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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이선, <굿 피플 프로젝트>

by Jaime Chung 2024.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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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이선, <굿 피플 프로젝트>

 

 

독특한 설정의 SF (단편)소설을 내는 고블 출판사의 시리즈 중 한 편. 줄거리는 대략 이러하다. 한국의 모든 부를 닥닥 긁어 모은 갑부 조세열은 지금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착한 사람들을 골라서 자신이 미리 건설해 둔 이상적인 지하 도시 ‘열반’으로 데려다 놓고, 나머지 인간들은 청소하듯 쓸어버리려 한다. 주인공은 조세열의 밑에서 ‘굿 피플 프로젝트’를 위해 착한 사람들을 찾아내는 일을 맡게 된다. 이 책은 (종이책 기준) 112쪽밖에 안 되어서 마음만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끝낼 수도 있을 정도로 짧기에 더 이상 이야기했다가는 스포일러가 될 것 같다. 이쯤 해 두자.

이미 이 세상이 지옥이기에 착한 사람들만 쏙 빼고 ‘열반’으로 옮긴 후, 세상을 완전히 끝내 버리려는 조세열. 세상에 이 정도로 미친 백만장자가 있을까 싶긴 하지만, 이미 이 세상이 벌써 지옥 같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 것 같다. 결말을 미리 말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혹시나 독자들이 오해할까 봐 “여기까지 쓰고 다시 읽어보니 자칫 이 소설이 교훈적인 내용이로구나 하고 오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엔 교훈이라곤 전혀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라고 썼다(‘작가의 말’). 나에게는 드라이한 유머로 느껴지는데 다른 이들도 그렇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교훈은 없을지 몰라도 읽고 나면 분명히 느껴지는, 생각하게 만드는 점은 있다. 스포일러를 할 수 없어서 아쉬울 지경.

 

“인류는 신이 대충 만들어서 검사만 받고 서랍 어딘가에 쑤셔 박아놓은 채로 까맣게 잊어버린 여름방학 숙제같은 거야. 안 그런가? 인간은 글러먹었어. 벌을 받아야 마땅한데 신이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잊어버려서인지 벌을 줄 생각조차 없는 것 같단 말이지. 그런데….”

“항상 바라왔던 꿈을 실현할 순간이 바로 눈앞에 있어. 꿈을 이루는 건 물론이고 돈을 엄청나게 벌 기회이기도 하지. 돈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해. 어린애가 캐릭터 카드를 모으는 것과 비슷하지. 단지 모으는 행위에 목적이 있을 뿐이니까. 게다가 돈으로는 할 수 있는 게 꽤 많으니 캐릭터 카드보다 낫지 않나? 자네도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있잖아? 돈으로 지옥도 살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옥에도 돈이 필요합니까?”
“당연하지. 최악의 지옥은 자본주의라네.”

 

한 가지 말해 두어야 할 것은, 애초에 고블 출판사가 ‘씬 북’ 시리즈로 내는 이 장르 자체가 마이너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기 때문에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씬 북을 엄청 좋아할 것 같은데, 싫은 사람은 한 권만 읽고도 곧바로 포기하고 시리즈 내의 다른 책은 시도도 안 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씬 북 중에서 ‘와 대박이다! 결말까지 완벽하다!’ 싶은 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놉시스가 흥미로운 게 보이면 종종 시도해 보게 된다. 이건 그래도 시놉시스 사기를 당했다고 생각되는 정도는 아니라서, 씬 북을 접해 본 적 없는 분께도 소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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