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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니시오 하지메, <죽음의 격차>

by Jaime Chung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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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니시오 하지메, <죽음의 격차>

 

 

트위터에서 언급된 걸 보고 알게 되어 찾아봤는데, 다행히 리디셀렉트에 있어서 가욋돈 내지 않고 바로 다운 받아 읽어 볼 수 있었다.

부검을 하는 법의학자가 목격하고 느낀, 죽음이 어떻게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은지'를 이야기하는 논픽션 에세이이다.

 

얼핏 보면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할 것 같다. 백만장자도, 홈리스도 어쨌든 결국에는 죽으니까.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그 죽음의 양상이 모두에게 똑같이 나타나는가? 아니다. 가난하면 돈이 있는 것보다 죽음이 더 빨리, 더 고통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다.

저자가 법의학자로서 일하며 관찰한 바는 그러하다.

예컨대, 보통 사람들은 '춥긴 하지만 얼어죽을 정도의 날씨는 아닌 겨울에, 집 안에 있다면 아무리 추워도 옷과 이불을 둘둘 둘러싸고 있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꼭 시베리아 수준의 추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집 안에서 동사할 수 있다. 그 사람이 충분한 영양 섭취가 되지 않았다면.

경찰은 사망한 남성이 몸이 불편한 곳도 지병도 없었다고 전했다. 남성의 거주지를 포함한 우리 법의학 교실의 부검 대상 지역은 폭설이 쌓이는 한랭 지역도 아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도 가진 옷을 전부 껴입고 이불을 둘러싸고 있으면 얼어 죽을 일은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은 조건만 갖춰지면 설사 그곳이 집 안이더라도 동사한다. 인간의 체온은 통사 37°C 전후를 유지한다. 하지만 체온이 어떤 이유로 28°C 정도까지 내려가면(때로는 이 정도까지 내려가기 전에) 심장에 부정맥이 발생해 사망한다.

인간은 주위 온도가 체온보다 낮으면 체내의 에너지를 소비해 열 발생을 일으킨다. 스스로 생존에 필요한 체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에너지원이 되는 충분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면 열 발생이 부족해진다. 열 발생이 몸의 열 발산을 따라가지 못하면 체온은 서서히 낮아진다. 실제로 부검한 남성의 위와 장은 깨끗할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소지한 돈이 없었다는 것으로 미뤄볼 때 한동안은 만족할 만한 식사를 못 한 것 같다.

나는 이 남성과 같은 "빈곤에 의한 동사" 사례를 수없이 봐 왔다. 돈이 없어 제대로 먹지 못하면 체력과 면역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이럴 때는 가진 옷을 모두 입고 이불을 둘러싸고 있어도 체온이 떨어져 사망한다.

이걸 읽고 정말 놀랐다. 집 안에서도 동사할 수 있구나. 만약에 돈이 좀 있어서 식사라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면 사망에까지는 이르지 않았을 텐데.

 

가난이 생명을 죽인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일화 하나 더.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출근하지 않은 어떤 50대 남성. 동료가 걱정되어 그의 집을 방문해 보니, 그는 거실에 쓰러져 사망해 있었다.

원인은 대장에서 진행 중이었던 암. 그는 치료를 전혀 받지 않고 내버려둔 탓에 암이 대장을 꽉 채울 정도로 커진 상태였다고 한다.

치료만 받았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이 죽음의 직접적 사인은 '장폐색'이다. 만일 좀 더 빨리 대장암 수술을 받았다면 장폐색은 일어나지 않고 생활에 지장 없이 살 수 있었다.

장이 부풀어 오를 정도로 꽉 차 있었기 때문에 구토와 같은 심한 증상으로 본인도 병원에 가야 한다고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경찰 조사에 의하면 병원에 갔던 기록은 없었다.

단순히 '병원이 싫다'는 이유로 진찰을 받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 남성도 그런 사람일지 모른다. 하지만 병원에 가고 싶어도 돈이 없어 아픔을 참아 가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이 확실히 존재하기 때문에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내가 이 책에서 제일 충격받은 것. 가난하면 식생활이 형편없어지는데 이 사실을 아주 극단적으로 보여 준 예다.

과거에 한 번, 당뇨병은 아니었지만 10년 동안 컵라면만 먹었다는 50대 남성(무직)의 시신을 부검한 경험이 있다. 치우친 식생활의 결과는 부검 소견에 확실히 나타났다.

남성의 사망 원인은 간부전. 부검을 해 보니 붉은색이어야 할 간은 전체가 희멀건한 노란색으로 완전한 지방간이었다. 그야말로 지방간으로 인한 간부전이다.

남성은 정사원으로 취직을 못 해 일용직 노동으로 겨우 먹고사는 상황이었다. 남성은 적은 식비로 가장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 바로 컵라면을 주식으로 선택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형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당연히 몸에 필요한 균형 잡힌 영양은 공급해 주지 못한다.

식생활이 수입과 직결되는 것은 부검 현장에서도 통감한다. 당뇨병이나 지방간 같은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떤 식생활을 해 왔는지 몸 안에 전부 흔적이 되어 증명처럼 남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음,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형편없는 식생활을 하고(실제로는 가난한 게 아니더라도) 술을 많이 처먹도록 부추겨야겠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비명횡사하는 데 지름길이더라... 뭔가 교훈이 엉뚱한 것 같지만 기분 탓이겠지^^;

어쨌거나 정말 죽음은 만인에게 공평하지 않다. 죽음은 가난하고 특히 혼자 사는 이들에게 더욱더 불공평하다.

 

놀라운 건, 에필로그를 보면 저자는 원래 죽음이 만인에게 평등하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완전히 반대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 달라는 출판사의 제의를 받고 쓰기 시작한 게 바로 이 책이다.

죽음에도 '격차'가 있다는 걸 꿰뚫어 본 출판사 측의 통찰력이, 와, 정말 상당하다.

몇십 년을 부검하던 법의학자도 잘 인지하지 못했던 걸 캐치해서 작가에게 의뢰할 정도면... 이 정도 혜안을 가져야 출판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건가 보다. 나도 이런 눈을 기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이런 통찰력이 있는 책을 자주 접해야겠지. 그런 의미에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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