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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서수진, <코리안 티처>

by Jaime Chung 2025.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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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서수진, <코리안 티처>

 

 

이 책 리뷰를 쓰기 전에 많이 고민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써야 하는데 내 언어가 비루해서 ‘개쩐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작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단 제목대로 이 작품은 ‘코리안 티처’, 즉 한국어 강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제목은 단수인데 내용은 복수라고 할까. (영문판 번역본은 제목이 <Korean Teachers>, 즉 복수형이다.) 일단 단수형 ‘코리안 티처’는 시간 강사 선이가 자신에게 붙인 이름이다.

선이는 첫 시간 프엉과 꽝, 티엔과 꽌 앞에 선 자신을 그려보았다.

저는 여러분의 한국어 선생님 김선이예요.

선이의 이름은 분명했다. 다른 이름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르게 발음할 필요도, 다르게 쓸 필요도 없었다. 선이는 칠판에 ‘한국어 선생님 김선이’라고 커다랗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래에 영어로 ‘Korean Teacher’라고 써주는 게 좋겠지. 선이는 자신을 일컫는 3개의 단어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코리안 티처, 김선이. 선이는 자신의 이름 앞에 서서 큰 소리로 말할 것이다.

저는 여러분의 한국어 선생님 김선이예요.

선이는 이제야말로 자신의 자리를 찾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를 절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반면에 왜 영문판 번역본 제목은 복수형이냐면, 방금 말했듯 이 ‘코리안 티처’는 한 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봄 학기는 선이, 여름 학기는 미주, 가을 학기는 가은, 겨울 학기는 한희, 그리고 마지막으로 짧은 겨울 단기 수업은 다시 선이를 주인공으로 해서 진행된다. 네 명의 강사들(선이, 미주, 가은은 시간 강사, 한희는 그보다 쪼오끔 높은 책임 강사)의 이야기를 전부 읽어야 이들이 일하는 H대학의 한국어 학당의 전체적 그림을 볼 수 있다.

 

가장 먼저 시작하는 봄 학기 선이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선이는 딱히 한국어를 가르치는 기쁨에 열정이 있어서 한국어 강사가 된 게 아니다. 사실 선이는 7급 공무원 시험에서 탈락의 쓴 잔을 마셨더랬다. “모교 취업지원팀에서 한국어 강사 국가고시 대비 과정이 개설된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 선이는 시험이라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시험공부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렇게 한국어 강사가 된 것이다. 무엇이든 성실하게 하는 선이는 한국어를 가르치며 소소하게 기쁨과 보람을 느낀다. 다른 강사들은 (어학원 원장이 시키는) 시간 외 업무가 부당하다고 투덜투덜하는데도 선이는 ‘까라면 까야지’라고 생각하며 그저 조용히 받아들인다.

“고등학교도 아니고 대학 기관에서 결석했다고 전화를 돌리는 게 말이 돼요? 전화를 안 받으면 애를 잡으러 가라고 할 태세예요.”

강이슬은 선이를 향해 큰 눈을 깜빡거렸다.

“네, 정말 말이 안 되네요.”

선이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까라면 까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선이에게 한희의 요구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선이에게 중요한 것은 한희가 책임 강사라는 것이었다. 강사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건 직접적으로는 행정실의 일이었지만, 책임 강사들이 수업을 배정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매 학기 계약 연장을 해야 하는 시간강사가 책임 강사에게서 수업을 배정받지 못하면 해고당하는 것이니, 사실상 인사권을 쥐고 있다고 봐야 했다. 그러므로 선이는 누구보다 한희에게 잘 보여야 했다.

선이는 자신이 맡은 (베트남 학생들로 구성된) 베트남 특별반의 한 학생, 프엉을 도와주기도 한다. 프엉은 남편 꽌과 같이 “오후 5시부터 새벽 4시까지” 공장에서 일을 했다. 어느 날 프엉이 월급을 받지 못했다며 울상을 하고 있길래 선이가 대신 사장에게 전화해 월급을 독촉해 준다.

“일하는 것도 불법이지만, 고용도 불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주실 겁니까?”

상대가 나지막이 “씨발”이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선이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프엉과 꽌, 그리고 나머지 16명의 학생이 모두 선이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럼 문자로 가능한 날짜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선이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서 숨을 씩씩거렸다.

“선생님, 괜찮아요?”

프엉이 물었다.

“네, 괜찮아요. 사장님이 돈을 안 주면 선생님에게 다시 말해요. 받을 수 있어요. 받을 거예요. 선생님이 싸울 거예요.”

선이는 숨을 고르고 바로 수업에 돌입했다. 학생들에게 형용사를 가르쳐야 했다. ‘좋다’와 ‘나쁘다’를 가르치고, ‘많다’와 ‘적다’를 가르치고, ‘행복하다’와 ‘슬프다’를 가르쳐야 했다. 언젠가는 ‘정당하다’와 ‘부당하다’를, ‘감격스럽다’와 ‘모욕적이다’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선이는 학생들이 그런 단어를 배울 때 ‘부당하다’보다 ‘정당하다’가, ‘모욕적이다’보다 ‘감격스럽다’가 더 한국 생활에 유용한 단어라고 느끼기를 바랐다.

 

저자는 이렇게 외국인 노동자가 받는 차별과 모욕을 지적한다. 하지만 차별받고 모욕을 당하는 것은 시간 강사인 선이도 마찬가지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시간 강사일 뿐인 선이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잘릴 수도 있다는 고용 불안정성을 늘 느낀다.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열심히 가르치며 도와주려고 하는 학생들도 그녀를 배신한다. 어느 날, 개강 후 한 달이 지나도록 인사 외에 말을 하지 않았던 옆자리 강사 미주가 선이에게 갑작스럽게 말을 건다. 그녀는 옷 입는 스타일조차 반대인데, 미주는 청바지에 운동화, 선이는 블라우스에 치마 차림을 고수한다. 이들의 옷 스타일은 사실 각자의 성격을 반영한다. 미주는 무언가 잘못되었다,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상대가 자기보다 높은 사람(예를 들어 어학원 원장)일지라도 할 말은 하는, 정의감 넘치고 대쪽 같은 성격이다. 반면에 선이는 위에서도 보았듯 위에서 까라고 하면 까는, 소심하고 순응적인 성격이다. 어쨌거나 이날 미주는 선이를 불러내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한다. 선이의 학생 중 한 명이 수업 중에 선이를 도촬해서 인스타에 ‘#KoreanHotGirl’ 같은 태그를 붙여 인스타그램에 올린 걸 보았다는 내용이었다. 선이는 충격을 받는다. 심지어 그 범인은 선이가 월급을 받게 해 주려고 사장에게 전화까지 해 줬던 프엉의 남편 꽌이었다!

이 여자가 정말 예쁘냐고 비꼬는 댓글과 선생님이 되기엔 너무 예쁘다는 정반대의 댓글이 나란히 있었다. 마지막 댓글은 ‘씨발, 꼴리네’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선이는 ‘코리안핫걸’이라는 해시태그를 클릭해 같은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검색해보았다. 속옷만 걸치고 가슴을 드러낸 여자들의 사진이 쏟아졌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선이는 자신이 꽌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던 단어, ‘부당하다’와 ‘모욕적이다’를 떠올렸다.

꽌 씨, 이건 부당해요. 이건 정말 모욕적이에요. 내게 이런 이름을 붙이지 마세요.

그리고 미주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아요.’

 

작가가 얼마나 솜씨 좋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집고 ‘착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새롭게 정의하는지 감이 오시는지? 이전에 프엉은 한국인 공장 사장에게 임금 체불을 당하는 피해자였지만 사실 그들은 또한 대한민국 노동법을 어기는(어학연수 비자로 들어온 외국인에게 주 20시간 아르바이트가 허용되는 것은 입국으로부터 6개월을 지난 시점부터인데, 프엉은 한국에 들어온 지 이제 네 달밖에 안 됐다. 따라서 그녀가 일하는 것은 불법이다) 범법자이기도 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꽌은 프엉처럼 착취당하는 외국인 노동자로 보였지만, 선이의 사진을 불법 촬영해서 SNS에 올린 사실이 드러나자 이때부터는 ‘나쁜 사람’이 된다.

여기에서 또 조금만 더 나아가면 이 선은 더 복잡하게 엉킨다. 선이가 이 일을 경찰에 가서 신고하겠다고 하자 책임 강사인 한희는 ‘학교에서 알아서 잘 처리해 줄 테니 믿고 기다리라’라며 선이를 설득한다. 미주는 물론 이런 일은 참지 않고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기에 선이의 이런 소극적인 대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게다가 선이 이외에 강이슬, 박정은, 김수진이라는 다른 강사들의 사진도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게 확인되고, 강이슬을 비롯한 다른 강사들은 경찰에 이를 즉시 신고한다. 이쯤 되면 소극적인 대처로 독자들의 속을 썩이는 것은 선이가 된다. 물론 선이도 정말로 이 일이 괜찮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대처하는 것은 아니다. 본인도 이 일로 정신에 큰 상처를 입는다. 게다가 꽌은 이 일로 인해(한두 명을 불법 촬영해서 올린 게 아니니까) 제적 처리 되고, 프엉은 남편 꽌에게 선처를 해 달라며 선이를 따라다닌다. 꽌은 사진을 내렸지만, 선이는 정신적 상처를 입은 후이다. 선이는 프엉에게 선처를 부탁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하려 하지만, 프엉의 인스타그램에 뜬 프엉와 꽌의 아기 사진을 보며 배에 날카로운 통증을 느낀다. 불법 촬영을 하는 남편, 이제 어학원에서 제적당해 비자를 잃고 또 돈을 벌지 못할 위기에 처한 남편이지만, 그런 수준 이하의 남편이라 하더라도 아기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또는 사랑으로?) 선처를 부탁해야 하는 아내. 아내 프엉은 이런 꽌을 감싸안음으로써 자기 자신도 선이에게 가해자가 된다.

 

이 소설은 이런 식으로 계속 독자의 기대를, 생각을 뒤바꾸는 반전을 보인다. 누구를 쉽사리 판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다른 이의 입장을 면면이 보여 주기 때문에 읽는 내내 괴롭다. 하지만 또 그만큼 삶을 너무나 정확하게 표현하는 저자의 솜씨에 감탄하게 된다. 이 소설에 그냥 덮어놓고 미워할 수 있는 인물은 많지 않다(한 두 명 정도?). 모든 인물들이 입체적이고, 또 그들의 입장에 대해 읽다 보면 이해하고 공감할 수밖에 없다. 선이에게 ‘학교에서 좋게 처리할 테니 믿고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했던 한희도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며 어떻게든 자기 자리를 붙잡아 놓으려고 애쓰려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한희의 시점을 다룬 겨울 학기를 보면 또 짠해진다. 한희를 일차원적인 악당으로 볼 수 없는 이유다. 진짜 악당은 어학원의 원장이라고 해야 할까. 시간 강사와 책임 강사를 나누어서 갈라치기를 하려는 윗것들이 문제다!!

스포일러를 할 수 없어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못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미주라는 캐릭터가 제일 마음에 든다. 정의감 넘치고, 그 말을 함으로써 자기 주변 사람들이 자기를 떠나가더라도 일단 옳다고 생각하는 말은 해야 하는 미주. 미주가 제일 멋지다. 밝은 성격과 미모로 주위에서 사랑받고 자신이 그저 운이 좋다고 생각할 뿐인 가은도 짠하고. 선이와 한희도 마찬가지. 주인공 네 여성들이 다 진짜 입체적이고 생생하다.

 

이 작품은 2020년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다(박서련 작가가 서수진 작가를 인터뷰하는 영상도 보시라). 여덟 심사위원들의 단단한 지지를 받으며 뽑혔다고 하는데, 정말 과연 그럴 만하다. 이 정도로 글을 썼는데 상을 안 준다? 말도 안 된다. 이렇게 썼으면 당연히 줘야지. 진짜 읽다 보면 감탄만 나온다. 어쩜 이렇게 진짜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처럼 소설을 쓸 수가 있을까? 작가님이 한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 일을 하셨다고 하던데, 그 경험을 살려서 잘 쓰신 듯. 그냥 자신이 일하던 곳에서 보고 겪은 것을 가십을 풀어 놓듯, 그저 자극적으로 쓴 게 아니라 진짜 그곳의 인간 군상을 이해하고 사랑했기에 그들을 문학 위에 풀어 놓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원래 나는 무슨 상을 받았다고 해서 무턱대고 찬양하는 사람은 아닌데 이건 진짜 상을 받을 만하다, 주지 않을 수가 없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기가 막히다. 이건 단연코 노동 문제를 다룬 작품이자 여성 문학이다. 21세기에 손꼽을 만한 작품들 중 하나다. 서수진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어 너무너무 기쁘고,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예정이다. 서수진 작가님 사랑합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도장 깨기 할 저를 지켜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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