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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Ophelia(오필리아, 2018) - 빈약한 상상력으로 <햄릿>을 다시 써 봤자...

 

 

감독: 클레어 맥카시(Claire McCarthy)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햄릿(Hamlet)>의 가련한 여주인공이자 영국의 화가 존 에버렛 밀레이스(Sir John Everett Millais)의 명화 <오펠리아(Ophelia)>로도 잘 알려진 존재, 오필리아(데이지 리들리 분).

그녀가 남자들의 목소리에 가려 숨겨지고 왜곡되었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필리아와 햄릿

 

리사 클라인(Lisa Klein)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그리고 당연히도 이 소설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에 등장하는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상상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누구나 한 번쯤 봤을 법한, 존 에버렛 밀레이스의 명화 <오펠리아>(혹시 이게 뭔지 모르겠다 하시는 분은, 민음사 판본의 <햄릿> 책표지에 그려진 명화를 떠올리시라. 그게 이거다) 같은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에 빠졌는데도 아름답고 고운 처녀의 모습. 그러나 그녀는 사실 마음속에 불같은 열정이 가득한 여자였다, 라는 뭔가 예측 가능한 이야기.

나도 '다시 쓰기(rewriting)'라는 개념을 참 좋아하고 진 리스(Jean Rhys)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Wide Sargasso Sea)>도 진짜 감탄하면서 읽었는데(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덧붙이자면 이건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e)의 <제인 에어(Jane Eyre)>를, 다락방에 갇힌 광녀 버사 메이슨(Bertha Mason)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 한 작품이다), 이건 글쎄, '영 아니올시다'이다.

남자들에게 가려진 여성의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그녀들이 다시 말하게 한다는 것은 너무나 멋지고 훌륭한 일이지만, 문제는 원작 소설 작가의 역량이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

 

개인적으로 몇 가지 실망했던 점을 꼽자면, 등장인물들이 다 꽤 젊다. 오필리아야 여자니까 그렇다 치고(이 말은, 여자니까 어려야 한다는 게 아니고 기존 남성 작가가 이 여성 캐릭터를 젊고 아름답게 설정했다는 뜻이다. 오해 마시라), 햄릿 왕자는 한 서른 살쯤 될 거라 생각했는데, 햄릿 역할을 맡은 조지 맥케이(George MacKay, <1917(2019)>의 그 배우)가 그 나이로는 안 보여서 놀랐다.

게다가 선왕 햄릿(주인공 햄릿의 아버지)이며, 클로디어스(Claudius, 클라이브 오웬 분)며, 거트루드(Gertrude, 나오미 왓츠 분)까지, 뭔가 엄격함이랄지, 근엄함이랄지, 그런 게 부족해 보인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톰 펠튼(Tom Felton, <해리 포터> 시리즈의 말포이 배우)이 여기에서 레어티즈(Laertes) 역을 맡았는데도 안 어울려 보이더라.

원작이야 워낙에 '정본(canon)'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니까, 연극이나 영화로 만든다면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들 위주로 캐스팅했을 거라는 걸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반면에 이건 오필리아 위주의 '다시 쓰기'여서 그런지, 그런 '후까시'를 일부러 빼고서, 대단해 보이지 않고, 위엄 없어 보이는 비주얼을 구축한 것도 알겠다.

그렇지만 거트루드가 한 나라의 왕비씩이나 되어서 궁정에서 시녀들(lady-in-waiting)을 따돌리고 혼자 눈물 짓다가 클로디어스에 키스당하는 장면이나, 역시 한 나라의 왕씩이나 되어서 오필리아를 죽이려고 직접 지하 감옥까지 내려오는 친절함을 발휘하는 클로디어스를 보면 얼척이 없는 것이다...

이 나라 왕족들 체통머리 다 어디 감??? 덴마크 이렇게 근본 없는 나라였냐?

 

위에서 말한 <오필리아> 그림이 이거다. 영화도 이것과 비슷하게, 물에 빠진 오필리아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거트루드가 오필리아에게 (당시 기준으로 봤을 때) 야설에 가까운 소설을 읽게 시키는 것으로 자유로운 여성의 면모를 표현하는 것은 좋았으나, 그래도 거트루드를 여전히 남성들의 사랑에 목매는 존재로 그린 건 너무 깊이가 없다.

<햄릿>에서 중요한 인물이 거트루드이고, 햄릿도 몇 번씩이나 거트루드에게 정숙함, 정절을 강요하는 말을 하는데 이 '다시 쓰기' 버전에서 거트루드에게 적절한 서사를 주지 않았다? 그건 그냥 원작을 대충 읽은 거나 마찬가지고, '다시 썼다'고도 할 수가 없다. 

애초에 이걸 다시 쓰려고 한 목표가 오필리아라는 여성에게 목소리를 주고자 한 게 아니었나? 기본적으로 모든 억압된 여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한 게 아니었나 말이다.

그렇다면 왜 (오필리아의 서사도 대단할 거 없다는 점은 차치하고서라도) 거트루드는 그냥 원작과 별 다를 것 없이 내버려 뒀는지도 모르겠다.

하다 못해 거트루드가 권력을 숭상하는 여인이어서 '남편이 죽었으니 남편의 형제와 결혼해서라도 내 권력을 붙잡아야겠다' 하고 이글이글 야심에 넘치는 '레이디 맥베스' 뺨치는 강렬한 여인상이었다면 새로운 해석이 되었을 텐데.

이건 뭐, 오필리아 캐릭터도 딱히 강인하다거나 매력적이라는 느낌을 못 받았는데 거트루드 캐릭터는 식상하기 짝이 없다.

남편(선왕 햄릿)의 사랑을 받고 싶어서 젊음을 가져다주는 마법의 약을 사다 먹으면서(오필리아에게 이걸 가져오라고 시킨다) 사랑에 흔들리는(클로디어스의 구애에 흔들린다) 거트루드라니. 이건 너무나 기존 남성들의 시선에서 '쯔쯔, 정신머리 없고 정절도 없는 년' 하고 욕하기 딱 좋은, 전형적인 여성 혐오적 캐릭터 아닌가.

이걸 도대체 어떻게 '다시 쓰기'라고 만들어 놨는지 모르겠다. 그 '마법의 약'을 만들어 주는 게 거트루드의 또 다른 자매라는 설정은, 이 뒤에 이어지는 한심한 이야기 흐름을 위한 장치일 뿐이다.

이 부분을 스포일러하고 싶지만 그럴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얼척이 없어서.

내가 '사실 이건 이러이러한 이야기입니다'라고 말해도 안 믿으실 듯. '에이, 설마, 그렇게까지 구릴려고?' 하시지 않을까. 얼마나 구린지는 굳이 직접 확인 안 하셔도 되는데...

 

내가 상상한 것과의 나이 차이라든지, '후까시' 뺀 비주얼라든지, 다 좋다 이거다. 서사가 튼튼하면 장땡인데 이건 셰익스피어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애초에 그냥저냥 보통 작가도 아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건들려면 엄청난 내공이 있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걸까?

작품에 깊이가 없으면 하다 못해 <10 Things I Hate About You(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1999)>처럼 가벼워도 깜찍하게나 만들든가.

같은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에서도 <리어 왕(King Lear)>을 재해석한 <A Thousand Acres>가 1992년 퓰리처 상을 받을 정도로 좋았다 카더라. 나도 이거나 찾아서 읽어 봐야지.

Stan.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우연히 찾게 되면 모를까, 돈 주고 굳이 사서 볼 정도로 대단한 상상력도 아니고 밑천도 별로 없다. 

나처럼 '다시 쓰기'와 페미니즘적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말이니 믿어 주시라. 그냥 다른 거 보세요...

  1. sayy 2020.08.28 01:34

    잘 읽고 갑니다!!! 혹시 영화 어디서 보셨나요?? 아무리 뒤져봐도 못찾겠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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