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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서

[책 감상/책 추천] 홍민지,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by Jaime Chung 2023.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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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감상/책 추천] 홍민지, <꿈은 없고요, 그냥 성공하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고백하건대, 나는 <문명특급>을 보지 않았다. 딱히 그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원래 나는 유행에 뒤처지는 데다가 유명한 유튜버들도 잘 안 본다. 내가 실제로 영상을 챙겨 보는 유명 유튜버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명특급>의 밍키 PD가 쓴 이 책을 읽었다. 아무래도 제목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의 제목보다는 박명수 씨의 원본 밈에 더욱더 공감하지만(꿈이 없는데 ‘성공’처럼 번잡하고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 것을 바란다? 나에겐 어불성설이다).

<문명특급>의 팬도, 그렇다고 안티도 아닌, 정말 아무런 연관이 없는 제3자로서 내가 느낀 바는 이렇다. 90년대생이라면 대체로 공감할 만한 내용이 많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적당한 에세이집이이다. 저자는 90년대생인데 위로는 자기보다 나이 많은 팀장, PD 등이 있고 아래로는 또 도와줘야 할 어린 후배들이 있으니 가운데에 낀 ‘중간 관리자’의 입장이다. 힘들 텐데도 그걸 나름대로 꽤 지혜롭고 적당히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뭐, 내가 밍키 PD의 후배가 아니니까 그가 진짜 좋은 선배라고 땅땅 못박듯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의 위치를 인지는 하고 있는 듯하다.

예컨대, 출연자를 자기가 ‘키웠다’라고 말하는 선배의 모습을 비판하는 동시에 만약에 자기가 그런 말을 한다면 일침을 놓아 주길 바란다는 말로 그 꼭지를 끝맺는 정도의 셀프 모니터링이 된달까.

도대체 왜 본인들이 부모나 보호자인 것마냥 “키웠다”라고 하는 걸까. 막상 힘든 일이 터지면 부모나 보호자처럼 발 벗고 나서지도 않으면서. 이 표현은 비단 방송계에서만 쓰이지 않는다. 영화계에서도 어떤 감독이 “저 배우는 내 덕에 컸다”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회사에서도 “김 대리는 사원일 때부터 내가 키웠지”라고 말하는 부장을 봤다. 출산율이 저조한 이 시대에 자기가 낳지도 않았으면서 키웠다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걸까.

이보다 더 무서운 표현은 “키워줄게”다. 이 말은 강자가 약자에게만 쓸 수 있는 말이고 자연스럽게 갑을 관계를 전제로 하여 상대를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든다. 상대방을 자신의 의도대로 조종하겠다는 말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언니 덕분에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편집에 큰 재능이 있는 조연출인 김혜민 PD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혜민아, 너는 너 혼자 잘해서 성장한 거야”라고 대답했다. 혜민이의 마음은 고맙지만 후배와 선배는 제자와 스승의 관계가 아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도 아니다. 각각의 직업인으로 존재하는 개인일 뿐이다. 그런 사이에 ‘키우다, 배우다, 가르치다’ 등의 표현을 쓰는 게 나로서는 어색하다. 후배들이 나를 통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나와 일하지 않고 다른 팀에 가더라도 높은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말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또한 선배들이 나를 키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저것 따지니까 무서워서 말 한마디 못 하겠네’라고 생각할 사람들을 위해서 대신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표현을 찾았다. 악동뮤지션과 뮤직비디오에 대한 인터뷰를 하던 중에 주운 말이다. 사람들이 악동뮤지션의 의도라고 생각했던 지점이 사실 뮤직비디오 감독의 아이디어와 연출이었던 거다. 그때 수현 님이 “예술과 예술이 만나서 시너지를 만들었어요”라고 답했다. 감독과 아티스트의 수평적인 관계가 느껴지면서 동시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쉬울 것 같지만 이런 표현을 즉석에서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기에 더더욱 “감독님이 다 하신 거죠”라는 말보다 훨씬 겸손하고 솔직하다. 그래서 수현 님에게 배운 이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싶다.

(…)

두세 살 때 내 곁에는 아빠가 없었는데 외삼촌이 아빠의 부재를 대신해줬다. 그런 외삼촌마저 나를 키웠다고 하지 않는다. 기저귀 갈아준 적 없으면 키웠다고 하지 말자. 각자 그 자리에 뿌리 내려서 비 맞고 햇빛 받으며 알아서 큰 거다. 그럼에도 굳이 키워주고 싶다면 매달 2백만 원 이상 아무런 대가 없이 양육비를 보내주는 걸로 정하면 좋겠다. 20년 동안 꾸준히.

그런데 혹시 내가 만약 출연자를 키웠다는 말을 하는 연출자로 성장한다면 누구든 좋으니 내 따귀를 때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누가 누굴 키워요, 본인이나 더 크세요”라는 일침을 놓아주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또한 밍키 PD는 팀장님에게도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스타일인데, 혹시나 자기 말투 때문에 후배들이 상처받거나 불편해하지 않을까 되짚어보는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본받을 만한 자세라 할 수 있겠다.

2년 동안 팀에서 일하며 내가 가장 많이 부대낀 사람은 하데릭이다(참고로 데릭은 하대석 팀장의 닉네임이다). 내가 데릭에게 자주 했던 말은 아래와 같다.

“최악이에요.”

“별로예요.”

“시청자들이 싫어할 것 같아요.”

“왜 이렇게 올드하세요?”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데릭이 나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아래와 같다.

“미안하다.”

“나한테 책임이 있다.”

“더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말해줘.”

“요즘 뭐가 유행이니?”

“그래, 다시 생각해보자.”

(…)

최근에 팀장 역할을 맡으며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내 말투는 굉장히 직설적이고 날카롭다. 선배에게 이야기할 때는 말투를 신경 쓸 만한 일이 없었는데 후배와 일하게 되니 신경이 쓰이게 되었다. 나는 후배들에게 결정권을 줬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만의 생각이고 정작 그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촬영이 끝나고 회사로 복귀하는 차 안에서 아이디어 회의를 자주 한다. 인턴 PD가 의견을 전혀 제시하지 않길래 나 때문에 압박감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인턴 PD는 우리 앞에 서면 갑자기 아이디어가 안 떠오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상대가 누구든 일단 따지고 보는 성격이라서 나와는 다른, 인턴 PD가 갖고 있는 고유의 성격을 고려하지 못했다. 업무적으로 좀 더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다.

누군가는 나보러 뭐 그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쓰면서 사느냐고 한다. 복잡한 세상 편하게 좀 살라고. 그런데 나는 팀장이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신경 쓰며 팀을 운영했을 때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결론을 스브스뉴스팀에서 똑똑히 봤다. 가장 어린 팀원과 나의 나이 차이가 점점 벌어지더라도 팀을 위아래 없이 유지해보고 싶다. 내가 먼저 해보고, 이렇게 팀을 운영하는 방식이 꾸준히 좋은 결과를 낸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적극 추천할 것이다.

이 글을 쓰며 아차 싶다. 개인적으로는 위아래 없는 팀이라고 생각하는데 후배들의 이야기는 아직 들어보지 않았으니까. 내가 지금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면 카톡 하나 보내주라. “밍키, 정신 차리세요!!!” (참고로 밍키는 내 닉네임이다.)

 

물론 나는 밍키 PD가 <문명특집>이라는 프로그램의 PD로서 일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사실 내 판단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그에게 어떤 나쁜 감정도 없다는 의미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축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꿈’은 없고 그냥 성공하고 싶다고 하는데, 적어도 자신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성공하고 싶은 거니까 본인 표현대로 지난 5년간 “사적인 일상을 포기하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주 7일 근무”를 하고 “촬영이 없는 날엔 12시간 넘게 움직이지도 않고 편집만” 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팀이 생기고 팀원들, 특히 후배들도 자기를 보고 따라 하는 걸 알아차린 후에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고, 근무 시간을 지킬 수 있도록 <문명특급>의 콘텐츠 개수도 줄였다지만, 결국 밍키 PD는 ‘워라밸의 기준은 스스로 정한다’라는 제목의 꼭지를 이렇게 끝맺었다.

두 가지의 방식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건 아니다. 두 지점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도 된다. 청춘을 다 바쳐 살다가도 어느 순간 뚝 끊고 휴식을 취하다가 충전이 끝나거든 다시 열심히 살면 된다. 어느 한쪽만 극단적으로 추구하라는 조언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두 지점 사이의 균형감이 필요하다. 그래야 실패했을 때 타격이 덜하니까.

(…)

나는 열두 달 중에 3개월은 열심히 일하고 3개월은 좀 설렁설렁하는 식으로 시소 타듯 중심을 잡고 있다. 그러니까 3개월 정도는 성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일단 나부터 나를 용서하는 거다. 3개월이 지나면 일에만 집중할 거니까. 그러다가 퍼지면 쉬는 기간을 늘여보기도 하고. 치고 빠지기만 잘하면 반은 이긴 거다.

 

워라밸의 기준을 스스로 정한다는 건 자기가 좀 더 오버해서 일하고 싶으면 한다는 의미인데, 애초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권리가 아니라 특권인지라 나는 별로 공감하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 모든 이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따지자면 모든 사람들이 굳이 자기가 밥 벌어 먹는 일을 좋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다(그렇다고 너무너무 싫어하는 일을 매일 해야 한다면 본인이 괴로울 테니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게 낫겠지만). 굳이 자신이 열정적으로 좋아하진 않아도 적당히 생계를 유지할 수 있고,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거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는 일이라면 그것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내 말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것도 축복이고 특권이고 감사한 일이니, 그게 당연하다거나 마치 모든 이들이 그래야 한다고 느끼지 않으면 좋겠다는 거다. 자기 일이 너무 좋아서 조금 더 일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냥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할 만큼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정말 만에 하나, 밍키 PD처럼 운 좋은 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아, 난 왜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설렐 정도로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할까?’ 하며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하는 말이다. 우리는 그런 거 필요 없다고요!

마지막으로 이 책의 장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이 책은 핸드폰으로 읽기에 아주 부담없다. 애초에 많은 이들이 핸드폰으로 웹소설 읽듯 이 책을 읽을 거라고 상정하고 쓴 건지는 몰라도, 문단 배열이나 문장 길이가 매번 일정하게 간결하다. 대체로 네 문장이 한 문단을 구성하는데 이게 핸드폰으로 보면 한 문단이 딱 한 쪽 정도다. 그래서 정말 보기 편하다. 컴퓨터나 태블릿 PC, 또는 종이책 등 핸드폰보다 화상도가 높은 매체를 이용해 본다면 오히려 고만고만한 길이의 문단들이 배열돼 있는 게 좀 (관점에 따라) 신기하거나 어색하게 보일 수 있다. 나는 책처럼 긴 글을 읽기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도 포용하는 의도적 전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문명특급>의 팬인 분들이라면 당연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 90년대생의 마인드는 어떤지 알고 싶다는 분, 또는 내가 지금 중간 관리자 입장인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모르겠다, 힌트가 필요하다는 분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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