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심너울, <일인칭 전업작가 시점>
‘전업작가’ 심너울 작가의 글을 써서 밥 벌어먹는 방법 에세이. 일단 작가 본인의 사적인 이야기(우울증이 있다거나 환청을 들었다거나)로 시작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세계관, 인간관 등을 이야기하고, 심지어 현재 한국 출판업계와 AI(인공 지능)가 글쓰기에 끼치는 영향까지 나름대로 진단한다. 마지막은 자신이 크게 즐긴 작품들(희곡, 소설, 뮤지컬, 게임, 만화)까지! 읽다 보면 심너울이라는 사람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
자기 자신에 대해 이렇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나의 입시는 내 기준에서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러니까 흔히 스카이로 통칭되는 명문대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다. 원래 나는 ADHD에다 내향적인 성격에 정신적으로 문제를 가질만한 위험 요인이 많았는데, 그 위험 요인들이 그 사건 하나로 펑펑 터져서 정신병을 빚어냈다.
이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나는 정말로 많은 정신과 약을 먹었다. 가장 심각할 때는 환청을 듣기도 했다. 서너 번은 죽으려고 시도했다가 덜 치명적인 수단을 쓴 덕분에 살아남았다. 나는 죽음 앞에서 겁쟁이였으며, 다행히 나를 병원으로 끌고 가준 고마운 사람들도 있었다. 내 몸 곳곳에는 그때, 그리고 그때와는 또 다른 일로 새겨진 흉터가 아직도 남아있다.
비극적이게도 혹은 희극적이게도 나는 살아남았다. 덕분에 이 세상을 좀 더 경험할 수 있었다. 그 덕에 나는 수능 성적을 잘 받는 능력을 가졌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더 좋은 삶을 살아갈 당위 같은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나는 몇 가지 당연하지만 중요한 생각들을 얻었다.
또한 자신의 장편 소설인 <소멸사회>에 대해 “이것은 정말 눈뜨고 보기 괴로운 작품”으로, “내가 적극적으로 절판시킨 작품이기 때문에 나 빼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도 무척 솔직해서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이렇게 인정사정 없이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도 솔직한 사람이 좋아진다. 신선한 느낌이랄까.
작가의 야심을 자조적으로 고백한 부분은 또 어떤가.
나는 《한국일보》에서 4년간 한 달에 한 번씩 칼럼을 썼다. 과거형인 이유는 이 글을 쓰는 지금(2024년), 딱 사흘 전에 개편 빔을 맞고 코너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꾸준히 들어오던 고정 수익이 사라진 것은 참으로 비통하기 그지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4년이나 이어갔으니 호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나는 그 4년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 칼럼을 쓸 때 나는 내 글이 김영민 교수의 ‘추석이란 무엇인가’처럼 빛날 거라고 생각했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는, 정확히 말하면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2018년 9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제목의 칼럼인데, 명절에 쏟아지는 짜증나는 질문들에 되물음으로 답하라는 그 오묘하고 재미있는 내용이 아주 큰 인기를 끌었다. 나도 그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미래를 꿈꿨다. 심너울의 날카롭게 벼려진 이성과, 동시에 지극히 인간적이고 세상의 허를 찌르는 위트가 버무려진 놀라운 칼럼이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사회 명사들이 심너울이란 이름 세 글자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매달 한 편씩 올라오는 심너울의 칼럼은 곧 2030 세대를 해석하는 아주 중요한 자료로 자리매김한다. 1년 뒤, 심너울은 한 익명의 후원자가 증여한 펜트하우스의 커다란 창 앞에서 한강의 야경을 즐기며 맥켈런 30년산을 한 모금 삼킨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글을 썼다. 내게 주어진 분량은 별로 길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마치 시조시인처럼 단어 하나하나를 다듬었다.
그리고 이런 기대가 완전히 박살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국에만 수많은 신문이 있고, 매일매일 누군가가 사설란을 채워야 한다. 신문사에서 고정적으로 원고료를 주고 칼럼을 쓰게 하는 이들 대부분이 글쓰기 하면 나름대로 자신 있는 사람일 것이다. 써야 하는 분량 대비 원고료를 따지면, 칼럼은 다른 기고문보다 원고료를 훨씬 많이 받는 편이기도 하다. 그런 틈에서 나의 작고 소중한 꼭지 하나로 승천해 보겠다는 것은 안타깝게도 이루기 어려운 소망이었다.
어쨌든 나는 책을 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품었다. 예상외로 내가 글을 굉장히 잘 쓰는 축에 속하고, 또 예상 밖으로 독자들이 나의 그 엄청난 솜씨를 알아봐 줘서 초대형 작가로 거듭나는 그런 꿈을 꿨다는 말이다. 책을 몇 권 내고 나서야 그럴 일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칼럼에서 반복되었다.
웃기고 슬픈 이야기… 하지만 심너울 작가님 정도면 그래도 꽤 알려졌고 ‘중박’ 정도는 친 작가라는 게 사실… 작가가 본인 입으로 자기는 “나는 어떻게든 매문(賣文)으로 먹고살고자 하는 돈미새, 즉 ‘돈에 미친 새끼’다”라고 인정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근데 전업작가는 뭐, 아무래도 쉽지 않은 길이니까…
글을 써서 먹고사는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으니, 3장 ‘세상 이해하는 척하기’에서 증정본 문제를 이야기하며 언급한 인터넷 서점의 현실은 내가 예상만 하고 온라인에서 들었던 말이 사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내가 쓴 책의 증정본이다. 보통 도서 집필 계약을 하면 열 권에서 스무 권 정도의 책을 작가에게 준다는 조항이 있다. 더 관대하게는 증쇄할 때마다 몇 권씩 더 주는 경우도 있다. 데뷔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나는 이 증정본을 매우 즐거운 마음으로 받았다. 그런데 이제는 증정본을 준다 해도 마다하는 편이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절대 주위 사람들에게 책을 선물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친구들에게 생일 선물을 안 주거나 밥을 안 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내가 보기에도 친구라고 믿는 사람에게 돈을 너무 많이 쓰는 경향이 있다. 특히 축의금 같은 경우 내가 보통 내는 액수를 말했다가 주위 사람들에게서 경제관념이 없다는 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책은 절대로 선물하지 않는다. 왜냐? 그들이 너무나도 중요한 첫 구매자이기 때문이다.
책은 잘 안 팔린다. 그래서인지, 온라인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 100위권 밖에 있는 책들은 단 한 명의 구매자가 나타나기만 해도 순위가 요동친다. 처음 출판되었을 때 수십 명 정도만 더 사주어도 노출되는 빈도가 달라진다. 이런 탓에 나는 아무리 사랑하는 친구에게라도, 사실 가족에게도 내 책을 선물할 수가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 간곡히 애원한다. 부디 내 책 한 권만 사주지 않겠니?
사실 출판 시장은 판매량이 너무 적어서 구매자가 조금만 늘어도 베스트셀러 딱지가 붙는 상황 때문에 여러 문제를 겪고 있다. 이런 취약점을 대놓고 써먹는 이른바 사재기꾼들도 있다. 그렇게 많지 않은 돈과 충분한 계정만 있으면 어떤 책을 일시적으로 베스트셀러로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마지막 장, 종장은 ‘오징어가 흉년이면 뭐 고등어는 풍년이겠지?’라는 제목인데, 이상한 것 같아도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이해가 된다. 개인적으로 이게 이 책에서 제일 따뜻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아버지와 기후위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나는 굉장히 슬퍼하면서 동해에서 오징어가 잘 잡히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했다. 기후위기가 우리가 사는 방식을 바꿀 거라고도 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별문제 없다는 투로 말했다.
“오징어가 흉년이면 뭐 고등어는 풍년이겠지?”
나는 그게 아버지 특유의 낙관이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그런데 아버지의 말은 진짜였다. 오징어가 흉년이었던 해에 정말로 고등어가 더 잘 잡혔던 것이다.
우리 집은 한때 횟집이었다. 당연히 아버지는 바다에 익숙하다. 오징어가 흉년이면 고등어가 더 잘 잡힌다는 말은 아버지의 경험에서 나온 지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의 그 낙관적인 태도에 주목하고 싶다. 비록 현실에 문제가 많고, 잘 풀릴 가망은 없어 보이고, 그래서 삶이 힘들어질 것 같아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른 좋은 일이 일어나 잘 풀릴 것이라고 믿는 그 태도 말이다.
저자가 자신이 쓴 소설 <갈아 만든 천국>에 대해 회고하는 부분도 있는데, 내가 읽지는 않았지만 어째서인지 익숙해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이웃님(HEY님) 블로그에서 리뷰를 봤던 거였다. 작가는 이 장편소설의 첫 번째 에피소드인 <허무한매혈기>를 어떻게 구상했는지 돌아보는데, 마침 HEY님도 딱 그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셨던 것. 역시 이래서 사람은 인간관계를 통해 배우는 게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보통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 같지만…). 어쨌거나 심너울 작가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번 읽어 볼 만하다. 그의 세계를 조금 더 알게 된 느낌이 든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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