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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메그 월리처, <더 와이프>

by Jaime Chung 2019.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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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메그 월리처, <더 와이프>

 

 

작년에 영화 <더 와이프(The Wife, 2018)>를 감명 깊게 보고서 원작 소설은 번역되어 나오지 않나 기대하고 있다가 깜빡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도서관에 갔는데 이 책이 눈에 뜨이더라! 그래서 당장 빌려 와서 읽었다.

2018/08/06 - [영화를 보고 나서] -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ife(더 와이프, 2017) - 위대한 여인은 왜 남편 뒤에 서기를 선택했을까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ife(더 와이프, 2017) - 위대한 여인은 왜 남편 뒤에 서기를 선택했을까

[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Wife(더 와이프, 2017) - 위대한 여인은 왜 남편 뒤에 서기를 선택했을까 감독: 비욘 룬게(Björn Runge) 조 캐슬먼(Joe Castleman, 조나단 프라이스 분)와 조운 캐슬먼(Joan Castlema..

eatsleepandread.xyz

 

일단 결론부터 말하고 보자면, 책에는 좀 실망이다.

내용 자체가 나쁜 것은 절대 아니고, 영화와 물론 다른 점이 있긴 해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납득이 되는데, 문제는 책 전체에 맞춤법 틀린 게 넘쳐난다. 오역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난 두어 군데 발견했다.

일단 첫 번째, "(...) 그가 그 소녀의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과정을 그래픽적인 언어로 묘사했다."

'그래픽'적인 언어라는 게 도대체 뭘까? '그가 그 소녀의 안으로 자신을 밀어 넣는' 건 즉 삽입 성교를 말하는 건데, 'graphic'이라는 영단어가 '(특히 불쾌한 것에 대해) 생생한[상세한]'이라는 뜻을 고려한다면, 이 부분은 아마 섹스하는 과정을 불쾌할 정도로 자세하게 묘사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걸 그냥 '그래픽적인 언어'로 묘사했다고만 하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번역도 매끄럽지 않다. 다음은 조앤이 아내가 떠맡는 역할에 대해 한탄하는 부분이다.

"잘 들어요." 우리는 말한다. "모든 게 괜찮아 질 거예요."

그런 다음, 마치 그것에 우리의 목숨이 달려 있기라도 한 것처럼, 우리는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확실히 해둔다.

일단, 인용한 첫 번째 줄에 '*괜찮아 질'은 내가 잘못 띄어쓴 게 아니다. 실제로 책에 이렇게 인쇄돼 있었다. 도대체 이걸 어떻게 '괜찮아질'이라고 제대로 붙여쓰지 않고 띄어쓸 생각을 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문제는 이런 기본적인 맞춤법('~인지 아닌지' 할 때는 '-지'로 붙여 써야 하는데 ' 지'로 띄어쓴 것도 있다)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용한 부분의 아랫줄은, 아내들은 '모든 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고 정말로 모든 게 괜찮아지도록 애를 쓴다는 말인데, '반드시 그렇게 되도록 확실히 해둔다'라고 하니 어색하기 짝이 없다.

그냥 '우리는 정말로, 확실히 그렇게 되도록 노력한다' 정도로 쓰는 게 훨씬 이해하기 쉬웠을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심지어 큰따옴표("")를 시작해 놓고서 끝내지 않은 채 다음 사람의 말로 넘어간 실수도 있다.

교정교열을 볼 시간이 없었는지, 아니면 그까짓 거, 안 봐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모를 일이다.

내가 도서관에서 빌려 봤기 망정이지, 내 돈 주고 사서 봤으면 환불을 요구할 뻔했다.

 

이런 점을 인내하고도 이 책을 읽기로 하신 분들을 위해, 영화와 책을 잠시 비교해 보겠다(스포일러 주의!)

영화에서는 자녀가 수재너와 데이비드, 둘뿐이다.

소설에서는 자녀가 셋인데, 수재너와 데이비드 외에 앨리스라는 딸이 하나 더 있다.

영화의 주 배경은 조 캐슬먼이 노벨상을 받는 스웨덴이다.

소설의 주 배경은, 스웨덴이 아닌, 핀란드의 헬싱키이다. 소설에서는 조가 이미 노벨상을 받았고, 그보다는 조금 낮은 레벨의 '헬싱키 상'을 받으러 헬싱키에 간다는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데이비드가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상을 받으러 외국으로 가서 사고를 친다.

소설에서는 데이비드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가지 않는다. 대신에 그가 원래 정신적으로 불안하다는 점이 조금 더 자세히 묘사된다.

영화에서는 스웨덴 측에서 조의 사진을 찍으라고 붙여 준 사진작가와 조가 바람을 피우는 듯 야릇한 분위기를 풍긴다.

소설에서는 이런 사진작가는 나오지 않고, 대신에 그가 바람을 피웠던 대상인 여자들의 이야기가 조금 더 자세히 묘사된다.

 

이런저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공통점인 건, 조가 상을 받은 후, 조앤이 그를 떠나겠다는 의지를 밝히자 그가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고, 결국 그가 숨진다는 것이다. 

또한 조앤은 그가 죽은 후에도 진실을 말하지 않으며 작품이 끝난다.

처음에 영화를 봤을 땐, "왜 너새니얼(조의 전기를 쓰려고 하는 기자)에게 모든 진실을 밝히지 않는 거야!" 하고 답답하게 생각했는데, 이번에 책을 읽고 나니, "아, 어쩌면 조앤은 조를 대신해 자기가 글을 '가다듬었다'라는 진실을 밝히는 것조차 남(그것도 특히 남자)에게 넘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다시 보고 책을 읽어도 좋을 것 같다. 나중에 시간이 난다면. 

 

개인적으로는 확실히 영화보다는 책 쪽이 조앤의 심정을 더 잘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여자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떤 여성이든 공감할 수 있는 말인지, 이 책에도 나오는데 참 씁쓸하다.

남자는 도움을 '받고', 여자는 뒤에서 상대(그게 남자든 여자든)를 묵묵히 도와주고 희생하는 역할으로 여겨진다는 사실에 지친 여자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니까.

조앤의 과거 회상 중에, 조가 글을 잘 쓴다고 칭찬했지만 결국 출판계(와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밀려 충분한 인정을 받을 수 없었던 선배 여작가가 하는 말도 참 의미심장하다. 결국엔 그게 조앤의 미래가 됐으니까.

나는 이 책이 단연코 페미니즘 소설로 여겨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형편없는 번역과 교정교열 감수 상태를 이겨내고 읽을 의향이 있다면 말이다. 출판사는 반성하고 다음 쇄에서는 다 수정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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