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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캐시 오닐, <셰임 머신>

by Jaime Chung 2025.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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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캐시 오닐, <셰임 머신>

 

 

책의 제목은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일으킴으로써 누구를 단죄하거나 물건을 팔아 부를 챙기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회는 빈곤하거나 약물 중독인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기보다는 ‘다 네 잘못’이라고 수치심을 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비만, 질병, 외모 등은 모두 수치심을 불러일으키는 요인이자 거대한 산업의 근원이다. 이런 것들을 ‘수치심 비즈니스’를 부르는 저자는 서론에 이렇게 썼다.

이 징벌적 생태계에서 핵심 행위자들은 내가 ‘수치심 머신The Shame Machine’이라고 부르는 것을 운영한다. 수치심 머신은 상장기업부터 정부 공무원까지 수많은 형태가 있다. 개인도 SNS 계정이나 자기계발류의 정보성 광고를 통해 나름의 몫을 한다. 이들 모두 수치심의 무기화에 조금씩 가담한다. 이들 중에는 단지 이윤을 얻으려는 자가 있는가 하면, 약자에게 주는 혜택을 거부하고 이들을 교도소에 밀어 넣는 등 취약계층을 위협하는 부류도 있다. 수치심은 의지를 꺾고, 침묵시키며, 명료한 사고를 막아 편향성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수치심에 사로잡히면 피해자는 체념하고 굴복한다. 그렇게 해서 피해자는 늘 굶주려 있는 수치심 머신을 거쳐 끝없는 악순환에 빠진다. 수치심 산업에서 변함없는 한 가지는 선택이라는 개념이다. 약물 중독부터 빈곤 문제까지, 이들은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실패를 초래했다고 전제한다. 즉 부유해지고 날씬해지고 똑똑해지고 성공하는 길을 선택할 수도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고 본다. 잘못은 그들이 했으니, 자책해도 싸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들에게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생겨도, 또 문제를 해결하고 정해진 구원의 길을 따라갈 기회가 있어도 대부분 결실을 이루지 못한다.

물론, 이는 단순히 가벼운 수치심을 주어 공공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행동(예컨대 마스크 착용하기, 백신 접종하기)을 유발하는 걸 가리키는 게 아니다. 그 이상으로 과하게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주는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다. 저자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을 이용해, “사회적 불의나 경제적 불의의 피해자들”이 “권력자를 상대로 전세를 뒤집고 스스로 내세운 이상을 저버린 권력자들에게 모욕을 줄” 수 있으며, 여기에서 더욱 나아가 “부패한 CEO들을 끌어내려 사회에 변화를 일으키거나, 정권을 쓰러뜨릴” 수 있기를 바란다(루이지 맨지오니를 떠올려 보자면, 수치심보다 총 한 방이 더욱 효과적일 것 같긴 한데…).

이 책을 쓴 목적은 이러한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힘없는 피해자가 아니라 대중을 이용하고 우리의 삶과 문화에 해악을 끼치는 자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한다면, 비난의 펀치를 아래가 아닌 위를 향해 날린다면 우리는 공익을 지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수치심이 해야 할 영원한 역할이자 수치심이 존재하는 이유raison d’être이다.

 

어릴 때부터 비만이었던 저자는 비만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큰 수치심을 가져다주는지 일찍부터 잘 이해하고 있었다. 비만 또는 다이어트와 관련한 산업의 규모나 강도는 굳이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다들 살면서 경험으로 느꼈을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는 바처럼 다이어트 산업은 성인뿐 아니라 아동에게도 그 이빨을 드러내며, 더 많은 타깃과 이익에 눈독을 들인다. 특히 여자의 몸을 돈 나오는 ATM 정도로 생각하는 산업은 심지어 이전엔 문제조차 아니었던 것도 문제로 만들어서 이를 ‘해결’하는 제품을 팔아 먹는 데 쓴다. 그중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아래에 내가 인용하는 ‘라이솔’, ‘바지실’ 같은 것들이다.

여성들에게 걱정거리가 생겼다. 여러 잡지에서 하는 얘기처럼 은밀하고 부끄러워서 언급하기도 힘든 문제였다. 그렇지만 제대로 대처하지 않았다가는 결혼생활이 끝날지도 몰랐다! “스탠이 다른 여자들에게 눈길을 주기 시작했을 때, 이건 정말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온라인 매체 버즈피드BuzzFeed의 작가 크리스타 토레스가 찾아낸 1954년의 한 광고에서, 가상의 인물인 부인이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여성의 위생을 몰라서가 아니었다. 내… 건망증이… 심해져서였다.” 이 여성은 이런 표현을 절대 사용할 리 없겠지만, 자신의 질에서 나는 냄새 때문에 남편이 불쾌해할까 봐 점점 두려웠다. 부부의 애정을 다시 불붙게 할 방법은 아주 독한 화학제품으로 음부를 씻어서 냄새의 원인일 수 있는 생물학적 활동을 근절하는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아닌 결혼생활이 위기였으므로, 여성은 청소할 때 쓰는 살균제만큼 독성이 강한 물질을 사용했다. 바로 라이솔Lysol이었다. 이 극적인 조치로 부인은 남편을 되찾았다. 이렇게 수치심을 자극하는 전략은 나름의 시장을 개척했다. 20세기 전반에는 많은 여성이 라이솔로 질을 세척했다. 원 제조사(뉴욕에 있는 렌 앤 핑크Lehn & Fink라는 회사였다)는 여성들에게 음부 소독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신체 변화에 대한 남편의 불쾌감을 낮춰줄 뿐 아니라 아주 안전한 방법이라고 안심시켰다.

이는 거짓말이었다. 1950년대까지 라이솔에는 크레졸cresol 성분이 들어 있었다. 크레졸은 사람의 피부에 해롭고 특히 눈, 입, 생식기 등 예민한 점막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는 강력한 메틸페놀 화합물이었다. 그런데도 제조사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려면 더러워진 개수대를 청소하듯 음부를 깨끗이 씻어내라고 여성들에게 강권했다. 라이솔 광고는 “이 성분이 주름과 틈새 깊숙이 스며들어 세균을 찾아낸다”라고 떠벌렸다(이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많은 여성이 살균제에 피임약 효능이 있을지 모른다는 헛된 바람으로 라이솔을 사용했다). 라이솔의 마케팅으로 인류의 절반이 생식계에 자연스럽게 생기는 부산물을 창피해했다. 여성들은 따끔거리는 화상과 물집으로 고통받았다. 드물게 사망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살균제 제조사를 고소해 이 비밀스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논의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여성의 생식기는 수치심 머신의 주요 표적이 된다. 수치심 머신은 살 떨리는 두려움과 불안을 여성들에게 심어놓는다. 과거보다 성적으로 해방된 지금도 사람들은 이러한 불안감을 감추며 산다.

이 거대한 산업에서 어떤 행위자들은 과거의 해로운 메시지를 갱신해오고 있다. 여성 청결 용품 회사 바지실Vagisil이 그런 경우다. 기업 이름이 암시하듯 예전의 라이솔이 겨냥한 위생용품 시장에 주목한다. 여성들이 모여 세운 바지실은 직설적이고 금기를 깨는 발언으로 여성의 몸을 응원하는 곳이라고 자사를 홍보한다. 회사의 사명도 수십 년째 이어지는 여성의 수치심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다. “바지실은 여성들이 질 건강에 더욱 솔직해지도록, 그리고 자신에게 필요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1973년부터 노력해왔다. 그 어떤 해명도, 낙인도, 수치심도 우리에게는 필요 없다.” 수익성이 좋고 날로 성장하는 바지실의 사업은 여성들 몸에서 고약하고 지독한 냄새가 나니 화학 청결제가 꼭 필요하다고 넌지시 말하며 과거 라이솔의 사업모형을 그대로 답습한다. 『질 건강 매뉴얼The Vagina Bible』을 쓴 산부인과 전문의 젠 건터 박사는, 여성 위생용품이 “생식기가 청결해야 한다는 원초적 두려움을 자극한다. 이는 수지 맞는 장사다”라고 지적했다.

 

이런 장사질을 가능하게 만드는 정신 상태를 가장 정확한 게 표현한 게 바로 아래의 인용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바로 여성 혐오다.

섹슈얼리티로 여성을 비하하는 행위는 수 세기 동안 여러 문화권에서 가부장제를 떠받드는 도구였다. 이 현상은 강간 재판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피고 측 변호인은 피해자에게 어떤 옷을 입고 있었냐는 질문을 던져 피해자가 범죄를 자극하고 평소 헤펐다는 인상을 주려고 한다. 피해 여성은 이런 담론에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 피해자가 아름다운 데다 매력이 지나쳐 강간을 유발할 위험이 있다면(레다가 제우스 때문에 겪은 위기와 정확히 같다), 이 여성은 자기 몸과 존재에 대해 대체 어느 정도의 권한이 있는 걸까? 트로이전쟁 이후로도 여성에 대한 인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젊은 여성이 자기 몸을 긍정하는 일은 고통스럽게도 남성이 이끄는 사회의 욕구와 변덕에 따라 달라지고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가부장적인 충고에 계속 노출된 여성은 두말할 나위 없이 도움이, 아주 많은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여성은 자기 몸에 관대하지 못하다. 자신이 순결하지 못하다고, 자연의 흐름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성욕 감퇴나 주름, 불면증, 불안, 구취, 퉁퉁 부은 발목 등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그 대가로 여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저자 말대로 이런 “파멸적 악순환”을 끊는 첫 단계는 ‘자각 능력(awareness)’을 키우는 것이다. “수치심의 렌즈로 주변 세상, 사람들의 관계성, 권력의 역학을 살핀다면 기저에 깔린 추악함이 드러날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수치심은 그냥 도구일 뿐, 진짜 추악함은 그 대상(가난한 사람, 여성들, 약물 중독자들 등등)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그들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등을 자세히 살펴봐야 알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코카인은 상대적으로 비싸서 미국에서 중상류층이 사용해 왔지만, 값싼 크랙이 등장하자 흑인, 히스패닉 등 취약계층을 중심으로 빠르게 퍼졌다. 약물 중독자들에 대한 복지 제도나 대우를 정할 권력이 있는 자들 기준에서 ‘위험한’ 약물 중독자는 당연히 코카인보다는 크랙을 사용하는 이들일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코카인 사용자들보다 더 큰 처벌을 받고, ‘타자화’되며 도움 받기도 어려워진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비록 본인이 그런 차별을 당하는 입장이라 할지라도, 진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고 ‘수치심을 주는 기계’에 당하는 셈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의 완성은 저자가 조앤 롤링을 언급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직전까지 다이어트 산업, 여성 용품 산업, 약물 중독자들에 대한 나쁜 처우, 인터넷상의 사이버 불링과 캔슬 컬쳐에 대해 잘 이야기하다가 조앤 롤링이 공개 서한을 언급하며 자기도 그들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한다. 아래 인용문을 보시라.

공개서한 서명자 중 한 명인 J.K. 롤링을 살펴보자. 공개서한이 나오기 1년 전, 롤링은 젠더 논쟁에 휘말렸다. 정확히는 트랜스젠더 여성을 여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롤링의 불만이 발단이었다. 사실 이런 주제에는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지만 이미 트위터에서 설전이 오갔고, 토론 주제가 작가에게 명성을 안긴 책 『해리 포터Harry Potter』와 무관한데도 롤링의 의견이 지나치게 주목받았다. 롤링에게 분노와 조롱이 담긴 트윗이 쏟아졌다(분명 그중 상당수는 자기 친구와 팔로워의 입장을 대변하는 척하며 보낸 메시지였을 것이다). 나는 이 일련의 흐름이 잘못되었다고 느꼈다. 롤링이 트랜스젠더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들이 알 필요가 없다면 세상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롤링은 디지털 광장에 자기 의견을 밝혔고 불특정다수에게 조롱받았다. 롤링은 자신이 부당한 괴롭힘을 받는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하퍼스 매거진』 공개서한에 이름을 올릴 기회가 생겼으니, 틀림없이 이를 반겼을 것이다. 롤링을 비판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오히려 롤링과 그 주변의 저명한 인물들이 대중을 모욕한다고 느꼈다. 공개서한은 분개하는 대중이 편협할 뿐 아니라 천박하다고, 복잡한 세상을 단순하게 선과 악으로 나눈다고 비판했다. 대중이 약자를 괴롭히고, 선동가가 나올 최적의 상황을 만든다고 비난했다. 사실 문학계는 일반 대중에게 펀치를 그것도 아주 세게 날리고 있었다. (…)

작가들은 이 공개서한이 권리를 빼앗긴 자들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글이라며 부질없는 포장을 했다. 이들은 “논쟁이 제한되면 (…) 언제나 힘없는 약자들이 피해를 보고 민주적 참여가 제약된다”라고 주장했다.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도 이 서한은 소위 하찮은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을 뿐 약자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의 메시지는 약자들이 온라인에서 지나치게 단순한 주장과 검열의 목소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는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한 『뉴욕 타임스』 기사에, 1,000명이 넘는 약자들이 시간을 내어 댓글을 남겼다. 그중 펜실베이니아주 출신으로 부채관리프로그램DMP에 등록했다는 댓글 작성자가 이렇게 물었다.

그러니까 정리하면 이런 말이잖아.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던 다수의 부자가 이제 그 표현의 자유 때문에 공격받으니까 불쾌하다는 거잖아? 지금 누가 누구를 입막음하는 거지?

공개서한 곳곳에 숨겨놓은 작가들의 이기적인 태도는 서한 말미까지 이어졌다. 즉 자신들의 글에 모욕적인 비난이 쏟아질 경우 달아날 피난처가 필요하다고 했다. “작가인 우리에게는 실험하고 모험해도 지켜봐주는, 실수마저도 받아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이 사건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시겠다면 이 기사를 참고하시라. 대충 트랜스젠더(MTF)를 ‘남성’이라고 했다가 조앤 롤링이 욕을 먹었다는 내용이다. 트랜스젠더, 특히 MTF는 그렇게 여성이 되고 싶어 하면서 왜 같은 여성용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생물학적 여성들의 두려움은 이해하지 못할까? 나는 롤링이 틀린 말을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수치심’에 대해 책 한 권을 쓸 정도로 연구한 사람도 이토록 틀릴 수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 점이 이 책을 완벽하게 만들어 준다고 할까. 딱 자기가 하는 이야기의 정확한 사례를 보여 주는… ㅎㅎ…

 

이 점을 유의하며, 자기 나름대로의 비판적 사고를 견지하며 읽으면 괜찮은 책이다. 확실히, 수치심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장사치들 꼴 뵈기 싫은 것은 나도 공감한다. 특히 여성의 몸을 가지고 수치심 놀이를 하며 장사질하는 놈들은 다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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