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Gunpowder Milkshake(건파우더 밀크셰이크)>(2021)
15년 전, 킬러인 엄마 스칼렛(레나 해들리 분)이 갑자기 떠난 이후 엄마처럼 킬러 생활을 하며 살아온 샘(카렌 길런 분). 어느 날 그녀는 샘에게 일거리를 주는 범죄 신디케이트 ‘더 펌(The Firm)’의 상사인 네이선(폴 지아마티 분)의 명령에 따라 일을 하다가 어떤 남자를 죽이게 된다. 알고 보니 그 남자는 ‘더 펌’과 맞서는 매칼리스터 가문의 아들이었던 것. 아들을 죽인 샘에게 복수하려는 매칼리스터는 부하들을 보내서 샘을 뒤쫓기 시작하고, 그 와중에 샘은 ‘더 펌’의 돈을 훔친 범인을 찾아 돈을 회수해야만 하는데…
카렌 길런을 비롯해 레나 해들리, 그리고 칼라 구기노(매들린 역), 양자경(플로렌스 역), 안젤라 바셋(애나 메이 역), 이렇게 다섯 여배우가 액션을 선보이는 영화. 영화는 대놓고 여성형 액션을 표방하는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여성을 위한 서사를 구사한다. 스칼렛과 샘은 모녀 관계이고, 스칼렛의 옛 친구라 할 수 있는 세 여인(매들린, 플로렌스, 애나 메이)은 스스로를 샘의 이모(aunt)라고 부른다. 샘이 구해 준, 자신이 실수로 죽인 회계사의 딸 에밀리(클로에 콜먼 분)는 조카 포지션이다(나이로 보면 샘의 딸이자 스칼렛의 손녀라고 해도 되겠지만). 반면에 샘을 죽이려고 이를 갈고 있는 짐 매칼리스터(랄프 이네슨 분)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이다. 영화 후반에 짐이 샘에게 하는 말에 따르면, 딸이 넷 있는데 마침내 아들을 얻었을 때 ‘단순’하고 자기를 이해하는 존재를 얻어서 기뻤다고 한다. 딸이 넷이 있어도 좀처럼 그들을 이해한다는 느낌은 못 받았는데 아들에게서 자기와 동종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놈의 아들이 뭐라고… 어쨌거나 주요 인물들을 성 대결을 펼치듯 각자가 맡은 ‘가족’의 역할에서 상대 성(性)과 대립한다.
여성 캐릭터들이 뭉쳐서 ‘나쁜 남자들’과 싸운다는 이야기나 전체적 콘셉트는 마음에 드는데 문제는 그걸 구현해 내는 방식이다. 여성 캐릭터들이 중심인 액션 영화인데 그걸 풀어나가는 방식이 여전히 기존 남자들 액션 영화에서 성별만 딱 바꿔 놓은 거 같달까? 주요 캐릭터들이 여성이기에 사고방식이나 대처 방식, 스타일 등이 다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내가 이걸 가장 강하게 느낀 게 초중반의 샘 캐릭터였다. 샘은 과묵한 남자 킬러 캐릭터들이 그렇듯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목소리를 낮게 깐 채로 터프해 보이려고 애쓴다. 카렌 길런이 딱히 연기를 못하는 배우라고 느껴 본 적은 없는데 감독이 지시를 그렇게 준 건가? 심지어 샘 캐릭터만이 문제가 아니다. 영화 초중반은 모든 인물들이 다 이런 액션 영화에 흔히 나오는 캐릭터들처럼 심각하고 위험한 느낌을 풀풀 풍긴다. 다들 자기가 맡은, 이 영화의 배역이 아니라 흔한 클리셰를 연기하는 것 같다. 연기는 과장됐고 어색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내가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감독이 감을 잡은 건지 (꼭 시간 순서대로 영화를 촬영했을 리는 없지만) 좀 나아지긴 한다. 근데 초중반은 약간 위기다. 이 오글거림을 이겨내고 본 내가 일류…
여성 캐릭터를 한 명도 아니고 다섯이나 전면에 둔 액션 영화는 흔치 않은데 그걸 시도하고 일단 괜찮게 (여기에서 괜찮다는 건 IMDB 기준 평점이 6점을 넘었다는 뜻이다) 만들었다는 게 대단하다. 약간의 유치함만 이겨낼 수 있다면 (공평하게 말하자면, <John Wick(존 윅)>(2014) 같은 남자들 액션 영화에서도 이런 유치함은 자주 느꼈다) 괜찮게 볼만한 액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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