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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추천] Isle of Dogs(개들의 섬, 2018) -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by Jaime Chung 2018.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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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추천] Isle of Dogs(개들의 섬, 2018) -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 

얘가 주인공 아타리이다(옷이 심히 사이버 전사스럽다...)

아타리는 '스팟츠'를 찾으러 다닌다

이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개들의 털은 알파카의 털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배경은 메가사키(Megasaki)라는 일본의 (가상의) 한 도시. 개 독감이 널리 퍼지자 시장인 코바야시(Kobayashi, 쿠니치 노무라 분)는 도시에서 모든 개들을 추방할 계획을 세운다.

한 과학자가 개 독감의 치료약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시장은 이를 무시하고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얻어 시내의 모든 개들은 쓰레기 하치장인 섬으로 보내 버린다.

하지만 그의 양자인 아타리(Atari, 코유 랜킨 분)는 자신을 헌신적으로 보호해 주던 개를 찾아 작은 비행기를 타고 쓰레기 섬으로 날아가는 모험을 감행한다.

과연 이 소년은 자신의 충성스러운 개를 찾아 데려올 수 있을까?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제일 걱정했던 것은 '일본 미화로 가득 찬, 와패니즈(Wapanese, Japanese Wannabe의 준말) 영화면 어떡하지?'였다.

예고편에서 볼 수 있듯이 극 중 배경이 일본인 데다가 일본인 인물들은 일본어로 말한다(일본어 대사는 통역가라는 캐릭터를 통해 영어로 옮겨 전달된다).

심지어 포스터에도 '개들의 섬'이라고 쓰여 있다.

자, 이런데 일뽕 영화가 아닐 것인가? 아무래도 한국 관객들로서는 예민하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내 걱정은 기우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일본 전통 북 춤이나 신사 등이 영화 속에서 등장하긴 하지만, 그것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일본의 문화를 열심히 조사하고 연구해서 잘 녹여 낸 것이지, 딱히 감독이 거기에 취해 있다는 느낌은 없었다.

일본인 인물들의 얼굴 생김새나 체형도 '일본인답게' 잘 그려 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동양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진 서양인들이 동양인들을 묘사할 때 종종 과장되게 찢어진 눈을 그리고는 하는데, 여기 일본인들 외양 묘사에는 그런 오버가 없다.

'동양인을 그려야지!' 하고 그린 게 아니라 그냥 '이러이러한 캐릭터를 그려야지!' 하고 생각하고 그린 것 같다.

고바야시 시장 뒤를 따라다니는 비서 격 인물이 마치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괴물[각주:1]처럼 회색 피부에 거대하지만 등이 굽은 인물로 그려지기는 한다. 하지만 이건 이 사람이 뱃속이 시커먼 인물이라 그런 성격을 외적 특징으로 끄집어 낸 것이지, 동양인을 비하해서 괴물처럼 그렸다고 볼 수는 없다.

동양인이 '동양인'이라는 정형화된 캐릭터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 그려진다. 나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딱히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일본을 미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없었고. 그래서 정말 마음 편안히 즐길 수 있었다.

왜 굳이 일본을 배경으로 했는지 나름대로 추측을 해 본다면, 일본 문화에서 고양이가 (아마 이집트 다음으로) 많이 등장하니까, '그렇다면 고양이를 너무 좋아해서 개를 싫어하게 된 사람도 있지 않을까?' 뭐 이런 상상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싶다(개 대 고양이 대결 구도는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것 같다).

영화 시작할 때 왜 고바야시 시장네 가문이 개를 싫어하게 되는지를 설명해 주니 말이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어쨌든, 버림받은 외롭고 차가운 개였던 치프(Chief, 브라이언 크랜스턴 분)가 아타리를 만나 점점 충실한 애완견이 되어 가는 과정이 귀엽고 재미있다.

아타리가 막대를 던지고 물어 오라니까 처음 두 번 정도는 "난 그런 거(fetch) 안 한다."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이러는 건 네가 명령해서 그런 게 아니라 네가 불쌍해서 그런 거다."라며 막대를 물어 온다.

나중에 치프에 대한 반전이 있긴 한데 억지스럽지는 않다. 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굳이 억지스러운 걸 찾자면, 우리가 극 중에서 보게 되는 이름 있는 개들이 다 여기 등장하는 인간 캐릭터들의 애완견이었다는 것.

도시에 개가 몇 마리인데 그 개들 주인이 다 우리가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사람들이라고요? 에이. 그렇지만 이건 영화니까 봐주자.

 

아타리의 개 '스팟츠(Spots, 리브 슈라이버 분)'가 쓰레기 섬으로 보내진 지 약 6개월 정도가 지난 후가 극이 진행되는 배경인데, 고작 그것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개들 사이에선 이미 '첫 개'라고 불리며 엄청 오래된 것처럼 말하는 게 조금 웃기고 귀여웠다.

하긴, 인간이 느끼는 시간과 개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은 다르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조금 뻘할지는 몰라도, 우리는 개조차도 성별 프레임을 통해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영화 초반에 치프가 자기를 따르는 개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너희들 이름은 '킹(King)', '렉스(Rex, 라틴어로 '왕')', '듀크(Duke)', '보스(Boss)'이지 않느냐고, 왜 그렇게 길들여진 애완동물처럼 나약한 소리를 하느냐고 꾸짖는 장면이 있다.

다 강인하고, 권력을 가진 존재들과 관련된 이름들이다(이 영화를 안 봤어도 이 말을 듣고서는 '아, 그럼 수컷 개들이겠구나.' 하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암컷 개들의 이름도 유심히 봤다. 여주인공 격인 개의 이름은 '넛메그(Nutmeg)', 육두구라는 향신료를 가리킨다.

스팟츠의 짝인 암컷은 '페퍼민트(Peppermint)'. 향이 좋은 허브로 차 등에 많이 쓰인다는 건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이다. 이 둘 다 '향이 좋다'는 특성이 여성성과 연결된다.

틸타 스윈튼(Tilda Swinton)이 목소리를 연기하는 자그마한 개는 '오라클(Oracle)'이다.

오라클은 TV를 보고 그 내용을 이해하는 영리한 개인데, 말하자면 직업에서 이름이 연유된 셈이다(오라클은 고대 희랍에서 신탁을 받는 사제를 뜻하는데, 델포이의 여성 사제들이 유명하다).

이 오라클의 파트너 격인 개는  '주피터(Jupiter)'. 이 주피터는 로마 신화의 우두머리 신 이름이고, 그리스 신화로 치면 제우스에 해당한다. 얘는 당연히 수컷이다.

여기까지 보고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개에게도 암수를 구별해 그 성에 맞는 이름을 부여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그 '성에 맞는다'는 건 우리가 인간 남성, 여성에게 가지는 개념들이고 말이다.

특이하게도 '스팟츠'라는 이름만이 '점박이'라는 뜻이고 중성적이라 할 수 있는데, 오히려 중성적이기에 더욱더 수컷 개에게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암컷 개에게 '스팟츠'라는 이름을 붙인다면? 수컷 개에게 같은 이름을 붙이는 것보다는 덜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여성은 언제나 그 성을 감추거나, 적어도 전면에 떠오르지 않도록 할 수 없다고 여겨지니까 말이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헷갈린다면, 많은 예술(특히 문학)에서 '남성이 기본 성, 즉 그냥 인간이고 여성은 여성'으로 묘사된다는 점을 상기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이건 영화고 영화 속에서는 동물이 말하고 움직이고 생각하는 존재로 의인화되기 때문에 우리가 같은 인간을 대하듯 이 동물들을 생각하게 되어서 더욱더 그렇게 느껴진 걸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나에게는 한번 생각해 볼 법한 주제였다.

 

이 영화 평을 '웨스 앤더슨이 들려주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쓴 것은, 전반적인 느낌이 그렇기도 하거니와, 특히 마지막 결말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아래 복권은 스포일러도 상관없다는 분들만 긁어 주세요.

마지막에 아타리가 메가사키 시의 시장이 되는데 고바야시가 죽었다고 해서 양자인 얘가 시장이 될 수 있나?

시장직이 무슨 왕도 아니고 물려줄 수가 있어? 내 생각엔 이거야말로 되게 일본스러운 일이다.

일본에서는 지방 의회 의원이 죽고 난 후 자녀가 그 자리를 물려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이거 픽션 아니고 실화 바탕이었나 싶었다.

게다가 아타리랑 같이 모험을 한 친구들도 다 한 자리씩 맡는다. 얘네 다 중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띠용???

이런 의미에서 나는 그냥 '주인공은 공주와 결혼해 왕이 되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하는 식으로 끝나는 동화 같은 결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웨스 앤더슨만의 미적 감각이 이번 애니메이션 영화에서도 잘 발휘되었다.

이분의 미적 감각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하는 게 오히려 우스울 듯하니 그냥 나는 자막 얘기만 하겠다.

화면에 일본어가 나올 때 자막이 딸려 나오는데 포스터에 쓰인 'Isle of Dogs' 글씨와 같은 폰트로 스타일리시하게 보여 준다.

자막을 배치하는 센스도 좋다. 원문을 고려하면서 안정감 있게 잘 배치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 느낌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무슨 말인지 다 아실 듯.

 

 

참고로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Rushmore, 1998)> 이후로 웨스 앤더슨 감독의 사단 중 일원이었던 제이슨 슈워츠먼(Jason Schwartzman)은 이번 영화에는 연기에 참여하지 않고 각본 작업만 같이했다. 아쉽다.

또 다른 트리비아로는, 미국에서 온 교환 학생 '트레이시(Tracy)' 역을 맡은 그레타 거윅(Greta Gerwig)은 프랑스어가 유창한 덕에 프랑스어 더빙 버전에서도 그대로 트레이시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 제목은 말장난이다. 'Isle of Dogs'는 빨리 말하면 'I Love Dogs'처럼 들린다.

 

  1. 흔히 얼굴이 녹색이고 머리에 나사가 달린, 인간이 만들어 낸 인간형 괴물을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이 맞는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괴물을 만들어 낸 과학자의 이름이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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