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저스트 비포 아이 고(Just Before I Go, 2014) -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감독: 커트니 콕스(Courtney Cox)
테드 모건(Ted Morgan, 숀 윌리엄 스코트 분)은 자살할 것이다. 삶을 밝게 비춰 주던 아내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져 떠났고, 직업도 변변찮은 데다가 자식도, 애완동물도 없는 불쌍한 인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첫 번째, 고향으로 돌아가서, 7학년 시절 자신에게 못되게 굴었던 로렌스 선생님(Mrs. Lawrence, 베스 그랜트 분)에게 왜 내 인생을 이렇게 나락으로 떨어뜨렸느냐고 따지기.
두 번째, 그 시절 자신을 괴롭혔던 롤리 스탠스필드(Rowley Stansfield, 롭 리글 분)에게 복수하기.
세 번째, 그 힘든 시절 자신에게 친절했던 소녀 비키(Vickie, 맥켄지 마쉬 분)를 다시 만나 보기.
그러고 나서 테드는 미련 없이 자살할 것이다.
이 이상한 '버킷 리스트'를 가지고 고향을 찾은 테드. 일단은 고향에 눌러 살고 있는 형 럭키(Lucky Morgan, 가렛 딜라헌트 분)네 집에서 머물기로 한다.
형은 본성이 나쁜 건 아닌데 인권 감수성은 전혀 없이 말을 생각 없이 내뱉는 스타일이다. 뚱뚱한 사람 앞에서 뚱뚱한 사람을 놀리는 농담을 하고, 게이 앞에서 게이에 대한 농담을 하는 식. 그런 그의 직업은 놀랍게도 경찰.
게다가 테드의 형수님 되는, 럭키의 아내 캐슬린(Kathleen, 케이트 월쉬 분)도 좀 이상하다. 대뜸 한밤중에 테드의 방에 찾아와 대놓고 그 앞에서 자위를 하는데, 럭키 말로는 몽유병이라고 한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문을 단단히 잠그고 자는 수밖에. 어쨌든 테드는 오랜 숙적, 로렌스 선생님을 찾으러 양로원에 간다.
그리고 치매가 왔는지 그저 TV를 보며 벙글벙글 웃고만 있는 로렌스 선생님에게 그동안 쌓인 원한과 분노를 담아 욕설을 퍼붓는다.
그런데 그의 뒤통수를 때린 여자가 있었으니, 바로 로렌스 선생님의 손녀딸인 그레타(Greta, 올리비아 썰비 분).
테드가 오해를 풀기 위해 자신은 자살하기 전에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러 왔다고 설명하자, 그레타는 걱정한다.
테드는 그냥 모른 척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그레타는 다음 날 테드네 집 앞에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고 테드의 이야기를 영상 기록으로 남기도록 허락해 주지 않으면 형 럭키에게 모든 사실을 불겠다고 협박한다.
어쩔 수 없이 '자살 다큐멘터리'를 찍게 될 영상 기사를 달고 다니게 된 테드. 그는 버킷 리스트를 모두 성취하고 마침내 원하던 대로 미련 없이 이 세상을 하직할 수 있을까?
사실 정말 큰 기대 없이 본 영화였고, 처음 30분 정도는 "이거 리뷰 쓸 만한 영화일까? 지금이라도 멈추고 다른 영화를 트는 게 현명한 거 아니야?" 하고 고민했다.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감탄을 하든 욕을 하든 일단 끝까지 보고 나서 하자는 마음으로 계속 봤다.
끝까지 보고 난 감상은? "예상 못 했는데 꽤 감동적인 영화!"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뭐가 감동적인지 이야기하려면 불가피하게 영화 시작 30분 이후의 이야기도 해야 하므로,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은 분들은 다음 짤부터 스크롤을 쭉 내려, <저스트 비포 아이 고> DVD 짤 이후의 마지막 한 문단만 보시라.
테드가 고향에 돌아와 만난 사람들은 다 테드의 생각 이상이었다.
롤리 스탠스필드는 지금 만나 보니 완전히 사람이 변해 있었다. 그 시절 테드를 괴롭힌 것이 미안하다며 사과할 정도로.
운명의 장난인지 그는 아내는 먼저 떠나보냈으며, 다운 증후군인 아들을 끔찍이 사랑하며 아끼지만, 어릴 적부터 자신에게 폭력을 행사한 아버지 아래에서 정말 힘들게 일하고 있었다.
테드는 그의 사과를 받아들이고 심지어 친구까지 된다. 롤리가 아버지를 죽이고 싶으니 도와 달라고 하자, 술에 취해서인지 테드는 별로 깊이 생각도 하지 않고(어쩌면 농담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겠다고 한다.
그리고 어릴 적에 자신에게 친절하던 비키를 다시 만나 보니, 살이 상당히 붙었고, 애도 다섯이나 낳은 상태였다. 다행히 다정하고 착한 마음씨는 잃지 않았지만.
비키는 부모님의 세탁소에서 일하는데, 어릴 적부터 계속된 단조로운 삶에 지겨움을 느껴 왔던 터라, 테드의 다정함에 판단력을 잃고 만다.
그리고 테드에게 모텔 방에서 만나자고 하고, 테드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제안에 응한다.
그레타는 테드를 따라다니며 테드의 따뜻한 성정을 알아보고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테드는 여전히 자살할 계획을 취소하지 않았다.
테드는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이루기 위해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지만, 그들이 정말로 테드를 걱정하고 신경 쓰고 아낀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이미 많은 이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 계획을 버리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보다 먼저 자살하겠다고 나선 것은 테드의 조카(=형 럭키의 큰아들) 지크(Zeke, 카일 갈너 분)였다.
지크는 같은 학교의 로미오(Romeo, 에반 로스 분)라는 흑인 혼혈 게이 소년과 몰래 사귀고 있는데, 하필이면 지크가 같이 다니는 친구들이 호모포비아였다.
그 패거리는 화장실이건 학교 복도건 로미오만 봤다 하면 시비를 걸고 폭력을 행사한다. 지크도 게이이지만, 그 사실을 들켰다가는 친구들이 로미오에게 가하는 혐오와 분노, 폭력을 자신도 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섣불러 로미오를 도울 수도, 친구들을 말릴 수도 없다.
지크가 테드에게 속내를 털어놓으며 하는 이야기가 정말 가슴이 아픈데, 대략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어느 날, 지크가 복도를 가다가 게이인 다른 학생과 마주쳤다. 그때 그 학생이 지크를 보고 씨익 웃었는데, 지크는 그게 '나는 다 알고 있다(=네가 게이라는 걸 난 알지롱)' 하는 의미라고 느껴졌단다.
그렇게 생각하니 자신이 게이라는 게 들통 날까 봐 너무나 두려워져서, 다음 번에 그 남학생을 만났을 때 일부러 어깨빵을 세게 쳤는데, 상대는 철퍼덕 넘어졌다.
지크는 그때 그 학생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눈빛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도 그 순간 다른 누구보다 그 학생을 격하게 증오했다고, 자신이 그런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될까 봐 너무너무 두렵다고 말하며 울었다.
지크가 이야기가 전개되면서부터 나는 '영화를 멈춰야 하나' 하는 생각을 그만뒀다. 이렇게나 흥미로우면서 가슴 아픈 서사라니.
영화가 갑자기 두 배는 진지해져서, 숨겨 놨던 의미의 층위를 드러내는 느낌이었다.
로미오를 사랑하지만, 게이임이 알려졌다가는 극심한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자신은 "게이여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울던 지크.
로미오가 자신의 친구들에게 구타를 당하고 괴롭힘을 당하는데 친구들을 말리지 못하고 오히려 "저 호모 녀석을 보면 역겹다"며 호모포비아인 척하고 로미오를 주먹질하는 지크.
그러고 나서 친구의 차를 훔쳐 로미오와 자주 가던 한적한 호숫가로 도망쳐 그곳에 떨어져 죽으려던 지크.
정말 예상도 못하고 있다가 섹슈얼리티와 혐오에 대한 서사에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테드가 마음이 따뜻해서 지크가 미리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지크가 도망가서 죽으려던 것을 테드와 다른 가족들, 그리고 로미오가 따라와서 어떻게 말릴 수 있었을까.
지크 덕분에 테드는 자신이 그간 주위의 사람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으며, 자신이 죽어도 주위 사람들에게 영향이 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지크가 실수로 호수에 빠져 버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그를 따라 호수로 몸을 던진다.
깊은 물속에서 정신을 잃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 나누는 대화가 정말 이 영화의 꽃이자 눈물을 제일 많이 뽑아 내는 부분인데, 이건 꼭 봐야 한다.
아버지는 "두려움은 텅 빈 마음에 쉽게 자리잡는다"며, 인생을 알차게, 풍성하게 살아서 두려움이 들어설 곳이 없게 만들라고 말한다.
와 정말 옳은 말씀이자 명대사...
아버지와 이야기하던 테드가 어릴 적 모습으로 돌아가 아버지와 포옹하고 헤어지는 모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감동적이다.
커트니 콕스(우리가 아는 그 배우 커트니 콕스 맞는다. 이 영화는 커트니 콕스의 감독 데뷔작이다)가 이런 연출을 할 수 있구나, 대단하고 느끼게 한 장면이었다.
혹시나 걱정하실까 봐 덧붙이자면, 아버지와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나서 테드는 물속에서 눈을 뜨고, 호수 속 괴물(네스 호의 괴물 같은 그런 괴물)을 보고 짧은 교감을 나눈 후, 구조되어 살아난다. 해피 엔딩이니까 걱정 마시라.
중간에 스포일러까지 하면서 길게 썼는데, 다시 한 번 요약하자면,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시작해 마지막에는 눈물 콧물 다 뺄 수 있는 영화다. 의미도 있고 감동도 있다.
만에 하나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신 분이 있다면, 이 영화가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행복하게 오래오래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자세히 이야기하지는 않겠지만(이 이야기는 위에서 많이 했으니까) 섹슈얼리티와 혐오에 관한 서사도 있으니 혹시 게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이 영화를 보셔도 좋겠다.
정말로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따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