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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Fighting with My Family, 2019) - 레슬링을 모르셔도 좋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원하신다면 강추!

by Jaime Chung 2020.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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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파이팅 위드 마이 패밀리(Fighting with My Family, 2019) - 레슬링을 모르셔도 좋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원하신다면 강추!

 

 

감독: 스테판 머천트(Stephen Merchant)

 

여기 한 이상한 가족이 있다. 열네 살 소년이 거실 TV에서 하는 WWE 경기를 보고 환호한다. 

그런데 그 남자애의 여동생이 TV 채널을 (현대에 사는 마녀들 이야기인 TV 시리즈) '참드(Charmed)'로 바꿔 버린다.

"내가 TV 보고 있었잖아!"로 시작한 이 남매의 싸움은 오빠가 여동생에게 헤드락을 거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남매가 싸우는 걸 본 아빠가 "너 여동생에게 뭐하는 거니? 헤드락은 그렇게 거는 게 아니지!"라며 '바른(?) 헤드락 자세'를 가르쳐 준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때 엄마가 끼어들어 "우리 딸, 그렇게 당하고만 있을 거니?"라며 딸의 반격을 부추긴다. 마침내 힘을 짜내 오빠를 메다꽂아 버린 딸.

이 이상한 가족은 아빠, 엄마, 두 아들, 그리고 딸까지 모두 레슬러인 집안이다. 이런 집안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어쨌거나 아빠는 레슬링 쇼가 며칠 안 남았는데 레슬러가 한 명 부족하다며, 딸에게 경기에 나가 달라고 부탁한다.

딸은 자신이 열세 살인데 레슬링 경기에 나가면 사람들이 자길 이상하게 볼 거라고 한번 거절하지만, 아빠의 애절한 부탁에 결국 허락하고 만다.

경기 당일, 이 소녀는 링 위에 올라 역시나 레슬러인 오빠를 상대로 싸워 이긴다.

사실 여동생이 이기는 쪽으로 결과는 미리 정해져 있었고, 둘은 각본에 맞춰 적당히 합을 맞춰 관객들에게 '쇼'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런데 온 가족이 레슬러인 이 가족, 정말 괜찮을까?

 

 

이 이야기는 최연소 WWE 디바스 챔피언(Divas Champion, 후에 여성 챔피언십(Women's Championship)으로 이름이 바뀜)이 된 페이지(Paige)의 이야기다.

본격적으로 리뷰를 시작하기 전에 전체 평부터 밝히고 시작하겠다. 나는 이 영화를 "재미와 감동 모두 잡은 영화"라고 소개하고 싶다.

레슬링, 그것도 여성 레슬러라는 소재를 다룬 것 자체가 흥미롭긴 하지만, 사실 레슬링은 마니아들이 아닌 일반 대중에게는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게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경기가'너무 폭력적'이라며 싫어하고, 어떤 이들은 '어차피 다 짜고 치는 쇼'라며 우습게 여긴다.

나도 솔직히 레슬링을 잘 모르고 이 영화를 봤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이 영화를 정말 진심으로 즐기고 감동받을 수 있었다.

 

위에서 영화 줄거리를 너무 극초반만 언급한 거 같으니 조금 더 살펴보자.

위 시놉시스에서 아들은 '잭 조디악(Zak Zodiac)'이라는 레슬러 이름을 가진 '잭(Zak, 잭 로던 분)'이고, 딸은 '사라야(Saraya, 플로렌스 퓨)'다.

사라야는 본명이고, 링 위에 올라갈 때는 '브리타니(Britani)'라는 레슬러 이름을 쓴다. 

사라야의 부모님도 앞에서 언급했듯 레슬러인데, 아빠는 리키(Ricky, 닉 프로스트 분), 엄마는 줄리아(Julia, 레나 헤들리)다(참고로 딸 사라야의 이름은 엄마 줄리아가 자신의 레슬러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잭 위에 로이(Roy)라는 이름의 큰아들도 있는데, 얘는 WWE 트라이아웃(tryout, 선수 선발 심사)에 떨어졌다고 화를 내며 물건을 집어던졌다가 죄 없는 불쌍한 사람을 맞혀 큰 부상을 입힌 죄로 감옥에 가 있다. 

잭과 사라야는 어릴 적부터 같이 합을 맞춰 레슬링을 해 왔고, 큰형/큰오빠가 그랬듯이 이 둘도 WWE 트라이아웃에 도전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잭은 떨어지고 사라야만 붙는다. 사라야는 잭이 없으면 레슬링을 할 수 없다며 포기하려 하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잡으라는 잭의 조언에 다시 마음을 돌려 WWE에 도전하기로 한다...

이 정도면 일단 영화에 흥미를 가지게 할 정도의 줄거리 소개는 한 것 같다.

아래에서는 본격적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이상의 줄거리도 언급될 것 같으니, 더 이상의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신다면 스크롤을 쭉 내려 실제 페이지의 사진 이후 문단들만 읽으시면 되겠다.

 

왼쪽이 이 특이한 레슬러 집안의 엄마 줄리아, 오른쪽이 아빠 리키
햇병아리 레슬러들에게 조언을 해 주는 '더 락'
WWE에 도전하기 위해 트라이아웃에 나간 페이지(=사라야=브리타니)(맨 왼쪽)와 잭(중간 금발)
자신의 캐릭터 색 확고하게 드러내는 페이지

 

어차피 실화에 기반한 영화라 스포일러라는 개념을 그다지 칼같이 적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이미 이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기 전부터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페이지에 대해 찾아보고 그녀의 사연을 알 수 있었으니까), 어쨌든 영화를 보러 가기 전 영화 정보는 최소한으로만 접하고자 하는 분들이 있으니 적당히 이렇게 나누어 보았다.

내가 이 영화를 감동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첫째, '관객이 몰입할 수 있는 주인공'이, 둘째,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단순히 페이지(사라야/브리타니가 WWE에 도전하며 레슬러 이름을 '페이지'로 바꿨다)가 지옥 훈련을 통해 신체적으로 강인해지고 마침내 WWE 여성 챔피언이 되었다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챔피언이 되려고 훈련하는 과정에서 페이지는 인격적으로도 성장한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일단 페이지는 영국 노리치(Norwich)라는, 별로 유명할 것도 없는 동네 출신이다.

그녀는 고스(Goth)족이다. 고스족이 뭔지 몰라도 페이지의 까만 머리, 창백한 피부, 검은 옷을 보면 '음, 하여간 평범하지는 않군' 하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오빠도 없이 홀로 NXT 챔피언십(NXT Championship, 그냥 간단히 WWE에 본격적으로 출전하기 전 신진 선수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가 되는, 2군들 리그라고 보면 된다)에 도전하지만, 자기와 달리 다른 여자 선수들은 금발에 쭉쭉빵빵.

게다가 그들은 자기처럼 '본격 레슬러'도 아니고 모델이나 댄서 출신이다.

자기만 튀고, 자기만 그 여자 선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페이지는 자기 캐릭터를 바꿔야 하나 하는 생각에 머리도 밝게 염색하고 태닝도 해 본다.

(실제로도 페이지 본인이 첫 번째 트라이아웃 때 금발 염색과 태닝을 시도했는데, 심사위원들은 이미 그런 이미지의 여자 레슬러는 많다고 판단해서 페이지를 뽑지 않았다.

페이지가 두 번째로 트라이아웃에 도전했을 때는 (지금도 유지하는) 그 유명한 고스 룩으로 돌아왔고, 이걸 색다른 캐릭터라고 판단한 심사위원들에 의해 통과했다.)

그래도 뭔가 나아지는 게 없는 것 같고 오히려 훈련이 죽을만큼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정도다.

다행히 잭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색을 고수하는 게 맞는다는 깨달음을 얻고 다시 까만 머리, 창백한 피부, 검은 옷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자신이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했던 다른 여자 선수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들과 친구가 된다. 나중에 페이지가 챔피언이 되었을 때 그들에게서 진심 어린 축하를 받을 정도로.

 

이렇게 페이지처럼, 자신이 너무 이상하다고,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외톨이라고 느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남들과 다른 점을 오히려 자신의 매력, 셀링 포인트로 여겨야 한다는 교훈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런 단순한 교훈도 관객들이 페이지에 몰입하고 감정 이입해 페이지의 입장에서 직접 '겪게' 된다면, 그 울림은 크고 오래 간다.

 

또한 이 영화는 형제/자매/남매 간에서 흔히 느끼는 경쟁 의식에 대해서도 다루고, 남을 빛나게 해 주는 이들의 고마움과 소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이 두 가지를 모두 보여 주는 캐릭터가 '잭'이다. 잭은 WWE에 데뷔하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열심히 훈련했지만, 트라이아웃에서 뽑힌 건 그가 아니라 페이지였다.

페이지가 훈련을 위해 미국 플로리다로 떠날 때부터 그들 사이는 소원해지고, 잭은 훈련이 힘들어 오빠에게 위안을 얻으려던 페이지의 전화도 일부러 받지 않는다.

페이지가 훈련이 힘들어 죽을 것 같아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잠시 고향에 돌아왔을 때(공식적으로 주어진 휴가 기간 중이었다) 그제서야 둘은 서로에게 진심을 드러낸다.

잭은 자신이 갖지 못한 기회를 여동생이, 그것도 자신만큼 그 기회를 강렬하게 원하지 않은 여동생이 그걸 잡았다는 게 너무 분하고 억울한데, 심지어 트라이아웃 심사위원 허치(Hutch, 빈스 본 분)에게서 'WWE에 나갈 재능이 없다'라는 소리까지 듣는다.

열등감과 분노에 사로잡힌 잭은 동네 술집에서 난동을 피운다. 이걸 아빠가 발견해 질질 끌고 데려오자, 페이지는 오빠와 이야기해 보겠다고 한다.

그리고 페이지에게서 "오빠가 아니라 내가 트라이아웃에 뽑힌 건 오빠 잘못도, 내 잘못도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빠 이름을 환호하지 않는다고 해서, 오빠가 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듣는다.

 

사실 이 말은 두 개의 층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잭이 '나이트(Knight, 이 가족 성씨)' 가족의 레슬링 훈련소에서 하고 있는 일 자체를 가리킨다.

그는 동네 양아치로 전락할 위기에 있는 청년 에즈(Ez, 모하메드 아미리 분)를 나쁜 친구들로부터 떼어내고, 시각 장애가 있는 칼럼(Calum, 잭 굴드본 분)에게 소리를 신호 삼아 레슬링하는 법도 가르친다.

누가 주위에서 이걸 두고 그에게 '잘하는 일'이라고 칭찬해 주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들은 여전히 의미 있고 남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다.

두 번째 층위는 WWE 트라이아웃 심사위원이자 코치인 허치에게도 해당되는 건데, '남들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으로서의 잭이다.

경기를 이기는 사람(=페이지)이 있으려면 지는(또는 져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잭이었다.

영화 속 드웨인 '더 락' 존슨(Dwayne 'The Rock' Johnson)은 허치를 두고 '나를 멋져 보이게 해 주려고 30피트(=약 10m) 케이지에서 떨어진 사람'이라고 언급하는데, 생각해 보라, 별은 암흑 속에 있어야 그 빛이 제대로 보일 것 아닌가.

이렇게 스타가 빛나게 하기 위해 암흑 바탕인 저니맨(journeyman, '그냥 보통 솜씨의 장인, 제구실을 하는 정도의 일꾼'이라는 뜻)이 필요한 거다.

그리고 잭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WWE에 나갈 정도의 실력은 안 되지만, 그래도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될 수 있다'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소홀히 하던 일(밴 몰고 레슬링 수업 듣는 학생들 태워 오기)도 부지런히 하고, 페이지에 대한 질투와 열등감도 모두 놓아버리고 정말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해 준다.

잭의 서사는 페이지의 서사에 비해 (서사에서조차!) 약간 뒤로 밀리는 느낌이 있으나, 그래도 영화의 의미를 풍부하게 해 주고, 감동을 더 깊게 만들어 준다.

 

이 영화의 기초가 된 실화의 주인공 페이지(사진은 WWE 공식 웹사이트에 있는 것을 가지고 왔다)

 

요약하자면, 이 리뷰 부제처럼 "레슬링을 모르셔도 좋습니다, 재미와 감동을 원하신다면 강추!" 하고 싶은 심정이다.

(스포일러 없이 단순히 주제만 나열하자면) 자신의 고유한 캐릭터를 유지하는 것, 타인과 어울리는 것, 형제/자매/남매 간의 경쟁 의식, 스타와 스타를 빛나게 해 주는 스턴트맨의 관계 등, 정말 생각해 볼 만한 거리를 많이 제공한다.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이것들을 마구 강요하는 것도 아니고, 웃음과 재미를 제공하면서 은근슬쩍 관객들이 그냥 '알아서' 느끼도록 은근히 제시한다.

페이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본 드웨인 존슨이 먼저 스테판 머천트(참고로 둘은 영화 <미스터 이빨요정(Tooth Fairy, 2010)>에 같이 출연한 인연이 있다)에게 연락해 이 소재를 영화로 만드는 것에 대해 제안했다는데, 페이지의 서사는 가히 그럴 만하다.

레슬링에 대해 모르고 관심이 없더라도 한번 꼭 보면 좋을 영화다. 제발 한번 봐 주세요!!

영화와 현실의 다른 점에 대해서는 아래 페이지들을 참고하시라. 다른 점을 찾아보는 것도 꿀잼(참고로 빈스 본이 연기한 '허치'라는 캐릭터는 전적으로 허구의 창작물이다)!

https://www.imdb.com/title/tt6513120/trivia?ref_=tt_trv_trv

http://www.historyvshollywood.com/reelfaces/fighting-with-my-family/

그리고 영화 끝에 크레디트 올라갈 때 잠깐 (영화의 기초가 된) 실제 인물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는데, 한 장면의 페이지 부모님 대사는 여기에서 바로 갖고 온 것들이 많다.

사실 이 영화 속 부모님 캐릭터의 외관을 아예 이 실제 부모님께 빌려 왔다고 해도 될 정도인데, 특히 어머니 줄리아의 빨간 염색 머리는 줄리아 역의 레나 헤들리가 거의 똑같이 따라 했다.

 

아, 감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혹시 게임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를 '포탈 2(Portal 2)'의 휘틀리(Wheatley) 목소리로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바로 그 영국 코미디언 스테판 머천트다

아니면 영국 개그 좋아하시는 분들은 리키 저바이스(Ricky Gervais)와 친구로 그의 시리즈에 자주 나오는 그 키 큰 코미디언으로 기억하고 계실 듯. 어쨌거나 그 스테판 머천트가 맞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잭의 여자 친구 코트니(Courtney, 한나 레이 분)의 아버지 역으로도 잠깐 출연한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영화를 보면 페이지 역을 맡은 플로렌스 퓨(할리우드의 떠오르는 신예!)가 키가 작아서 '응? 저렇게 작은 체구로 레슬링을 한다고?' 하고 걱정이 될 정도인데, 실제로 페이지 본인은 173cm로, 키가 작은 편은 아니다.

사실 플로렌스 퓨가 162cm라서 그렇게 작은 건 아닌데, 주위 배우들 키가 커서 상대적으로 정말 아담하고 소중해 보인다('잭' 역의 잭 로덴이 185cm, '허치' 역의 빈스 본이 무려 196cm다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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