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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 감상/영화 추천] Bad Times at the El Royale(배드 타임 앳 더 엘 로얄, 2018) - 엘 로얄 호텔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좋은 일을 할 뿐

by Jaime Chung 2018.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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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감상/영화 추천] Bad Times at the El Royale(배드 타임 앳 더 엘 로얄, 2018) - 엘 로얄 호텔에서는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쁜 사람이 좋은 일을 할 뿐

 

 

감독: 드류 고다드(Drew Goddard)

 

미국 네바다(Nevada) 주와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의 경계 사이에 자리 잡은 '더 엘 로얄 호텔(The El Royal Hotel)'.

어떤 남자(닉 오퍼맨 분)가 이곳에 체크인한다. 그 남자는 침대까지 들어서 한쪽에 세워 두고 바닥에 깔린 카펫을 밀친 뒤 바닥 마룻널을 떼어낸다.

끙끙대며 바닥에 조그만 공간을 만든 후 그는 가방을 조심스럽게 그 안에 넣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감쪽같이 바닥이며 카펫, 가구를 제자리로 돌려 놓는다.

그리고 잠시 후, 문을 열었다가 낯선 남자의 총에 맞아 사망한다.

그 후로 세월이 얼마나 지났을까. 이곳에 한 흑인 아가씨(신시아 에리보 분)가 차를 몰고 와 내린다.

뒤의 트렁크에서 돌돌 감은 모포를 두 개나 들고 캐리어를 밀고 호텔로 가려는데 사제복을 입은 한 남자(제프 브리지스 분)가 그녀를 등지고 네바다 쪽에 서 있다.

그녀의 인사에 그는 천천히 그녀를 돌아보고 대화를 시작한 두 사람. 그녀는 캘리포니아 쪽에 서서 그에게 네바다는 어떻냐고 묻는다.

비가 올 것 같다고 대답한 사제는 이제 그녀에게 묻는다. 캘리포니아는 어떻냐고. 그녀는 '아직까지는 맑네요.' 하고 대답한다.

두 사람은 웃고 조용한 호텔로 들어간다. 아무도 없었나 싶었는데 바에서 어떤 남자(존 햄 분)가 불쑥 고개를 내민다.

쾌활하면서 동시에 다소 무례하게 말을 늘어놓는 이 남자는 자기 소개를 하며 그들에게 '칼훈 가전제품'이라 쓰인 명함을 내민다.

흑인 아가씨는 이 세일즈맨 같은 남자에게 질렸는지 카운터에 놓인 종을 울린다. 잠시 후, 심약하게 생긴 청년 직원(루이스 풀먼 분)이 셔츠를 바지 안으로 집어넣으며 허겁지겁 달려 나온다.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는 그 직원에게 방에 대해 문의하는 세 사람. 직원 말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쪽이나 네바다 쪽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단다. 네바다 쪽에서는 술을 못 파니 술을 마시고 싶으면 캘리포니아 쪽 구역으로 오라는 말도 덧붙인다.

어딘가 슬퍼 보이고 아파 보이는 직원의 이름은 마일스(Miles).

일단 첫 번째로 방을 고른 건 사제. 직원은 방명록에 이름을 써 달라고 한다.

사제는 방명록에 '신부 다니엘 플린(Father Daniel Flynn)'이라고 적었다. 그가 고른 건 5번 방.

그다음엔 흑인 아가씨가 방을 고른다. 그녀는 4번 방을 골랐고, 방명록에는 '달린 스위트(Darlene Sweet)'라고 이름을 적었다.

그때 한 백인 여자(다코타 존슨 분)가 들어온다. 20~30대 정도로 보이는 그녀는 카우보이 패션이다. 입은 다소 거칠다.

달린 다음으로 방을 고른 것은 이 여자. 맨 끝에 있는 방을 고른 그녀는 방명록에 '엿이나 먹어(FUCK YOU)'라고 쓰고 사라진다.

마지막으로, 그 수다스러운 세일즈맨의 차례. 그는 1번 허니문 스위트룸을 고른다. 이름은 '라라미 시무어 설리번(Laramie Seymour Sullivan).'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후, 그들이 가진 비밀이 하나씩 드러난다. 달린, 신부님, 카우보이 패션 여자, 시무어, 마일스까지.

그리고 오늘 이 끔찍한 밤에 누군가가 또 이곳을 찾아오게 되는데...

 

직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세 손님. 왼쪽부터 라라미 시무어 설리번, 가운데 '사제' 다니엘 플린, 오른쪽이 달린 스위트

 

귀엽지만 어딘가 소심하고 기가 약해 보이는 호텔 직원 마일스

 

크리스 헴스워스 팬들을 위한 서비스 컷!

 

서비스 컷 한 컷 더. 영화 거의 내내 저렇게 폭우가 내린다.

 

 

사실 나는 이 영화 예고편을 TV로 보고 '내 취향일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시도는 해 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개봉한 지 1주일 지난 후 보러 갔다.

깜짝깜짝 잘 놀라는 내가 보기에 이 영화 사람들은 왜 총을 한번 잡았다 하면 상대방 말도 안 듣고 탕탕 쏘아 대는 건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래도 영화 자체는 긴장감이 있고 괜찮았다.

후반에 가면 전반보다 사건의 흐름이 루즈하게 느껴지는데, 사실 이 영화의 주제는 후반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므로 후반이 중요해서 일부러 흐름을 천천히 한 거 같기도 하다.

아래 짤 이후로 이 영화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텐데 결스포일러가 난무할 예정이니 이를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아래에 다시 영화 포스터가 나올 때까지 쭉 스크롤을 내리셔서 마지막 문단을 읽으시면 되겠다.

 

     

        

각 등장인물들의 개인 포스터들. 각 인물들이 캘리포니아 주와 네바다 주를 가르는 경계를 걸어가는 모습인데 영화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인 '엘 로얄'의 특수성, 그러니까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는 점은 상징적이다.

이는 등장인물들의 과거, 비밀을 알게 될수록 점점 더 의미심장해지는데, 이 인물들은 보기와는 다른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밝혀지는 시무어의 경우를 보자. 그는 사실 FBI 요원으로, 이곳에 설치했던 도청기를 비롯해 그간 '작전'이 실행되었다는 증거를 인멸하라는 명령을 받고 이곳에 왔다.

그는 그 명령을 따르고 나서 상부에게 보고하기 전, 카우보이 패션 여자네 방에서 어떤 소녀가 납치된 듯 의자에 묶여 있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공중전화에서 상부에게 자신이 본 것을 말하니, 상사는 그 일은 지금 작전과는 관련이 없으니 끼어들지 말고 그냥 주어진 일만 하라고 한다.

상부와의 통화가 끝난 후, 그는 양심을 무시할 수 없어서 그녀의 방에 들어가려고 천천히 그녀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그녀는 대화를 거부하고, 결국 그는 총으로 방 문을 따고 들어간다. 그렇지만 이 카우보이 패션 여자는 도저히 협조를 안 할 뿐 아니라, 오히려 단번에 그를 쏘아 죽인다.

그는 착한,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 대가는 허무한 죽음뿐이다.

 

이 카우보이 패션 여자의 이름은 에밀리(Emily). 그녀의 동생 로즈(Rose, 케일리 스패니 분)와 그녀는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 왔다.

그런데 지금 왜 자기 동생을 납치해 왔느냐 하면, 그 동생이 아버지를 잔인하게 칼로 살해하고 도망친 후, 약간 돌아 버린 컬트(cult, 광신도 집단, 사이비 종교)의 리더인 빌리 리(Billy Lee, 크리스 헴스워스 분)에게 홀딱 빠졌기 때문이다.

이 빌리 리라는 자는 단순한 히피 정도가 아니라, 기성 종교가 제멋대로 선과 악, 옳고 그름 등을 구분해 놓고, 즉 자기 멋대로 규칙을 짜 놓고서 타인들에게 선택을 강요한다고 비난하는 자이다.

게다가 이자는 로즈와 연인 사이였다. 로즈의 나이가 몇인지는 밝혀지지 않는데, 찾아보니 로즈 역 배우가 21살이더라.

어리기도 어린데 또 그 나이에 비해서도 동안인 데다가 키는 조그맣고(150cm란다) 옷도 캐릭터를 위해 손등까지 다 덮는 소매의 짧은 원피스를 입혀 놨다.

그러니까 36살에다가 근육질인 크리스 헴스워스 옆에 서 있으면 정말 위험한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 말을 안 좋아하긴 하는데 정말 이 '커플'의 모습이 소아 성애 같은 느낌을 뿜어 내서 '크리피(creepy)'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미국에서는 그런 걸 특히 더 쓰레기처럼 보지 않는가. 게다가 위에서 말한 그 궤변을 듣고 이놈, 완전히 또라이구나 하고 깨달은 언니 에밀리는 자기 동생을 그 컬트 리더에게서 '훔쳐' 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반전이 있다. 로즈는 약한 소녀도 아니었고, 이 빌리 리라는 자에게 세뇌된 상태였다.

에밀리가 시무어를 쏘아 죽이고 거울 뒤(각 방의 거울은 사실 방 뒤쪽 통로에서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그러나 방 안에서는 뒤의 통로를 보지 못하는 비밀 거울이었다)에 있던 마일스까지 붙잡아 죽이네 살리네 하고 있는 그때에, 로즈는 벌써 빌리 리에게 자신이 어디 있는지를 알려 준 후였다.

그래서 그들뿐 아니라 사제와 달린(아주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제는 진짜 사제가 아니라 예전에 호텔 방 바닥에 숨겨 놓은 돈을 가지러 온 전과자이며, 달린은 내일 라운지에 노래를 하러 가야 하는 코러스 가수이다. 둘은 달린 방 바닥에 있는 돈 가방을 찾아 절반으로 나눠 가지려고 했다)까지도 빌리 리에게 붙잡히는 처지가 된다.

빌리 리는 자신이 비난하는 기성 종교의 짓을 똑같이 한다. 즉, 에밀리와 마일스에게 검정과 빨강 중 하나를 고르라고 강요한다.

그리고 블랙 잭 판에 구슬을 던져 넣고 검정이 나오자 빨강을 선택한 에밀리를 쏴 죽인다.

이렇게 에밀리도 아까 FBI 요원과 같은 케이스가 된다. 둘 다 보기와는 다른 사람이었고, 에밀리가 동생을 구하려 했던 '착한 일'도 허무하게 끝이 난다.

빌리 리 진짜 위선자... 이 영화에서 미친 것으로는 1등인 위험한 놈이다.

 

그렇지만 다행히 '겉보기와는 다른 비밀'이 있는 사람이 이들만은 아니었다.

심약해서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알겠나 싶던 마일스가 사실은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던 베테랑이었던 것.

그는 자기 부대 중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고, 자신이 수많은 적을 죽였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려 카운터 뒷방에서 헤로인을 하며 괴롭게 살아가고 있었다.

빌리 리가 그에게 선택을 강요하자(그리고 죽을 뻔하자) 거의 미칠 것 같았던 마일스는 달린에게 '더 이상 사람을 죽이지 않아도 돼요'라는 속삭임을 듣는다.

여태까지 선택을 강요받던 그에게 달린의 친절함은 거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마일스는 강요된 선택을 하는 게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선택한다.

그래서 옆에 놓인 총을 잡아들고 빌리 리와 빌리 리의 부하들을 처치한다.

그렇지만 빌리 리의 죽음에 슬퍼하는 로즈에게 (총을 내려놓고) 다가갔다가 교활한 로즈에게 배에 칼을 찔린다.

다행히 사제가 로즈를 총으로 쏴 죽여서 일단 위험은 벗어났지만, 마일스는 죽을 지경.

사제는, 아니 가짜 사제는 그때 착한 일을 한다. 자신은 진짜 사제라고, 그러니 얼른 자기에게 죄를 고백하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마일스가 마음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너의 죄를 사하노라'까지 읊는다.

마일스가 숨을 거두자 달린과 사제는 돈을 챙겨서 그곳을 떠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레노 호텔 라운지로 가서 달린의 노래를 듣는다.

무대에 선 달린은 저기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제를 발견하고 그들은 미소를 주고받는다. 끝.

 

이렇게 영화는 사람들이 겉보기와 얼마나 다른지, 착한 일을 한다고 늘 그 보상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악해 보이는 사람도 착한 일을 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약해 보이는 달린도 사실은 무척 강인한 여인이었으니까(내 생각엔 여기 나오는 사람들 중 제일 선하고 강한 사람 같다).

아, 달린에게 노래를 시키고 노래를 들은 빌리 리가 '더 잘 부르는 가수들도 있는데 뭐(I heard better)'라고 평하는 것도 (선이든 악이든, 노래든 도덕이든 간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음을 나타낸다.

한마디로 이 엘 로얄 호텔은 도덕적인 의미의 '회색 지대(grey zone)'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개인 포스터에 각 등장인물들이 가운데에 놓인 길 위를 걷는 것이다.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냄과 동시에 그들에 대한(그리고 영화에 대한) 평가는 관객들이 직접 내리는 것이란 뜻이 아닐까.

 

 

(이제 스포일러가 없으니 안심하고 읽으시라!)

이건 스포일러는 아니고 그냥 팁이라고 할까, 영화 이해에 도움이 되는 힌트: 극 중 배경은 1969년이다.

영화 속에서 닉슨 대통령이 기자 회견에서 연설을 하는 영상이 잠시 나오는데, 이걸로 이날이 1969년 1월 27일임을 알 수 있다.

아, 크리스 헴스워스가 출연해서 이 영화를 보고 싶어 하는 팬분들도 계실 텐데, 헴스워스는 영화 후반에 나온다.

그 전에는 다른 등장인물들의 비밀을 풀어헤치느라 바쁘다. 하지만 일단 헴스워스가 등장하면 극을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의 자리를 차지한다.

게다가 등장하는 분량 내내 포스터에 나온 것처럼 셔츠의 단추를 채우지 않고 그냥 셔츠를 걸친 상태이고 그 모습으로 살짝 춤까지 춘다.

그러니 헴스워스의 팬이라면 너무 실망하지 마시고, 영화 후반까지 기다리시라. 그럼 보상이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도 인기 있던 미드 <Parks and Recreation>에 출연한 닉 오퍼맨을 보시려고 이 영화를 선택하셨다간 정말 크게 실망하실 것이다.

그의 분량은 영화 초반에 5분, 중반에 3분 정도이다. 그나마 두 번째로 나올 때는 가면을 써서 뭐 얼굴도 안 보임... 그러니 이 점 참고하시라.

그래도 영화는 긴장감 넘치고 얼키고 설킨 비밀들을 풀어 나가는 재미가 있다. 괜찮은 스릴러라는 내 총평으로 글을 마칠까 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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