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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남형도,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많은 이들이 이미 잘 알 것이다. 브라질리언 왁싱을 직접 체험해 보고 쓴 기사가 웃기다며 인터넷 커뮤니티에 퍼진 것을 나도 보았으니까. 그 기사들이 모여서 책으로 나왔다. 안타깝게도 그 브라질리언 왁싱 기사는 이 책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왜죠!).

그래도 좋은 기사들이 많다. 내가 보기에 제일 잘 쓴 건 '사람이 버린 강아지, 사람 보고 환히 웃었다'라는 제목의 꼭지인데, 기자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나서 쓴 거다. 나는 애완동물을 비롯해 동물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므로 이 꼭지에 등장하는 강아지들 이야기가 나에게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고, 그냥 그 글의 구조가 내가 생각하기에 제일 바람직했다.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주는 주제인 데다가 농림축산검역본부 통계를 빌려와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고 유기견 보호소 운영자의 말을 인용해 '강아지 공장'에 대한 허가와 처벌을 엄격하게 할 것, 강아지들에게 칩을 심어 주인을 추적할 수 있게 해서 동물 유기를 막을 것, 현행법과 제도를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완벽한 구조다. 이 외에도 폐지 줍기 체험('폐지 165킬로그램 주워 1만 원 벌었다'), 환경미화원 체험('홍대의 중심에서 토사물을 쓸었다'), 시각장애인 체험('눈 감고 '벚꽃축제'에 갔다'), 소방관 체험(''35킬로그램 방화복' 입고 계단 오르니 온몸이 울었다') 등은 정말 훌륭하다. 이런 건 교과서에 실어도 좋을 듯하다.

물론 '이 기사는 도대체 왜?' 싶은 것도 있긴 하다. '62년생 김영수'라는 꼭지는 도대체 무엇을 보여 주고자 한 것인지 모르겠다. 일단 제목부터가 많은 여성들에게 의미가 깊은 작품, <82년생 김지영>을 오마쥬한 것인데, 그만큼의 사회 비평이 들어 있는 것 같지 않다. 62년생, 그러니까 현재 50대, 60대인 남성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알겠는데 (글 앞머리에 '5060 아버지 세대 네 분을 인터뷰해 그를 바탕으로 만든 소설'이라고 기자도 밝히고 있다) 딱히 새로운 점은 없다. 회사에 충성하며 일했는데 IMF가 닥쳐 명예 퇴직을 당하고, 그 후에도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어떻게든 열심히 일을 했다, 하는 이야기에 우리가 모르는 점이 뭐가 있지? 우리 아버지들이 힘들게 살아오신 거 알겠는데, 이걸 이렇게 써 봤자 '라떼는 말이야' 그 이상, 그 이하의 무엇도 안 되지 않나? 감상주의적으로 '우리 아버지들이 이렇게 열심히 일했어요!' 말하는 것에 어떤 효용이 있는지 모르겠다(그럼 뭐 그 시대 여성들은 열심히 일하지 않았단 말인가?). 그렇게 열심히 일하느라 가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자녀들과 부드럽고 원만한 의사소통이 안 되고, 스스로 부성을 키울 수 없었던 것은 후회되지 않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이렇게 평생 열심히 일했는데 국민 연금이 자금 운용을 잘 못해서 그것만으로 여생을 지내기 어려워 또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같은 흐름이었다면 이 정부가 노인들을 잘 돌보지 못한다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건 적어도 꼰대의 감상주의적인 자기 연민처럼 들리지는 않을 거고, 노인 일자리 확충이라든지 노인에게 주어지는 혜택 문제를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근데 '62년생 김영수'는 그 기회를 놓쳤다. 이 꼭지에 비하면 내가 별로라고 생각했던 다른 꼭지들(예컨대 )은 차라리 선녀로 보인다.

이 글을 마무리 짓기 전 기자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기자님, 이 책 맨 첫 꼭지가 '브래지어, 남자가 입어봤다'인데, 브라가 얼마나 답답한지 직접 체험해 보는 정신은 정말 멋집니다만, 사람들이 기자님을 쳐다본 건 '남자가 브라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여자는 브라를 입었다고 쳐다보진 않죠. 왜냐하면 여자에게 브라는 그냥 기본, 디폴트 장착 아이템이니까요. 하지만 여전히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며 여자들을 쳐다본답니다. 가슴이 크다, 노출이 많다, 브라를 안 입었다, 심지어는 그냥 가슴이 거기 있으니까 등등. 브라가 비싸게 느껴지는 것은 맞지만, 브라를 입음으로써 타인의 불쾌한 시선을 100% 피할 수 있다면 차라리 기꺼이 입겠습니다. 문제는 브라가 아니라는 거죠. 또한 와이어가 달린 브라가 너무 답답하기 때문에 요즘엔 그런 브라보다 편한 브라렛이 트렌드가 아닌 그냥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잡았어요. 국내에도 브라렛을 만드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건 기자님이 여성이 아니라서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말미에 나중에 딸이 생기면 브라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된다고 말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따님이 브라가 너무 불편하다고 한다면 브라렛을 권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물론 개인적으로는 다음 세대를 위해 성차별이 적은, 여성 혐오가 덜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생각합니다만.

책 표지에는 당당히 '네이버 기자 페이지 구독자 수 독보적 1위'라고 쓰여 있는데, 그건 많은 이들이 그의 기사를 읽는다는 뜻이다. 또 거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면 얼마나 많은 한국인들이 '기레기' 말고 기자다운 기자를 보고 싶어 했는지 보여 주는 증거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저 누가 불러주거나 써주는 대로 받아적기 바쁜 기레기들 말고, 정치권 또는 가진 자들의 시각으로 국민들을 우롱하는 기레기들 말고, 진짜로 자기 발로 나서서 취재하고 자기가 쓴 글에 책임을 지는 그런 기자 말이다. 진정한 의미의 기자, 국민들이 존경심을 담아 기자라고 부를 수 있는 기자들이 많아지기를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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