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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카트리네 마르살,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 줬어요?>

 

 

 '페미니즘 경제학' 서적이다. 예전에 출간됐을 때부터 흥미롭겠다 생각했는데 이제야 (리디셀렉트로) 읽게 됐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경제적 인간'이라는 개념이 너무나 남성적(이라고 여겨지는 자질들을 가진 존재)이며 또한 허구적인데도 어떻게 아직도 많은 이들이 이를 간과할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존재? 우리는 이미 인간이 이성보다는 감성에 더욱 휘둘리고 비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지 너무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이들은 경제학의 주체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고 싶어 하는 걸까? 경제학이 아직도 여성을 온전히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이 유래한 부분이자 경제학이 여성의 존재를 얼마나 간단히 지우고 남성의 (생산) 행위만을 경제학의 대상으로 보는지를 표현한 단락을 옮겨 보겠다.

애덤 스미스는 식탁에 앉았을 때 푸줏간 주인이 자신에게 친절을 베풀어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가 교환을 통해 충족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애덤 스미스의 저녁 식사가 식탁에 오른 것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구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스테이크를 실제로 구운 것은 누구였을까?

애덤 스미스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이 경제학의 아버지는 거의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머니가 집안일을 돌봤고, 사촌이 돈 관리를 했다. 애덤 스미스가 관세 위원으로 에든버러에서 일하게 되자 어머니도 함께 이사했다. 그의 어머니는 평생 아들을 돌봤지만, 저녁 식사가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를 논할 때 애덤 스미스가 언급하지 않고 넘어간 부분에 속해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집필할 당시 푸줏간 주인, 빵집 주인, 양조장 주인이 일하러 가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인, 어머니, 혹은 누이들이 하루 종일 아이들을 돌보고, 청소하고, 음식을 만들고, 빨래하고, 눈물을 훔치고, 이웃과 실랑이를 해야 했다. 어떤 식으로 시장을 바라봐도 그것은 또 하나의 경제에 기초하고 있다. 우리가 거의 이야기하지 않는 경제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경제학에서 무시되는 여성의 노동은 '그림자 노동'이라는 전문 용어로도 불린다(이에 대해서는 크레이그 램버트의 <그림자 노동의 역습> 참고.)

2018/07/05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책 감상/책 추천] 크레이그 램버트, <그림자 노동의 역습> '그림자 노동'이란 집안일처럼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노동을 가리킨다. 오스트리아의 철학자이자 사회 비평가인 이반 일리치(Ivan Il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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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림자 노동'이라는 용어는 반드시 여성이 하는, 보수를 받지 못하는 일(예컨대 집안일이나 아이를 돌보는 일)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므로, 여기에서는 그냥 여성이 하는 일이라고 표현하겠다.

그렇다면 왜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여겨지지 않는 것일까? 애초에 경제학이라는 이론이 남성들 위주로 판이 짜였으니까.

'경제'를 뜻하는 단어 '이코노미(economy)'는 그리스어로 가정이라는 의미의 '오이코스(oikos)'에서 유래됐지만, 경제학자들은 집에서 일어나는 일에 흥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여성들은 내재된 '자기희생적 특성' 때문에 사적 영역에 묶이게 되었고, 이에 따라 여성은 경제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다.

자녀 양육, 청소, 빨래, 다림질 등의 가족을 위한 활동은 사고팔거나 교환할 수 있는 유형의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1800년대의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경제적 번영에 기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경제적 번영은 오직 운반이 가능하고 공급이 제한되어 있으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즐거움을 주거나 고통을 피하게 해 주는 것들과 관계가 있었다.

이 정의로 인해 여성들이 시간과 노동력을 들여 해 주는 모든 일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남성이 노동한 결과는 측정할 수 있고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 여성이 노동한 결과는 보이지 않는다. 털어 낸 먼지는 어느새 다시 쌓인다. 밥을 해 먹여도 금방 또 배고파한다. 아이들은 재우면 다시 일어난다. 점심을 먹으면 설거지를 해야 한다. 설거지를 마치면 저녁 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이제 또 설거지를 해야 한다.

가사노동은 그 성격상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여성의 노동은 '경제적 활동'이 아니며, 이들이 지닌 아름답고 다정다감한 본성이 자연스레 발현된 것에 불과하다. 여성은 이 일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것이기 때문에 그 성과를 측정하는 데 시간을 쓸 필요가 없다. 이것은 경제적 논리와 상관없는 다른 곳에서 나온다.

여성스러움이랄까, 아무튼 뭐 그런.

 

"시카고 학파는 여성을 경제의 일부로 진지하게 고려한 최초의 경제학파"였으나 그들의 방법은 너무나 잘못됐다.

애초에 남성들 위주로 판이 짜인 경제에 그저 여성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동일한 경제학적 논리를 여성들에게 들으민 결과는?

여성의 보수가 적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그들은 추론했다. 세상은 합리적인 곳이고 시장은 언제나 옳았다. 시장에서 여성에게 더 낮은 보수를 줘야 한다고 결정했다면 합당한 이유가 있음이 분명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경우에 시장이 어떻게 올바른 판단을 내렸는지를 단순히 설명하기만 하면 됐다.

시카고 학파 경제학자들은 여성이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보수가 낮은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여성이 게으르거나 재능이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직장에서 남성과 동일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우선 여성이 출산을 위해 몇 년 동안 직장을 떠나야 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즉, 고등 교육을 받기 위해 남성만큼 노력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은 커리어를 위해 투자를 덜 하고 결국 더 적은 보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분석은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러나 이를 실제 현실과 비교해 보면 그다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이 분명했다. 많은 여성이 남성만큼 고등 교육을 받고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여전히 더 낮은 보수를 받고 있었다. '차별'이라고 부를 만한 이 현상을 시카고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설명했을까? (...)

다시 말해, 여성의 보수가 낮은 것은 집안일을 더 많이 해서고, 여성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는 것은 보수가 낮기 때문이다.

시카고 학파의 설명은 자가당착적이다.

 

경제학 서적에서 이만큼 웃긴 부분도 없을 것 같아 조금 더 발췌해 보겠다.

지크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실제로 여성이 청소를 더 잘하도록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이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는 그 이유를 여성의 질이 본래 더럽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여성이 문지르고 닦고 터는 것은 자신의 신체에서 느끼는 더러운 느낌을 보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프로이트가 질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여성의 성기는 자체 조정 기능을 갖춘 기관으로, 사람의 입보다도 깨끗하다. 수많은 유산균 — 요구르트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 이 끊임없이 활동하면서 청결을 유지한다. 건강한 질은 pH 5인 블랙 커피보다 약간 높고, pH 2인 레몬보다 낮은 산도를 유지한다. 프로이트는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럼 뭐 남성 성기는 깨끗해서 남자들이 여자들만큼 청소하지 않고 씻지 않는 건가? 지나가던 개가 웃을 일이다.

 

저자는 경제학에서 '돈'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랑 또는 돌봄을 제시한다.

오해는 마시라. 인간이 어떤 일을 하는 데 동기를 유발하는 데 돈만 한 것이 없다는 데에 저자도 의견을 같이 한다.

다만 국내 총 생산(GDP) 같은 수치로 수치화할 수 없지만 역시나 삶에서 중요한 노동으로 사랑/돌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또한 사람(양성 모두)은 경제적으로 합리적이기만 한 존재는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종종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복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결과 자산이 손해를 본다 해도 말이다.

실제 사람들은 다시는 가지 않을 식당에도 팁을 남긴다. 경제적 인간이라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팁을 남기지 않아도 종업원이 자신의 수프에 파리를 넣는 등의 복수를 할 기회가 없기 때문에, 그는 두 번 생각하지 않고 팁을 다시 자기 주머니 속에 넣는다. (...)

현실에 존재하는 우리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이 아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을 배려할 때도 많고, 가끔은 혼란스러워하며, 희생정신을 보일 때도 있고, 걱정도 자주 하며, 비논리적일 때도 많다.

무엇보다, 우리는 누구도 섬처럼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 경제학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책 중~중후반에서는 단순히 페미니즘 경제학뿐 아니라 신자유주의가 제창하는 '자유'가 얼마나 그저 '단어' 하나에 불과한지도 설명하므로 대학생 정도 되면 교양으로 읽기 딱 좋겠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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