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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ad Within(더 로드 위드인, 2014) - 은유로서의 질병, 우정, 그리고 삶

by Jaime Chung 201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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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Road Within(더 로드 위드인, 2014) - 은유로서의 질병, 우정, 그리고 삶

 

 

감독: 그렌 웰스(Gren Wells)

 

한 여인의 장례식. 추모의 대상인 여인의 아들은 몸이 불편한 듯, 아니면 재채기를 참는 듯 몸을 비비 꼬다가 갑자기 욕설을 내지르고 장례식장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온다.

이 청년의 이름은 빈센트(Vicent, 로버트 시한 분). 그는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행동을 하거나 소리를 내는 '투렛 증후군(Tourette Syndrome)' 환자다. 그의 경우는 욕설을 하거나 손가락 욕을 하고 몸을 비틀듯 경련을 일으킨다.

장례식이 끝난 후, 이미 새 배우자를 찾은 빈센트의 아버지 로버트(Rober, 로버트 패트릭 분)는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까지 술을 마시며) 살던 집을 팔아 버릴 거라고 한다.

그러고는 빈센트에게 어떡할 거냐고 묻는다. 빈센트는 어머니가 늘 대양을 좋아했다며, 어머니의 뼛가루를 가지고 바다를 보러 갈 거라고 대답한다.

아버지는 빈센트에게 (그의 질환 때문에) "세븐 일레븐에도 못 가지 않느냐"며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일축해 버린다. 그리고 그를 클리닉으로 데리고 간다.

클리닉에서 만난 로즈 박사(Dr. Rose, 카이라 세드윅 분)는 빈센트에게 낫고 싶지 않느냐고, 만약에 투렛 증후군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뭘 하고 싶은지 묻는다. '고등학교를 끝내고 아마 대학에도 가고 싶다'고 대답한 빈센트. 그래서 그곳에 입원한다.

그와 같은 방을 쓰게 된 룸메이트는 청결에 집착하는 강박증 환자 알렉스(Alex, 데브 파텔 분)로,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과 신체 접촉을 역병처럼 피하고 싫어한다.

그리고 빈센트에게 다가온 또 다른 환자 마리(Marie, 조 크라비츠 분)는 거식증을 앓고 있다.

마리는 '신입' 환자 빈센트에게 클리닉 주변을 소개시켜 주라는 지시를 받고 온 것이지만, 그래도 마리는 빈센트가 아예 싫지는 않은 눈치다. 둘은 조금씩 친해진다.

어느 날 마리는 로즈 박사의 차 열쇠를 슬쩍했으니 이 차를 타고 빈센트에게 클리닉에서 도망치자고 제안하는데...

 

왼쪽부터 마리, 가운데가 빈센트, 그리고 오른쪽이 알렉스이다.

 

<Vincet Will Meer> 또는 <Vincent Wants to Sea>라는 2011년 독일 영화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원작 영화는 못 봤지만 큰 틀은 같다. 투렛 증후군인 한 청년이 죽은 어머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어머니의 유골을 가지고 (다른 환자들과)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 원작에서는 이탈리아로 가는 것 같다. 이 미국 리메이크 버전에서는 원래 목적지가 캘리포니아지만.

로버트 시한(Robert Sheehan)은 영드 <미스핏츠(Misfits)>의 그 '존만이' 네이선(Nathan)으로 알고 계신 분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데브 파텔(Dev Patel)은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의 자말(Jamal)이나 <더 베스트 엑조틱 메리골드 호텔(The Best Exotic Marigold Hotel, 2011)>과 그 후속작의 소니 카푸어(Sonny Kapoor)로 우리나라 관객들도 여러 번 보아서 친근하게 생각하는 배우가 아닐까(나만 그렇게 느끼나?). <채피(Chappie, 2015)>에서 디온 윌슨(Deon Wilson) 역을 하기도 했고.

조 크라비츠(Zoe Kravitz)는 나는 <Beware of the Gonzo(2010)>의 이비(Evie), <Rough Night(레이디스 나잇, 2017)>의 블레어(Blair)로 기억하고 있다.

나머지 배우들은, 음... 솔직히 초면이다. 하지만 다들 연기력이 좋다.

특히 로버트 시한은 투렛 증후군 환자를 연기하는데 어쩜 그렇게 진짜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경련이 오는 것 같은 연기를 잘하는지 놀라웠다.

IMDB의 트리비아(trivia) 정보에 따르면 로버트 시한은 투렛 환자 연기를 위해서 '미국 투렛인 협회(The Touretts Society of America)'의 대변인 잭슨 크레이머(Jackson Kramer)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이라는 수잔 손탁(Susan Sontag)의 책 제목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영화를 보다 보면 빈센트, 마리, 그리고 알렉스가 가진 '질환'이 삶의 비유라는 것을 그저 느끼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빈센트가 자신의 욕설이나 경련을 통제할 수 없는 게 마치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슬프거나 두렵거나 분노하게 만드는, 나쁜 일을 겪을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속에서 딱 한 번 빈센트가 틱(tic) 증상이 일어나지 않아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는 장면이 나온다.

상황인즉슨, 로드 트립을 하다가 돈이 떨어지자 그가 자신의 틱 증세로 주유소 직원의 관심을 끄는 동안 마리가 물건을 훔치기로 한다.

그런데 생각과 달리 빈센트의 입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욕도 나오지 않고, 그의 몸은 경련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유소 직원의 관심을 돌릴 수가 없어서 마리의 절도 계획은 실패.

마치 재채기를 하려고 기대하고 있으면 오히려 재채기가 안 나오는 것처럼, 살다 보면 이렇게 우리가 기대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는 때도 종종 있다. 삶의 작은 아이러니라고 할까.

 

마리의 병인 거식증은, 로즈 박사 말마따나 '정신의 병(disease of the mind)'이라 우리는 그녀에게서 뼈와 거죽만을 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지방만을 본다.

이 사실 역시 우리가 보는 나와 남이 보는 나가 언제나 같지는 않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건 좋은 의미일 수도 있고 나쁜 의미일 수도 있지만 마리의 경우에는 그게 건강하지 않은 방식이었던 거다.

정말 말랐는데도 자신이 뚱뚱하다고 느끼고, 빈센트가 자신을 몹시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해 주는데도 마치 자신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듯 얼굴을 돌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마리. 

그게 꼭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살면서 자주 하는 실수처럼 느껴졌다(노파심에 하는 말이지만 정신과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을 너무 가볍게 여기고 적절한 치료법을 찾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에게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는데 그러지 못하고 쭈굴쭈굴하게 하고 다닌다거나, 자랑스럽게 여겨도 될 자신의 성취를 '고작 이런 거 가지고'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자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삶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가장 큰 오류가 아닐까. 이건 왜 그다지도 고치기 힘든지. 마치 영화의 결말도 그걸 반영하는 듯하다(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테니 말하지 않겠다).

 

알렉스의 강박증은 차 문이든 가게 문이든 일단 들어가기 전에 네 번 열었다 닫았다 해야 하는 형태 또는 세균을 극히 두려워해서 타인과의 접촉을 완전히 피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자신이 원해서 빈센트랑 마리와 함께 로드 트립을 떠나게 된 건 아니지만, 우여곡절 끝에 그들과 친구가 되고 나서 자신의 병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이 병이 내 세상을 좁디좁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건 마치 '~해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에 얽매여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표현하는 말인 것 같았다.

알렉스처럼 강박증으로 발현되지는 않더라도, 예컨대 '나는 맏이니까 완벽한 딸/아들이 되어야 해'라든지 '나는 머리가 좋지 않으니까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노력해야 해.' 따위의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하지만 그게 사실인가? 정말로 우리가 그 많은 것들을 다 '해야만' 하는가?

우리의 그런 '규칙'들을, 강박증 환자가 다른 사람의 손이 조금 닿았다고 기겁하면서 손을 박박 문질러 씻는 것처럼, 오버스럽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다행히도 알렉스는 영화 내에서 눈에 띄게 증세가 호전된다. 빈센트랑 마리와 접촉하면서(글자 그대로나 비유적으로나) 균에 대한 두려움을 많이 덜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나중에는 빈센트의 (당연히 며칠간 안 빨았을) 바람막이도 그냥 입는다. 다른 물건과 접촉하면 균이 옮아 병에 걸려 죽을까 걱정해서 라텍스 장갑을 끼고 다니던 알렉스가 말이다!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로즈 박사가 빈센트의 아버지 로버트와 (본의 아니게, 그러나 아이들을 찾는다는 같은 목표를 위해) 같이 다니는 설정은 약간 '어, 러브 라인 만들려고 그러나? 그럼 좀 억지인데...?' 싶었지만 다행히 러브 라인까지는 안 가더라.

그냥 로즈 박사가 로버트로 하여금 아들을 좀 더 이해하게 하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게 하는 인물로 기능해서 다행이었다.

둘이 서로 티격태격하며 '같이 다니다 보니 사랑에 빠졌어요~' 이런 전개였으면 얼탱이가 없어서 좋은 영화 망쳤다고 했을 듯. 다행히 그런 말도 안 되는 거 안 하니까 마음 편히 보셔도 된다.

 

로버트 시한은 잘생겼고, 이야기 전개는 좋으며, 이것저것 생각할 거리도 주는 좋은 영화다.

아주 어두울 수도 있는 이야기를 무거운 분위기로 풀어내지 않았다는 점이 특히 마음에 든다. 결말까지 아주 괜찮다. 추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영화 초반에 빈센트가 말한 "전 아버지 생각만큼 절망적인 경우는 아니거든요!(I'm not as hopeless as you think!)"라는 대사가 이 영화를 요약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그렇다. 우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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