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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남유하,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by Jaime Chung 2024.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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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남유하,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

 

 

나는 쫄보다. 호러물은 절대 못 본다. 내게 문신과 호러는 비슷한 느낌이다. 남이 좋아한다고 하면 말리거나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걸 할 생각은 절대 없는 그런 것이랄까. 그런 내가 ‘로맨스 쓰는 호러 작가’의 에세이를 읽은 이유는 단 하나다. “도대체 호러의 무엇이 좋다는 거지?”라는 궁금증을 풀고 싶어서다.

이 저자로 말할 것 같으면, 이보다 호러에 대해 더 잘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이 책의 1장은 ‘호러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저자가 어릴 적에 어떻게 겁 없이 호러를 좋아하는 아이로 자랐는지를 담고 있다. 어릴 적에 겁이 많았던 저자는 무서운 꿈을 꾸고 나면 엄마아빠에게 달려가 같이 자고는 했는데, 어느 날이 어머니께서 이러셨단다. “딸, 꿈에 귀신이 나오면 도망치지 말고 맞서 싸워. 베개로 물리쳐.” 그리고 저자는 ”베개로 물리쳐”라는 여섯 글자를 주문처럼 외우며 방으로 돌아갔다. 며칠 후, 어김없이 꿈에 귀신이 나왔단다. 정확히는 창백한 얼굴의 흡혈귀가. 저자는 어머니께 들은 충고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말대로 꿈속의 흡혈귀에게 베개를 휘둘렀다. 하늘색 곰돌이가 그려진 폭신한 베개를 일곱 살짜리의 온 힘을 실어 마구마구. 그리고 그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흡혈귀가 겁에 질려 도망갔으니까! 나는 도망치는 흡혈귀를 따라가며 때리다가 꿈에서 깼다. 와, 내가 이겼어! 실제로 소리 내어 웃진 않았지만 큰 소리로 웃고 싶은 심정이었다. 
흡혈귀를 물리친 일이 어찌나 신이 나던지 그날 이후 나는 귀신이 나오는 꿈을 꾸기를 바라며 잠자리에 들었다. 유령이든 좀비든 외계 생명체든 나오기만 해 봐라, 하고 벼르고 있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날 이후 내 꿈은 평화롭기만 했다. 악몽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다음부터 악몽을 꾸지 않게 된 것이다. 귀신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먹고 산다는 게 정말일까?
그런 이유로, 나는 겁 없는 아이가 되었다. 그리고 무서운 것과 기이한 것을 사랑하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어느 정도냐면, 저자는 살면서 가위에 눌려 본 적이 없단다. 딱 한 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날 가위에 눌렸는데, 남들의 경험당으로만 듣던 존재를 드디어 만나게 된다는 설렘(!)이 너무 강했던 모양이다. 덕분에 아드레날린이 폭발했고 저자를 괴롭히려던(?) 존재는 저자의 기에 눌려서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잔뜩 기대에 찬 마음으로 그것을 기다렸다. 그것은 커다란 몸집이 버거운 듯 엉금엉금 걸어오더니 반듯이 자는 내 위로 올라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갈비뼈에 제법 무게감이 느껴졌다. 그래, 어서, 어서 뭐라고 말을 해 봐. 아니면 피 흘리는 얼굴을 드러내도 좋고. 
몸속에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게 느껴졌다. 가위눌렸다는 사실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었다. 나도 드디어 검지 신공을 발휘할 때가 왔구나.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검지에 정신을 집중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려는데, 웬걸, 녀석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거대했던 몸이 홀쭉하게 쪼그라들고 있었다. 
뭐야? 안 돼. 좀 더, 좀 더!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외쳐도 소용없었다. 녀석은 몸을 일으키더니 시무룩한 등을 내보이며 벽의 모퉁이로 사라지고 말았다. 
짧은 가위에서 풀려난 나는, 침대에 멍하니 앉아 나의 경솔함을 탓했다. 원래 귀신은 상대방의 약한 곳을 노리는 법. 무섭지 않으면 무서워하는 척이라도 했어야 조금 더 길게 가위를 경험할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찾아왔던 회색 덩어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이 인간 뭐야. 오늘은 운수가 나빴어. 타깃을 잘 못 잡다니 나답지 않은 실수야.”라고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그 이후에도 나는 가위에 눌린 적이 없다. 앞으로 인생에 어떤 일이 있을지 몰라도 지금까지는 그것이 내 인생에 일어난 단 한 번의 가위눌림이었다.

 

솔직히 내가 호러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떠올리는 것은, 귀신보다는 흥건한 피나 (칼로 난도질하는 것 같은) 잔인한 폭력이다. 고어(gore)물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귀신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크게 무섭지 않다. 다만 귀신 영화 등에 자주 사용되는 ‘깜짝 놀라게 만드는 장면(jump scare)’이 싫은 거다. 도대체 호러물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은 그런 걸 어떻게 좋아한다는 거야?

저자는 그런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정확히는, 내가 제일 무서워하며 꺼리는 장르인 고어물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썼다.

정리해 보면 고어라는 집합과 호러라는 집합이 있고 그들의 교집합이 슬래셔, 부분집합이 스플래터 장르가 된다. 나는 당연히 두 장르를 가장 좋아한다. 그러나 이말을 한 순간,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
셋 중에는 대놓고 물어보는 쪽이 가장 뒤끝이 없는 것 같지만 그 질문에 답을 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건 마치 여자친구 혹은 남자친구가 “넌 날 왜 좋아해?”라고 따지는 거나 다름없다. 어떤 이를, 어떤 사물을, 또는 어떤 장르를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다. 인간의 감정은 논리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그래도 굳이 이유를 찾으려면 해부학 책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가 아닐까. 
살인마가 전기톱을 휘둘러 카메라에까지 피가 튀고, 살기 위해서 톱으로 자기 발목을 자르고, 알 수 없는 공간에 갇혀 탈출하려다 레이저 광선에 의해 몸이 조각나고, 적에게 목이 잘려 머리가 구르는 화면을 보면 나는 다시금 인간의 유한성을 느끼게 된다. 절망적으로만 보였던 내 앞의 문제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니, 거기에서 그런 철학적인 이야기를? 또한 저자는 ‘호러란 무엇인가’라는 꼭지에서 이렇게 썼다.

전부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우리는 G선상의 아리아처럼 잔잔하고 고요한 우리 일상에 돌을 던지고 싶은 게 아닐까? 
우리는 모험을 동경한다. 누구나 자동차 경주를 하거나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길 수는 없지만 호러를 통해 가장 쉽고 빠르게 위험한 경험을 맛볼 수 있다. 호러를 봄으로써 아드레날린이 분출되고 우리의 심장 박동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동굴에서 살았던 혈거인의 후예다. 혈거인들은 어두운 동굴 속에 살면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추위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들짐승 등 많은 공포 요소와 더불어 살아야 했다.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그만큼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았다. 우리가 그로테스크한 것들, 으스스하고 기이한 것들에 끌리는 이유는 결국 살기 위한 본능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된 오랜 기억이, 우리가 일정량의 공포에 노출되도록, 그 속에서 살아갈 에너지를 얻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럼 호러를 보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조금 더 진화한 인간일까?

그러니까 저자의 말을 듣고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사람들은 자극적인 인터넷 커뮤니티 글이나 미디어를 보며 화를 내고 지긋지긋해하지만, 분명히 그걸 소비하면서 느끼는 쾌감이란 게 있다. 나조차도 때로 어떤 주제의 글을 보면 화를 낼 걸 알면서도 굳이 클릭해 보고 욕을 하고는 하니까. 호러물도 그런 식으로 자극적인 쾌감을 주는 거겠구나. 나는 이 정도 이해로 충분하다. 내가 책 제목처럼 ‘호러, 이 좋은 걸 이제 알았다니’라고 말할 일은 없을 거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1장은 저자의 떡잎부터 남다른 호러물 꿈나무 시절 이야기고, 2장은 저자가 왜 호러물을 좋아하는지 솔직히 털어놓는 자리다. 3장은 호러란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4장이 문학 내에서도 유명하고 뛰어난 호러 소설들 추천이다. 부록이 세 개나 있는데, 대체로 호러물(소설이나 영화 등) 추천이고, 마지막으로 저자의 호러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이 부록이 나에겐 좀 결이 다른 느낌이었는데, 갑자기 글의 스타일이 달라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본문이나 부록이나 저자의 호러물 덕력이 뿜어져 나온다는 점은 다르지 않지만, 부록이 좀 더 가벼운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본문이 읽기 쉽게 잘 다듬어진, (호러물이든 로맨스물이든)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사는 작가다운 글솜씨라면, 부록은 뭔가 호러물 마니아가 블로그에 쓸 법한 문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래, 이 맛에 호러물 보는 거지!’ 하며 공감하고 읽고 또 볼만한 호러물을 얻어 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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