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추천] Swinging Safari(스윙잉 사파리, 2018) -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콩가루 집안 이야기
이쪽이 콩가루 가문 부모님들이시고
여기 왼쪽 남자애가 제프
여기 왼쪽 여자애가 멜리. 날이 더워 KFC 치킨 통에 인쇄된 커널 샌더스 할아버지 얼굴이 멜리의 배에 찍혀 버렸다.
보기만 해도 아프다...
감독: 스티븐 엘리엇(Stephan Elliot)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 노비스 해변(Nobbys Beach) 근처의 교외에서 벌어지는 콩가루 가문 이야기.
14살 소년 제프 마쉬(Jeff Marsh, 애티커스 롭 분)는 옆집 동갑내기 소녀 멜리(Melly, 다아시 윌슨 분)를 짝사랑하고 있다.
어느 날, 해안가로 죽은 고래가 밀려오는데, 사람들은 처음엔 놀라워하다가도 이내 썩어 가는 고래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이 사체를 폭파해 버리려고 한다.
다만 감수성 풍부한 멜리는 이 고래를 멀리 바다로 보내 주고 싶어 한다. 제프는 그저 그녀 곁을 맴돌 뿐이다.
한편, 제프와 멜리의 부모님은 이보다 좀 더 야릇한, 어른들만의 일탈을 계획하고 있는데...
영화관에서 이 영화 예고편을 보았을 때는 정말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피임약을 선물로 받고서 기쁨에 울음을 터뜨리는 딸의 모습이나, "남자 인생에 한 번쯤은... 젠장, 그냥 받아라." 하며 14살짜리 아들에게 콘돔을 쥐어 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정말 코믹하게 보였던 것이다.
예고편만 보면 정말 오스트레일리아스럽고 빵빵 터지는 코미디처럼 보인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제목의 '스윙잉(swinging)'이 그런 의미인 줄 몰랐지!
아니, 사실 단어 뜻만 놓고 보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정말 이 커플들이 파트너를 교환해 섹스하려고(=스윙잉) 하는 줄은 몰랐다고!
그래, 이것 자체로는 코미디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문제는 별로 안 웃기다는 거다.
재치 있는 대사로 웃음을 빵빵 터뜨려야만 좋은 코미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코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쾌하다.
그 이유는 이 예상도 못 한 섹스 소재 때문이라기보다는 주인공 제프 때문이다.
얘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친구들과 '스턴트 영화'를 찍는데, '아무리 어릴 때 상상력이 풍부하다지만 어떻게,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잔인하고 폭력적인 걸 좋아하지?'싶었다.
굳이 여기에 구체적으로 무엇무엇이 잔인했다고 일일이 다 쓰고 싶진 않지만(그걸 읽게 되는 독자분들은 무슨 죄야!) 내가 워낙에 '폭력은 비성숙한 정신의 표현'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너무나 불쾌했다.
물론 그 나이에는 이성보다는 신체를 더 잘 쓰니까, 스턴트 같은 류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감독은 그걸 왜 굳이 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로 결정한 건지 모르겠다. 폭력 자체를 너무 있는 그대로 표현했다.
애완용 거북이가 아이가 휘두른 크리켓 배트에 맞아 날아갔다는 걸 굳이 그렇게 보여 줘야 했나?
나는 가벼운 '코미디'를 기대하고 영화관에 간 건데, 내가 왜 거기서 그런 식으로 폭력이 묘사될 때 어깨를 움찔거리며 불편해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걸 다른 수단으로, 충격을 완화시키는 방식으로 표현할 방법이 분명히 있을 텐데 말이다. 예를 들어 만화로 대체한다든가, 은유법을 쓴다든가.
실제로 날아오는 파라솔에 배를 꽂혀 그렇게 큰 부상을 당할 수 있는지, 그것이 정말 가능한지는 제쳐 두고서라도, 왜 굳이 그런 '강한' 설정을 넣었는지 전혀 모르겠다. 나는 이 점이 내내 꺼려졌다.
게다가 멜리가 본인 가족에게도 구박받고 사니까 불쌍한 애라는 건 알겠는데 영화 내내 혼자 우울해하니까 답답하다.
고래 이야기 또한 이 영화 속에 왜 있는지를 모르겠다.
영화 막바지에 시장이 사람들을 고용해 이 썩은 고래 시체를 폭파시켜 버리는데, 그걸 보는 순간 내 머릿속엔 "저거 그냥 터지는 걸로 끝날 리가 없는데. 산산조각 나서 다시 떨어질 텐데. 그건 생각하고 폭파시키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장면에선 정말 산산조각 난 고래 고기가 마을을 덮쳐 구경꾼들이 소리를 지르고 뛰어간다.
시장이 고용한 전문가들도 당혹한 표정이다. ...왜? 직업이 폭파 전문가인 사람들이 그걸 생각을 못 했다고?
감독님, 진짜 이런 식으로 억지를 써서 영화를 만드시면 어떡해요...
<프리실라(The Adventures of Priscilla, Queen of the Desert)>의 감독이 만든 영화라고 해서 기대하고 봤는데 와장창 깨졌다.
그러고 보니 이 감독의 <이지 버츄(Easy Virtue)>도 결말이 여주와 진짜 상상도 못한 인물과 그 집안을 떠나는 거여서 엄청 놀랐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에서 소소하게 웃음을 주는 장면이 있다면, 부모들이 제프와 멜리의 관계를 알게 되고 이 두 청소년들을 이어 주려고 애를 쓰는 장면이다.
그게 유일하게 이 콩가루 집안 부모들이 자녀에게, 정말 이상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마음 쓰는구나 느낄 수 있는 때이다.
IMDB 리뷰를 보니 1970년대 오스트레일리아의 모습을 아주 잘 재현해 냈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는 글이 있다.
검색을 해 보니 당시 문화를 알아야 웃을 수 있는 농담, 점프수트, 터퍼웨어에 나오는 음식 등이 그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나야 그 당시가 어땠는지 모르니 공감하기가 어렵다.
1970년대의 오스트레일리아 문화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을 듯하다(저는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고 나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Breaker Uppers(브레이커 어퍼스, 2018) - 대신 헤어져 드립니다 (0) | 2018.07.30 |
---|---|
[영화 감상/영화 추천] Blockers(블로커스, 2018) - 섹스하려는 아이들, 말리려는 부모들 (0) | 2018.07.23 |
[영화 감상/영화 추천] Paper Planes(종이 비행기, 2014) (0) | 2018.07.16 |
[영화 감상/영화 추천] Battle of the Sexes(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2017) (0) | 2018.07.09 |
[영화 감상/추천] Ideal Home(아이디얼 홈, 2018) - 환장의 게이 커플, 얼떨결에 손자를 떠맡다!? (0) | 2018.06.28 |
[영화 감상/추천] Isle of Dogs(개들의 섬, 2018) -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0) | 2018.06.07 |
[영화 감상/추천] Life of the Party(라이프 오브 더 파티, 2018) - 마야 루돌프, 빛나는 신 스틸러 (0) | 2018.06.06 |
[영화 감상/추천] The Dressmaker(드레스메이커, 2015) - 화려한 패션과 그보다 더욱 눈부신 복수 (0) | 2018.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