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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Mia P. Manansala, <Arsenic And Adobo>

by Jaime Chung 202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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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Mia P. Manansala, <Arsenic And Adobo>

 

 

필리핀계 미국인 작가 미아 P. 마난살라가 쓴, 음식과 살인 사건을 곁들인 추리 소설.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우리의 주인공 릴라는 시카고에서 공부하다가 고향인 셰이디 팜스에 돌아온다. 롤라 플로르(Lola Flor; ‘lola’는 ‘할머니’라는 뜻)와 티타 로지(Tita Rosie; ‘tita’는 ‘이모/고모’라는 뜻)가 운영하는 식당 ‘티타 로지네 부엌(Tita Rosie’s Kitchen)’ 일을 돕기 위해서다. 어느 날, 티타 로지네를 비롯해 이 동네의 맛집에 대해 악평을 쓰던 데렉 윈터가 주인공네 맛집에서 식사하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데렉은 릴라와 고등학교 때 사귀던 사이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티타 로지네 부엌’의 주방에서 데렉을 사망 원인으로 여겨지는 비소가 발견되어, 의혹은 자연히 릴라에게 쏠린다. 진짜 범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식당을 닫아야 할 처지에 처하자,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게 삶의 낙인 롤라 플로르와 티타 로지는 절망한다. 이에 릴라는 절친 아디나와 아디나의 변호사 오빠 아미르의 도움을 받아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하는데…

나는 필리핀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필리핀 음식도 접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소설을 통해 둘 다를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겠다 싶어 설렜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책 덕분에 내가 필리핀의 문화(가족끼리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가족을 중시하는 점 등)와 음식(‘아도보’는 필리핀식 찜 또는 조림 음식)에 대해 배운 것은 무척 만족스럽지만, 소설의 몇몇 부분은 무척 아쉽다. 책 제목이 ‘비소(arsenic)와 아도보’이기에 요리와 살인 사건을 적절히 버무린, 맛깔나는 추리 소설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둘이 따로 노는 느낌이다. 음식에 대한 언급이 자주 나오고 살인 사건도 음식을 통해 (데렉이 티타 로지네 요리를 먹고 죽었으니까) 일어나기는 하지만, 내가 상상한 것만큼 음식과 살인 사건이 잘 버무려졌다는 느낌은 아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가 복용하고 있는 약이 있다고 치자. 그런데 범인이 이 피해자에게 자몽이나 자몽주스를 먹게 해서 약의 흡수를 방해했고, 지병이 잘 관리되지 못해 사망했다(이 소설의 줄거리가 이렇다는 게 아니라 예시를 든 것이다. 그리고 자몽은 정말로 일부 약의 섭취를 방해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이 안내문을 참고하시라), 이런 식이면 음식과 살인 사건이 제법 연관이 있는 셈이다. 내가 기대한 건 이런 건데, 이 소설은 그렇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래도 그건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보다 더 실망스러웠던 건,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과 범인의 태도였다. 솔직히 릴라가 동네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 보려고 여기저기 다니긴 하는데 그렇다고 머리를 써서 똑똑하게 추리를 하지는 않는다. 범인이 밝혀지는 건 끝에서 두 번째 장(章)이고, 내가 ‘아, 얘가 범인이네!’ 하고 눈치챌 때까지 주인공은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 못하고 넘어간다. 그러다가 위험에 처하고… 게다가 릴라가 범인을 알아차리자, 그는 아예 대놓고 자기가 뭐 때문에 이런 짓을 했으며, 어떻게 한 건지를 릴라에게 아주 낱낱이 분다. 나는 이런 걸 제일 싫어하는데! 저기요, 릴라는 형사도 경찰도 아니고 그냥 동네 식당 주인의 손녀/조카딸일 뿐이거든요? 경찰도 아니고 대단한 추리를 하지도 않은 상대에게 왜 범인이 모든 걸 자백하는지 모르겠다. 범인의 모티브와 살인 방법 등을 독자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면 형사가 취조하는 장면을 통해, 또는형사 및 경찰들이 밝혀낸 바를 뉴스나 기자 회견 등으로 보여 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이 작가의 ‘티타 로지네 부엌 미스터리’ 시리즈 중 첫 편에 해당하는데, 만약 주인공이 계속 이런 식으로 별로 하는 일도 없는데 마지막에 가서 우연히 범인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더 이상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2편, 3편, 4편 등등 계속 이럴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1권이 재미있어야 2권까지 읽죠…

그래도 인정할 건 인정하자. 이 소설에서 한국계 등장인물이 둘이나 나온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고 신기했다. 한 명은 꽤 분량이 많은 (하도 사람이 죽어 나가서) ‘박 형사(Detective Park)’이고, 다른 한 명은 그의 동생인 닥터 재(Doctor Jae)다. 왜 닥터 재는 형과 같은 성씨를 공유함에도 불구하고 ‘닥터 박’으로 불리지 않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1) 둘이 형제라는 사실을 독자가 처음부처 추측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그리고 2) ‘미스터’나 ‘미스’라는 칭호 뒤에 성씨를 붙일 수 있는 건 장남/장녀뿐이니까? (참고) 어쨌든, 릴라와 아미르가 썸을 타는데 닥터 재가 등장한 이후 그와도 이중으로 썸을 타는 건 좋았다. 두 남자가 연적임을 알고 불타는 게 얼마나 귀엽던지.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2권까지 시도할 생각은 없다. ‘요리에 관한 책’을 읽겠다는 내 2024년 독서 챌린지를 성공한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스럽고, 이걸 또 원서로 끝냈다는 뿌듯함을 느꼈으니 그것으로 됐다. 필리핀 요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책 뒤에 필리핀 요리 레시피가 있다) 한번 거들떠보셔도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굳이 추천하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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