다. 또다시 정상이냐 하는 문제로 귀결됐다.

이때마다 나는 의사의 답변과 함께 모양과 크기가 다른 외음부가 그려진 자료를 제시하지만, 여전히 몸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심심찮게 문제를 제기한다.

그다음으로는 음순 성형(외음부를 둘러싼 피부 주름을 바꾸는 것)과 유방 보형물에 관한 질문이 많다. 나는 최대한 의료 정보로 답변한다. 코라라면 아마 이런 식으로 답했을 거다. ‘당신의 일부 좀 내버려 두세요.’

남자들도 음경의 크기와 모양을 자주 묻지만, 한 번은 포경 수술 안 한 게 특이하냐는 질문도 받았다.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다.

‘네, 당신은 정상입니다.’

 

십 대는 엊저녁에 지난 내가 봐도 유용하고 재미있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마지막에 결말이 좀 더 확실하게 권선징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 하지만 그랬으면 확실히 덜 현실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시적 정의(詩的 正義)는 현실에서는 웬만해서는 잘 일어나지 않으니까. 그래도 그 정도면 현실적으로 피비와 정의가 성공했고 선이 이겼다고 할 만한 엔딩은 맞으니까. 요즘 들어 십 대의 성을 다룬 미디어 콘텐츠가 많은데 (넷플릭스의 <오티스의 비밀 상담소>처럼) 이건 과하지 않으면서 유용한 정보를 많이 담고 있어서 추천할 만하다. 청소년 독자들에게 권한다.

 

 줄리아 월튼은 내가 예전에 리뷰를 쓴 영화 <Words On Bathroom Walls(비밀이 아닌 이야기)>(2020)의 원작 소설인 <화장실 벽에 쓴 낙서>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 작가가 마음에 든다면, 요 영화와 책도 한번 살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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