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감상/책 추천] 제시카 팬, <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

[책 감상/책 추천] 제시카 팬, <이제 나가서 사람 좀 만나려고요>

 

 

이 책은 영어 원제가 기가 막히게 공감이 되어서 골랐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고 싶지 않았거든요(Sorry I’m Late, I Didn’t Want to Come)>라니, 내향인들의 마음을 너무나 잘 표현한 제목 아닌가. 저자는 스스로를 ‘신트로버트(shintrovert)’, 그러니까 ‘수줍은(shy)’ ‘내향인(introvert)’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생활에 서툴면서 동시에 내향적인 사람’이다. 그는 ‘집 나간 외향성을 찾아서’ 1년간 이러저러한 활동을 시도해 본다. 나도 내향성으로는 어디 가서 뒤지지 않기에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이나마 외향성 지수를 높일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일단 저자가 자신의 내향성을 묘사하는 부분을 보자. 저자는 정말 글을 웃기게 잘 쓰는데, 이 유머 감각이 (뒤에서 언급할)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해 보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라면 자기 생일 파티를 끔찍해하는 기분이 어떤 건지 잘 알 것이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여러 사람 앞에서 하는 발표, 회사 단합 대회, 매년 돌아오는 송년의 밤 행사 같은 것들을 정말 싫어한다.

이게 다 내가 내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수줍음이 많은 내향적인 사람인데(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설명하겠다), 소위 수줍음이 많은 내향적인 사람이라면 언제나 다음과 같은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휴대폰이 울리면 방구석으로 던져 버리기, 아픈 척하기, 사교 모임에 나가 얼굴도장만 찍고 바로 빠져나오기, 술집에서 누가 말을 걸면 못 알아듣는 척하기. 마지막 방법은 고급 기술이라 연기력이 좀 필요하지만 효과만큼은 확실하다. 나머지 방법들도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기술이다. 또한 우리는 사람들이 먼저 인사하거나 말을 걸지 못하게 시선을 피하는 데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으며, 그럴 때는 특히 ‘고장 난 로봇 눈’이라고 부르는 기술을 사용한다.

정말 공감했다. 내향적이면서 외향적으로 행동하는 기술을 익힌 사람들은 또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아직 그런 기술이 업데이트가 안 되었기 때문에 사교적인 상황은 대체로 피한다. 단 둘이 이야기하는 건 괜찮은데 한자리에 모인 사람이 다섯 명이 넘어가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많은데 굳이 내가 말을 할 필요가 있나?’ 싶어지고 말수가 급격히 줄어든다. 한마디로, 나는 ‘내향인 특징’이나 ‘내향인 짤’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결과에 최소한 80%는 공감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저자도 그런 축에 속했는데, 어느 날 “뭔가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비록 내향적인 세계를 즐기고 있긴 했지만, 머리 한구석에서는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한가득이었다.” 그래서 1년간 남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외향적인 사람처럼 살아 보기로 결심한다. 길거리나 대중 교통에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고, 일반인이 오를 수 있는 무대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스탠드업 코미디에 도전하고, 친구를 구하는 앱을 이용해 동성 친구를 사귀고, 즉흥 연기도 해 본다. 마지막 열두 번째 달에는 자신의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파티를 연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전문가들의 수업을 듣거나 전문가를 인터뷰해 일대일로 도움을 받기도 한다.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법’이란 수업에서 저자가 배운 바는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 듯하다.

최근 외로움은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치료법은 당연히 다른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우리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마크는 말했다. 하지만 매일 나누는 사소한 대화가 아니라 삶의 의미를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고 했다. 닉 교수가 했던 얘기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좀 더 개인적인 주제로 이야기를 해 보라던 닉 교수의 조언을 떠올렸다. 나는 그 조언을 갤러리 하우스 파티에서 시도했었다. 마크라는 이 남자도 뭘 좀 아는구나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부터 내가 흥미를 느끼는 영역으로 바로 들어가도 좋다고 허락을 받아 기분이 좋았다. 정말이지 나는 가벼운 이야기는 질색이었다. 일 애기, 날씨 얘기, 출퇴근 방법, 그런 얘기를 주고받는 게 정말 싫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잡담을 싫어하는 경향이 있지만(잡담은 사회적으로 어색하고 불편한 상호 작용일 뿐 아니라 거기에서 어떤 의미도 보람도 찾을 수 없었다), 마크가 언급한 이런 질 높은 대화를 할 기회는 믿기 어려울 만큼 드물고 그런 대화를 할 상대도 만나기 힘들었다. 나는 그런 사실을 런던의 길거리에서 이미 경험해 잘 알고 있었다.

나도 솔직히 스몰 토크가 너무 얕다고 생각해서 꺼리던 사람이었다. 사람들과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잘 모르는 사이에 어릴 적 트라우마 이야기 따위를 할 순 없지 않은가. 그래서 대체로 ‘어떻게 지내요?’ ‘잘 지내요’ ‘그렇군요 호호’ 하는 분위기의 스몰 토크를 싫어했는데, 만약 내가 조금 더 깊게 들어가도 된다면 조금 더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을지도 않을까 하는 희망이 생겼다.

위의 인용문을 읽고 ‘하지만 상대가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으면?’이라는 걱정이 제일 먼저 떠오를 수 있다. 그건 예의가 아니지 않나? 하지만 우리가 깊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갈망이 있는 것처럼, 타인도 마찬가지다. 물론 완전히 낯선 상대와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즉각적으로, 또는 24시간 동안 계속 주고받을 수는 없을지 몰라도, 예의를 차리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 그러니까 깊은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상대가 나를 밀어낼 거라는 생각은 대체로 내 기우에 불과하다. 그런 일은 우리 생각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위 인용문에서 마크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교적인 사람이 되는 법’ 강사는 어떤 남자와 여자가 대화하는 영상을 보여 주었다. 남자는 자기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축구 이야기로 재빨리 주제를 바꿨고, 한 여자가 끼어들어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기분이 어땠느냐고 묻는다.

마크는 동영상을 정지시켰다. ”’남자는 어머니에 관해 얘기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여자가 물어본 건 너무 무례한 행동이었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먼저 꺼낸 사람은 남자였어요. 그는 사실 어머니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던 거죠. 개인적인 질문도 상대가 진심을 담아 다정하게 물어보면 사람들 대부분은 매우 기꺼이 대답합니다.”

내 앞에 어떤 여자가 동의한다는 듯 계속 ‘음음’ 소리를 냈다.

30대의 한 남자가 손을 들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항상 자기 속마음이나 사는 얘기를 털어놓고 싶어 하진 않잖아요?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마크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분명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선을 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며 중요한 핵심은 다른 데 있다고 했다.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한 채 재미없이 살다 죽는 것,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모두를 바라보며 천천히 그리고 의미심장하게 그 말을 반복했다.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한 채 재미없이 살다 죽는 것은 정말 두렵고 암울한 일이에요. 하지만 그 현실은 ‘대단히 과소평가’되어 있어요.”

 

그러니 예의를 차리느라 진심이 담긴 깊은 대화를 하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을 버리고 진심을 담아 다정하게 타인에게 다가가고 말을 거는 시도를 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말 그렇게 한 저자는 이 1년간의 실험이 끝나갈 때쯤 많은 친구를 사귀었다. 정말 대단하다. 저자가 해 본 모든 일을 우리가 똑같이 다 따라 할 수는 없겠지만 (저자는 환각을 보여 주는 ‘마법의 버섯’까지 시도해 본다) 그래도 해 볼 만한 항목들이 많다. 대중 교통에서 모르는 사람과 간단하게 스몰 토크를 한다거나 집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며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 정도는 가능할 것 같다. 나도 저자처럼 용기를 내어 조금 더 사교적으로 살아 보겠다고 다짐했다. 어차피 내 성격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조금 더 타인에게 부드럽고 다정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연습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두렵지 않달까. 그렇다고 내가 글래스톤버리에 갈 일은 없겠지만. 내향인이 외향인처럼 행동하는 법을 글을 통해서 안전하게 엿보고 싶은 이들이라면 읽어 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