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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호텔 쿨가디(Hotel Coolgardie, 2016) - 호주 오지에서 만난 차별의 민낯

 

 

감독: 피트 글리슨(Pete Gleeson)

 

오스트레일리아/호 웨스턴 오스트레일리아(Western Australia) 주의 오지에 위치한 쿨가디(Coolgardie). 이곳은 많은 주민들이 광산업으로 먹고 사는, 정말 조용하고 지루한 마을이다.

이곳 '덴버 시티 호텔(Denver City Hotel)'에는 광산에서 일하는 거친 남자들이 일이 끝난 후 모이는 펍 '스완(Swan)'이 있다.

어느 날, 이 동네 모든 남자들을 설레게 하는 소식이 날아들었으니, 그것은 그동안 이 펍에서 일하던 여직원(barmaid)들 클리오(Clio)와 베키(Becky)가 일을 그만두고 대신에 새로운 여직원들이 오게 될 거라는 사실이었다.

새로 오는 여직원들은 누굴까? 예쁘면 좋겠다. 남자 손님들은 그런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다. 

행운(?)의 주인공은 리나(Lina)와 스테파니(Stephanie)라는 이름의 핀란드 여성들. 그들은 원래 발리(Bali)를 여행 중이었는데 가지고 있던 돈을 도둑 맞았다.

그래서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 비자로 일을 해 돈을 모으기로 계획했고, 인력 사무소를 통해 이 외딴 동네, 쿨가디의 펍 여직원 자리를 소개받았다. 조건은 숙식 제공과 최소 3개월은 일할 것. 하도 탈주를 하는 직원들이 많았던 탓인지, 주인이 그런 조건을 내걸었던 것이다.

새로운 '고깃덩어리'들이 쿨가디에 도착하는 날, 펍의 주인 피터(Peter)는 펍 앞의 안내판에 "오늘 밤 새로운 여직원들 도착!(NEW GIRLS TONITE!)'이라고 써 놓고 그녀들을 맞으러 간다.

기차역에서 피터를 만나 그의 차를 타고 쿨가디에 도착한 리나와 스테파니. 피터가 동네를 소개해 주는데 참 별것 없다. 

시골 중에서도 깡시골답게, 놀 것도, 할 것도, 볼 것도 없다. 사람들이 일 끝나면 펍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과연 이 두 홀리데이 메이커들은 이 호주의 외딴 오지에서 3개월 동안 무사히 일을 마치고 목돈을 벌어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쿨가디 마을의 전경. 오른쪽에 보이는 '스완'이라고 쓰인 건물이 우리의 두 주인공이 일하는 펍이다
왼쪽 금발이 리나, 오른쪽 갈색 머리가 스테파니

 

국내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호주산 다큐멘터리 영화다. 나는 이게 아마존 프라임에 올라와 있었고 IMDB 평도 좋아서 한번 거들떠나 봐야겠다 생각해서 본 건데, 국내에서는 심지어 네이버 영화에도 정보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마이너다.

혹시나 싶어서 왓챠를 확인해 보니 이걸 봤다고 기록을 남긴 사람은 0명. 외국에서만 개봉하고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영화라고 해도 대개 몇십 명, 또는 백 몇 명 정도는 있던데, 이건 정말 0명이었다.

지금 이 리뷰를 쓰면서도 과연 몇 명이나 이 리뷰를 읽을지, 또 그중 몇 명이나 이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뭐, 편지가 담긴 병을 바다에 던지는 심정으로 리뷰를 써 보려 한다.

(이 영화를 보신 분은 아마 없을 것 같지만 리뷰 진행을 위해 영화 초반 이후의 내용도 누설할 수 있음을 양해 바란다. 어차피 픽션 아니고 다큐멘터리니까 이래도 괜찮겠지.)

 

리나와 스테파니가 쿨가디에서 경험하는 것은,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것과는 달리, '미숙한 영어와 문화 차이에서 비롯하는 웃긴 에피소드'가 아니다(이 둘은 영어 실력이 제법 좋아서 큰 어려움 없이 의사소통할 수 있다). 

대신 그들이 경험하는 것은 차별이다. 첫 번째는 인종 차별.

어찌나 오지에 사는지, 리나 말대로 '문명과 떨어진' 곳에 살아서 그런지(그래도 TV 있고 컴퓨터 있고, 있을 건 다 있다),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배웠나 보다.

아무리 핀란드에 대해 아는 게 없어도 그렇지, "핀란드에서는 뭐 먹어? 물개랑 그런 거? 돌고래라든지?"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그런 게 인종 차별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는 무식자들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보다 더욱 노골적인데, 여성 혐오적 차별이다. 감독이 딱히 여성주의적 시각으로 카메라를 잡은 것도 아닌데, 그냥 너무나 명백히 보인다.

남자 손님들은 끊임없이 리나와 스테파니에게 추파를 던져 대고, 누가 먼저 그들과 자게 될지 내기 따위를 한다.

중반쯤 리나와 스테파니와 좀 친해진, 모텔 직원 앤소니(Anthony)가 다른 남자 손님 데이브(Dave)와 함께 넷이서 캠핑을 가자고 하는데, 리나와 스테파니는 혹시나 남자들이 이게 '갱뱅(gang bang, 윤간)'이 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둘의 친구인 제임스(James)를 초대한다. 다 같이 텐트에서 자게 되면 그가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여자들을 보호해 주도록.

그런데 이 이야기(넷이 캠핑 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펍 주인 아저씨의 말이 가관이다. 스테파니에게 대뜸 "너 밧줄 묶을 줄 알아? 밧줄 줄까?" 이러는 거다.

무슨 말인지 파악하지 못한 스테파니가 "저보고 밧줄로 뭘 하라고요?" 하고 되묻자, "남자 둘이랑 캠핑 간다며. 그 밧줄로 네 다리를 묶어. 안 그러면 험한 꼴 볼 거다." 하고 내뱉는다. 아니, 그런 일이 일어나면 전적으로 가해자가 나쁜 거지 피해자 잘못인가요?

하지만 이런 여성 혐오적 문화는 이곳에 너무나 짙게 배어 있어서, 이 둘이 어떻게 노력으로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니다.

애초에 리나와 스테파니가 이곳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피터는 남자 손님들이 새로운 여종업원들에게 환장을 한다며 '다리 사이에 세 번째 다리가 자라날(grow a third leg)'라고 말한 위인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리나와 스테파니가 뭘 어쩔 수가 있었겠는가? 

 

캠프에서 술에 너무 취해 앤소니와 기억도 못하는 섹스를 하고 돌아온 리나는 열이 펄펄 끓기 시작하는데, 설상가상 그녀는 원래 당뇨가 있었다.

인터넷으로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 정확히 누군지는 안 나온다)와 통화를 할 때에 그렇게 혈당 체크를 하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리나는 이를 게을리했고, 캠프에서 얻은 심한 물집은 악화되어 물집 있던 곳 피부가 새까맣게 변했다. 

도무지 일할 상태가 아닌 리나를 대신에 스테파니가 리나의 스케쥴을 모두 도맡아 일을 하게 된다.

그래도 스테파니가 밥은 먹을 수 있게 리나가 한 시간은 일을 하려고, 잠을 자다가 깨서 거실로 나왔는데 웬 남자가 거기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게 아닌가!

당황한 리나가 그 남자를 쿡쿡 찔러서 깨워 말을 걸어 보니, 자기는 여기 바 손님인데 리나가 아픈 게 걱정되어서 살펴보러 왔다가(리나와 스테파니는 바 건물 2층에 있는 숙소를 쓴다) 리나가 자고 있길래 자기도 여기 소파에서 쓰러져 잤다고 한다.

낯선 남자가 여직원들 숙소 거실에서 쓰러져 잤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겁을 먹고 놀란 듯하지만 리나는 그래도 최대한 차분하게, 그 남자를 설득해 돌려보내려 한다.

자기는 피곤하니 자야겠다고 리나가 말을 꺼내자 이 멍청한 남자는 '그럼 나도 같이 가서 잘래(Then I'll join you)' 같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꾸준히 리나가 철벽을 치고 가라고 하니까 그제서야 꾸물꾸물 일어나서 움직이는데, 저러다가 리나가 저 덩치 큰 남자에게 뺨이라도 맞는 건 아닌지 보는 내가 다 불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그 남자가 1층으로 내려가서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애초에 손님 주제에 왜 여직원들이 쓰는 2층을 자신이 올라가도 된다고 생각한 건지, 정말 얼탱이가 없다.

 

그리고 이쯤 되면 다들 예상했겠지만, 이 촌동네에서의 홀리데이 메이커 경험은 안 좋게 끝이 난다.

다음 날, 리나는 동네 병원에 갔다가 상태가 안 좋아 그보다 조금 더 큰, 옆 도시 병원으로 실려 가고 이 와중에 스테파니는 '너는 이곳 일이 안 맞는 것 같다'라며 해고당한다. 애초에 약속한 3개월도 되기 전에.

남자들의 끊임없는 성희롱("내 페니스는 아주 작아서, 나랑 하면 하나도 안 아플 거야"라는 말을 씨부리는 남자 손님이 초반에 등장한다)에 곤란해하며 스트레스 받는 리나와 달리 스테파니는 해탈을 했는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리는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는데(스테파니 본인이 그렇다고 말하기도 했고) 아마 그게 이 해고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이 소식을 어이 없이 받아들이긴 하지만(그 더러운 꼴 참아 가며 버텼더니, 고작 돌아오는 건 해고?) 그래도 스테파니는 나은 편이다.

영화 끝 에필로그 자막으로 안내되는 내용에 따르면, 스테파니는 다행히 퍼스로 가서 다른 일자리를 구했다고 나온다.

리나는 지병인 당뇨가 악화되어 아예 대도시인 퍼스에 있는 병원으로 옮겨졌고, 거기에서 7주를 지낸 후에야 고국 핀란드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그나마도 당뇨 합병증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전부 잃고 다른 한쪽도 시력의 30%를 잃은 상태였다.

영화 개봉 후 인터뷰에서도 리나는 그날 캠핑을 갔던 것을 후회한다고, 가능하다면 그때로 돌아가 바꾸고 싶다고 말했다.

 

호주 오지라고는 해도 정말 이 정도로 여성 혐오적이고 끔찍할 수가 있을까?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너무 놀랐다.

광산업이 남성의 노동력에 심하게 의존하다 보니 유난히 더 마초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대놓고 이런 분위기가 팽배하다고?

그래서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봤다. 위키페디아에 올라온 2013년 젠더 갭(gender gap) 인덱스를 보니 우리나라가 0.55-0.60이고 호주는 0.70-0.75였다(참고로 1에 가까울수록 양성이 평등한 대접을 받는다는 의미이다).

단계로 치면 우리나라보다 두 단계나 높았는데도, 2016년 당시 호주 오지에서는 이런 뻔뻔하고 노골적인 성차별이 존재했다는 얘기다.

믿을 수가 없지만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이 놀라운 다큐멘터리는 우리가 흔히 기대할 법한, '외국인의 유쾌한 호주 모험기'가 아니라 '여성 혐오가 만연한 오지의 현실'을 보여 준다.

불과 4년 전 이야기니까 지금도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나도 호주에 있지만 만에 하나 호주 오지로 여행 또는 일하러 가는 여성분이 계시다면 정말 조심하시는 게 좋겠다(물론 가해자가 애초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게 예방률 100%겠지만, 지금 당장은 여러분께 조심하라는 당부의 말씀밖에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이 영화 공식 사이트(아래 링크)에서 이 영화 스트리밍이 가능한 서비스(아이튠스, 아마존 비디오, 구글 플레이, 비메오)를 안내하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확인해 보시라. 정말 볼 만한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다. 러닝 타임도 무려 83분밖에 안 해서 부담도 없다.

http://www.hotelcoolgardiethefilm.com/

아니면 내가 위에서 인용한, <가디언>지와의 인터뷰를 읽어 보셔도 좋겠다.

https://www.theguardian.com/film/2017/jun/22/i-was-crying-and-i-was-angry-hotel-coolgardies-shocking-portrait-of-sexism-in-the-out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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