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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Taylor Jenkins Reid(테일러 젠킨스 리드),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

 

 

⚠️ 이 서평은 Taylor Jenkins Reid(테일러 젠킨스 리드)의 <The Seven Husbands of Evelyn Hugo(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의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목부터 압도되는 느낌이다. <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이라고? '에블린 휴고는 도대체 어떤 여자길래 결혼을 일곱 번이나 해서 남편을 일곱 명이나 둔 거야?' 싶다. 에블린 휴고는 1950년대 할리우드, 소위 '할리우드의 황금기'에 육감적인 몸매와 수많은 염문으로 할리우드를 달구었던 여배우이다. 아, 물론 이건 소설이니까 에블린은 허구의 인물이다. 그녀의 삶은 여덟 번이나 결혼을 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Elizabeth Taylor)나 자신의 삶 이야기를 저널리스트를 통해 전기로 탈바꿈시킨 에바 가드너(Ava Gardner), 또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기 위해 자신이 스페인 출신이라는 점을 감추었던 리타 헤이워스(Rita Hayworth)에 느슨하게 기반하고 있다고 한다. 확실히 결혼을 일곱 번 한 것과 전기 작가를 통해 자기 삶의 내밀한 면을 공개한다는 점, 그리고 '완벽한' 미국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쿠바 출신이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점이 닮긴 닮았다.

소설과 주인공인 에블린 휴고에 대해 조금 더 깊게 보자면, 진짜 저자가 어떻게 이렇게 촘촘하게 이야기를 짰는지 놀라울 정도다. 전체적인 구조는 액자 구조이다. 이제 은퇴한 지 한참 됐지만 여전히 사생활에 대해 잘 알려진 게 없는, 79세의 대배우 에블린 휴고가 한 잡지 기자인 모니크 그랜트(Monique Grant)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모니크는 처음에는 자신이 에블린이 소장한 드레스를 내놓은 경매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에블린을 만나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니크와 에블린은 모종의 관계가 있고 (이건 소설 끝에 밝혀진다) 그래서 에블린이 자기 전기를 쓰게 만들 전기 작가로 일부러 모니크를 선택한 것이다. 전기 제목은 이름하여 <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 에블린은 자기가 소녀였던 시절부터 어떻게 몸뚱아리 하나만 가지고 할리우드에서 육감적 몸매의 여배우로 이름을 날리며, 일곱 번이나 결혼했는지 그 역사를 다 밝힌다. 요약하면 이렇게 될 테지만 그 '역사' 자체가 진짜 흥미진진하다. 반전과 예상 못 한 전개가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정말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다 만들어냈을까 감탄하게 되고, 에블린의 시점에서 과거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잠시 모니크의 시점이자 현재로 돌아오게 되면 진짜 맛있는 사탕을 먹다가 빼앗긴 것처럼 그렇게 감질날 수가 없다. 얼른 이야기를 이어서 더 듣고 싶다. 그 정도로 에블린의 삶 이야기가 정말 기가 막히게 드라마틱하다.

아니, 생각을 해 보시라. 1950년대 할리우드의 대스타가,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꺼리지 않는 이 당당한 여성이 바이섹슈얼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녀가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는 것은 첫 남편 돈 애들러와 이혼하고 난 후인데, 그 전까지는 그저 친구였던 실리아 세인트 제임스에게 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놀랍게도 실리아도 '그런' 여자, 그러니까 레즈비언이었던 것이다! 비록 실리아는 진성 레즈비언이고 에블린은 바이섹슈얼이라는 점이 두 사람의 관계에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되긴 하지만, 오히려 그렇다는 설정이기에 더 이 소설이 의미있다고 본다. 레즈비언/게이와 바이섹슈얼 사이의 갈등(전자가 후자에게 '박쥐'라고 비난한다든가 하는)은 실제로도 존재하는 것이고, 그냥 레즈비언이나 게이만 보여 주는 게 아니라 바이섹슈얼까지 등장한다는 게 진짜 LGBTQ+ 스펙트럼을 더 넓게 묘사할 수 있으니까. 게이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에블린의 절친이자 나중에 에블린과 (위장) 결혼을 해서 넷째 남편이 되는 해리 캐머론은 게이다. 에블린은 그와 (시험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전통적인 방식으로, 무슨 말인지 아시죠?) 딸 코너를 낳는데, 이 딸 이야기가 또 진짜 눈물샘을 자극한다. 나는 에블린이 실리아랑 정말 어렵게 서로의 마음을 헤어져서 실제로는 결혼한 것과 다름없이 같이 사는데도 그 사실을 공개하지 못하고 숨겨야 하는 부분이라거나, 실리아가 자신과 얽혀 있다는 게 대중에게 알려져서 좋을 것이 없다고 생각해 에블린이 벌이는 많은 일 같은 에블린과 실리아 사이의 애틋한 사랑보다는 코너 얘기에서 더 감동을 많이 받았다. 뭔가 감동 포인트가 남과는 다른 것 같은데 어쨌거나 그래도 에블린과 실리아 사이의, 당시 현실 때문에 차마 당당하게 드러낼 수 없었던 사랑도 정말 절절하긴 하다. 아니, 하나뿐인 소중한 딸이 어릴 적에 아빠(=해리)의 죽음으로 방황하다가 마음 잡아 기행을 그만두고 공부도 다시 착실하게 하며 예쁘게 잘 컸는데, 유방암에 걸려 39세에 자기 엄마보다 일찍 죽는다니? 게다가 유방암은 유전이라 에블린은 자신에게도 유방암이 발생할 거라는 걸 알게 되는데, 에블린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그 가슴이 에블린의 죽음도 가져오게 된다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에블린의 남편 이야기는 요약만 해도 엄청 길어질 것 같아서 굳이 따로 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각각의 남편은 별명이 있고, 그와 함께한 시기가 소설상 하나의 '장(章)'으로 구분된다. 예컨대 에블린이 할리우드로 가서 배우가 되어야겠다 결심하고 계획적으로 유혹해 결혼한 첫 남편인 어니 디아즈는 '불쌍한 어니 디아즈(Poor Ernie Diaz)'라는 장에서 소개되고, 멋져 보였고 정말 최고의 스타였지만 가정 폭력을 휘두른 두 번째 남편 돈 애들러는 '망할 돈 애들러(Goddamn Don Adler)'라는 장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일곱 명의 남편 모두 이런 별명 또는 각 장의 부제목을 통해 일종의 캐릭터성을 부여한다고 해야 할까. 책 제목이 <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남편들' 각각보다는 "뭐야, 어떤 여자이길래 남편이 일곱이나 돼?"라는 반응이 제일 먼저 나올 거고, 그러면 그 남편들을 거느린 에블린 휴고에게 더 관심이 가게 되어 있으니 말이다. 책 말미에 모니크는 전기의 제목이 '남편들'이 들어가는 점, 그래서 자신의 커리어나 그녀 자신보다 남편들을 더 내세우는 점이 마음에 안 들지 않느냐고 묻는데, 에블린은 이렇게 답한다.

"아니. 그들은 그냥 내 남편들일 뿐이니까. 나야말로 에블린 휴고지. 그리고 어쨌든간에,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내 아내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질걸("No," she told me. "Because they are just husbands. I am Evelyn Hugo. And anyway, I think once people know the truth, they will be much more interested in my wife.")."

아하! 앞에서 말한 '남편을 일곱이나 거느린 여자(=아내)'라는 사실 자체가 이미 흥미로운데 알고 보니 그 여자에게 또 아내가 있다? 이거야말로 진짜 상상도 못한 정체 아닌가! 이렇게 해서 제목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더 정확해지려면 책 제목은 <에블린 휴고의 일곱 명의 남편들과 한 명의 아내>가 되어야겠지만 보통 결혼은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하는 것으로 여겨지니까 이 책 제목을 읽는 독자는 당연히 '아내'는 에블린 휴고 한 명일 거라고 추측하게 된다. 그래서 결혼이라고 할 때 동성들의 결혼(동성 결혼 또는 시민 결합)이 인정되지 않듯, 실제로 에블린이 평생 열렬히 사랑했던 실리아, 즉 에블린의 진짜 아내의 존재는 지워진다. 와, 이런 점까지 다 고려해서 이야기를 짜고 책 제목을 지었을 작가 생각을 하니 진짜 감탄이 다 나온다. 덕분에 이게 꽤 긴 책인데도 내내 '미쳤다 미쳤어' 하면서 읽었다.

아마 인류가 석기를 만들어 쓰던 시대부터 LGBTQ+ 같은 성소수자들은 언제나 존재했을 것이다. 그들이 당당하게 존재를 인정받게 된 것은 그에 비하면 아주 극히 최근, 짧디짧은 시간이고. 그래서 있는 그대로 인정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사회적으로 그들을 인정하기에는 너무 편협했던 시절, 1950년대를 바탕으로 묘사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99% 다 허구이지만, 실제로 일어났던 스톤월 항쟁(Stonewall Riots, 1969년 6월 28일에 일어난, 이후 동성애자 커뮤니티로 하여금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할 것을 요구하는 항쟁을 일으키는 데 발단이 된 사건)이나 레이건(Reagan) 당시 대통령 이야기(여담이지만, 레이건 대통령은 토니 쿠시너의 희곡 <엔젤스 인 아메리카>에도 언급되는데 레이건이 어떻게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짓밟았는지 하는 내용이다. 성소수자라면 레이건을 좋아할 수 없으리라), 에이즈로 사망한 록 허드슨(Rock Hudson) 등은 예외적으로 언급된다. 에블린도 스톤월 항쟁 이후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싶어 하지만 해리가 이를 저지하고, 결국 아직은 때가 이르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신 동성애자들을 위한 단체에 큰 액수를 후원한다. 언젠가는 자신도 그들처럼 당당하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힐 수 있는 시대가 오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은 영어권 북튜브나 북톡(각각 책을 다루는 유튜브와 틱톡)에서도 꽤 인기였는데, 그래서인지 최근(2022년 3월)에 넷플릭스가 이 소설의 판권을 사서 영화로 만들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사실 나는 이 소식을 듣기도 전에 책을 읽으면서 '이거 영상화하면 딱이겠는데? 영화는 2시간 남짓의 러닝타임으로는 조금 부족할 거 같고, 드라마로 만들면 두어 시즌은 뚝딱 나오겠군' 생각했다. 일단 원작 소설이 잘 팔렸으니 영화가 개봉할 때 팬들이 궁금해서라도 한 번쯤 볼 거고, 원작 소설의 이야기가 아주 촘촘하게 잘 쓰여 있어서 각색하기도 크게 어렵지 않을 것이다(다만 분량 문제는 팬들도 우려하는 점이긴 하다. 이야기가 워낙 많으니 2시간 분량의 영화에 다 욱여넣을 수 있으려나?). 원작 소설을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화려운 여배우의 비밀이 밝혀지는 이야기'라는 점과 'LGBTQ+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점을 내세우면 쉽게 흥미를 가질 듯하고. 영화가 공개될 즈음엔 내가 쓴 이 글도 다시 발굴되어 읽히려나? 그러면 좋겠다. 일단 이 책이 한국에서 정발되는 일부터 먼저 바라야 할 듯하지만. 그래도 아직 번역도 안 된 이 두꺼운 소설을 읽는 경험이 어땠는지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엄청 뿌듯하고 재밌었다고 대답해 주겠다. 400쪽이 하나도 지루하지 않았다고! 완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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