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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론 파워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by Jaime Chung 2024.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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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론 파워스,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조현병이 발병한 두 아들을 둔 저자의 절절한 회고록이자 현대 정신 의학 체계에 대한 비판. 저자와 아내 아너리는 각각 생화학과 글쓰기를 가르치는 교수로 아들 둘이 있었다. 큰아들은 딘, 작은아들은 케빈. 어느 날, 아들들에게 조현병이 발현됐다. 작은아들 케빈이 먼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큰아들 딘의 경우에는 다행히 좋은 의사를 만나 적절한 치료를 받아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회고하는 아들들에 대한 추억은 참 아름답고도 슬프다. 저자는 아이들이 태어난 날을 이렇게 기억한다.

딘 폴 저스틴 파워스Dean Paul Justin Powers는 1981년 11월 18일에 태어났다. 딘은 예정일보다 3주 늦게, 그리고 내 40번째 생일에 맞춰 우리에게 왔다. 나는 아너리에게 생일 선물로는 넥타이 하나면 충분했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러나 사실은 질문이 가득 담긴 그 환한 눈을 본 순간부터, 아이는 내 마음속에 너무나 소중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길고 긴 독신 생활을 이어가는 동안 나는 딱히 자식에 관해 기대를 가져본 적도, 깊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아이는 ‘책임’과 ‘도전’이 따르는 ‘거추장스러운’ ‘선택 사항’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추상적 관념들은 딘의 따뜻한 몸과 숙연함마저 느껴지는 아기 특유의 무력함, 음식을 먹이는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 매일 하루가 다르게 길어지는 손가락 같은 구체적 현실 앞에서 싹 말라 사라졌다. 얼마 안 가 나는 아이 없이, 아들 없이 살아온 지난 40년이 어땠는지 까맣게 잊었다.

케빈 버클리 파워스Kevin Berkeley Powers는 1984년 7월 21일, 마치 로켓을 타고 온 아이처럼 이 세상에 당도했다. 너무 빠른 속도로 등장해서 한순간 산과 의사의 장갑 낀 손을 통과해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비교적 피부색이 짙었던 딘에 비해 케빈은 살결이 상아처럼 희었고,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하자 파란 두 눈 위 이마에 길고 노란 곱슬머리가 드리웠다. ‘빠른 속도’는 케빈의 삶의 방식이었다. 케빈에 비해 과묵한 딘은 새롭게 등장한 이 흥겨운 존재를 재미있어하며 인내를 가지고 관찰했다. 2년 8개월 차이가 나는 둘은 곧 친한 놀이 동무가 되었고 나중에는 친구가 되었으며, 더 나중에는 기운 넘치는 기타 듀오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랑스러운 아들들과 함께한 추억을 상기하는 저자의 말투에는 그리움과 행복함, 그리고 슬픔이 깃들어 있다. 예를 들어, 케빈과 딘이 어린 시절 지역 극단에 들어가 어린이 뮤지컬이나 연극에 출연하던 일을 회고할 때처럼. 저자는 “바로 이런 게 앞으로 우리 인생이 흘러가야 할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좋은 강의 평가로 닦아주기만 한다면 천국으로 이어질 길.”이라고 썼는데, 문제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아니었다. 큰아들 딘의 행동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처음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을 정도였고, 사춘기로 넘어갈 때 아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징후라고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조현병의 씨앗이었다.

 

조현병은 엄밀히 말하면 하나의 질병이 아니라 몇 가지 독특한 뇌의 기능 이상들이 조합된 흔치 않은 상태를 말하는데, 본질적으로는 유전적 성격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유전적 이상이 있다고 해도 환경적 조건에 자극되지만 않으면 조현병이 발병할 가능성은 아주 작다. 조현병을 일으키는 가장 큰 환경 요인은 스트레스로, 태아기와 아동기 초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받는 스트레스가 특히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저자의 아들 중 큰아들 딘이 청소년이던 시절, 실수로 차 사고가 났고 이로 인해 딘과 동승한 한 여자아이가 크게 다쳤다. 당연히 그 여자아이네 부모는 크게 화를 냈고, 딘을 고소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딘은 교도소 수감 대신 자택 구금 명령을 받았지만, 그 결정이 나기까지 동네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을 받고, 자신이 다니던 학교도 계속 다닐 수 없었으며, 그 여자아이네 가족은 화해조차 거부하는 등, 크나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마 이 일이 조현병에 불을 당긴 게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작은아들인 케빈도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동안 그 여파를 겪었고, 그 역시 큰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병의 역사를 살펴보기도 한다. 과거에 ‘미친 사람’들은 수용소에 갇히기도 했고, 신의 목소리를 듣는, 신성한 광인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미친 사람들’을 좀 더 청결하고 인간이 살 만한 환경에서 돌보고자 노력했던 사람은 늘 있었으나, 현실적인 문제, 즉 경제적인 문제로 오래 가지 못했다. 미국의 경우, 경제 불황이 돌입하면서 지역 보건 센터 운영의 예산은 삭감되고, 공공 시설에서 정신질환자를 치료한 비용에 대해 연방이 주에게 환급해주던 정책은 금지됐다. 또한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강제 입원을 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본인의 의지를 존중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정책인 것 같지만, 저자의 말대로 “조현병의 증상들만으로는 충분히 파괴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자연은 잔인한 농담 하나를, 고통받는 환자와 그들을 도우려는 전문가 사이에 무가치해 보이지만 강력한 장벽 하나를 더 세워놓았다. 그 잔인한 농담은 질병인식불능증(anosognosia)이라는 것이다.” 질병인식불능증이란 말 그대로 환자가 본인의 질병을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치료할 필요가 없다는 확신을 가리킨다. 이는 조현병 환자의 50퍼센트, 양극성장애 환자의 40퍼센트에게 발생한다. 환자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니, 당연히 제때 약을 먹는 것은 바랄 수도 없다(저자의 작은아들 케빈도 경구용 항정신병 약물을 처방받았지만, 스스로 복용을 중단했고 결국 부모님에게는 약을 먹었다고 믿게 하고 약들을 숨겼으며 그의 증세는 심해지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환자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에게 위험을 가할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상태가 되어야만 간신히 의료계나 경찰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다행히 큰아들 딘의 경우는 몇 년간 거부하며 버티다가 할돌(haldol)을 ‘데포’ 주사로 처방받아 주기적으로 이 주사를 맞고 계속 살아오고 있고 병세도 호전되었다고 한다. 모든 항정신병 약물이 이 데포 주사, 또는 ‘장기 지속형 주사제’로 투여가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저자는 머리말을 이렇게 끝맺었는데,이 책을 힘들게 읽어낸 독자로서 나도 같은 마음이다. 이 책이 많은 이들에게 조현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게 돕고, ‘미친 사람들’도 살아가기에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 되게 노력할 영감을 주기를 기원한다. 가슴 아프지만 꼭 읽어 보아야 할 책이다.

여러분이 이 책을 ‘즐기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분이 이 책으로 인해 상처 입기를 바란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상처 입었던 것처럼. 상처 입어 행동하기를, 개입하기를 바란다. 그런 일이 일어날 때에만, 더 이상 일어날 필요가 없을 때까지 계속 일어날 때에만, 우리는 딘과 케빈이, 정신증으로 고통받는 그들의 모든 형제와 자매가 구원받기를, 그들이 견딘 고통이 완전히 헛된 것은 아니었기를 감히 희망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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