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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궤도, <궤도의 과학 허세>

by Jaime Chung 2019.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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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궤도, <궤도의 과학 허세>

 

 

나는 타고난 문과인이지만 과학을 교양 수준이라도 배우기 위해 집어든 책이다.

'아는 척하기 좋은 실전 과학 지식'이라는 부제처럼, 실용적인 과학 지식을 아주 쉽고 재미있는 말투로 알려 준다.

 

신세대(라는 말 자체는 약간 구시대적이지만)스러운 신선하고 유쾌한 말투가 이 책의 큰 매력이다.

설명도 쉽게 잘한다. <왜 우리는 슈퍼 히어로에 열광하는가 - 돌연변이의 과학>이라는 꼭지에서 저자는 돌연변이를 슈퍼 히어로에 비유한다.

고등학교 생물 시간에도 배우듯이, 모든 돌연변이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산소를 운반하는 적혈구가 도넛 모양이 아니라 초승달 모양으로 바뀌는 돌연변이(겸형 적혈구)가 일어나면 빈혈이나 황달도 일어나고 주요 장기의 기능이 저하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말라리아에는 강하다. 말라리아는 주로 적혈구에 감염되는데 일반적인 적혈구와 다르게 생긴 겸형 적혈구는 말라리아가 쉽게 감염시키기가 어렵다.

만약 온 인구가 말라리아로 멸종 위기에 놓인다면 이러한 돌연변이 적혈구를 가진 사람만이 살아남을 것이다.

완벽하지 않은 소수의 돌연변이에 의해 우전자는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유전자는 또 다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한 높이기 위해 자연스러운 결함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우리는 진화라는 이름으로 그 과정을 이해한다.

이제 알았다. 우리는 돌연변이에 열광한다. 슈퍼 히어로 영화가 보여 주는 권선징악의 카타르시스나 잘 만들어진 컴퓨터 그래픽에만 열광하는 것이 아니다. 기존 체제에 순응하는 동일한 다수의 결정에 반기를 들며, 전혀 안전하지 않은 새로운 길로 소수의 혁명적인 발자국에 박수를 보내는 것이다. 영원한 인류를 위한 치열한 몸부림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크으, 멋지다.

 

이 책은 과학과 제일 거리가 먼 것 같은 귀신, 초자연적인 현상 이야기도 다루는데, 물론 괴담의 거짓을 밝히기 위함이다.

<읽지 말라는 글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 귀신의 과학>에서는 '현관 입구의 등이 혼자 켜지더라' 하는 괴담의 진실을 살펴본다. 설마 진짜 귀신이 몰래 들어와서?

그렇다면 왜 현관 입구의 등은 혼자 켜졌을까? 적외선 센서는 온도를 감지하기 때문에 사람의 몸이 아니라 뜨거운 공기가 현관에 침입해도 온도의 변화를 느끼고 불이 켜질 수 있기 떄문이다. 여름밤 창문을 통해 뜨거운 바람이라도 훅 들어온다면 불이 깜빡하고 켜질 수 있다. 귀신이 아니라 공기의 대류가 공포를 조장하는 원흉이었다.

아하! 이제 현관 입구 등이 저절로 켜져도 귀신의 짓인가 무서워할 일이 없다! 과학 만세!

 

<치킨코인으로 배달을 시켜 보자 - 암호화폐의 과학>은 내가 여태까지 읽어 본 암호화폐에 대한 글 중에서 제일 이해하기 쉽고 명료한 글이었다.

'내(글의 저자)'가 '당신(독자)'에게 현금 5만 원을 빌리며 이에 대한 증거로 카카오톡 메시지를 남겼다고 치자.

만약 '나'는 돈을 갚지 않으려고 이 카카오톡 메시지('내'가 '당신'에게 5만 원을 빌렸다는)를 해킹해서 지웠다면? 5만 원을 빌렸다는 증거가 사라졌으니 이 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고 사람들은 은행을 이용한다. 직접 지폐를 건네는 대신 계좌이체를 통해 은행에 암호화된 기록을 남긴다. 이러면 증거 인멸 문제는 쉽게 해결된다.

블록체인 기술이란, 말하자면 '나'와 '당신' 사이의 카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5천 만 국민이 참여하는 단톡방에 메시지를 남기는 거다.

이러면 모든 사람들이 이 내용(누가 누구에게서 얼마를 빌렸다)을 알게 되고, 이 모든 사람들의 폰을 해킹해서 메시지를 다 지운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보안이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선 용어부터 정리해보자.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가상화폐라는 표현부터 마음속에서 지우자. 가상화폐는 마치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통화와 같은 느낌이다. 정확하게는 암호화폐라고 한다. 단어의 핵심은 '암호'이며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만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하필이면 최초로 발행된 비트코인이 화폐 기능에만 집중한 암호화폐다 보니, '실물화폐 대체 가능성'만이 암호화폐의 전부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덩달아 블록체인 기술마저도 가짜 화폐를 만들어내는 위조 수단쯤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암호화폐는 실물화폐의 단순한 대체품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가치를 지닌다. 기존 화폐의 역할을 그대로 하지 않아도 좋다. 대신 탈중앙화와 암호화라는, 상당히 불가능한 상황을 동시에 만족하는 방법을 찾아낸 해결사다. 바로 블록체인이라는 기술로 말이다.

(...)

새로운 사람의 유입이 없고, 아무런 활동도 이루어지지 않는 단톡방은 의미가 없다. 이 단톡방에는 사용자가 최대한 많이 들어와서 꾸준히 카톡을 남겨주어야 한다. 그래야 보안이 강해지며 신뢰도가 높은 상태로 유지될 수 있다. 게다가 이러한 행위는 반드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중앙의 통제가 없는 탈중앙화가 가능하다. 타의에 의한 참여는 결국 또 다른 중앙을 만들어낼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의롭고 영리한 방식으로 사용자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제공한다. 바로 이것이 암호화폐다. 단톡방에 많은 사용자가 참여할수록 네트워크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함께 암호화폐의 가치가 높아진다. 암호화폐를 구현하기 위해 블록체인이라는 기슬을 개발했지만 결국 블록체인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암호화폐가 필요한 것이다. 이 둘 사이의 연결이 탈중앙화와 암호화를 완성시켰고 시장의 논리에 의해 스스로 자생해갈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이 탄생했다.

이제야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뭔지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비트코인 따위에 투자하는 일은 없겠지만. "가즈아!"는 무슨, 한강 갈 일 있나.

 

저자는 말을 웃기게만 쓰는 게 아니라 낭만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도 쓸 줄 안다.

<과거의 당신을 만날 수 있다면 - 시간여행의 과학>이라는 꼭지는 이렇게 시작한다.

중년을 지나 늦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상상하곤 한다. 젊은 시절의 그 혹은 그녀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것은 육체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호기심보다는 훨씬 고차원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당신이 미처 만나지 못했던, 당신이 없던 시절 당신의 연인은 어떤 모습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지 무엇을 고민하고 시간을 보넀을지 아련히 떠오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미래의 우리 모습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보게 된다.

크, 아름답다. 나도 '내가 이 사람을 좀 더 일찍 만나서 나와 그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다면 참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기에 이 글에 너무나 공감이 됐다.

저자가 과학자라서 이과 감성만 충만할 줄 알았더니 이렇게 로맨틱한 감성도 갖추었다. 멋있어...내가 이런 예쁜 글을 과학책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심지어 이 꼭지는 마무리도 완벽하다. 시간여행에 대한 설명을 끝내고 저자는 이 꼭지를 이렇게 덧붙인다.

머릿속 기나긴 우주여행을 끝내고 이제 당신의 하나뿐인 반쪽에게 다시 돌아오자. 다행히 연인과 혹시 과거나 미래에 도달하는 문제로 다툴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사랑의 결실로 예쁜 자녀를 낳게 된다면 육아에 지친 배우자에게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미처 만나지 못했던, 간절히 보고 싶었떤 너의 과거를 내가 볼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당신과 닮은 아이를 통해 당신의 과거를 만나고, 키워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지난 시간을 회상할 수 있다. 어쩌면 이런 게 진짜 시간여행일 수도 있다. 그럼 이만 가족과 함꼐 행복한 미래로 떠나기 바란다.

궤도 너란 과학자... 감성 충만한 과학자... 너는... love...

 

조금 주접을 떨긴 했는데 어쨌거나 저자의 말투가 내 글보다 웃기다. 그러니까 과학을 잘 모르거나 크게 관심이 없는(나처럼!) 분들도 일단 그냥 재미로 한번 들춰 보시라. 재미있는 글을 읽다 보면 과학 상식이 조금씩 쌓일 것이다.

청소년이 읽어도 쉽게 술술 읽히며 과학에 대한 흥미를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 같다.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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