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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도대체,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

by Jaime Chung 202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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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도대체, <뭐라고? 마감하느라 안 들렸어> 

‘행복한 고구마' 만화(클릭)로 유명해진 도대체 작가의 일상 에세이. 이 저자의 전작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도 흐뭇하고 재미있게 잘 읽었기에, 전자 도서관에서 뭐 읽을 책 없나 뒤적거리다 이걸 발견하고 바로 빌렸다.

저자가 작가 활동을 하면서 느낀 점을 짧은 에세이와 만화로 표현했는데, 가벼우면서도 포근하고 따뜻해서 읽는 재미가 있다. 나는 앉은 자리에서 한 1시간 정도에 끝낸 거 같다. 소소하지만 미소를 짓게 하는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부드러운 힘’이란 이런 거구나 느끼게 된다. 매주 마감에 치이면서도 시간을 내서 친구를 만나는 것, 마감을 맞추지 못할 것 같아 울면서 작업을 하면서도 실제로 마감을 펑크 내지는 않는 것, 이번 생은 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망한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 새삼스럽게 놀랄 것 없다며 그냥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런 게 진짜 강함이 아닐까?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사랑을 위해 죽는 것보다 갈등이 있으면 대화로 풀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서로를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며 같이 늙어가는 게 더 어려운 것처럼, 힘들다 생각할 때 포기하기는 쉽지만 그 힘든 일을 계속 이어나가 끝까지 해내기는 어려우니까.

또한 저자의 또 다른 장점이라면 솔직하고 담백한 것이다. ‘일단 먹고 봅니다’란 꼭지는 정말 솔직하고 귀엽다.

소재가 떠오르지 않을 때 하는 일 중 또 다른 하나는 ‘먹기’입니다. ‘걷기’가 소재를 위한 적극적인 방법이라면, ‘먹기’는 약간 체념에 가깝습니다. ‘아무 생각도 못 하고 시간만 죽일 바에는 맛있는 거라도 먹자. 그러면 기분이라도 좋아지니까’라는 마음인 셈이죠. 그동안 제가 트위터에 올린 기록을 좀 찾아보자 이런 것들이 나왔습니다

* 오늘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일단 걷다가 마라탕을 먹었다.
* 오늘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바지락칼국수를 먹으러 왔다.
* 오늘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일단 감동란을 두 알 먹었다.
* 오늘도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냉면 먹으러 왔다.

물론 언제나 기분 좋은 결말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래 기록들이 증거입니다.

* 오늘도 뭔가 생각해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안 나서 일단 밖으로 나왔다가 배가 고파져서 짜장면을 먹었다. 이제 배부르고 아무 생각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오늘도 아무 소득 없이 팥죽만 먹었다. 내일 낮까지 무슨 생각이라도 해내야 한다. “그동안 뭐하셨어요?”라고 묻는 클라이언트에게 “가라아게, 마라탕, 팥죽을 먹었다”고 대답할 순 없다.
* 오늘이 가기 전에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떠올려야 하는데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일단 밥부터 먹었지만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커피도 마셨으나 그대로였다. 샤워를 해도 소용없어서 밖을 어슬렁거렸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이렇게 반복하다 보면 금방 여든 될 것 같은데…….
* 다행히 여든이 되기 전에 생각해냈다.

‘울면서 달리고 있습니다’라는 꼭지도 참 솔직하다.

‘그렇게 자기 작업에 자신이 없는데 어떻게 작업을 계속하나?’라고 묻고 싶은 분도 계실 것입니다. 맞습니다. 저도 종종 그런 생각을 합니다. 답을 하자면, 그런 생각이 들지만 울면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북토크 행사가 끝나고 사인을 받으러 온 이십대 독자가 말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겁이 나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고요.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그렇고, 아마 남들도 사실은 모두가 겁이 나는데 울면서 하고 있을 거라고요.

저도 울면서 달리고 있습니다. 달리면서 무엇을 만나게 될지, 그렇게 달린 후에 어떤 풍경을 보게 될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일단 울면서라도 가볼 수밖에요. 다행히 가끔 웃을 수 있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때마다 더 달릴 힘을 얻으며 조금씩 살아가다 보면 제가 원치 않아도 달리기가 끝나겠죠.

부끄러울 수 있는 자신의 부족한 점이나 바보 같은 이야기를 남에게 드러낼 수 있다는 건 용기 있는 일이다. 그걸 보고 다른 이들도 ‘나도 사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하고 위로를 받을 수도 있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일견 가벼워 보여도 실제로는 진중하고 단단하며 강한 글을 좋아한다.

도대체 작가의 만화나 글을 좋아한다면 이것도 꼭 읽어 보시라. 참고로 저자의 트위터 계정은 여기. 들어가 보니 2021년에 새 책이 나왔었는데 나만 모르고 있었네! 저자가 데려온 길고양이들의 이야기라고 한다. 제목은 <이왕이면 행복해야지>. 이것도 읽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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