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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박상영, <오늘 밤은 굶고 자야지>

 

재미있고 짠하다. 분명 엄청 웃으면서 시작했는데 중반 이후부터는 마음이 찡해져서 '저런...'을 연발하며 읽었다. 분명 시작할 땐 이렇게 빵빵 터졌는데!

세상에 출근보다 더 싫은 게 존재할까? 다들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서른몇 해를 살아본 결과 이보다 더 싫은 건 없었다. 채근하듯 울려대는 알람을 끄면서 하루를 시작하면 욕부터 튀어나온다. 10년 전에 라식수술을 한 뒤로는 아침마다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안구건조를 느끼기 때문에, 감은 눈으로 침대 옆 협탁을 더듬어 인공누액부터 찾아 넣는다. 텔레비전 교양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는 피부과 전문의의 말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대부분은 지성 피부이며 자신이 지성인 걸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하던데, 아침에 내 피부를 보고도 그 말이 나오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나는 악건성이다. 각막과 입술을 포함한 온몸이 건조하고 대부분의 건성인들이 그러하듯 종종종 참을 수 없이 간지럽다. 빙하처럼 추운 욕실로 들어가 건조한 몸에 미지근한 물을 끼얹으며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낀다. 살아 있음의 거지 같음을. 새로 산 보디로션의 점도가 높아서 그런지 걸을 때마다 다리에 바지가 달라붙는 것 같은 기분으로, 나는 등 한가운데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지만 간지러운 어떤 지점을 긁기 위해 노력하며 영하의 거리로 나선다.

이게 첫 꼭지의 세 번째 문단이다. 기가 막힌 명문이다. 그다음 문단도 만만치 않다.

우리 집에서 회사까지는 도어 투 도어 50분 내외의 시간이 소요되며 총 세 번의 환승을 거쳐야 한다. 이는 서울 시내 직장인의 평균에 매우 가깝다. 이미 만원인 채로 정류장에 멈춰 선 버스에 몸을 구겨 넣으며 나는 오늘 하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다. 내 인생에 대한 희망을 저버린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목 뒤에 닿는 모르는 사람의 입김과 어디선가 풍겨 오는 썩은 내. 나는 양치질과 샤워, 빨래를 제대로 하지 않는 사람을 사살할 수 있는 살인면허가 발급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서도 쉬이 고개를 들거나 신경질이 가득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볼 엄두를 내지는 못한다. 냄새의 출처를 추적하는 또 다른 누군가와 눈이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그가 아주 높은 확률로 이 공간에서 가장 덩치가 큰 — 즉 도리 없이 뚱뚱한 — 남자인 나를 범인으로 지목할 것만 같아서다. 높은 확률로 적중하는 피해의식. 있잖아요. 당신, 날 왜 그렇게 봐? 저 매일 아침 샤워하고요, 데오도런트에 향수까지 뿌리고 다니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은 세탁기도 돌리고, 수건에서 걸레 냄새 나는 게 죽기보다 싫어서 없는 살림에 건조기까지 장만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렇게 보실 필요 없거든요?

이렇게 다소 신경질적인 유머로 시작해(진짜 출근 시간대의 내 기분 같다) 점차 작가가 본인의 만성질환, 그러니까 만성위염과 역류성식도염, 야간 식이 증후군과 기분장애(양극성장애와 공황발작)를 털어놓는 데까지 가면 '아...' 하는 탄식이 흘러나오게 된다. 코미디언 또는 코미디 배우 중에 우울증인 이들이 많다더니, 남을 웃게 하는 이들은 속에 슬픔과 힘듦을 숨기고 사나 보다. 다니던 직장을 마침내 관두실 때에는 정말 괜찮으실지 내가 다 걱정할 정도였는데, 다행히 그 이후로 일이 잘 풀리신 듯.

어련히 열심히 잘 사시는 분께 짠하다고 연민을 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이 에세이를 읽으며 발견한 작가님의 모습, 그러니까 멋진 점들에 대해 이야기해 볼까 한다. 작가님은 첫 소설로 등단하기 전에 동료 작가들(이미 등단하신 분들)과 스터디를 짜서 정말 간절하게 글을 쓰셨단다. 와, 대단해. 지나고 나니까 2년 반 후에 등단했다, 하고 쓸 수 있게 되는 거지 그 당시에는 미래를 알 수 있는 방법도 없으니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셨다는 게 너무 존경스러웠다. 

그리고 작가님께 '여사친'인 작가분들이 여럿 계신 것 같은데, 글을 읽다 보면 '여자들이 친구로 잘 지낼 수 있는 좋은 남자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예컨대 본인이 뚱뚱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남성'이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보다는 그래도 상황이 낫다는 걸 인정하는 부분이나, 본인이 패스트 패션을 이용하기 때문에 환경 오염에 일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시인하는 부분. 

그래도 비만한 '남성'인 나는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살찐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멸시와 비하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단 여성인 배우나 가수가 조금이라도 살이 찌면 어김없이 살이 쪘고, (도대체 무슨 범위의 관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프로 의식이 모자란다는 댓글이 달리기 일쑤다. 따지고 보면 배우는 연기하는 직업이고 가수는 노래하는 게 직업의 본질인데 왜 당연히 날씬한 몸을 직업적 소양에 포함하는 것일까.
내 좁은 방에는 M 사이즈부터 XXL 사이즈까지 엄청나게 많은 티셔츠와 속옷이 발 디딜 틈 없이 자리하고 있다. 폭식과 다이어트를 반복하며 족히 100킬로그램은 찌고 빠진 몸을 감당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사들인 싼 옷들이다. 패스트패션의 풍토 속에 함부로 사서 입고 버려지는 옷들이 얼마나 큰 공해인지 이제는 상식으로 모두가 알고 있다. 나 역시도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지만, 방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옷 더미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는 것도,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싼 옷을 사는 습관도 멈출 수가 없다. 때때로 나는 그저 먹고 소비하기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한아가 내 방을 본다면 기함을 하며 호통을 칠 것만 같다.

이 정도의 섬세한 (그리고 인권에도 미치는) 감수성이 있으니 과연 여사친들이 있을 만하구나 싶었다. 패스트패션이 환경 오염의 큰 원인 중 하나라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해도, 이렇게 순순히 자신이 패스트패션을 통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는 남자들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남자들에게 패션은 그저 '가오', 또는 멋내기, 자랑의 수단이라는 느낌이 더 강해서일까. 자신이 소비하는 패션을 이렇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의식이 있기에 역시 작가는 작가구나 싶어 감탄이 나왔다.

재미와 짠함이 단짠단짠의 느낌으로 뒤섞여 있는 이 솔직한 에세이와 작가님을 만나게 되어 너무 기쁘다. 작가님의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지. 그리고 나에게 이 책을 대출해 준 서울시 전자도서관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아니, 왜 나 이제서야 전자 도서관의 존재를 떠올렸지? 멍청... 어쨌거나 이제는 더 많은, 더 다양한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니 앞으로 올라올 서평을 기대해 주시라! 이 책도 완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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