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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ife(더 와이프, 2017) - 위대한 여인은 왜 남편 뒤에 서기를 선택했을까

by Jaime Chung 2018.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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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ife(더 와이프, 2017) - 위대한 여인은 왜 남편 뒤에 서기를 선택했을까

 

 

감독: 비욘 룬게(Björn Runge)

 

조 캐슬먼(Joe Castleman, 조나단 프라이스 분)와 조운 캐슬먼(Joan Castleman, 글렌 클로즈 분) 부부는 어느 날, 남편 조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받고 깨어난다.

둘이 침대 위를 방방 뛰며 자축한 후, 가족이며 친구들 등을 모두 불러 축하 파티를 연다.

딸 수재나(Susannah, 알릭스 윌턴 레건 분)는 아들(즉, 이들 부부에겐 손자)을 임신한 상태지만 조는 굳이 축하를 위해 샴페인을 들게 한다.

아들 데이비드(David, 맥스 아이언스 분) 역시 소설가인데, 아버지가 자기가 쓴 글을 읽고도 잘 읽었는지, 자기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적절한 피드백을 한마디도 않는 게 불만이다.

얼마 후, 출산이 머지않은 수재나를 제외하고 캐슬먼 부부와 데이비드는 스웨덴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그 비행기 안에는 취재 정신 투철한 작가 너새니얼(Nathaniel, 크리스천 슬레이터 분)이 타고 있다.

조는 그가 자기를 전기 작가로 택해 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해 그건 택도 없으니 꿈도 꾸지 말라며 단호히 밀어낸다. 조운은 작가의 감정을 상하게 하면 우리에게 좋지 않은 글을 쓸 수도 있다며 너새니얼에게 남편 대신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한 스웨덴. 조는 노벨상 재단 관계자들과 인사하며 개인 사진사 리니아(Linnea, 카린 프라즈 콜로프 분)를 소개받는다.

짧은 시간이지만 둘 사이엔 뭔가 스파크가 통한 듯하고, 옆에서 얌전하고 말 없이 남편 코트를 들고 서 있던 조운은 과거를 떠올리는 듯한데...

 

축하 파티에서의 조운(왼쪽)과 조(오른쪽)

 

"위대한 남자 뒤에는 그보다 위대한 여인이 있다(Behind any great man, there's always a greater woman.)"고들 한다.

여자(대개 아내)의 내조 없이는 남자가 큰 일을 성취할 수 없다고 여자들을 추어올리는 듯하지만, 이는 사실 남성의 성공을 위해서는 여성이 희생해야 한다고 상정하는 말이다.

이 영화는 그 '위대한 여인'의 이야기이다. 제목부터 '부인'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가.

하지만 그 위대한 여인이 내조해 준 그 위대한 남자가 실제로는 전혀 위대하지 않았다면?

중요한 반전을 스포일러할 의도는 없지만, 사실 이건 영화 예고편만 봐도 어느 정도 '설마?' 하고 예상이 가능하다. 다음 대사도 예고편에 나오니까 그냥 인용하겠다.

노벨상을 받고 난 후 축하 만찬 자리에서 스웨덴 왕이 조운에게 묻는다. "부인은 무얼 하시죠? 직업이 있으신가요?"

조운은 의미심장하게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전 킹메이커(kingmaker, 남을 권좌에 올릴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실력자)랍니다."

왕은 이 말에 담긴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그는 그들 부부의 진실을 모르니까) "저희 아내도 같은 말을 할 겁니다."라며 웃어넘긴다.


 

바로 이 대사가 조와 조운의 비밀을 담고 있다. 그리고 영화는 약 30년쯤 전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여 주며 이 비밀을 조금씩 풀어놓는다.

(참고로 젊을 적 조운의 역을 맡은 배우 애니 스타크(Annie Starke)는 글렌 클로즈의 딸이다. 그래서 닮았다!

조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배우 해리 로이드(Harry Lloyrd)는 '저 남자가 늙어서 조가 된다고?' 싶을 만큼 별로 안 닮게 잘생겼는데 말이다.)

처음에 조운은 자진해서 남편의 코트를 받아 주고, 남편이 관계자들을 만날 때 저 뒤에 홀로 서서 그냥 기다리는 모습을 보인다. 남편이 시간 맞춰 먹어야 하는 약이며 안경 등을 챙겨 주기도 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수상 소감을 이야기할 때 제발 자기한테 고맙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부탁한다.

그것이 단지 그녀의 겸손함, 페넬로페(Penelope, 오뒷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10년간 묵묵히 아들을 키우고 다른 구혼자들을 물리치며 그를 기다린 오뒷세우스의 아내. 정숙함의 상징이다) 뺨치는 여성성 때문인 걸까?

그것을 밝혀내는 것이 부분적으로는 너새니얼의 일이기도 하다. 그는 조 캐슬먼에 대한 글을 써 달라는 의뢰를 받았고, 단순히 그가 얼마나 뛰어난 작가인지 칭송하는 글을 쓸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래서 너새니얼은 조운에게 접근한다. 그녀는 절대로 쉽지 않다. 그와 술을 마시면서 과거를 이야기하지만 흐트러지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는다.

다만 진실의 일부분을 순간적으로 암시할 뿐.

 

후에 반전을 알게 되면 다들 납득할 것이다. 왜 아래와 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조와 조운의 호텔 방으로 날라져 온 선물 중 한 초콜렛 상자에는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름이 쓰인 카드가 붙어 있다.

"이게 도대체 누구야?" 하고 조가 묻자 아들 데이비드는 "아버지 소설에 나오는 인물이잖아요." 하고, 그거도 모르냐는 듯 대꾸한다.

그리고 어쩜 노벨 문학상까지 받았다는 사람이 말끝마다 "F-word(F로 시작하는 욕)"를 달고 다닐 정도로 어휘력이 형편없는지.

 

관객이 과거를 통해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은 흥미진진하다. 납득도 된다.

그러나 그 진실로 인해 조와 조운 사이의 갈등이 깊어져 터질 것 같을 때마다 갑자기 다른 일이 일어나 이 둘 사이의 갈등을 무마해 버린다.

그런 패턴이 두 번 계속된다. 따라서 영화는 관객이 기대하는 절정에 치닫지 못하고 다소 실망스럽게 '푸슈슉' 하고 가라앉는다는 인상을 준다.

첫 번은 어떻게 무마된다 하더라도 두 번째, 또는 세 번째에는 그 갈등이 제대로 극에 달해 돌이킬 수 없이 진실이 폭로된다면 영화는 더욱 스릴 넘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를 못하니 글렌 클로즈의 멋진 연기도, 충분히 더 폭발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던 이야기도 그 가능성을 모두 소진하지 못해 다소 아쉽게 느껴진다.

영화 러닝 타임이 100분(1시간 40분)인데, 이걸 한 15~20분 정도 더 늘여도 괜찮으니 좀 더 화끈한 결말이었으면 좋겠다.

 

여담이지만 성격도 더럽고 그냥 수염 난 할아버지일 뿐인 조의 어디가 멋지다고 젊은 사진작가 리니아랑 썸을 타는 건지 모르겠다.

딱 봐도 조운 쪽이 더 정정하고 깔끔한 외모에 성격도 차분하고 좋은데. 너새니얼도 자기는 조운과 같이 있는 게(company) 즐겁다고 할 정도였는데 말이다.

자기가 노벨상 수상자면 수상자지 그거 빼고 보면 내세울 거 하나 없는데 어떻게 젊은 여자가 자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전혀 이해가 안 된다.

진짜 그런 남편을 참고 살아 온 조운이 생불이다 싶다. 우리 글렌 클로즈 여사님ㅜㅜㅜㅜㅠㅠㅠㅠㅠ

 

이 영화는 메그 월리처(Meg Wolitzer)의 소설 <The Wife>를 각색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이 원작 소설도 읽어 보려 했는데 국내에 정발된 이 저자의 책은 아직 <인터레스팅 클럽(원제는 The Interestings)>뿐이다.

아쉽지만 일단 이거라도 읽어 봐야겠다. 메그 월리처는 원래 이 원작 소설처럼 여성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잘 쓰는 작가라고 한다.

그녀의 다른 책들도 빨리 번역되어 출간되면 좋겠다.

+수정: 2019년에 <더 와이프>라는 제목으로 이 소설도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그 리뷰는 아래 글을 참고하시라.

2019/09/02 - [책을 읽고 나서] - [책 감상/책 추천] 메그 월리처, <더 와이프>


진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우리 글렌 클로즈 여사님의 끝내주는 연기와 눈물 질질 짤 정도로 감동적이고 슬픈 이야기가 보고 싶다면 <Albert Nobbs(앨버트놉스, 2011)>를 보시라.

먹고살기 위해 수십년 간 남장을 해야 했던 한 19세기 여인의 이야기이다. 나는 아직도 이 영화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때 여사님의 미친 연기력을 두 눈으로 보고 믿게 되었다. 글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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