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A United Kingdom(오직 사랑뿐, 2016) - 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에 굴복하도록 하자
감독: 엠마 아산테(Amma Asante)
배경은 1947년 영국 런던. 백인 여성 루스(Ruth, 로자먼드 파이크 분)는 자매 뮤리엘(Muriel, 로라 카마이클 분)을 따라 파티에 갔다가 그곳에서 한 흑인 남성에게 한눈에 반한다.
그 남자도 루스를 보고 사랑에 빠진 듯, 그녀에게 다가와 춤을 청한다. 그의 이름은 세레체(Seretse, 데이빗 오예로워 분), 현재의 보츠와나에서 온 유학생이었다. 둘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춘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어느 날 세레체는 루스를 파티에 초대한다. 밤새 춤과 음악을 즐기다가 세레체는 루스를 집에 바래다 주겠다며 일어선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다닌 둘.
새벽에서 아침으로 바뀔 시간쯤, 루스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발걸음을 멈춘 그는 그에게 고백한다.
사실 자신은 보츠와나의 왕자이고, 자신이 영국에서 공부할 동안 셰키디(Tshekedi, 부시 쿠넨 분) 삼촌 자신을 대신해 섭정을 맡아 주었다고, 자신은 곧 돌아가야 한다고. 하지만 당신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면 슬프다고.
루스는 그럼 자신을 또 보면 된다고 상냥하게 대답한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두 사람.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레체는 길을 가다가 무릎을 꿇고 루스에게 청혼한다. '지금 당장 대답을 할 필요는 없으니 집에 가서 생각해 보고 대답해 달라'는 세레체에게 루스는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알고 있다'며 그 자리에서 바로 승낙한다.
그렇지만 며칠 후, 루스의 일터에 영국 외무부 사람이 찾아와 '외교상 세레체와의 결혼은 승인할 수 없다'고 으름장을 놓는데... 과연 세레체와 루스는 제국주의의 압박에 굴복할 것인가?
보츠와나에 처음으로 도착해 기쁨을 나누는 루스(왼쪽)와 세레체(오른쪽)
첫 딸 재클린을 안고 있는 루스와 세레체
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그 말인즉슨, 실화 자체가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라는 뜻이다.
백인 영국 여성과 결혼한 보츠와나의 왕자 이야기는 마이클 덧필드(Michael Dutfield)가 조사해 <A Marriage of Inconvenience>란 제목의 책으로 펴냈는데, 책 제목 한번 기가 막히지 않습니까.
사랑에 기반하지 않은, 가세 유지나 재산 상속 따위를 위한 정략결혼을 'marriage of convenience('편의를 위해 하는 결혼')'라고 하는데, 이 두 사람은 오직 사랑을 위해 온갖 불편함과 국가적 충돌을 초래한 결혼을 했으니 이렇게 표현한 거다. 아, 로맨틱해.
이 책은 1990년에 같은 제목의 TV용 영화로도 제작됐다.
수잔 윌리엄스(Susan Williams)가 쓴 <컬러 바(Colour Bar)>도 역시나 이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수잔 윌리엄스의 책 겉표지 모습
이 로맨틱한 실화를 대략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데이빗 오예로워(David Oyelowo)가 연기한 세레체 카마(Seretse Khama)는 베추아나랜드(Bechuanaland, 1940년대 당시 보츠와나의 국명)는 그의 삼촌 셰키디가 섭정을 보는 동안 영국 런던에 와서 왕이 되기 위한 공부를 했다(세레체의 아버지는 그가 고작 3살 때 숨을 거두었다).
로자먼드 파이크(Rosamund Pike)가 연기한 루스 윌리엄스(Ruth Williams)는 런던의 보험 업계에서 일하는 타이피스트였다.
그녀는 그 전에는,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여성 보조 공군(Women's Auxiliary Air Force)에서 파일럿들을 구해 앰뷸런스로 실어다 주던 일을 했다.
1947년 6월, 루스의 자매인 뮤리엘이 루스를 세레체에게 소개해 주어 둘은 처음 만나게 됐다.
수잔 윌리엄스의 책에 따르면(이 영화는 그녀의 책을 바탕으로 했다), 사실 루스는 세레체에게 '첫눈에 반한' 건 아니었던 듯하다. 하지만 세레체는 그녀를 보자마자 푹 빠졌고, 둘 다 재즈 음악을 좋아했으며 처음 만난 이후 몇 달 동안 무도장에서 만나 춤을 추고 밤새 이야기를 했다.
세레체는 나중에 그녀에게 자신의 데이트 상대로 한 파티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 이후엔 여러분이 이미 들은 것처럼, 그녀에게 청혼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둘이 결혼을 발표하기도 전에 루스의 아버지는 자기 딸이 흑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못마땅해했다.
왼쪽은 실제 루스 윌리엄스와 배우 로자먼드 파이크를 비교한 사진이고 오른쪽은 실제 세레체 카마와 배우 데이빗 오예로워를 비교한 사진이다.
둘이 결혼 날짜를 잡자, 세레체는 삼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삼촌은 두 사람의 결혼을 막으려 했으며, 세레체에게 즉각 보츠와나로 돌아올 것을 명했다.
보츠와나의 관습에 따르면 족장(chief)는 그 부족이 정한 여성과 결혼해야 했는데, 백인 영국 여성인 루스가 그들의 맘에 들 리는 만무했다.
런던의 주교(Bishop of London)도 둘의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이 커플은 그에 굴하지 않았다.
그들은 1948년 9월에 세속 예식을 통해 결혼을 했다. 세레체가 고국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아내를 받아들여 달라고 설득하기 전까지 그들은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았다.
이 때문에 보츠와나 왕자의 인종을 초월한 결혼 때문에 이 왕자가 왕권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인정할 것인가 아닌가를 토론하는 모임, 즉 코틀라(kgotlas)가 열렸다.
보츠와나의 여러 부족들이 모여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였는데, 이 일로 삼촌 셰키디와 세레체의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1948년 겨울의 코틀라에서는 세레체와 루스에게 불리한 결과가 나왔지만, 이 젊은 변호사(세레체는 영국 런던에서 법학을 공부했다)의 진득하게 설득하자 마침내 여러 부족들이 그의 결혼을 인정하게 됐다. 1949년 6월의 일이었다.
이렇게 보츠와나의 여론이 바뀌자, 두 달 후 루스가 보츠와나로 왔고 둘은 다시 함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승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위기감을 느낀 영국 정부가 (보츠와나와 남쪽의 국경을 남아프리카에서 이 둘의 결혼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당시 보츠와나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피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호를 요청했고, 따라서 영국에게서 내정 간섭을 받고 있었다.
또한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즉 흑백 분리 정책도 실시되고 있었다. 따라서 세레체와 루스가 군주로 군림한다면, 영국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었다.
영국에서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남아프리카의 황금과 우라늄 생산에 의존하고 있떤 터라, 아프리카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불리해질 일을 봐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세레체가 과연 왕의 자격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했고, 이 때문에 그의 즉위는 늦춰졌다.
1950년대 초, 루스가 첫 아이를 임신한 사이 영국 정부는 세레체를 런던으로 불러 놓고는 '그 보고서(세레체의 자격에 관한)를 검토한 결과, 세레체를 5년간의 망명에 처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소식을 전달했다.
그 보고서는 분명히 세레체에게 보츠와나의 왕으로서 통치할 자격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말이다. 둘의 결혼이 그냥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첫 아이이자 딸인 재클린(Jacqueline)이 태어나자 보츠와나에서 잠시 만난 것을 제외하고, 루스와 세레체는 각자 있는 곳에서 세레체의 통치권을 위해 싸웠다.
1951년 10월, 수상으로 재임에 성공한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이 그들을 지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보이자 이들은 희망을 느꼈다.
하지만 처칠은 자신이 속한 보수파가 권력을 잡자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세레체를 보츠와나에서 평생 추방시켰다.
당연히 세레체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 결정에 충격을 받았다.
세레체와 루스는 보츠와나가 아닌 영국에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서 1953년 그들은 첫 아들 이안(Ian)을 보았다.
딱 봐도 알겠지만 왼쪽이 실제 세레체와 루스 커플 사진이고 오른쪽은 영화 내에서 배우들이 분한 모습이다.
평생 추방 명령이 내려진 지 6년 후인 1956년에 세레체가 왕권을 포기한다면 카마 가족은 보츠와나로 돌아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루스는 1958년에 쌍둥이 아들 앤소니(Anthony)와 셰키디(Tshekedi)를 낳았고, 이렇게 가족이 점점 많아지는 동안 세레체는 소를 키웠다(영화에는 이 이야기는 안 나온다).
하지만 세레체는 1961년, 베추아나랜드 민주당(Bechuanaland Democratic Party)을 설립하며 민간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 세레체는 1965년, 베추아나랜드의 첫 수상으로 뽑힌다. 그리고 1966년, 자신의 나라를 독립시키고 국명을 '보츠와나'로 바꾼다.
그는 같은 해, 보츠와나에서 처음으로 민주적인 방식으로 당선된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다이아몬드와 풍부한 광물 자원의 도움을 받아, 보츠와나를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중간 수준의 소득을 가진 나라로 탈바꿈시켰다.
세레체는 그 후 10년간 여러 번 당선되었지만, 건강이 점점 좋지 않아져서 198년에는 췌장암 판정을 받았다.
그는 그해 59세의 나이로 사망했고 보츠와나의 왕립 묘지에 묻혔다. 그로부터 22년이 지난 후인 2002년에 루스로 향년 78세의 일기로 그의 옆자리에 묻히며 다시 그와 하나가 되었다.
2009년에는 이 둘의 장남인 이안이 보츠와나의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세상에, 너무나 완벽한 마무리 아닌가.
실제로 이안 대통령은 이 영화가 촬영 중일 때 촬영 현장을 (미리 알리지 않고) 방문해 로자먼드 파이크가 연기하는 걸 보더니 데이빗 오예로워에게 "부모님을 다시 뵙게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고 한다.
데이빗 오예로워에게는 이 순간이 참 놀랍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고.
위가 실존 인물 루스와 세레체의 당시 사진이고 아래는 영화 속 한 장면이다.
영화에는 루스가 보츠와나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한 끝에 마침내 보츠와나 여인들의 마음을 얻는 데 성공하고, 그 결과 보츠와나 여인들이 '세레체의 아내는 새벽별(morning star, 금성을 의미한다)처럼 빛난다네' 하는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실제로도 처음에 루스는 보츠와나 사람들에게 외면받았으나 차차 현지인들의 믿음과 사랑을 얻게 됐다.
그렇지만 영화에서 보츠와나 여인들이 이런 노래를 부른 건 순전히 즉흥적인 애드립이었다고.
재미있는 건, 이 영화에서 사랑을 위해 자신의 왕권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 인종 간 결혼을 하는 역할을 맡은 데이빗 오예로워가 실제로도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은 영화 내에서 이 문제를 외교적 문제이자 보츠와나에서 자신의 힘을 강화하는 데 이용해 먹으려 하는 영국 외무부 직원 알리스터 캐닝(Alistair Canning)의 부인, 릴리 캐닝(Lilly Canning)의 역할을 맡은 제시카 오예로워(Jessica Oyelowo)이다!
말하자면 이 두 캐릭터는 서로의 대척점에 있는 인물인데 실제 부부가 이렇게 서로에게 대항하는 역을 맡다니 이 무슨 캐스팅 디렉터의 장난인가!
하지만 어디까지나 연기는 연기일 뿐이고, 둘은 실제 부부다. 두 분 이 영화처럼 아름다운 사랑 계속 이어나가시길...♥
"사랑은 온유하고 사랑은 오래 참으며, 시기하지 아니하고..."로 시작하는 성경 말씀도 좋고,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없다"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격언도 좋다.
똑똑한 각본가들이 만들어 낸 유쾌한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도 좋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보고 믿을 수 있는 '증거'가 있는, 조금 더 사실적인 사랑 이야기를 원한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하고 감동을 받으며 사랑에 대한 믿음을 다시 새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테니 말이다.
그러면 오늘 리뷰는 내가 좋아하는, 베르길리우스(Virgil)의 라틴어 격언으로 갈음할까 한다.
"Amor vincit omnia, et nos cedamus amori(사랑이 모든 것을 정복한다. 그러니 우리도 사랑에 굴복하도록 하자, Love conquers all things, so we too shall yield to love)."
세레체와 루스에 대한 실화를 설명한 부분은 다음의 기사를 참고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다음 기사를 읽어 보셔도 좋을 듯.
https://people.com/movies/united-kingdom-movie-real-life-love-story/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a-united-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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