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필름 스타스 돈 다이 인 리버풀, 2017) - 스타들은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죽지 않아

by Jaime Chung 2018. 8. 8.
반응형

[영화 감상/영화 추천]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필름 스타스 돈 다이 인 리버풀, 2017) - 스타들은 이렇게 초라한 곳에서 죽지 않아

 

감독: 폴 맥기건(Paul McGuigan)

 

영국의 한 소극장. 한물간 무성영화 시대의 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Gloria Grahame, 아네트 베닝 분)이 화장을 하고 입을 풀며 공연을 준비하다가 공연 시작 5분 전에 갑자기 쓰러진다.

이 소식에 놀라서 달려온 전 연인, 피터 터너(Peter Turner, 제이미 벨 분)에게 그녀는 자기를 리버풀로 데려다 달라고, 그럼 자신이 나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리버풀에 있는 부모님의 집으로 그녀를 데려온 피터. 침대에 누워 음료수를 가져다 달라는 글로리아의 부탁에 복도로 나가서 그녀를 처음 만났던 그날을 회상한다.

같은 플랫(flat, 영국에서 아파트를 부르는 말)에 세를 들어 살던 둘. 그녀는 그에게 '술을 한잔 따라 줄 테니 내 춤 수업을 위해 연습 파트너가 되어 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고 그는 승낙한다.

그녀의 방에 들어가 신나게 춤을 추고, 그는 그녀가 흑백 영화 시절 잘나가던 배우 글로리아 그레이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마침 무명이긴 하지만 피터도 배우였기에 둘은 이런 공통점을 바탕으로 가까워지고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다.

피터는 글로리아를 따라 미국에 가서 그녀의 어머니와 자매를 만나기도 한다.

30년 나이 차이 따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늘 행복하던 둘.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녀의 태도가 차갑게 돌변하는데...

 

글로리아(왼쪽)와 피터(오른쪽)의 행복한 한때

 

피터 터너가 1986년에 출판한 회고록 <Film Starts Don't Die in Liverpool>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므로 '오직 순수 창작인 영화 리뷰에서만 스포일러하지 않는다'는 내 원칙에 따라 여기에서는 자유롭게 리뷰를 쓸 것이다.

(이 원칙에 대해서는 아래 포스트에서 잠시 다룬 적 있다:

2018/07/09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Battle of the Sexes(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2017))

난 실제 사건을 다룬 인터뷰를 읽었고 이걸 영화와 비교해서 이야기할 것이기에 영화 속 반전이나 큰 사건이 누설될 것이다.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피터 터너의 회고록 표지 사진 이후 맨 마지막 문단만 읽으시면 된다.

 

피터 터너라는 무명 배우와 할리우드에서 "(a) tart with a heart(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헤픈 여자)"라고 불리던 글로리아 그레이엄은 사랑에 빠졌다.

1978년, 그녀는 이미 한물간 할리우드 배우였고 54세였다. 그는 26세의 리버풀 출신 무명 배우였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피터의 회고에 따르면 둘이 처음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그에게 돈을 빌렸다고 한다.

큰돈도 아니었다. 고작 4파운드 75펜스. 왜 그녀가 딱 그만큼의 돈이 필요했는지는 피터도 모른다고 한다.

몇 주 후, 그녀는 (미국인이 흔히 그러듯이) 수표로 그 돈을 갚았다. 받는 사람 이름에 'Peter Turner Star'라고 써서.

그는 아직까지 그 돈을 현금화하지 못하고 수표를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걸 돈으로 바꾸면 그녀와의 추억도 날아가 버릴 것 같아서가 아닐까.

그러고 나서 영화에 나온 것처럼 글로리아가 춤을 추자며 피터를 자기 방으로 초대했고, 둘은 케밥을 먹으러 다니는 등 데이트를 하며 친해졌다.

 

글로리아가 피터를 만나기 4년 전, 그녀는 네 번째 남편 토니 레이(Tony Ray)와 이혼했다.

이 토니 레이는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인 영화감독 니콜라스 레이(Nicholas Ray)의 의붓아들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녀가 토니랑 같은 침대에 있는 걸(그냥 같이 앉아만 있다는 말이 아니다) 니콜라스(=의붓아빠)가 발견했다고. 그것도 무려 토니가 13살 때. 이 부분도 영화 내에서 언급된다.

피터는 이 부분이 그냥 허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세 번째 남편 사이 하워드(Cy Howard)와 아이를 두고 양육권 다툼을 벌일 때 그 스캔들이 터졌으며, 나중에 그녀가 토니랑 결혼하자 기자들이 난리를 피운 거라고.

그녀는 절대로 '그건 사실이 아니다'라며 해명하려 들지 않았고 그 일에 대해 인터뷰를 하지도 않았다.

어쨌거나 그 일 이후로 그녀의 커리어는 조금 나아졌다. 54세에도 런던의 작은 극장에서 연기할 수 있었을 정도로.

 

피터와 글로리아는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살았다. 글로리아는 맨해튼 플라자에 아파트가 있었고 그곳에서 피터는 그녀가 "The Bad and the Beautiful"로 오스카(Oscar) 여우조연상을 받는 모습을 녹화한 것을 보았다.

이 흑백 영상은 영화 끝에도 나오는데, 이런 전기 영화가 대개 그러듯이 극 중 배우(여기에서는 아네트 베닝)가 이 옛날 영상을 재연하지 않고, 실제 글로리아 그레이엄의 영상을 보여 준다.

그녀는 자기 이름이 불리자 바삐 무대로 올라와서 상을 건네받고 "Thank you very much." 하고 바로 또 다시 바삐 무대를 내려간다. 좀 더 긴 수상 소감을 기대했던 듯한 진행자가 놀란 표정을 짓는 게 코믹하다.

 

둘이 연인이 된 지 18개월쯤 되었을 때, 그녀는 조금씩 그와 거리를 두고 그를 매몰차게 대하기 시작한다.

그때 그는 몰랐지만 사실 그녀는 몇 년 전부터 싸워 오던 유방암이 전이된 상태였다. 그래서 자신에게서 일부러 정을 떼려고 했던 것이다.

진실을 알지 못한 채 피터는 아픈 마음을 안고 영국으로 돌아온다. 그가 그녀의 소식을 다시 들은 것은 1년 후 1981년 9월 후반.

그녀는 당시 출연 중이던 랭카스터(Lancaster)의 한 극장에서 쓰러진다. 치료는 거부한 채 그녀는 리버풀에 있는 집으로, 가족에게 데려가 달라고 부탁한다.

그 이후 3주간 그녀는 피터와 그의 가족들 품에서 애정 어린 간호를 받는다.

피터는 당시 한 연극에 출연 중이었는데, 글로리아를 간호하느라 종종 늦었다. 무대 매니저가 그에게 요즘 왜 이렇게 늦느냐고 물었고 피터는 사실대로 이야기한다.

그러자 무대 매니저는 대꾸한다. "Film stars don't die in Liverpool(스타 배우들은 리버풀 같은 데서 죽지 않아.)"

후에 피터는 이 말을 회고록의 제목으로 삼았다.

정말 그 말대로, 그녀는 그곳에서 죽지 않았다. 그레이엄의 자녀들이 그녀를 뉴욕으로 모시고 갔고, 그녀는 병원으로 옮겨지자마자 몇 시간 후 숨을 거두었다. 향년 57세였다.

그 이후로 피터는 다른 사람을 만나긴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았다고.

 

영화는 이렇게 다소 멜로드라마스러운 이야기를 담담하게 따라가며(다른 부분은 모르겠으나 적어도 위에 말한 내용은 큰 수정 없이 영화에도 반영되었다) 몇 군데 멋진 연출로 이야기적 아름다움뿐 아니라 영상적 아름다움도 더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피터가 아픈 글로리아에게 물을 가져다주려고 방을 나갔다가 그 복도가 그녀와 처음 만난 플랫으로 이어지는 것.

또는 그녀와 미국에서 바다를 보고 카메라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와 문을 닫고 난 후 그녀의 진단서를 손에 쥐고 슬퍼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것.

씁쓰레한 웃음을 짓게 하는 부분도 있다. 피터가 글로리아를 간호하다가 "나 오늘 밤 공연 있는 거 알지?" 하고 그날 공연을 하러 가는데 공교롭게도 그 연극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의사였다.

그리고 그 극은 희극인 듯, 피터가 다른 배우들과 대사를 몇 마디 주고받는 동안 관객은 폭소를 터뜨린다.

정말로 피터가 유능한 의사여서 그녀를 낫게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의 사랑 이야기도 웃음이 끊이지 않는 '해피 엔딩'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제로 당시 피터가 맡은 역할이 의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아마 아닐 것이다), 이러한 아이러닉한 영화적 상상력이 이 영화에 슬픈 아름다움을 부여한다.

 

처음에는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에서 줄리엣 역을 맡고 싶다는 글로리아의 말을 듣고 뭐라 대꾸해야 할지 몰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피터, 그래서 "내가 그러기에는, 너한테는 너무 나이가 많다는 뜻이야?" 하고 글로리아에게 상처를 준 그이지만, 후에 그녀가 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아무도 없는 소극장으로 데려가 그녀가 그렇게 연기하고 싶던 줄리엣을 연기하게 해 준다.

그 유명한 '첫 만남(이자 첫 키스)' 장면을 연기하며 마치 그녀가 정말 줄리엣인 듯 달콤하고 부드럽게 키스하는 로미오-피터.

무척 로맨틱하고 슬프도록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피터 터너의 회고록 표지

 

글로리아를 보며 아름답다고 해 주고, 그녀를 원하는 피터의 모습을 보면 사랑에는 나이도, 국경도, 그 어떤 것도 막을 수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세상에는 이런 사랑도 있구나 싶다.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이라는 멋진 배우로 볼 수 있어서 좋은 영화였다.

아래는 영화에 대한 트리비아(trivia, 사소한 정보) 세 가지. 아네트 베닝은 이 영화가 공개되었을 때 59세였다(글로리아 그레이엄은 향년 57세에 사망했다).

이 회고록의 주인공 피터 터너는 영화 내에서 '잭(Jack)' 역으로 잠깐 출연한다.

아네트 베닝과 제이미 벨도 글로리아와 피터처럼 28세 차이가 난다.

 

(아래 웹사이트에서 피터 터너의 인터뷰 내용을 참고해 포스트를 작성했음을 알린다.

https://www.news.com.au/entertainment/movies/the-tragic-romance-of-a-hollywood-star-and-her-young-leading-man/news-story/f3adaf63c659ea293df9e92fa3f999a4)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