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감상/영화 추천] The House with a Clock in Its Walls(벽 속에 숨은 마법시계, 2018) - 애들용이에요, 어른이들은 아이들에게 양보하세요
감독: 일라이 로스(Eli Roth)
루이스(Lewis Barnavelt, 오웬 바카로 분)는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셔서 고아가 되자 엄마의 오빠, 즉 삼촌인 조나단(Jonathan Barnavelt, 잭 블랙 분)과 같이 살게 된다.
처음 만나는 조나단 삼촌은 로브인지 뭔지(본인은 기모노라고 주장한다) 하는 옷을 입은 괴짜이다.
삼촌이 사는 집도 심상치 않다. 수백 개의 시계가 끊임없이 째깍거리고 벽에 걸린 그림은 안 보고 있을 땐 움직이는 거 같다.
게다가 삼촌의 이웃인 플로렌스 짐머만 부인(Florence Zimmerman, 케이트 블란쳇 분)은 엄청 예쁘고 똑똑한데 삼촌과 계속 티격태격한다.
이 이상한 집에서 첫날 밤을 지내려는데 밤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루이스가 살금살금 밖에 나가 보니 복도에서 삼촌이 뭔가를 찾고 있었다.
루이스는 삼촌을 조금 더 따라가 보려고 했는데 갑자기 시계에서 튀어나온 뻐꾸기? 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시계 때문에 깜짝 놀라서 방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다음 날, 새 학교에 첫 등교한 루이스는 새 친구 타비(Tarby, 서니 설직 분)를 만난다. 새 친구가 말해 주길, 루이스가 사는 삼촌네 집에서 어떤 남자가 도끼에 맞아 죽었다고.
으스스한 기분이 들어서 집에 돌아온 루이스. 그날 밤 또 이상한 소리가 나서 복도로 나가 보니 삼촌이 어디에선가 "어서 나와라!" 하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 보니 아저씨가 벽에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루이스는 과연 무사할까? 그리고 이 집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밤중에 도끼를 들고 시계를 찾는 조나단 삼촌
한밤중, 루이스에게 나타난 죽은 어머니의 환영
공동묘지에 간 타비(왼쪽)와 루이스(오른쪽)
아름답고 똑똑한 짐머만 부인!
존 벨레어스(John Bellairs)의 동명(<The House with a Clock in Its Walls)>)의 아이들용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이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2002년에 <벽 속에 숨은 마법의 시계>라는 제목으로 번역 · 출판되었는데 알라딘에서 찾아보니 현재는 절판이란다.
아마 영화가 개봉하면 이 책도 영화 타이인(tie-in, 파생 상품)으로 재출간되지 않을까 싶다(그리고 원서도 교보 문고 같은 데서도 쉽게 구할 수 있게 될 듯).
이 리뷰에서는 영화의 전반적인 스토리와 주요 사건들을 모두 언급할 테니 스포일러를 원치 않으시는 분은 스크롤을 쭉 내려서 맨 아래에 있는, 원작 소설 겉표지 이후만 읽으시라.
아래 짤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도록 하겠다.
조나단네 집에 위 사진처럼 다소 불쾌하게 생긴 인형들이 있는데 진짜 '소름 끼친다(creepy)'라는 말 그 자체이니 이런 거 안 좋아하시는 분들은 주의하시라.
이건 정말 애들용 영화이다. 비록 어떤 아동 영화는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이'가 봐도 재미있고 감동을 받을 수 있게 잘 만들어졌지만, 이건 그런 영화가 아니다.
내가 이걸 애들 영화라고 하는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하다. 주인공 꼬마 루이스가 모든 일을 해결한다. 두 어른(삼촌 조나단, 이웃 짐머만 부인)이 여태껏 해결하려고 해도 못 했던 일을 말이다.
보통 아이들에게 성추행이나 납치 등 아동 대상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교육할 때 낯선 어른이 도움을 청하면 직접 도와주려고 하지 말고 '잠깐만요. 경비/경찰/다른 어른을 불러 올게요.'라고 말하도록 가르치지 않는가. 왜냐? 상식적으로 어른은 아이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으니까.
어른이 곤란에 처했다면 이를 도울 수 있는 건 대개 다른 어른이지, 어린이가 아니다. 뭔가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봐야 하는 문제, 상상력이 필요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문제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것도 보통 아이들에게서 영감을 얻어 어른들이 새로운 것을 디자인한다든가 발명한다든가 하는 거지, 실질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건 아니지 않나.
그래서 루이스가 일을 만들고 해결하는 게 도저히 납득이 안 됐다.
그렇다고 얘가 무슨 천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얘는 고글을 이마에 딱 붙이고 다니고(아니, 머리띠처럼 머리통 위에 올려놓는 것도 아니고 이마에 땀 차게 눈썹 바로 위에 올려놓는 건 도대체 뭐람?), 어려운 단어를 외우기 좋아하며, 삼촌과 살기 위해 산 짐에 백과사전을 챙긴 괴짜 중의 상 괴짜이다.
그렇지만 주인공 버프를 너무 많이 받아서 모든 일을 다 얘가 한다. 어른이들을 무시해도 유분수지!
내가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이거다. 설명해 보겠다. 삼촌 조나단이 사는 집은 사실 조나단의 옛 친구인 마법사(아, 내가 조나단도 마법사라고 말했던가?) 아이삭 이자드(Isaac Izard, 카일 맥라클란 분)가 죽은 곳이다.
그는 죽기 전에 이 집 안에 (제목대로) 시계를 심어 놓았다. 왜? 자신이 전쟁(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볼 때 제2차 세계 대전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때 얻어 낸 무척 강력한 힘으로, 전쟁이 일어나기 전 이 세상의 시간을 되돌리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마법을 부리기 위해 사람의 뼈로 열쇠를 만들던 와중에 죽었지만, 그는 강령술(necromancy)의 비법을 담은 책을 남겼다.
이 책은 지금도 집의 캐비넷에 보관돼 있고, 조나단은 조카 루이스에게 '우리 집에 규칙은 없지만 이 캐비넷은 절대 열지 마라. 그게 유일한 규칙이다'라고 신신당부했다.
그렇지만 루이스는 (전교 회장이 되고 나서 태도가 뻣뻣해진) 타비를 다시 자기 친구로 만들고 싶어서, 그에게 뭔가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해 그를 집에 초대한다.
타비는 경솔하게도 그 캐비넷을 열어 이 위험하고 무서운 책을 꺼낸다. 두 꼬마는 이게 강령술에 대한 책임을 알게 된다. 루이스는 급히 이 책을 뺏어서 다시 캐비넷에 넣어 두고 타비를 집에 보낸다.
하지만 며칠 후, 타비의 관심을 얻기 위해 루이스는 '나 강령술 할 수 있어!' 하며 그 책을 꺼내 가지고 몰래 밤에 나가 공동묘지에서 타비를 만난다.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무덤 앞에서 주문을 외운다.
잠시 후, 무덤의 관 뚜껑이 흔들리고 시체의 손이 튀어나온다. 아이들은 혼비백산한다. 진짜로 죽은 사람이 살아났어!
눈치 빠르신 분들은 눈치 챘을 수도 있지만, 되살아난 이 '죽은 사람'이 바로 앞에서 말한 마법사 이자드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강령술이란 아주 사악하고 위험한 마법이다. 근데 그걸 그냥 꼬맹이가 책을 따라서 돌맹이로 마법진을 그리고, 칼로 피를 내어서 책에 묻히고, 책에 쓰인 주문을 읽는 것만으로도 해낼 수 있다고?
보통 그런 위험한 마법은 높은 수준의 마력이나 연륜, 뭐 그런 걸 필요로 하지 않아? 아니면 최소한 아주 구하기 어려운 재료라든가.
근데 그냥 꼬맹이가 책을 보고 시키는 대로 하니까 그냥 주문이 먹혀든다고? 어른이들을 우습게 만드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ㅡㅡ
애들을 타깃으로 하는 영화는 애들이 자기 또래 주인공에 더 이입하게 마련이니까 어른들을 약간 희화화하는 것도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것도 적당히 해야지! 비교를 위해 (내가 애들 영화의 최고봉이라 생각하는) 로알드 달(Roald Dahl)이 쓴 동명의 동화를 바탕으로 한 <마틸다(Matilida, 1996)>를 생각해 보시라.
어른들은 심지어 마틸다의 부모까지 포함해 최소 무심한 사람들 또는 악당으로 그려진다. 마틸다는 초능력으로 이 어른들을 혼내 주고 결국에는 행복해진다(허니 선생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난 아직도 이 영화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이렇게 잘 만든 애들 영화는, 위에서 말했듯이, 어른들이 봐도 재밌고 감동도 받는다. 그리고 이런 영화는 어른들도 다른 어른 캐릭터가 아니라 어린아이 주인공에 이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폭풍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애니(Annie, 1982)>를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이 외에 그 어떤 (잘 만든) 애들 영화든지 떠올려 보시라.
못 만든 애들 영화는, 좀 거칠게 말하자면, 애들 비위를 맞춰 주는 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주인공 애가 엄청 특별하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감독/작가가 그걸 설득력 있게 표현해 내지 못해서 억지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어떤 캐릭터를 천재라고 설정해 놨는데 작가가 천재가 아니어서 그걸 잘 묘사하지 못한 작품 같다. 해당 캐릭터가 남보다 뛰어난 게 아니고 그냥 다른 등장인물들이 얘보다 덜떨어져서 진짜 별거 아닌 거에 "와, 대단해!" 한다는 느낌?(전형적인 이세계물 라노벨을 떠올려 보시라.)
그리고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또 싫었던 건, 의외로 깜짝깜짝 놀라는 장면이 두어 번 정도 나온다는 거다.
귀신처럼 무서운 게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누가 뒤에서 '워!' 하고 깜짝 놀래듯이, 딱 그런 수준의 장면이 나오는데 이게 애들 영화다 보니 '내가 애들 영화를 보고 놀라다니!' 하고 약간 자존심이 상한다.
나처럼 잘 놀라는 타입이 아니라면, 음, 이 말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셔도 된다.
왼쪽은 국내 (절판된) 번역본, 오른쪽은 영어 원서 겉표지
(이제 스포일러 없이 영화 평을 시작할 테니 천기누설을 원치 않으시는 분은 여기서부터 읽으시면 된다!)
마법에 걸린 조나단네 집에서 주인공 루이스의 꽁무니를 마치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는 의자나 풀잎으로 사자의 형태를 이룬 신비한 동물의 응가 개그 같은 건 애들이 딱 좋아하겠다 싶다.
잭 블랙이 엄청 코믹하게 나와서 빵빵 터질 거라 기대하실 분들도 계실 텐데,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건 애들 영화다.
나도 잭 블랙을 참 좋아하고 그의 코미디에 잘 웃지만, 그가 다른 영화에서 보여 주는 그런 코믹 연기를 이 영화에서 보기는 어렵다. 나도 여러분만큼이나 아쉽다.
이 영화에 그나마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케이트 블란쳇 여신님이 아름답게 나온다는 것이다.
그녀의 캐릭터는 조나단 뺨 정도는 왕복으로 날릴 정도로 아주 똑똑한 마법사인데, 모종의 슬픈 사정으로 인해 현재는 자신의 마법 능력을 쓰지 못하는 상태라는 설정이다(능력을 잃었다기보다는 그 능력을 사용할 자신감을 잃었다는 쪽에 가깝다).
영화 내내 다양한 디자인과 톤의 보라색 옷을 입고 나온다. 보라색 의상 때문에 더욱 여성스러워 보이는 듯(보라색은 서양 색채 체계에서 전형적인 여성의 색이다).
머리는 틀어 올렸는데 그것도 우아하고 예쁘다. 잭 블랙의 캐릭터와 티격태격하는 것도 소소하게 재밌으니 애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같이 영화를 보러 간 어른이라면 블란쳇 여신님으로 눈을 정화하고 기분 푸시길 바란다(제일 좋은 방법은 애초에 이걸 보러 가지 않는 것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