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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송경화, <민트 돔 아래에서>

by Jaime Chung 2025. 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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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송경화, <민트 돔 아래에서>

 

 

2021년 4월에 출간된 저자의 첫 소설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의 인기에 힘입어 쓰인 후속작. 이건 2022년 10월에 나왔다. 1년 반만에 나온 셈이다. 아쉬운 것은,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때부터 ‘출간 전 드라마화 확정!’이라는 점을 띠지에도 넣어 홍보했으나 2025년 2월 현재까지 아무리 검색을 해 봐도 드라마화된 결과물을 찾을 수가 없다는 거다.

 

후속편 <민트 돔 아래에서>는 전작과 두 가지 면에서 크게 다르다. 첫 번째, 이번에는 배경이 정치판이다. 사회부를 졸업하고 의회 출입 기자가 된 주인공 송가을이 정치부 기자로서 성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 속에는 크게 보수파와 진보파 두 당이 있는데, 딱히 어느 쪽에 더 호의적이라든가 하는, 저자의 정치적인 색이 엿보인다고 할 만한 점은 안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두 번째다. 아무래도 이게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후속작이 나온 거다 보니까, 저자도 ‘드라마화’ 계약을 무시할 수 없었던 듯하다. 그래서 이번 편에는 전작보다 ‘로맨스’ 기류가 훨씬 더 많이 나오는데 이게 소설의 원래 분위기를 많이 해칠 정도다. 읽는 동안 로맨스 부분만 나오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서 (이 표현도 정말 오랜만에 쓰는 것 같다) 빨리 이 부분이 지나가길 바랐다.

예를 들어 아래 인용문을 보시라. 의회 기자들 사이에는 ‘꾸미’라고 하는, 일종의 소그룹이 있는데 자기네들끼리 기삿거리나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는 배타적인 모임이다. 주인공 송가을은 한 여자 의원과 남자 의원(둘 다 유부)이 불륜 사이라는 정보를 듣는다. 그리고 그 소문의 주인공인 여자 의원이 송가을에게 누가 이런 찌라시를 돌렸는지 물으며 곤란하게 만들자, 박동현이라는 기자이자 같은 꾸미의 일원이 나타나 그를 돕는다. 어떻게 돕는지는 차치하고 앞뒤 부분을 한번 보시라.

그때였다. 송가을이 입을 여는 순간 누군가가 송가을과 이연숙 사이에 섰다. 그러곤 송가을 입에 막대사탕을 꽂았다. 츄파춥스였다. 달큼한 딸기우유맛이 삽시간에 입안으로 퍼졌다. 익숙한 맛이었다. 딸기우유맛 츄파춥스는 송가을이 대학 시절 내내 입에 물고 다니던 거였다. 기자가 된 뒤로는 전처럼 못 먹어 잊고 있던 맛이었다. 현장을 쫓아다니면서 사탕을 물고 다닐 수는 없었다.

오랜만에 그 맛을 느끼니 살짝 어지러웠다. 달콤함에 몽롱한 느낌마저 들었다.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송가을의 눈앞에 키가 큰 남자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었고 목에 국회 출입증을 걸고 있었다. NBS 박동현이었다. (…)

이어 박동현은 후드티의 모자를 뒤집어쓰면서 말했다.

“황금 같은 휴가에 국회에 오다니 내가 미쳤지. 그만 간다.”

그리고 뒤돌아 가다가 한 손을 흔들며 외쳤다.

“꾸미 합류 환영한다! 송가을!”

송가을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혼란스러웠다. 박동현에게 고마운 상황인 건 확실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입에서 막대사탕을 뺐다.

“쟤도 딸기우유맛을 좋아하나 보네.”

읽기만 해도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한 장면이 딱 그려지지 않는가? 이런 게 한두 군데가 아니다. 심지어 삼각관계다! 위 인용문에서 박동현이라는 기자가 송가을을 도와주는 ‘F4’(진짜로 극 중에서 ‘F4’라고 불린다. 미친…) 멤버였다면, 아래 인용문에서는 기민호라는 기자다.

문뜩 고개를 들었을 때 기민호는 바로 앞에 놓인 송가을의 얼굴을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송가을의 숨결이 느껴졌다. 살짝 달큼한 향이 감돌았다. 딸기우유 향인가? 입사 뒤 누구보다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지만 이렇게 가까이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기민호에게 송가을은 늘 자랑스러운 동기였다. 보통의 기자들처럼 외향적인 성격은 아니었으나 특유의 끈기와 진실성이 있었다. 팩트를 열심히 추적했다. 그러다 특종을 여러 건 했다. 그런 모습에 배가 아프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상하게 다른 기자들이 특종을 할 때보다는 덜했다. 사회부에 있을 때는 서로 다른 경찰서를 커버하느라 자주 보지 못했는데, 정치부에 오니 부스에서 매일 붙어 있게 되어 좋았다. 둘이 여야 말진으로 발령을 받은 게 어쩌면 운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쿵쾅쿵쾅.

기민호의 심장이 갑자기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어찌나 크게 뛰는지 귀대기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특종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 거라고, 다른 이유는 아닐 거라고 기민호는 애써 마음을 달랬다. 다른 이유 때문이라면…… 자신이 없었다. 기민호는 스스로 아직 멋진 기자, 멋진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화를 노린 듯한 이런 로맨스 부분이 너무 오글거려서 도저히 이 소설을 진지하게 봐주기가 어려웠다. 전작은 정말 송가을이 실수도 하고, 인터뷰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인간적인 정도 쌓으며 성장해 나가는 이야기였다면, 이번 것은 그냥 의회에서 기자들이 연애 ‘냄새’를 피우는(왜냐하면 거의 끝에 다다를 때까지 사귄다거나 차인다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결판’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저자 본인이 신문 기자 출신인 것으로 아는데, 우리가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연애 소설이 아닙니다… 그냥 자신의 기자 시절 경험을 잘 살려 쓴, 기자 이야기를 우리는 읽고 싶은 거라고요… 드라마화를 한다면 물론 우리나라 정서상 ‘로코화’가 불가피하겠으나, 그것은 그때 가서 드라마화를 맡은 작가에게 맡겨도 됐다. 도대체 왜 이걸 직접 하신 거예요… 이게 과연 전작을 읽고 후속작까지 읽는 독자들이 원하는 것일까? 적어도 저는 아니었는데요.

 

로코스러운 장면들 때문에 이 이야기의 흐름이 깨지고,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빨리 끝내 버리고 싶어졌다. 전작과 비슷하게 송가을이 (이번에는 정치부에서) 기자로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기대하는 독자들이라면, 이번에는 그런 것을 얻지 못하실 듯하다. 오글거리는 로맨스 부분을 이겨낸다고 하더라도, 그 부분들이 (그런 게 거의 존재하지 않던 전작에 비해) 많은 분량을 차지해, 예전만큼 인터뷰이와 인간적인 정을 나누는 등 송가을의 인간적인 면에서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부분이 적기 때문이다. 만약에 이게 또 후속편이 나온다면 (2025년이 됐는데 아직 안 나온 걸로 봐서는 그럴 것 같지 않지만) 로맨스는 다시 많이 쳐내고 ‘기자’의 본분에 맞는 이야기를 써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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