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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고우리, <편집자의 사생활>

by Jaime Chung 2025. 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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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고우리, <편집자의 사생활>

 

 

1인 출판사인 ‘마름모 출판사’를 운영하는 고우리 편집자의 에세이. 문학동네, 김영사, 한겨레출판 등 대여섯 군데의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16년차가 되는 해에 1인 출판사를 차려 독립했다. 읽다 보면 저자가 편집한 책이 여러 권 언급되는데, 내가 읽은 책도 있어서 신기했다.

경력 십몇 년 차를 넘어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너는 독립 안 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마 나같이 팀장급을 지나 편집장급에 이르게 되면 무슨 통과의례처럼 한 번씩 듣게 되는 질문이 아닌가 싶다. 독립? 내가? 나는 독립이 유관순 언니처럼 ‘대한 독립 만세!’ 정도는 외칠 수 있는 신념과 배짱이 없으면 할 일이 못 된다고 믿었다. 내가 출판에 쏟은 세월만큼이나 출판이 힘들다는 걸 뻔히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편집자는 진로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편집자가 아니더라도, 회사를 다니는 누구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조직은 피라미드 모양이다. 위로 갈수록 내가 앉을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회사를 오래 다닐 수 있을까? 편집자로서 내 수명은 언제까지일까? 이 회사에 뼈를 묻어야 하나? 아니, 뼈를 묻게나 해줄까…? 내가 멘토로 모시는 한 선생님이 그러셨다. “고우리야, 너 독립해라. 출판편집자가 나이 들면 둘 중 하나 아니겠니? 사장이 되거나 외주편집자로 빠지거나. 언제고 무슨 형태로든 독립해야 한다. 그건 시간문제다.” 맞다. 내게도 그런 시점이 온 것이다. 16년 가까이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대여섯 번의 이직을 했다. 많이도 돌아다녔고 그만큼 인맥도 넓어졌다. 몇 다리 건너면 다른 회사 돌아가는 사정까지 훤히 알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 더는 가고 싶은 곳도, 갈 곳도 없었다. 아, 회사생활 할 만큼 했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글을 쓰거나, 아니면 최소한 편집자가 되려는 시도 정도는 해 보았을 것이다(나만 그런가?). 나도 편집자의 꿈을 꾸었지만 현실적으로 출판사 연봉이 짜다고 해서 포기했다. 하지만 최근에 민음사TV를 보면서 다시 편집자에 대한 꿈과 부러움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그렇다고 내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갑자기 편집자가 되겠다고 나서지는 않겠지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책과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을 조금 더 가까이 지켜볼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이 책을 읽은 것도 그 비슷한 의미랄까.

이걸 읽다 보면 편집자가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책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끼치는 존재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편집자가 단순히 교정교열만 하는 게 아니고, 책을 기획하고, 저자를 섭외하며, 원고를 받아보고 저자에게 피드백을 제공하며, 인쇄 감리까지 보는 등, 책의 기획과 편집 면에서 많은 일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책의 저자처럼 1인 출판사를 운영한다면 물류 관리도, 마케팅도, SNS 운영 등등도 다 자신이 알아서 해야 하니 더 바쁘고 어렵겠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저자가 편집한 책 중에 내가 읽은 책도 있어서 반가웠다. 남의 책을 욕하는 것처럼 읽힐까 봐 굳이 그 책의 제목을 밝히지는 않겠지만, 솔직히 아주 대단히 잘 쓴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내 당혹감은 당시 내가 쓴 책 리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책의 어디까지가 작가 본인의 작품이고 어디까지가 편집자의 책임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고우리 편집자는, 똑같은 원고를 편집자 열 명에게 주면 다 열 가지 다른 방식으로 편집한다고 했지만, 그 편집의 방식이 나와 더 잘 맞는 게 있고 잘 안 맞는 게 있을 거 아니에요… 나는 웬만하면 나랑 맞는 스타일로 만든 책을 읽고 싶다고요… 편집 방식이라는 것도, 예술과 마찬가지로 어느 정도까지는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 것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이게 무슨 소리냐 싶겠지만, 생각해 보시라. 이제 막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학생이 띄엄띄엄 치는 피아노 연주와 전 세계에서 유명한 콩쿠르에서 우승한 피아노 연주자가 치는 피아노 연주가 똑같겠는가. 프로인 피아노 연주자들만 놓고 본다면 ‘나는 A 연주자가 더 감성적이어서 좋아’, 또는 ‘나는 B 연주자가 더 정성적인 느낌이라 더 좋아’ 같은 ‘취향’의 문제를 논할 수 있겠지만, 그 이하의 수준에서는 여전히 객관적인 비교와 판단이 가능할 것 아닌가. 단 한 가지 ‘옳은’ 편집 방법은 없다고 해도, 더 많은 이들이 좋다, 괜찮다고 생각할 편집 방법은 있지 않을까? 정답은 없어도 우수한 본보기 같은 것은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자면 이것은 더 이상 책에 관한 단평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을 고민하는 게 삶이 아닐까…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그리고 편집이나 책 만들기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것 같다. 이 책은 ‘편집자가 사장?!’과 ‘편집자의 사생활’이라는 두 개의 장(章)으로 구성돼 있는데 두 번째 장에 책 만들기에 관련한 책이 많이 언급되니, 이런 류의 책을 더 많이 읽고 싶은 분들은 참고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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